그때 그 시절, 참 잘 놀았지
프린터기가 망가져서 정리하다 곁에 있던 책상과 여기저기 널려있던 이면지들까지 정리하게 되었다. 그러다 발견한 둘째의 그때 그 시절 ‘지켜야할 규칙’을 적은 종이를 발견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가 아닐까 싶다.
둘째는 여자아인데도 오빠 밑이라 그런지 성격이 엄청 개구졌다. 며칠 전 우연히 발견한 6~7살때의 사진에서도 오빠, 언니들 사이에서 눈을 뒤집어 까거나 혀가 나와 있는 등 해괴한 표정의 사진들이 주를 이뤘다. 오빠 친구들 모임에 둘째 동생들은 다 여자아이들이었고 그 중 우리 딸이 가장 막내였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언니, 오빠들과 동네를 활보하고 다녔다.
우리 단지는 수락산 둘레길과 근접해 있다. 4개의 단지가 있는데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1,2단지는 의정부, 3,4단지는 서울에 속한다. 실개천 둘레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실개천 끝에 있는 육교만 건너면 수락산 둘레길을 오를 수 있다. 처음 아파트에 입주하였을 때는 버스도 한 대 겨우 들어오는 곳이라 자차가 없으면 외부로 나가기도 번거로웠다. 그래서 우리 동네 엄마들은 우리 아파트를 일명 ‘섬’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차들이 다니지 않는 안전지대라 아이들이 뛰어놀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우리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는 항상 아이들로 북적북적했다.
아들이 3살 때 이사를 와서부터 집 앞 놀이터에서 놀았고, 유치원에 다닐 때는 하원을 하고나서 저녁밥을 먹으러 들어가기 전까지 놀았다. 아이들이 유아시절에는 단지 내 놀이터에서 놀거나 부모와 함께 산책로에 가서 놀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행동반경이 넓어지면서부터는 부모 없이도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하루 종일 밖에서 놀았다. 놀이터는 기본이고, 숨바꼭질, 술래잡기, 얼음땡, 신발 던지기, 딱지치기, 경찰과 도둑이라는 신세대 놀이까지 참 잘도 놀았다.
딸도 오빠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했다. 둘째는 또래보단 주로 언니들과 놀았고, 가끔 언니들과 떨어져 길을 잃기도 했다. 일이 늦게 끝나던 나는 초등학생이 된 딸을 컨트롤하기 더 어려웠다. 날이 한참 어두워졌는데도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노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위에 발견했던 메모는 아마 그때쯤 썼던 규칙 메모였을 것이다. ‘오빠랑 같이 놀기, 도서관 끝날 때 들어오기, 하교 후 집에 들어와서 구몬 하기, 엄마한테 전화하고 가서 놀기, 꼭 누구랑 같이 놀아야 해요.’ 아무래도 딸은 험난한 세상에 던져두기 두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규칙을 말할 때 뿐... 딸은 놀다보면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나는 딸에게 그렇게 고수하던 핸드폰을 초1때 사주고야 만다. 물론 스마트폰은 아니고 폴더폰이지만.
나는 딸이 잘 노는 건 좋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때는 그렇게 고민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아이들이 참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도심에 살면서도 놀이터에서 저녁이 될 때까지 놀았고, 가까운 산책로와 실개천에서 여름이면 물놀이를 하고, 겨울이면 비탈진 곳에서 눈썰매까지 타며 놀던 곳, 우리 아이들이 커서 떠올릴 추억이 물씬 깃들어 있는 이 곳이, 벌써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