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명곤붕(北溟鯤鵬)-4 통권 114
“상아!”
“아버님!”
장상은 부친인 장항상(獐杭商)이 태회진으로 자신을 찾아오자 크게 기뻐하며 부친을 맞았다. 장상은 라혼에게 의백최가를 견제하는 임무를 띤 수군 제독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원주 조정으로부터 직위를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대수영에서 장상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그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상아, 지금 보아하니 네가 뜻을 이룬 듯하구나. 이 아비는 네가 자랑스럽구나.”
“미약하나마 원하던 것을 아주 조금 얻었을 뿐입니다. 한데 어인 일로 태회진까지 발걸음을 하신 겁니까?”
“이 아비는 장사꾼이다. 돈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바로 이 아비의 일이지.”
장항상은 본래 중소 규모의 선단을 꾸려 인시드와 무역을 하여 큰돈을 번 상인이었다. 그러나 남상 서해대수영의 반란으로 장삿길이 막혀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최근 남상의 반란이 토벌되고 덤으로 들끓던 인시드 해적까지 일소되었다는 소식에 새로이 상선대를 꾸리던 중, 백호대수영에서 지분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서해우수사(西海右水使)인 아들 장상에게 그에 대한 것을 묻기 위해 태회진을 찾은 것이다.
“아버님, 그것에 대한 모든 권한은 토금전장이 가지고 있습니다. 소문으로나마 들으셨겠지만, 대수영을 운영하는 자금의 거의 전부가 토금전장의 창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인시드 남주 무역의 지분은 거의 토금전장에서 처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흐음, 역시 그렇구나.”
“아버님, 토금전장의 대상계에 참여하시지 않으신 겁니까?”
“그렇다. 토금전장이 벌이는 일들이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아 그들의 요구를 거부했는데, 그것이 이렇게 후회가 될 줄이야.”
“그럼 지금이라도 참여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지금 말이냐?”
“그렇습니다. 토금전장의 금 대인이 인시드에도 분장을 만들고 무역계를 신설한다고 하니 거기에 투자를 하십시오. 제가 금 대인께 미리 연통을 넣어두겠습니다.”
“알았다. 그보다 정립천하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있느냐?”
장상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정립천하군이 먼저 도발해오면 한 달이 가기 전에 웅랑교와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가장 큰 일이 될 겁니다.”
***
백호대함 3척, 투함 36척, 흑선을 포함한 돌격함 154척, 그리고 3백여 척 규모의 쾌속선으로 구성된 대함대가 남해로 들어서서 남례성 남쪽 끝에 있는 극남성(極南城)에 집결했다. 대수영의 목표는 해남군도였지만 해남군도가 특별히 조정에 반하거나 어떠한 적대 행위를 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남군도의 세력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간 해남군도의 세력을 조사한 바로는 해황가가 종주(宗主) 격으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해남군도의 패권을 차지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각 섬마다 산호, 향료, 희귀한 약초 등의 특산물이 나고 적게는 다섯 가구, 크게는 1천여 가구로 되어 있는 섬들로 이루어진 해남군도는 사실상 독립된 지역이나 다름없었다. 해남군도는 동영에 속하여 동영대도독이 책임을 맡고 있는 곳으로서 해남군도 최대 해상 세력인 해황가가 동영대도독에게 통치권을 위임받아 다스리는 형태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해남에는 해황가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고 심지어는 해황가와 해남군도의 패권을 다투는 세력에 해황가와 한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세력조차 셀 수 없이 많을 정도였다.
섬사람들은 대개 외부인들에게 배타적인 성향을 띠고, 지도자를 신성시하는 경향이 짙었다. 즉, 혈연에 의한 소속감보다 출신 섬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데 심지어 외가와도 섬이 다르면 적대시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서로 분쟁이 붙어 싸우다 싸움을 멈출 때 서로 상대편의 여자를 주어 화해를 했는데, 이 여자는 대부분 지도자 가문에 속한 여자이고 그 여자가 상대편 섬에서 아들을 낳으면 이쪽과 혈연이 있는 셈이지만 다시 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외손자인 동시에 또한 적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섬의 지도자라도 섬을 상징하기 때문에 함부로 머리를 숙이지 않아 수십 호가 사는 섬의 지도자와 수백 호가 사는 섬의 지도자는 동급 항렬에 있었다 때문에 해황가의 주인인 해황은 아무리 작은 섬의 지도자라도 직접 영접을 해야 했다. 그러나 섬의 지도자 수는 해남군도의 섬의 수만큼이나 되었다. 그리고 해남군도의 사람들은 홀로 작은 조각배에 몸을 싣고 한 달이나 항해하여 남례성이나 동영 대도(大島)의 시장에 나가 볼일을 보고 다시 한 달을 항해하여 자기 섬으로 돌아올 정도로 바다를 포근한 어머니 품으로 여기는 자들이었다. 또한 이들은 바다의 풍요로움을 알고 바다 속 보물들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사는 섬만큼이나 옹졸하지만 또한 끝없이 드넓은 바다만큼 마음이 넓기도 했다.
청명한 하늘, 상쾌한 바람, 라혼은 극남성 주변의 백사장에서 대수영의 군사들에게 간단한 훈련을 시키고 물놀이를 즐기게 했다. 해남군도엔 해황가를 포함, 손꼽히는 세력에 해도대원수로서 후려와 분쟁할 때 움직이지 말라는 내용의 요지를 담은 친서를 보내고 또한 해남군도에 대수영의 거점을 확보하는 것으로 해남군도의 문제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후려 앞바다에서 후선의 수군을 견제하기로 했다. 현재 후선군을 상대하는 곳은 갑주가 유일했다. 후선과 면한 경주의 원제가는 원주 조정에서 대군을 모아주기만을 기다리며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임주는 계제가가 유명무실해지고 학가가 전면에 나서서 후선을 두둔하는 입장을 취하는지라 라혼 대수영이 후려의 바다를 장악한다고 하여도 큰 의미가 없었다. 단지 주공(主攻)이 결정되고 전략이 세워지면 후방 교란을 위해 대수영의 수만 군사를 후려에 상륙시킬 수 있지만 그전까지는 후려 연안을 압박하여 후선이 동해에 투입한 전력 일부가 남해로 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럼 후선이 선택할 수 있는 패는 그간 돈독한 우의를 다지던 해남군도의 해황가에게 아쉬운 소릴 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후려 강무세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던 동영에선 무슨 이유인지는 후선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고 있지 않고 있었다. 라혼이 판단하기에, 동영오가는 동영의 패권을 두고 서로 대립하는 입장이라 쉽사리 외부로 전력을 돌리지는 못하리라 판단했다. 그래서 그쪽에도 해도대원수의 이름으로 은밀히 친서를 보내 그 답을 기다리느라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돌아가는 사정은 복잡했지만 라혼의 입장은 단순명료했다. 바다에서의 대수영의 영향력과 입지를 확고히 하는 것. 그것이 다였다. 해황가가 대수영을 인정하면서 고개를 숙이며 들어오고, 동영의 다섯 가문 또한 대수영을 인정하면 족했다. 다음은 조정이 준비가 끝나면 그때 가서 움직이면 되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기다리는 것이 최상의 전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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