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이용할 때면 가급적 책을 읽으려 한다.
그래서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나 사 놓고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이 있으면
무조건 들고 나간다.
그렇게 읽는 책 중에서 내가 자주 읽는 책이 한 권 있는데,
읽을 때마다 행간에서 전해오는 느낌이 참 좋다.
그래서 읽고 또 읽으면서 책장을 고이 접어 놓거나, 밑줄을 그어 놓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고 싶으면 여지없이 그 책이다.
읽다가 선물로 주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주고 나면 또 사서 읽는다.
그 책의 구절 중에 있는 말이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는 없다."
홍콩의 유명한 영화감독인 왕가위 감독이
작품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는지 묻는 기자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책 속에는 정 주영 회장의 "임자, 해 보기는 해봤어?"라는 말도 소개되어 있다.
무슨 일을 할 때면 주저하거나 자신 없어 하는, 혹은 어떻게든 핑계를 대는 우리들을
따끔하게 꾸짖는 듯 하다.
물론 철저한 준비를 해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을 탓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준비물이나 준비운동이 본격적으로 무엇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처럼,
준비야 말로 일의 시작이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낭패를 보거나 일이 어렵게 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다.
음식점을 개업하는 날, 식재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던지, 종업원이 갖춰지지 않다면 말이 되겠는가.
누군가는 일의 절반은 준비라고도 한다.
분명 중요한 절차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너무 완벽한 준비를 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것이 준비일진대,
어떻게 완벽한 준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완벽한 준비란 말 그대로 완벽히 불가능하다.
준비하다가 차일피일 시간만 가는 경우도 있고,
준비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정작 사업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임용을 비롯해 진학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완벽한 준비 때문에 힘들어 한다.
너덜너덜해진 교재나 참고서를 보면
무진장 열심히 준비하고 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새벽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잠깐의 수면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의 대부분을 오직 시험, 취업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인간다운 삶은 포기한 지 오래고,
마음마저 상처 받고 아파 신음하고 있다.
만성이 된 듯 아픔도 모르고 그냥 버티고 있다.
보고 있으면 안타깝고
내 마음도 물들어 가는 느낌이다.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천형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우리 젊은이들은 이 과정을 힘겹게 짊어지고 가야 하는가.
준비하는 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막상 원하는 목표를 이룬 사람들도 희망이 아닌 절망이나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러면서
그래도 준비하는 그때가 좋았다고 말한다.
리처드 브랜슨은 버진그룹의 회장이다.
그는 준비가 덜 된 사람이 성공한다는 역설을 말하곤 한다.
그의 삶이 그것을 말해 주기도 하지만,
준비란게 끝이 없어서 마치 저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일단 무언가를 하기로 마음 먹는 순간부터 준비는 시작되는 것이기에
시도하고 도전해야 한다.
우리들이 가진 유일한 차이라면 누군가는 일단 그냥 시작한다는 것이다.
지금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건,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기 전에 일단 시작하라는 주문이다.
우리 말에도 있듯, 시작이 반이다.
노량진에서 면접과 논술 강의를 하면서 만나는 많은 예비 교사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답을 말하거나 논술 답안을 작성할 때,
"아직 준비가 덜 되어서",
혹은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
또는 "지금 공부하는 중이라서"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물론 더 좋은 답변, 더 완벽한 답안을 작성하지 못한 아쉬움이자
그러기 위한 몸부림이란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준비만 하다가는 정작 제대로 칼 한 번 쓰지 못하고 싸움에서 지고 만다.
링 위에 오르지도 못하고,
줄넘기만 하다가, 쉐도우 복싱 폼만 잡다가 끝나게 된다.
봄이 되면서 종종 슬럼프를 겪는다는 하소연을 듣는다.
다들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어서 하는 푸념이고 고민들이다.
어쩌면 너무 완벽하게 준비해서 꼭 이 관문을 넘고 말겠다는 절대적 목표 때문일 것이다.
서글프게도 너무도 절대적인 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합격이란 것이 인생에서 그렇게도 절대적인 것일까?
사랑도 참고, 가족과 함께 하는 것들도 참아야 할 만큼..
건강도, 마음도 병들어 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 악물고 이겨내야 하는 것일까?
그럴수도..
어쩌면 전혀 아닐 수도..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함이 완벽하게 불가능한 것이라면 조금은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부족함도 내 몫이고,
그래서 채울 수 있는 여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너무 완벽해서 빈틈이 없으면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이제 우리,
조금의 여유지만 누려보는 마음을 가져 보자.
그 자리에 머무를 수도 있다.
어쩌면 남들이 앞서 가니 뒤로 쳐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떠리.
포기하지 않고 조금은 부족한 채로지만 나아가고 있으면 된다.
상대적 속도, 위치보다
나에게 맞는 빠르기와 자리를 찾자.
무엇을 완벽하게 하진 못해도,
그렇다고 무엇을 못할만큼 부족하지도 않은 우리이다.
p.s 저 역시도 그렇기에, 그런 여러분을 동지의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첫댓글 무엇을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교수님 글 보고 위로 받고 가요ㅠㅠㅎㅎ
감사합니다^ㅇ^!!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교수님의 걱정스런 마음이 느껴지네요 ㅜㅜ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박 쌤은 마음 근육이 참 튼튼한 사람이에요~^^
아마 늘 감사하며 현재에 충실하기 때문일 거에요.
제 교직 경험을 돌이켜 봐도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고,
힘든 일에서도 숨어 있는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행복한 삶, 행복한 교사가 되는 길인 것 같았어요.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있겠지만,
모든 일에 있어서 너무 치우치거나 과한 것은 안 좋은 것 같아요.
조금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도, 예비 선생님들도 모두요~
연수 잘 다녀오세요^^
많이 배우고 오셔서, 우리 카페에도 전달 연수 해 주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