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국열차'를 봤다. '앞칸 사람들'과 '꼬리칸 사람들'이 그려졌다. 이 두 칸의 구별은 신분이었다. 그 신분은 기차에 오를 때부터 결정돼 있었다. 꼬리칸 사람들은 절대 앞칸으로 와서는 안됐다. 그것은 곧 죽음이었다. 고흥 소록도가 떠올랐다. 오래 전 소록도는 '세상의 섬'이 아니었다. 설국열차의 꼬리칸 사람들과 다름 없었다. 섬 안에서도 병사지대와 직원지대를 구분하는 철조망이 있었다. 가족과도 떨어져 지내야 했다. 구분은 한센병이었다. 이들에게 소록도는 죽음의 다른 이름이었다.
| 나환자들을 검시했던 검시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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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로 간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중략)//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길 전라도 길.' 1949년 발표된 한하운(1919~1975)의 시 '전라도길(소록도 가는 길)'이다. 시인을 포함한 한센인들의 아픔을 표현한 작품이다. 소록도(小鹿島)는 고흥반도 끝자락 녹동에 딸려있는 섬이다. 하지만 뭍과 연결해주는 소록대교를 타고 섬까지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섬의 형상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 한센인들의 애환이 깃든 섬이다. 일제는 1916년부터 이 섬에 한센인을 따로 수용했다. 그 과정에서 편견과 학대, 인권침해가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다.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은 한센인 수백 명이 사랑과 희망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섬의 면적은 49만㎡. 작은 섬이지만 깨끗한 자연환경에다 역사적 기념물도 많아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소록도에는 한센인을 치료하는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다.
| 소록도 자료관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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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들어선 소록도자혜의원이 효시다. 일제가 지주들로부터 기부금을 강제로 거둬 부지를 마련하고 건물을 지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 원장이 환자들을 폭력으로 다스렸다. 공사에도 강제 동원했다. 수호(周防正季) 원장은 한센인 이춘상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역사는 이청준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 한센인 부모와 보육소 자녀들이 면회를 하고 있다. 한달에 한번,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만나는 면회만 허용됐다. 이 곳을 탄식의 장소라 해서 '수탄장'이라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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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병원으로 가는 솔숲 첫머리가 옛 수탄장(愁嘆場)이다. 병사지대의 부모와 보육소에서 생활하던 자식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던 곳이다. 면회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이뤄졌다. 그래서 탄식의 장소다.
해안길 솔숲 사이로 놓인 나무데크를 따라가면 소록도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병원 앞 해안가에 애환의 추모비가 서 있다. 해방을 맞아 자치권을 요구하다 집단 학살당한 원생들의 넋을 기리는 비석이다. 병원 벽에는 지난 봄 완성된 '희망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고흥 남포미술관이 기획한 옹벽벽화 '아름다운 동행-소록도 사람들'이다. 길이 110m의 옹벽에 소록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표현했다. 피 흘리는 아기 사슴이 인권을 유린당한 주민들의 과거다. 평생 한(恨)을 품고 살아온 주민 등의 얼굴은 현재다. 한센병이 사라진 소록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아기 사슴은 미래다. 희망이다.
| 소록도 자료관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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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뒤쪽으로 소록도 자료관이 있다. 소록도의 자연과 역사, 원생들의 생활사, 사건과 인물 등이 전시돼 있다. 한센병에 대해 이해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하는 공간이다. 자료관 앞에는 검시실과 감금실이 있다. 붉은 벽돌의 이 공간은 소록도의 아픈 과거를 말해준다. 일제 때 원장들은 한센인들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로 정관수술을 일삼았다. 당시 시술도구가 그대로 남아있다. 25살 나이에 정관수술을 강제당한 한 환자의 시가 걸려있다. 내용이 애절해 눈물이 난다.
검시실은 사망환자의 사체 검안을 위한 해부실이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었다. 그래서 소록도 사람들은 '세 번 죽는다'고 했다. 한센병 발병과 시신 해부, 장례 후 화장으로 죽는다는 것. 수술대와 검시대, 세척시설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 나병을 구제한다는 뜻의 구라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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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공원은 1940년 완공됐다. 연인원 6만여 명이 강제 동원돼 3년 넘게 공사를 했다. 암석은 섬 밖에서 채취해 들여왔다. 관상수는 일본, 대만 등에서 가져다 심었다. 종려나무, 편백나무, 등나무와 향나무, 삼나무, 동백나무, 치자나무가 보인다. 남국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도 많아 이국적인 느낌도 든다.
소록도의 상징이 된 구라탑이 여기에 있다. 폭정을 일삼다 환자에게 죽임을 당한 일본인 원장 수호의 동상이 있던 자리다. 탑에 ‘한센병은 낫는다’고 새겨져 있다. 한센병 퇴치와 계몽에 앞장선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를 기리는 공적비도 옆에 서 있다. 구라탑 뒤로는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가 새겨진 너럭바위가 있다.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이면서 '죽어도 놓자 바위'다. 공원 조성 당시 완도에서 들여온 것인데 바위가 너무 무거워 옮기면서 허리가 부러져 죽고, 대열에서 빠져 나오면 매를 맞아 죽었다는 말이다.
공원의 조경이 무척 아름답다. 그러나 한센인들의 피땀으로 조성하고 고통이 숱하게 배어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중앙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와 바다가 보이는 해송 숲에서 한참 동안 앉아있었다. 썰물 때가 되자 한센인들의 한이 서린 바다가 속살을 드러냈다. 마을 주민들이 갯벌로 나가 바지락을 채취하고 있다. 방문객들에게 큰 위안과 휴식을 주면서도 절로 고개 숙여지게 하는 섬이다.
|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 공적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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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전환을 위해 차를 몰고 거금도 드라이브에 나선다. 거금대교를 건너 27번국도를 따라간다. 차장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비경이다. 굽이굽이 해안길을 따라 쪽빛 바다와 점점이 박혀 있는 섬들이 어우러진다. 익금, 금장, 연소, 고라금 해변도 이어진다. 해변이 맑고 남해의 푸른 물결을 마주할 수 있어 더 좋다. 27번국도의 출발점인 오천항을 지나니 길이 지방도로 이어진다.
|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 시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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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도는 프로레슬러 '박치기왕' 김일의 고향이기도 하다. 생전의 그가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던 곳이다. 전기도 김일 덕분에 여느 섬과 달리 일찍 들어왔다. 주민들이 그의 공력을 공적비로 새겨 놓았다. 섬이 큰 탓일까. 천천히 섬의 해안도로를 따라 도는 데만도 시간이 꽤나 걸린다. 여행전문 시민기자ㆍ전남도 대변인실
"울적하셨어요? 매운탕ㆍ국밥으로 마음 달래 보시죠"
●가는 길
화순에서 29번국도를 타고 보성까지 가서 남해고속국도를 타고 순천방면 벌교나들목으로 나간다. 여기서 고흥방면으로 27번국도를 타고 고흥읍을 지나면 소록대교와 거금대교로 연결된다.
●먹을 곳
도양읍에서 생선회나 매운탕을 먹을 수 있다. 조은자리(842-1436), 한국식당(843-4040), 녹동회타운(842-5199), 진미횟집(842-3111), 영성식당(842-3914)이 괜찮다.
장어탕은 성실산장어숯불구이(843-9985)와 아리랑산장어숯불구이(842-7797)가, 고기류는 송학식당(842-3635)과 수미정(842-9233)이 맛있다. 거금도에선 제일식당(843-3737)과 소담(844-9935)의 백반이 먹음직스럽다. 내고향식당(843-1069)의 옛날국밥도 별미다.
●묵을 곳
도양읍보다 거금도에 많다. 전망 좋은 바닷가에 하얀파도펜션(844-1232)이 있다. 거금도한옥(010-3600-9335)과 비파나무집(010-3083-2313), 돌담한옥(010-4169-4159), 해변가한옥(010-5282-9363), 명천황토방(010-6790-6227) 등 한옥펜션과 민박도 여러 군데 있다.
●가볼 곳
능가사와 수도암이 있다. 능가사는 신령스런 팔영산의 품에 다소곳이 안긴 절집이다. 운람산 중턱에 있는 수도암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암자다. 영남면 우천리에 팔영산자연휴양림도 있다. 남열해변과 가까워 해수욕과 산림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남양면 중산의 일몰도 황홀하다.
●문의
도양읍사무소 061-830-6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