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김찬수가 야외 연습장에서 클럽을 이용한 저글링 연기 연습 중 힘차게 클럽을 하늘로 던지고 있다.
02. 이상필이 연습실에서 본격적인 연습 전 팔굽혀 펴기를 하며 준비 운동 겸 체력 단련을 하고 있다.
03. 이상필(왼쪽)과 김찬수가 야외 연습장에서 서로 클럽을 주고 받는 저글링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
04. 김찬수가 저글링 연습하는 모습을 이상필의 겨드랑이 사이로 볼 수 있다.
05. 이상필(왼쪽)과 김찬수가 연습실 턱에 걸터 앉아 휴식을 취하는 중 공연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06. 김찬수가 거리 공연 당시 촬영 된 본인의 사진 앞을 걸어 가고 있다.
07. 김찬수가 달력을 보며 일정을 수정하고 있다.
08. 김찬수가 자동차의 룸미러를 보며 분장하고 있다.
09. 김찬수가 공연 전 신발끈을 매고 있다.
10. 김찬수가 다리사이에 저글링용 클럽 세 개를 끼우고 서 있다. 그 모습이 마치 그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듯 하다.
오승현 학생의 포토스토리 <나는 광대다>를 소개하는 것으로 제 1기 명예기자의 활동에 대한 정리와 보고가 마무리됩니다. 가장 먼저 작업을 시작했던 모양이나 몇 장을 갈아끼기 위해 새로 취재를 하게되는 바람에 총평이 가장 늦춰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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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대다>는 피에로 복장을 하고 묘기를 부리는 마임 아티스트 두 명을 다룬 포토스토리다. 마임 아티스트라고 부르면 예술가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자타가 모두 '광대'라고 부르는데 별 거부감이 없는 모양이다. 광대라는 표현이 아티스트보다는 더 친숙하다. 그런데 어쩐지 그렇게 부르는 게 조금 켕기는 기분도 든다. 이렇게 총평을 시작하는 이유가 있다. 작가가 대상을 사진으로 (혹은 글로) 표현할 때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일의 시작이자 끝에 해당한다.
여러 각도로 찍어놓고 나중에 편집(선택을 포함한 모든 후작업)할 때 관점을 수정할 수도 있지만 처음에 어떻게 사진 찍힐 대상을 바라보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미리 밝히지만 오승현은 사진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다. 이 대목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분도 있겠다. "전공을 하니 저 정도 찍는구나" 그러나 사진을 전공한다고 모두 이만큼 찍는 것은 아니다. 또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만큼 찍지 마라는 법도 없다. 게다가 오승현의 모든 포트폴리오에서 이런 수준이 유지되는 지도 알 수 없다.
잘 만들어진 포토스토리다. 위에서 짚었듯이 나이가 조금 든 세대에겐 광대라고 부르는 자체에 차별의식이 들어있다는 자괴심을 느낀다. 몇 살부터인지 기준점을 잡기가 모호한 이유가 있다. 60, 70년대 후반까지는 서커스단이 순회공연을 하면서 마을의 볼거리문화에서 한 몫을 담당했으므로 그 세대에겐 친숙하다.
마지막 서커스단인 <동춘서커스>는 오랫동안 버텨왔다. 혹시 서커스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들도 피에로 복장엔 익숙하다. 놀이공원에서 흔히 보는 캐릭터이며 심지어 어떤 패스트푸드업체의 마스코트로도 쓰이고 있다. 이제 마임 아티스트로 아예 체질을 바꿔버린 위 포토스토리의 두 주인공들은 서커스단 소속이 아니다. 그런데 스스로 광대라고 부르는데 불편함이 없다. '광대'의 사전적 의미에선 비속함이 없다.
그냥 유교식 신분계급인 '사농공상' 그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예능인들을 천시하던 풍조 때문에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다. 오히려 요즘 세대는 광대든 마임 아티스트든 상관없이 피에로 복장을 하고 기예를 선보이는 저 주인공들을 더 친숙하게 생각할 것이다. 길게 광대라는 표현에 관해 쓴 이유는 이 포토스토리의 관점을 어떤 톤으로 가져가야하는지에 대해 오승현 학생과 이야길 해봤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논점은 한 가지. 이들의 미래는 희망적인가? 이들은 스스로 만족하는가? 힘들지만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매우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걱정이 많은 사람들도 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사진으로 표현할 때, 그 톤은 확실히 구분해줘야 한다. 사진을 보면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 다음은?
열심히 연습한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조금 불투명한 것 같다. 그러나 고민도 잠시뿐, 미래를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10장의 구성은 이렇게 전개되었다. 1번부터 4번까지는 연습 장면이다. 1번은 의미심장하다. 느린 셔터와 플래시의 효과로 움직임을 살렸고 극도로 낮은 앵글을 통해 극적인 효과를 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독해보이고 고립된 것처럼 보인다. 1번은 전체를 모두 아울러서 대표하기도 하고 가장 예쁜 사진이기도 하다. 2번은 어두운 실내에서 체력단련을 하는 장면이다.
"배경이 밝으니 어두워보이는 탓도 있는 것"뿐만 아니라 역광으로 찍어서 그렇게 보이는 효과도 있다. 왜 그렇게 했을까? 3번은 두 명이 모두 나왔다. 역시 셔터와 플래시를 이용하여 기교를 부렸다. 이건 합성이 아니다. 클럽의 궤적이 움직이면서 보이는 효과는 아주 크다. 좀 자세히 설명하면 셔터를 열어둔채(몇 초간인지는 상황에 따라) 플래시를 연속적으로 터지게 하면 이렇게 찍힌다.
얼마나 세게 터뜨려야 하는지에 대해선 매뉴얼을 찾아보거나 그냥 몇 번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삼각대는 필수사항이며 플래시의 모드는 멀티다. 몇 차례나 터트릴 지는 찍는 사람의 선택이다. 4번 컷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에 석장의 훈련 장면이 있었는데 또 하나가 등장하게 되니 중복을 피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그러고도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앵글을 탐색했을 것이다. 주인공 중 마임컴퍼니의 대표인 김찬수씨가 동료인 이상필씨의 겨드랑이 사이로 보인다. 이상필씨는 윗옷을 벗었다. 몸으로 하는 운동이다. 김찬수씨의 시선은 하늘을 향한다. 아래쪽엔 클럽 하나가 보인다. 저건 잡았을까? 공중에 뜬 클럽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
사진은 생략이란 말이 떠오른다. 5~7번은 훈련을 마치고 나서 흐름을 한 박자 쉰다는 의미가 있는 사진이다. 5번을 먼저 보자. 이 두 명이 앉아있는 곳은 실내와 바깥이 같이 보이는 공간이다. 바깥에는 내려놓은 클럽이 약간 질서없이 세워져있다. 질서가 없다고 했지만 클럽의 특이한 모양과 문양 때문에 패턴이 도드라지게 보인다.
안은 어떤가. 진공청소기가 있고 그 외 몇 가재도구들이 이름없이(온전하게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다!) 서있다. 안과 밖의 경계는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6~8번은 현재, 과거, 미래다. 6번은 과거의 서술이다. 사진 속에는 피에로옷을 입은 김씨가 거리 공연을 하고 있는데 관중이 꽤 많이 보인다. 당연히 신나는 모습의 과거다.
그런데 클럽 대신 맥주병이 보인다는 것도 짚어줄 필요가 있다. 7번은 미래에 대한 내러티브다. 빽빽하진 않고 드문드문 공연 일정이 잡혀있다. 8번에서 다시 주인공은 휴식을 끝내고 공연을 준비한다. 화장과 분장은 다르면서 같다. 분장을 하고나면 사람 김찬수는 보이질 않고 광대 김찬수로 변신한다. 일은 일인 것이다. 9번은 준비된 한 컷이다.
이런 컷으로 후반을 장식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이 컷을 찍을 줄 안다. 구두끈을 맨다는 것, 그 배경이 자동차의 열린 문이란 것은 시작이며 출발이며 어디론가의 일정을 수행하는 과정이다. 마지막 10번은 유머와 비유와 여유다. 가랑이 사이에 클럽을 끼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을 보여주는데 옷의 문양이 미키마우스다.
전체적인 톤을 희망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처음에 말했던 두 관점 중에서 희망적인 방향을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장치다. 오승현이 처음에 보여준 컷에는 최종 10장엔 포함되지 않은 11번이 있었다. 11번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진 11번
“저건 맥주병이나 와인병처럼 보인다” 배경으로 초점이 나간 주인공이 앉아있다. 11번 사진이 포함되었다면 이 포토스토리는 불안한 미래를 연상시켰을 것이다. 그 사진이 빠지고 지금의 10번으로 끝을 맺었는데도 나로서는 미키마우스와의 조합이 서글퍼 보이기도 한다.다.
저 미키마우스 때문에 즐거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나처럼 서글픈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 그러니 그 다음부터는 관객이자 독자의 몫이다. 마임 공연을 보는 관객의 몫이며 사진을 보는 독자의 몫이다. 예술은 창작이다. 아우라는 지금 여기에만 있는 고유한 것에서 나온다. 사진을 찍는 것은 약간 예술적인 행위다. 원래 거기에 있던 그것을 카메라로 찍었기 때문에 사진이 생긴다.
거기에 그것이 없었다면 사진이 생겨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보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예술적 행위다. 사진을 보는 독자나 관객은 사진에 없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상상해야 한다. 사진에 찍혀있는 A를 보고 a나 B나 C를 떠올려야한다. 이 이야기는 오승현의 <나는 광대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번 명예기자 8인 모두를 위한 당부이며 사진하는 모든 이들에게 대한 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