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의 부인 (1612-20)
헤리트 반 혼토르스트
헤리트 반 혼토르스트(Gerrit van Honthorst, 1590-1656)는 위트레흐트에서
아브라함 블뢰마르트(Abraham Bloemaert, 1566-1651)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1610년에 로마로 건너가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명암의 극적 대비와
사실적인 묘사로 17세기 네덜란드 바로크 회화를 발전시킨다.
그는 로마에서 귀족들과 고위성직자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며 명성을 쌓았는데,
로마 시민들은 우아하고 매혹적인 밤 풍경을 잘 그린
그에게 ‘밤의 헤리트’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플랑드르의 사실적 세밀함과
카라바조의 극적인 명암대비가 조화를 이룬다.
혼토르스트는 밤의 장면 중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이루어지는
수난 장면을 촛불이나 등불을 들고 인물들을 비추는 모습으로 꼼꼼하게 그렸는데,
그가 1612-20년경에 그린 <성 베드로의 부인>은
그가 로마에 머문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
이 작품은 마태오복음 26장 69-75절, 마르코복음 14장 66-72절,
루카복음 22장 55-62절, 요한복음 18장 15-18절과 25-27절이 그 배경이다.
카라바조도 1610년경에 같은 주제로 사도 성 베드로의 고뇌를 그렸는데,
혼토르스트의 작품도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뚜렷하다.
베드로가 안뜰 아래쪽에 있는데 대사제의 하녀 하나가 와서,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를 보고 그를 찬찬히 살피면서 말하였다.
“당신도 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지요?”
그러자 베드로는,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그가 바깥뜰로 나가자 닭이 울었다.
그 하녀가 베드로를 보면서 곁에 서 있는 이들에게 다시,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예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또 부인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곁에 서 있던 이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당신은 갈릴래아 사람이니 그들과 한패임에 틀림없소.”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하였다.(마르 14,66-72)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면, 붉은색 밑칠을 사용했고,
긴 빛줄기로 어두운색을 더욱 풍부하게 표현했다.
빛은 화면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삼각형의 모양으로 비치는데,
오른쪽 끝에 3/4 각도에서 그린 초상화로 표현된 성 베드로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검지손가락으로 베드로를 예수님의 제자라고 지목하는 하녀와 병사,
그리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미묘하게 그렸다.
이 작품은 세 명의 등장인물들을 반신으로 그려
주인공에게 바짝 다가가서 바라본 시점으로 인해
가까이에서 침묵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그런데 혼토르스트가 로마에서 그린 이 작품을 보면,
카라바조처럼 어두운색을 배경으로 하고 여섯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세 명의 군사는 오른쪽 탁자에 둘러앉아 촛불을 켜놓고 카드놀이를 하고 있고,
그 뒤에 안경을 쓴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카드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며,
왼쪽 끝에 슬픈 표정의 베드로가 손짓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며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고,
촛불을 들고 있는 하녀는 손가락으로 베드로를 가리키며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예요.” 하고 말하자,
카드놀이를 하는 군사 중 한 명이 탁자를 짚고 일어나
베드로의 겉옷을 붙잡고 있는 장면이다.
혼토르스트는 촛불이라는 인공조명을 통해 성경을 신비롭게 표현했고,
네덜란드의 선술집이라는 장소에 베드로를 옮겨 놓아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공간 안에서 묵상하게 한다.
하녀가 입고 있는 가슴을 살짝 드러낸 옷은 17세기 선술집 창녀의 복장이고,
깃털이 달린 모자를 쓴 군사들의 모습은 17세기 네덜란드 용병들의 복장이다.
혼토르스트는 카라바조처럼 네덜란드 서민의 얼굴을 성경에 사실적으로 담았고,
손짓과 표정과 시선 등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강하게 묘사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예요.” 하는 하녀의 음성과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는 베드로의 음성이 귓가에 계속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