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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우생순 말고 이제는 행복한 우생순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여자핸드볼 국가대표 임영철 감독)
다시 핸드볼의 시즌이 돌아왔다. 핸드볼의 시즌은 다른 종목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시즌이 4년에 한 번 찾아오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 핸드볼 실업연중리그인 SK코리아리그는 해마다 열린다. 그러나 말 그대로 ‘핸드볼의 계절’은 올림픽이 열리는 4년에 한 번 ‘잠시 반짝’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여자 대표팀이 금메달, 남자 대표팀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가 ‘핸드볼 시즌’의 최고 절정이었다.
이후 남자 핸드볼은 다시 올림픽 시상대에 서지 못하고 있지만 여자는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세계 정상급 실력을 과시했다.
여자 핸드볼의 올림픽 메달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가 형성됐던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는 여자 대표팀도 4위에 머물러 메달을 따내지 못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그 유명한 ‘우생순 신화’가 만들어졌다.
임영철 감독의 지도 아래 여자 대표팀은 결승까지 진출, 덴마크를 상대로 2차 연장전과 승부던지기까지 치르는 대혈투를 벌인 끝에 승부던지기 2-4 패배로 은메달을 따낸 것이다.
핸드볼이 인기 스포츠인 유럽에 비해 형편없는 여건과 핸드볼 저변을 가진 우리나라였기에 은메달도 대단한 성과였으나 눈 앞까지 왔던 금메달 대신 목에 건 은메달에 선수들은 물론 ‘독사’로 유명한 임영철 감독의 눈에서도 아쉬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야기는 훗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 (사진 : 연합뉴스)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우생순’ 신화는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 동메달, 2012년 런던 대회 4위 등으로 이어졌고 이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겨냥하고 있다.
여자 대표팀은 20일부터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아시아 지역 예선에 출전하고 남자 대표팀은 11월 카타르 도하로 날아가 아시아에 한 장 배당된 올림픽 티켓에 도전한다.
10년도 넘은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을 마치 어제 일처럼 매 순간 기억하고 있는 임영철(55) 여자 대표팀 감독과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한국 남자 핸드볼의 간판 윤경신(42) 남자 대표팀 감독을 태릉 선수촌에서 만났다.
‘진짜 최고의 순간 만들어내겠다’ - 임영철 여자 대표팀 감독
“그때 오영란 골키퍼 맞고 나간건데 공격권을 덴마크를 줬어요.”
임영철 감독은 마치 어제 일을 떠올리는 듯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결승전은 그만큼 임 감독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물했다.
임영철 감독에게 2004년 '우생순 신화'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사진 : 연합뉴스)
그는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눈물을 보인 것도 그때가 유일하다고 했다.
사실 2004년 결승전은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였다.
우리나라는 22-22로 맞선 후반 종료 12분 정도를 남기고부터 연달아 세 골을 내줘 패색이 짙어졌다.
그러나 최임정, 문필희, 장소희의 연속 득점으로 극적인 동점을 만들어 승부를 연장으로 넘겼다.
연장에서는 우리가 승기를 잡았다. 1차 연장에서는 29-29 동점이던 상황에서 마지막 공격권을 한국이 갖고 있었다.
그러나 장소희가 왼쪽 측면에서 시도한 슛이 불발되면서 2차 연장까지 경기가 이어졌다.
2차 연장에서도 한국은 한때 두 골 차 리드를 잡으며 주도권을 잡았지만 마지막 10초를 버티지 못했다.
이날 혼자 15골을 몰아친 덴마크의 주포 카트리네 프렐룬드에게 종료 10초 전에 동점골을 허용한 것이다.
결국 승부던지기에서 우리나라는 이상은이 먼저 한 골을 넣었으나 2,3번 슈터로 나선 임오경, 문필희가 연달아 상대 골키퍼 선방에 막히며 2-4로 덴마크에 금메달을 내줬다.
경기가 끝난 뒤 우리나라 선수단은 말 그대로 ‘눈물 바다’를 이뤘다. ‘눈물 바다’가 되기는 금메달을 따냈더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분하고 아쉬운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이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팠다.
당시 현장에서 취재했던 필자도 덩달아 눈물을 닦아내며 임 감독과 선수들의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임 감독은 사실 한국 여자 핸드볼이 위기에 빠졌을 때 나타나 구해준 ‘구세주’ 같은 존재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에도 아시아 지역 예선 통과에 실패한 대표팀을 덜컥 맡아 2003년 12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 올림픽 본선 진출도 불투명했던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을 살렸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도 지역 예선에서 편파판정 등의 문제로 재경기 파문 등에 시달린 대표팀을 이끌고 7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지역 예선 재경기 파문을 거쳐 진출한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표팀은 동메달을 수확했다 (사진 : 연합뉴스)
이후 2013년에는 한국 핸드볼 사상 처음 대표팀 전임 감독을 맡아 ‘우생순 신화’ 재현에 나섰다.
아시아 지역 예선을 불과 1주일 정도 남긴 임 감독의 표정은 예전보다 더 비장했다.
임 감독은 “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큰 대회가 임박했다”며 “일단 이 대회에서 이겨야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게 되는만큼 긴장도 많이 되고 준비도 철저히 하게 된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부상자들이 많아 최상의 전력을 꾸리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임 감독은 “류은희, 심해인, 이은비 등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며 “김선화는 일단 대표팀에 합류를 시켜봤으나 몸 상태가 따라주지 못해 결국 이번 대회에는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우생순 신화'를 준비 중인 임영철 감독의 각오는 비장하다.
하지만 그의 올림픽 출전에 ‘순탄한 길’이란 어차피 없었다.
임 감독이 올림픽에 처음 나간 것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였다.
당시 한국은 지역 예선에서 탈락해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었다.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임 감독은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초등학교(당시 초등학교) 팀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소련 등 당시 동구권 국가들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불참 사태로 우리나라에게 본선 진출 기회가 돌아왔고 임 감독은 다시 현역에 복귀, 올림픽 코트를 밟을 수 있었다.
올림픽이 끝난 뒤 다시 은퇴한 그는 한국체대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고 감독으로 첫 올림픽 출전이었던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우여곡절’은 위에서 한 차례 설명한 바 있다.
특히 2008년 베이징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아시아 지역 예선, 재경기, 올림픽 최종 예선 등 무려 세 차례 관문을 거쳐야 했다.
지역 예선에서 올림픽 티켓을 놓쳤으나 편파 판정이 인정돼 재경기가 열렸다. 재경기를 거쳐 올림픽 출전권을 손에 넣은 줄 알았으나 이 재경기가 스포츠중재재판소 결정에 따라 무효가 되면서 우리나라는 최종예선까지 더 뛰고 나서야 올림픽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이번에도 임 감독은 기본적으로는 올림픽에 나가는 길이 쉬울 것으로 여기지는 않고 있다.
그는 “일단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올림픽 티켓을 따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며 “세계 예선으로 가면 더 어려운 경쟁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늦은 편인 중학교 2학년 때 왼손잡이라는 장점을 체육 선생님(김창훈 교사)에게 인정받아 핸드볼과 인연을 맺은 임 감독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자신의 40년 넘는 핸드볼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을 꿈꾸고 있다.
그는 2004년 ‘우생순’으로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졌으나 선수로서도 성공적인 현역 생활을 보냈다.
연희중과 고려고, 원광대를 거친 임 감독은 1978년부터 1984년까지 국가대표 주득점원으로 활약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남자 대표팀이 동구권 불참 사태 덕에 출전할 길이 열리자 다시 현역으로 돌아온 것만 보더라도 대표팀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만하다.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을 영화로 만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영화로 사랑을 많이 받았죠. 그것으로 받은 혜택도 많고요. 벌써 12년이 지났는데요, 그런데 사실 다른 한쪽으로 보면 핸드볼이 그늘진 쪽으로만 비친 부분도 있었죠. 마음아프고 그런 쪽으로요.”
기분 탓인지 몰라도 12년 전 명승부를 떠올리며 2016년 올림픽을 준비하는 임 감독의 눈가도 왠지 촉촉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픈 우생순’ 말고 ‘행복한 우생순’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진짜 최고의 순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지는 우생순이 아니라 자꾸만 다시 보고 싶어지는 우생순을 만들겠다는 임 감독의 꿈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이뤄질 수 있을까.
임영철 감독은 2016년 행복한 '우생순 신화'를 꿈꾼다
‘올림픽 메달은 평생의 아쉬움, 5전6기에 도전합니다’ - 윤경신 남자대표팀 감독
윤경신 남자핸드볼 대표팀 감독은 우리나라 올림픽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중간에 1996년 애틀랜타 대회를 제외하고 올림픽에 5번이나 선수로 출전한 경력을 자랑한다.
하계올림픽에 5번이나 현역으로 출전한 한국 선수는 윤경신 감독 외에 이은철(사격), 오성옥(핸드볼)뿐이다.
동계까지 치더라도 이규혁(스피드스케이팅)이 6회로 가장 많고 허승욱(스키)이 5번으로 그 뒤를 잇는 정도다.
하계올림픽 5번 출전한 선수 세 명 가운데 메달이 없는 이는 또 윤경신 감독이 유일하다.
세계 최고의 핸드볼 리그로 평가받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도 득점왕을 맡아놓고 했던 윤 감독이지만 유독 올림픽에서는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분데리스리가 득점왕에 수차례 오른 윤경신은 '월드클래스' 선수였다 (사진 : getty images)
1996년 독일로 진출한 윤 감독은 1997년부터 2002년까지 6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1995년, 1997년 두 번이나 득점왕에 오를 정도로 세계적인 선수였다.
2002년 국제핸드볼연맹 선정 ‘올해의 선수’에도 뽑힌 윤 감독은 말 그대로 ‘월드 클래스’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활약을 펼쳤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개막식 기수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던 윤 감독은 “생각해보면 올림픽에서는 참 아쉬운 경기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가 가장 아쉬워하는 경기는 처음 올림픽에 나갔던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아이슬란드 전이었다.
윤 감독은 “우리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6위를 했는데 아이슬란드를 이겼다면 충분히 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돌이켜봤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12개 나라가 출전해 2개 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벌였다. 각조 상위 2개 나라가 4강에 올라 토너먼트로 메달 주인공을 가렸는데 한국은 3승2패로 조 3위에 그쳐 4강에 들지 못했다.
아이슬란드(3승1무1패)에 24-26으로 지는 바람에 조 2위 자리를 아이슬란드에 내줬다.
그가 또 꼽은 아쉬운 경기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나왔다.
당시 우리나라는 조별리그에서 조 1위로 8강에 올라 반대편 조 4위와 맞붙게 됐다.
8강에서 이기면 바로 4강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메달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반대편 조 4위로 8강에 올라온 스페인에 24-29로 지는 바람에 4강 진출에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선수로 마지막 출전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조별리그를 5전 전패로 마치며 아쉬웠던 올림픽 여정을 마무리했다.
윤경신 감독이 꼽은 아쉬운 경기 중 하나인 2008 베이징 올림픽 8강전 (사진 : 연합뉴스)
그런 그에게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는 다시 찾아온 올림픽 메달의 기회다.
하지만 주변 여건은 윤 감독이 선수로 뛸 때보다 오히려 훨씬 안 좋아졌다.
우선 올림픽 본선에 나갈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
사실 윤 감독이 선수로 뛸 때는 중동의 편파 판정이 가끔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실력으로는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은 통과가 급선무라고 할 정도로 전망이 불투명하다.
윤 감독은 “냉정하게 봐서 카타르가 한 수 위인데다 홈 코트 이점까지 안고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으며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도 만만히 보기 어려운 상대”라고 평가했다.
그는 “객관적으로 결승 진출이 목표라고 봐도 될 정도”라며 “일단 결승에 가서 카타르를 만난다면 승산은 30%-70%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는 홈 코트의 이점을 안았지만 카타르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은메달에 머물렀다.
당시 카타르 대표팀 선수 명단을 살펴보면 고란 스토야노비치, 엘다르 메미세비치, 보르자 비달 등 동구권 귀화 선수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이름들이 즐비했다.
특히 올해 초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카타르는 귀화 선수들을 주축으로 아시아권 전력을 뛰어넘었다는 평을 듣는다.
이제 감독으로서 남자 대표팀을 이끄는 윤경신에게 우선 과제는 올림팩 본선행이다
그러나 윤 감독은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수비도 정석으로만 서서는 안 되고 역시 변칙을 가미해야 한다”며 “그것도 자주 변화를 줘야 상대가 적응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우리 장기인 속공을 살리려면 역시 체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상대 공격을 측면으로 몰아 골키퍼 선방에 이은 빠른 공격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골키퍼 이창우와 주포 가운데 한 명인 고경수가 부상으로 이번 대회 출전이 불투명한 점도 윤 감독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 남자핸드볼로서는 최근이 위기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전패 수모를 당했고 2014년 안방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이번에는 올림픽 본선 진출 자체가 쉽지 않은 처지에 내몰렸다.
양 어깨에 큰 부담을 짊어진 윤 감독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저변을 넓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 국내 핸드볼에 ‘해외파’가 없어졌습니다. 스타 플레이어가 줄어드니 어린 선수들을 끌어들일 요소도 더욱 사라지는 셈이죠. SK가 회장사를 맡은 이후 많이 좋아졌지만 앞으로 유소년에 대한 투자는 계속 더 늘려가야 합니다.”
윤 감독은 “체격 조건이 좋은 선수들이 다른 종목으로 가지 않고 핸드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며 “2020년 도쿄올림픽 이후까지 내다보며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독일에서 뛰면서 만원 관중 앞에서 신나는 경기를 펼친 경험이 있는 그는 “후배들에게도 그런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에 나가 많은 관중 앞에서 애국심을 갖고 뛰면 그만큼 동기부여가 더 잘될 수밖에 없다”며 “그런 멋진 경기를 자꾸 해야 어린 세대에서도 핸드볼 국가대표를 꿈으로 운동하는 선수들이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저변 확대에 대해서는 임영철 감독의 목소리도 다르지 않았다.
임 감독은 “선수가 워낙 없어서 지금 실업리그를 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정상적인 리그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수 수가 별로 없는데 팀은 많고, 리그를 진행하다보니 주전급들에 부하가 많이 걸리게 되고 그 후유증은 시즌이 끝난 뒤에 모이는 대표팀이 겪게 된다”고 아쉬워했다.
임영철 감독과 윤경신 감독은 나란히 입을 모아 “이번 올림픽도 물론 중요하지만 좀 더 길게 본다면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 한다”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이어가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윤경신 감독의 올림픽 무대를 향한 도전은 다가올 아시아예선에서부터 시작된다
4년만에 돌아온 핸드볼 시즌, 반짝반짝 빛나게 하기 위하여
시즌이 4년에 한 번 돌아온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비인기 종목’의 대표 주자 격인 한국 남녀 핸드볼에 다시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1년도 채 남지 않았고 아시아 지역 예선은 말 그대로 코앞에 들이닥쳤다.
‘춥고 배고픈 데서 운동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 ‘한데볼’로 불렸던 과거에 비하면 SK가 회장사를 맡은 이후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고 하지만 한국 핸드볼은 여전히 절박하다.
4년에 한 번 올림픽 때 ‘잠시잠깐’ 받는 관심일지언정 이마저도 놓친다면 어쩌면 한국 핸드볼은 좁았던 설자리마저 잃게 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이미 남녀가 모두 메달 획득에 실패하며 위기의 노란불이 켜진 것일수도 있다.
메달까지 바라보는 여자 대표팀은 2004년 ‘우생순’ 멤버는 모두 은퇴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 동메달 멤버 역시 김온아, 류현지 외에는 모두 대표팀을 떠났다.
남자 대표팀 역시 2012년 런던 대회의 주축이던 윤경신이 감독을 맡았고 백원철 등 베테랑 선수들이 대표팀 유니폼을 벗으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세대교체와 함께 다시 뛰는 한국 남녀 핸드볼의 올림픽 도전. 그들은 추석 연휴도 사실상 없이 구슬땀을 흘리며 2016년 8월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이들의 도전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위대한 도전’으로 바뀌어 있기를, 또 그 위대한 도전의 첫걸음이 이번 아시아 지역 예선부터 시작되기를.
※ 매거진S 표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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