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명덕을 밝히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격물(물욕을 바라잡음. 잘못을 바로잡아 잘못을 바루어 그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치지(致知;각조하길 노력하여 혼침과 산란에 맡기지 말라는 말이다)로부터 시작하여야한다.
「물物」은 물욕으로 물질 상으로 탐하여 구하는 욕망을 일으킴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욕육진으로 귀납합니다. 「격」은 양명학의 왕수인은 바로잡음이라 해석하였고, 사마광은 격살이라 해석하였습니다. 무엇을 쳐서 죽입니까? 오욕육진 · 교만과 의심의 망념을 쳐서 죽입니다.
특히 "잘못을 바로잡아 잘못을 바루고 그 그릇된 마음을 바로잡는다 진덕수의 《대학연의>>는 말이다."라고 주석합니다. 「명명덕明明德」은 이로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이는 곧 불법에서 늘 말하는 만연을 내려놓음(放下萬緣)이다. 만연은 무엇입니까? 「만연」은 곧 물욕입니다. 물욕은 우리의 진심을 장애하고, 우리의 청정심을 장애함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내려놓을 수 없고,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청정광명의 각성覺性이 새어나올 수 없습니다.
「치지」는 곧 간파입니다. 우리는 지혜를 얻어 "각조하길 노력하여 혼침과 산란에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지식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는 각이라는 뜻을 주석에서 매우 잘 해석합니다. 각조는 곧 앞에서 말한「명」의 뜻입니다. 치지: 념념마다 각조함」 가 진실한 학문이고「격물(格物 물욕을 바로잡음) 이 진실한 공부입니다. 간파가 참 학문이고 내려놓음이 참 공부입니다. 여기서 시작하여야 합니다.
가령 사람의 욕망이라는 물건은 있는 힘을 다해 바로잡아 없앨 수 없으면 본래 갖추고 있는 참된 지혜(眞진여본성의 반야지혜)는 결코 드러나기 어렵다. 참된 지혜가 밝게 드러내려면 일상생활 일체의 말과 행위에서 늘 각조를 일으켜, 일체 이치에 어긋난 감정과 생각이 마음에 잠시라도 싹트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이와 같으면 비로소 캄캄한 방에 있어도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고 평지를 밟아도 무서워하고, 푸른 하늘에 대해서도 두려워하며, 격렬한 천둥소리를 들어도 놀라지 않는다.)
여기서는 다시 공부와 학문의 방법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당」이란 글자는 가정한다는 뜻입니다. 물욕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면 있는 힘을 다해도 바로잡아 없앨 수 없습니다. 불법을 가지고 말하면 곧 내려놓고 다시 내려놓음, 철저히 내려놓음입니다. 이는 확실히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과 재물은 내려놓지만, 명예와 이익은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성은 내려놓을 수 있지만, 이익은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욕육진에는 늘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한두 가지 있게 마련입니다. 세간법도 내려놓고 출세간법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극력격제는 말끔히 없앤다는 뜻입니다.
《능엄경>에서는 상당히 깊이 들어가 철저히 「공여래장.불공여래장을 말합니다. 공포. 불공 여래장은 모두 우리에게 이러한 이치를 말해줍니다. 왜 철저히 내려놓아야 하는가? 청정한 심성에는 한 법도 세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선종의 육조혜능대사께서 말씀하신 「본래무일물」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곧 여기서 말하는 극려격제로 마음에 한 물건도 존재하지 않고 한 법도 세우지 않은 경지입니다. 이때 진여본성의 반야지혜, 광명이 현전하고, 본래 갖추고 있는 참된 앎(本有眞)이 빈틈없이 나타납니다. 진정한 지혜는 우리가 본래 갖추고 있는 것이지 바깥에서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맑은 거울처럼 맑은 거울의 광명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울 표면을 덮은 먼지가 매우 두꺼우면 비추는 작용을 잃게 됩니다. 먼지를 제거해야만 거울 본래의 작용으로 비출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광명 지혜는 본래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가 청정할수록 지혜는 더욱 더 커집니다. 마음이 청정하고 안정될수록 지혜는 커집니다. 이는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우리는 한 개인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청정하지 못하며, 마음속이 엉망진창이면 이런 사람에게는 절대 지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간·출세간법은 같은 것으로 큰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늘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떤 경계가 현전하여도 그는 여여부동如如不動합니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지혜방법이 있어 일을 꼭 알맞게 잘 처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일이 눈앞에 닥치면 마음이 당황하고 이수선한 사람은 절대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혜가 열려야 하고 삼매경에서 착수하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 물욕을 바로잡아 제거할 수 없다면 본래 갖추고 있는 참된 앎이 현진할 수 없고, 또한 속속들이 나타나기 어렵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본래 갖추고 있는 반야지혜는 우리에게 일분 격치( 물욕을 바로잡아 지혜에 이름)의 공부가 있으면 지혜가 일분 나타나고 십분의 공부가 있으며 십분의 지혜가 나타납니다. 지혜가 나타남은 격치 공부의 깊이로써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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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한달만의
기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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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