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러려니 하는 산 이름도 세월이 지나면 바뀌곤 한다. 대동여지도를 볼라 치면 대부분의 산들이 지금과는 다른 이름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오랜 세월 고유한 이름을 간직해 온 산을 발견하면 왠지 모를 '포스'가 느껴지며 남달리 다가온다.
경남 창원의 백월산(해발 428m)이 그런 산이다. 마산·창원 일대의 산 이름이 대동여지도에 나와 있는 산 이름과 모두 다르지만 백월산만큼은 그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백월산 주변의 마을도 월촌, 남백, 월백, 월계 등 백월산의 이름을 땄음직한 것들이 많다.
삼국유사 고사 '보름에 비치는 산'
철새 관찰 '주남저수지' 조망 멋져
백월산의 이름은 아마도 신라시대부터 그대로였던 것이 아닐까 한다. 삼국유사에 이런 고사가 있다. 당나라 황제가 못을 팠더니 매월 보름이면 못에 사자모양의 바위가 있는 산이 비쳤다. 못 속의 산을 찾게 한 황제는 해동의 한 산에서 못 속의 산과 똑같은 모습의 산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확인하고는 이상히 여겨 보름에 비치는 산이라는 뜻으로 백월산(白月山)이라 했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또 신라 경덕왕 때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두 젊은이가 백월산에 들어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부처가 됐다는 전설도 기록돼 있다.
고사의 진위는 차치하고서라도 삼국유사에까지 현재와 똑같은 산 이름이 그대로 등장할 정도이니 유서 깊은 산임은 틀림없는 듯하다.
이번 주 산&산팀은 그래서 창원 백월산의 이름값을 확인하기로 했다. 코스만 잘 잡으면 바로 옆 주남저수지에서 아직까지 노닐고 있는 철새의 탐방도 가능하다고 하니 일석이조.
산행 코스는 화양고개~구름다리~범골봉~남지갓등~헬기장~백월산~월산마을. 휴식 포함 3시간30분가량 걸린다. 산행 들머리는 월백리의 화양고개로 잡았다. 남백저수지에서 올라가는 길도 있지만 주남저수지 방향을 제대로 보려면 아무래도 이곳에서 올라가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들머리 바로 옆에 산행 안내도가 보인다. 안내도 옆의 나무계단을 타고 오른다. 솔가리가 많이 쌓여 푹신한 산길을 타는 기분이 쾌적하기 그지없다. 백월산은 정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이처럼 푹신한 산길로 이뤄진 육산(肉山)이다. 창원시가 등산로 주변 나무에 붙여 놓은 각종 경구들도 산행의 재미를 더한다.
12분쯤 산길을 타고 진행하면 석산리에서 남백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산길과 마주친 안부 위로 나무로 만들어진 구름다리가 보인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이 다리가 없었다면 2m가량을 내려섰다 오르는 번거로움을 겪었을 듯.
길을 재촉해 5분쯤 가면 나무로 만들어 놓은 계단이 보이고 여기에서 다시 6분 더 올라간 곳에 벤치 2개가 놓인 쉼터가 위치해 있다. 이곳부터 오른쪽으로 주남저수지의 모습이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나뭇가지 사이로 저수지 전체 모습을 확인하며 다시 5분을 더 가면 이정표가 놓여 있다. 백월산 정상 쪽 길과 석산리 쪽 길이 만나는 곳이 이 지점이다.
다시 백월산 정상 쪽을 보고 길을 재촉한다. 3분쯤 지나면 멀리 범골봉이 능선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3분 뒤, 범골봉 정상 부근까지 암릉으로 이어진 경사길과 마주친다. 암릉을 쉽게 오를 수 있도록 쳐 놓은 줄을 따라 4분을 올라가면 정상에 놓인 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백월산정이다. 주남저수지 뒤로 진영읍과 동읍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그 오른쪽으로 구룡산과 천주산, 농바위, 작대산, 무릉산이 줄을 지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정자 안에는 철새를 관찰할 수 있도록 주남저수지 방향으로 놓인 망원경 2개가 설치돼 있다. 무료로 사용가능한 망원경에 눈을 갖다 대자 저수지를 오가는 철새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산행 들머리를 화양고개로 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곳으로 들어설 경우 이 범골봉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철새 탐방을 한 뒤 정자 옆 이정표를 참고해 백월산 정상을 향한다.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초입에 왼쪽 멀리 보이는 백월산 정상의 암릉 모습이 웅장하다. 12분가량을 내리막과 오르막을 오가며 걸어가면 안부에 이른다. 바로 오른쪽은 임도. 정면으로 보이는 무덤에서 왼쪽으로 길을 잡아 된비알을 올라간다. 10분쯤 땀을 흘리고 나면 벤치 하나가 놓인 쉼터가 나온다. 다시 9분을 더 올라간다. 이정표가 나오면 그곳이 남지갓등이다. 여기서부터는 능선 왼쪽 사면길을 따라 왼쪽으로 백월산 정상을 보면서 10분 더 전진한다. 헬기장이 나오면 정상이 가까웠다는 증거.
오르막을 18분 더 오르자 갑자기 시야가 틔면서 백월산 정상의 암릉이 눈에 들어온다. 3개의 큰 암봉으로 이뤄진 백월산 정상은 어느 쪽에서 봐도 멋진 조망을 제공한다. 해발고도만 더 높았더라면 아마도 국내에서 손꼽는 명산이 됐음직한 조망이다. 암봉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암릉을 탈 수 있도록 곳곳에 밧줄이 매어져 있다. 15분간 암봉 3개를 지난 자리에 위치한 산불감시초소에서부터 월산마을 쪽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15분 내려간 곳의 이정표에서 다시 월산마을 방향을 확인하고 왼쪽으로 내려간다. 이제부터는 거의 외길이다. 왼쪽 멀리 백월산 정상이 까마득하게 올려다보인다. '산은 높지 않되 삼봉(三峰)이 태산을 압도하는 진산'이라는 창원시의 설명이 헛되지 않음을 느낀다. 마을회관이 있는 월산마을까지는 25분 거리. 마을회관에서 도로 쪽으로 8분을 더 내려가야 버스정류장이 있다. 산행 문의: 레포츠부 051-461-4162, 홍성혁 산행대장 010-2242-6608.
글·사진=이상윤 기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