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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전1동 하늘의 문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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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성당들의 사진 오르비에또 두오모(Duomo di Orvieto) /180524-4
하늘땅 추천 0 조회 916 18.06.12 08:51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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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6.19 19:22

    첫댓글 4개의 Pillar(기둥)에는 대리석 부조가 있어요.
    『Genesis(창세기)』, 『Tree of Jesse(이새의 나무)』,
    『Episodes from the Life of Jesus(예수의 생활 이야기)』
    그리고
    4번째 맨 우측 기둥의 부조는 『Last Judgement(최후의 심판)』입니다

  • 작성자 24.06.19 19:23

    성모자상 좌우로 왼쪽부터

    마태오(Matthew) : 천사
    마르코(Mark) : 날개 달린 사자
    루 카(Luke) : 날개 달린 황소
    요 한(John) : 독수리

    청동 조각상이 있습니다.

  • 작성자 26.04.06 20:57

    <<오르비에또Orvieto 주교좌 성당의 기원>>
    오르비에또의 주교좌(1) 성당인 성모 마리아 성당을 표현하는 13세기의 글들을 살펴보면, 바닥은 관리가 안되어 풀이 솟아 있고, 천정에 난 구멍으로 비가 들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교좌 성당의 상황은 오르비에또에서 열리는 중요한 종교 행사들은 모두 다른 성당에서 거행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1271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0세(재위: 1271-76)는 알레마냐의 엔리코 Enrico d’Allemagna(2) 의 장례식을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하였고, 교황 보니파시오 8세(1294-1303)는 프랑스 왕인 성 루도비코 9세(성왕 루이)를 성인 품에 올리는 행사를 같은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거행하였습니다(1297). 또한, 마르티노 4세 교황(1281-1285)의 교황성성식(敎皇成聖式: Consacrazione del Papa (3))도 로마가 아닌 이 도시의 성 안드레아 성당에서 거행 되었습니다.
    13세기 국제 정치의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로마에 있어야 할 교황과 교황청이, 계속하여 오르비에또에 상주하면서, 이 도시에는 경제적인 이득이 생겼고, 이러한 경제적 이득이 새로운 주교좌 성당의 건설을 시작하게

  • 작성자 26.04.08 19:27

    오르비에또 주교좌 성당 설명 12
    <<오르비에또 주교좌 성당 정면 모자이크>>
    ** 세부 설명은 첨부된 성당 정면 사진의 모자이크 번호를 참조 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자연에 노출되어 파괴된 부분들을 계속해서 복원하였던 모자이크 부분들은, 1300대에 작성된 원래 작품들 중에서 현재까지 보존된 것은 없다고 봅니다.
    1789년 오르비에또의 교구장 주교였던 안타모리Antamori 추기경(1780년 12월 11일부터 1795년 12월 4일 선종하실 때까지 오르비에또 교구장)은 두오모(주교좌) 성당 건립 오백 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든 모자이크의 재보수 작업을 명하였습니다.
    정면 왼쪽 :
    아래
    ① “예수님의 세례”는 체사레 넵비아 Cesare Nebbbia의 1584년 도안한 작품,
    측면의 “가브리엘 천사와 성모영보(주님 탄생 예고)”는 야콥포 페루찌 Iacopo Peruzzi (1659년) 작품입니다.

    ② “동정녀 마리아의 결혼식”은 가브리엘레 메르칸티Gabriele Mercanti가 뽀마란쵸Pomarancio 라고 불리던 안토니오 치르치냐니 디 니꼴로 Antonio Circignani di Nicolo의 도안으로 작성했습니다.
    정면 중앙

  • 작성자 26.04.08 19:43

    성체포경당 감실(기적의 성체포가모셔져 있는)이 열려있는 모습

  • 작성자 26.04.09 14:41

    오르비에또 주교좌 성당 내부 개요

    <<오르비에또 주교좌 성당 내부 개요 2 >>
    주교좌(두오모) 성당 초기 건축 라인은 짧은 기간에 비해서 눈부신 성과를 이루었는데 건축 책임자가 누구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아르놀포 디 캄비오 Arnolfo di Cambio(23)일 것이라고 하지만, 그를 배제하자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다른 의견들 중에 뻬루지아 사람인 베비냐떼 수사 Fra Bevignate(24) 의 이름이 오르비에또의 서류에 1295년에서 1300년까지 오르내리고 있기에 이분의 역할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르비에또 출신의 건축가인 죠반니 두구쵸네 Giovanni d’Uguccione가 7명의 예술가 협회 회장들이 결정을 하여, 시의 명령으로, 1301년 12월 29일에 공사감독으로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주교좌 성당 건설 사무실에서 발견된 당시의 여러 문서를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로마와 토스카나(피렌체가 중심인 지역) 지역의 숙련공들과 함께 롬바르디아(밀라노가 중심인 지역), 프랑스, 독일, 영국에서도 숙련공들이 불려졌습니다. 이들은 옛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그리고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

  • 작성자 26.04.15 13:02

    오르비에또 주교좌 성당 설명 26
    <<오르비에또 주교좌 성당 : 성체포 경당 2>>

    당시 교황 우르바노4세는 기적이 일어난 볼세나와는 20km 쯤 되는 거리에 있는 오르비에또)에 계셨는데 기적에 대한 연락을 받으신 후, 오르비에또의 쟈코모(야고보)주교에게 성체와 거룩한 천(성체포)을 모셔와 자신에게 보여주도록 지시 하였고, 교황 자신과 수행원들 그리고 오르비에또 시민들이 현재는 쏠레 다리Ponte del Sole(번역하면 “태양의 다리”) 라고 불리는 리오 끼아로 다리Ponte di Rio Chiaro까지 마중을 나왔습니다. 여기서부터 수행원들이 당시 주교좌 성당인 성녀 마리아 프리스카Santa Maria Prisca성당으로 이 성물들을 모셨고, 여기서 교황께서 축제 분위기 속의 대중들에게 성체포를 공개 하셨습니다. 후에(1290년) 이 성당자리에 현재의 주교좌 성당이 자리하게 됩니다.
    1264년 8월 11일 우르바노 4세 교황께서는 교회 내에서 성체 성혈 대축일을 제정하게 되는 “Transiturus de mundo”교서를 오르비에또의 교황궁에서 반포하시게 됩니다.
    현재 이 거룩한 기적의 성체포는 1358년 안드레아 오르카냐 Andrea Orcagna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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