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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계시록!(24) : 눈물의 경고를 들으라!”
+ 본 문 : 요한계시록 14장 6절 - 20절 (신약 413쪽)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대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아멘!
“눈먼 기독교” 는 책에서 저자는 오래 전 아프리카 수단에서 겪었던 황당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저자가 콜라를 사려고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진열장에 있는 콜라를 집어 들고 보니 희한합니다.
병모양은 콜라병인데 병뚜껑은 환타였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그 안에 노란 색 액체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게 주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가게 주인은 자기 나라는 워낙 가난해서,
모든 것을 재활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 내용물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주인의 말을 믿고 콜라를 샀습니다. 그런데 안에 담긴 것은 콜라가 아니고 오렌지 맛 환타였습니다.
그래서 가게에 다시 찾아가 주인에게 항의를 했더니, 그 주인이 자기 나라에서는 내용물과 상관없이,
병모양이 콜라면, 그냥 콜라라고 부른다고 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더 할말이 없어 가게를 나왔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요즘 들이 이 시대의 기독교를 가만히 살펴보면, 기독교가 마치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하다.
겉모양은 기독교가 틀림이 없는데, 걸어진 간판도 틀림없이 교회인데, 실제 내용물은 인본주의 예배와,
가르침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현대교회의 위기를 점점 더 증폭시키고 있다.”
이 이야기와 같은 경우를 두고 사도 바울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5절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아멘!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14장을 통해서 복음의 양면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아멘!
여기에 나오는 영원한 복음을 중심으로 보면, 우리 인간들의 삶은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민든 영원한 복음을 받아들였느냐? 아니면 영원한 복음 거절했느냐로 구분이 됩니다.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악한 세상에서는 핍박과 고난을 당하겠지만,
그 마지막은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 통치 아래서 새 노래를 부르는, 기쁨의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영원한 복음을 거절하고, 사탄인 짐승의 수 666 을 받고 그 짐승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는 잠시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로,
상징되는 무서운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를 두고 복음의 양면성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진노의 포도주로 상징되는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되는 사람들의 행동들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아멘!
이 말씀에서 나오는 바벨론은, 교회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핍박하는 악한 세상을 상징합니다.
지금 이 요한계시록을 처음 수신하게 되는 초대교회 성도들을 놓고 본다면, 이 바벨론은 로마가 됩니다.
로마는 힘의 원리로 팍스 로마! - 로마제국의 평화를 이루려고 끊임없이 전쟁을 했던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정복자들은 끝없는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였습니다. 당연히 영원한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그렇게 영원한 복음을 거절한 그들은 로마 황제를 하나님으로 떠받듦과 동시에, 인간인 자신들을,
정복한 국가에서 하나님처럼 떠받들도록 했습니다. 당연히 정복한 국가들과의 종교도 무시했습니다.
당연히 유대를 정복했던 로마는, 영원한 생명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로마의 황제나 자신들을 신으로 떠받들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로마의 핍박자들은, 생명의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아멘! - 저와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알 수 있는 잣대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은 어떤지 돌아보면, 내가 생명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인지,
아니면 예수 없이 교회를 다니는 사람인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면, 이 세상은 두 부류의 사람들로 정리가 됩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예배하는 인생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자신을 숭배하는 인생들입니다.
말세에 일어날 현상들을 설명하는, 디모데후서 3장 1절부터 4절 말씀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 정말로 아멘하고 싶지 않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면, 이 말씀들 중에 우리 시대, 아니 우리에게 다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말세에 나타나는 끔찍하고 무서운 이런 일들은, 딱 한 마디로 말하면 자기를 사랑하는데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두 번째 항목은, 돈 돈, 돈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데까지 가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이것이 곧 자기 숭배입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예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말씀도 듣고 있습니다. 기도도 합니다. 축복을 선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나 밖에 모르고, 나만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나 중심이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세상 쾌락을 쫓아가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앞에서 말씀드렸던 이야기, 병은 코카콜라 병인데, 그 안에 담긴 것은 환타가 아닌지?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였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8,19)
다시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와 8절 말씀을 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여기서 바벨론의 특징을 보게 됩니다.
껍데기는 콜라 병인데, 이미 안에는 세상의 환타로 가득 차 있는 인생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이렇게 껍데기는 콜라 병인데, 이미 안에는 세상 환타로 가득 차 있는 인생들은 큰 것을 추구합니다.
8절에서 바벨론은 큰 성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1등, 부자, 큰 교회, 성공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물론 큰 것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큰 것들만 원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저와 여러분의 삶을 점검해 보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나는 지금 주님의 통치를 상징하는 교회 안에 있으면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는가?
아니면 두 짐승 안에 거하든지, 주님 안에 거하든지에 상관이 없이 그저 큰 것, 크게 성공하는 것,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친창과 박수받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점검해야 할 것은, 영적 우상숭배 중에 하나인 – 성적타락을 점검해야 합니다.
사탄은 주님 안에 살아가는 우리들을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적으로 유혹합니다.
그렇게 성적으로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의 최종 목표는, 믿음의 자녀들인 우리들을 하나님의 영역에서,
자신의 부하인 두 짐승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적인 충동과 싸워야 합니다.
혹 어쩌다 그 성적 충동에 무너졌다면, 그 자리에서 즉시 돌이켜 주님을 의지하며 매달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탄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날 뛰며 미혹하는 이 세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 우리에게는 나의 죄인 됨을 꾸짖고 지적해 주는 눈물의 경고자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겉모습은 그리스도인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실상은 이 세상 큰 바벨론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우리의 죄악 된 삶을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는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맙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 왕이 흠과 티가 없이 완벽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존경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는 너무나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성적인 죄를 범했고, 그것을 감추려고 살인했습니다.
그런 다윗이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은, 그런 그를 책망하여 회개시킨 나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의 권세를 가지고, 자신의 지적하며 크게 책망하는 선지자 나단을 내치지 않았습니다.
나단의 책망을 눈물로 받고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저의 나단은 누구이며, 지금 여러분의 나단은 누구입니까?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 앞에 애통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종이지만 제가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나단 선지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제가 엉뚱한 길로 갈 때에 저를 책망해주는, 나단 선지자를 저에게도 보내 주시옵소서!”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큰 성 바벨론! - 곧 이 세상을 닮아가는 그런 인생들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 살아가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내게 보내 주시는 나단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나단 선지자 같은 사람이 되어,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도록 경고해 주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사탄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날 뛰며 미혹하는 이 세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눈물의 경고에 순종해서 주님께로 돌아와,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그런 질문을 하나님께 드릴 때가 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놀라우신 하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지를 않을까? 왜 자기 자기 자신의 생각과 경험으로 살아갈까?
심지어는 모태신앙인, 교회의 중직자라는 사람들이, 왜 주님이 아닌 자기중심으로만 살아갈까?”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우리가 이 은혜로운 찬양을 얼마나 가슴 뭉클하게 부릅니까? 그런데 그렇게 살지는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을 주인으로 삼았을 때,
그분이 주시는 기쁨의 깊은 그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습관적으로 교회를 들락거렸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 기쁨으로 채우려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0절, 11절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서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을 맛보고 있으십니까?
이 주님의 기쁨의 맛을 못 보면, 겉모습만 그리스도인이기에 항상 세상 것만을 우선으로 살아갑니다.
돈돈 하지만 손에 남는 게 없습니다. 예배와 기도와 교회 일에는, 늘 바쁘다고 도망가기에 빠릅니다.
교회에 오면 늘 피곤한 척 하지만, 세상일에는 전혀 피곤하지 않습니다. 죽을둥살둥 일을 해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 흘러나오리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은, 그 배에서 – 그 심령에서 생수가 흘러넘칩니다.
내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주님이 주시는 만족과 기쁨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우리는 이걸 체험해야 합니다.
이걸 체험하게 되면, 내 안에 담긴 세상의 환타를 다 뽑아내고, 콜라 병에 걸맞는 콜라로 채워주십니다.
내 안에 있어야 할 생명의 복음! - 예수 그리스도로! 흘러 넘치도록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십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회복됩니다. 예수 믿는 진짜 맛을 알고 믿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한 회개를 주시고, 온전한 회개를 통해서 십자가의 사랑을 놀랍게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면, 애통하는 마음과 함께 한없는 기쁨이 내 속에서 솟아납니다.
그러면서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복음이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전도합니다. 사는 게 너무 행복해집니다.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말씀이 읽고 싶어집니다. 말씀을 읽게 됩니다.
선포가 터져 나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장자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자녀요. 복의 근원입니다.”
축복선포가 터져 나옵니다. “있을지어다. 치료될지어다. 회복될지어다. 복 있을지어다. 정복할지어다.
충만할지어다. 다스릴지어다. 평안할지어다. 순종할지어다. 감사할지어다. 가정과 직장이 잘 될지어다.”
긍정적인 언어가 터져 나오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됩니다. 잘 됩니다. 갈수록 더 잘 됩니다.”
“살겠네. 그래도 살겠네. 힘들어도 살겠네.” - 이게 바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경험하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주신 기쁨이, 내 인생의 충만한 능력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기쁨의 능력이 내 인생의 구원의 감격이 되고, 엄청난 기적이 되고, 풍성한 축복이 되고,
그 모든 것들이 성령의 생수가 되어 여러분들을 통해서 아름다운 복음의 능력으로 흘러 넘쳐,
그런 나 때문에 가족이 살고, 이웃이 살고, 행복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