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월든(Walden)』에 빠져 2017년 여름을 보낸다. 끝이 없을 것 같았던 가뭄과 장마가 계속되는 삼복더위 속에서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 수필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월든-숲속의 생활』을 읽었다. 하루에 몇 페이지씩 틈틈이 읽어 나가는 동안 독서의 맛과 명상으로 이어지는 삼매(三昧)에 빠져 평온을 느꼈다. 그 덕에 몸과 마음이 더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19세기에 쓰인 가장 중요한 책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월든』은 사람들의 곁을 떠나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있는 호숫가 숲속으로 홀로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소박한 밥상을 장만하는 등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 하는 수도승처럼 문명생활을 등지고 살아온 2년 2개월 동안의 생활을 기록한 책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변화하는 월든 호수와 주위 숲의 모습, 또 그 속에 사는 저자와 이웃, 그리고 온갖 동식물의 삶을 생생한 필치로 그려 나갔다. 자연과 조화로운 삶, 꾸밈없고 검소한 삶이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저자의 철학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낸 경전 같은 작품이다. 모험기이자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서, 저자의 정신적 자서전으로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이 책은 물질문명의 폐해에 젖은 우리를 꾸짖고 충고하며 때로는 격려를 통해 무한한 각성을 일깨웠다.
현대문학이 2013년 초판 4쇄로 발간한 46배판 크기에 463페이지 규모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원작에 제프리S. 크래머의 주석으로 강주헌이 옮긴『주석달린 월든(The Annotated Walden)』을 구했다. 책이 크고 무거워 독서대 위에 올려놓고 읽어야 편하다. 첫 일기를 “7월 25일, 토요일, 어제 이곳에 살려고 왔다.”라고 쓰기 시작한 소로우는 호숫가에서의 삶을 시간 순으로 기록하지 않고 봄에서 그 다음 봄까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사색과 삶을 18개의 작은 제목으로 나누어 기록했다. 또한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때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도 진솔하게 썼다.『월든』은 소설도 아니고 자서전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연주의자의 일기도 아니고 자신이 만든 삶의 문학이다. 도입부문에서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를 묻고 9번째 작은 제목 ‘호수’ 에서는 “물은 새로운 생명과 움직임을 끊임없이 공중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물은 그 본질상 땅과 하늘의 중간이다. 땅에서는 풀과 나무만이 나부끼지만 물은 바람이 불면 몸소 잔물결을 일으킨다.”고 쓰고 여름과 가을을 살아온 저자는 겨울을 앞두고 ‘난방’과 ‘겨울 동물들’ 등 겨우살이 준비를 위해 “서리가 내릴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나는 나뭇잎이 바스락거리고 붉은다람쥐와 어치가 요란하게 잔소리하는 소리를 들으며 숲을 걸어 다녔고 때때로 녀석들이 반쯤 먹은 밤을 훔치기도 했다.”고 낱낱이 기록했다.
소로우는『월든』의 마지막 단락 맺음말에서 “나는 존(영국인)이나 조너선(미국인을 가리키는 말)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무조건 다음 날 새벽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우리 눈을 멀게 하는 빛은 우리에게 어둠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눈을 똑바로 뜨고 기다리는 날에야 비로소 새벽이 찾아온다. 앞으로 더 많은 날에 새벽이 찾아올 것이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과 같다.”고 했다. ‘종소리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들리나.“라는 말처럼 아침에 뜨는 별은 소로 이전의 문학서에서 이미 발견되었듯이 태양을 아침에 뜨는 별로 비유했다. 평소 교류가 잦았던 에머슨이 쓴「정치」에서 ”우리는 우리 문명이 거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겨우 수탉이 울고 아침별이 뜨는 시대를 맞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면 소로우는 새벽의 마지막 이미지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려는 마음을 먹고『월든』을 써내려갔으리라. 소로우는 우리에게 세상의 부조리와 종교의 모순까지를 깨닫게 하는지 모른다.
소로우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형과 함께 사립학교를 열어 잠시 교사 생활을 한 뒤에 목수, 석공, 조경, 토지측량, 강연에 이르기까지 시간 나는 데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산책하고 독서하고 글을 쓰면서 보냈다. 그리고 저명한 문필가이자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집에서 머무르며 가정교사 생활도 하고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845년 3월부터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기 시작하여, 같은 해 7월부터 1847년 9월까지 그 집에서 2년 2개월 동안 홀로 살았다. '숲속의 생활'(Life in the Woods)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리는『월든(Walden)』은 월든 호숫가에서 보낸 2년 2개월의 삶을 소로우 자신이 기록한 책이다. 소로우가 명실상부한 자연주의자라는 사실은『월든』에서 더 분명해진다. 단순히 호숫가 오두막집의 생활을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깊이 교감하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과장 없이 솔직하게 적고 있다. 이 책은 자연의 예찬인 동시에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다. 나아가서 물질문명에 사로잡혀 허황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판적 성찰과 자연의 소중함,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월든』은 그 어떤 것에도 구속 받지 않으려는 자주적인 인간의 자화상이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월든-숲속의 생활』은 읽을수록 새로운 각성과 자연을 통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게 했다. 오늘날 천민자본주의의 과소비와 투기, 그리고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악순환을 벗어나 영혼을 돌볼 시간을 확보해준 소로우는 ‘무소유와 자발적인 가난’과 ‘분수에 맞는 검소한 생활’에서 자본주의 몰락의 해결책을 찾게 해주었다. 나아가서 소로우는『월든』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본성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이 책의 결론부문에서 저자는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라고 묻고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을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어라."라고 일렀다. 그는 1849년 부당한 시민 정부에 대한 합법적인 개인의 저항을 주장한 에세이『시민 불복종』을『월든』에 앞서 남겼다.『시민 불복종』은 1846년 맥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여 투옥 당한 경험도 생생하게 그렸다.
뉴에이지 계통의 피아니스트 캔 패더슨은 소로우의『월든-숲속의 생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클래식 자연주의 릴랙싱 피아노 앨범은 평온하면서도 사색적이며 마음의 평온과 휴식을 가져다준다. 단순한 화음과 선율 속에 소로우의 정신과 의미를 담아냈다. 생전에 ‘월든’을 좋아했던 법정 스님은 “고전은 눈으로 읽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두런두런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메아리가 영혼에까지 울리는 법”이라고 했듯이 나도 그렇게 읽었다. 소로우는 21세기에 와서 더욱 중요시되는 환경보호운동의 실질적인 최초의 주창자이다. 그가 주창한 단순한 생활과 절대적인 자유의 축구, 자연과 더불어 항상 깨어 있는 지성인으로서 실천을 통한 계몽과 교육 등은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사점을 주고 있다.『월든』은 출세지상주의와 배금주의의 환상에 젖어 너무 많은 것을 지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돌아보게 하는 강렬한 성찰의 메시지를 전하는 위대한 작품이었다.『월든-숲속의 생활』을 읽은 뒤 모건 브랜치 호숫가 숲속에서 오두막 생활 25년을 산 영문학자의 기록『길 잃은 즐거움』을 구해 읽을 작정이다. 어느 날 무인도로 떠날 수 있는 긴 휴가를 얻는다면 나는 어떤 주저함도 없이 바흐의 무반주첼로 모음곡과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그리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월든-숲속의 생활』을 가방에 챙겨 넣고 떠나서 돌아오지 않아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