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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와 해치
정혜원
여름이 시작되자 햇빛이 금방이라도 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이 강하게 비췄다. 이제 선글라스와 창 넓은 모자는 필수가 되었고 그나마 거리에 다니는 사람도 만나기 힘들었다.
“햇살이 너무 강해서 우리 모두 눈머는 거 아니야.”
해수 엄마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주차장으로 갔다.
“이게 다 해치 때문이야.”
해수가 뜬금없이 대답했다.
“해치가 누군데?”
해수 엄마가 갑작스런 해수의 말에 당황했다.
“‘해치와 괴물 사형제’란 옛날이야기를 보면 괴물 사형제가 해를 네 개로 잘라놓았는데 해치가 사형제를 물리치고 해를 다시 붙여서 하늘에 뜨게 했대. 그러니까 해치 때문이지.”
해수가 또 이야기를 꾸며서 말했다.
“우리 아들은 참 상상력도 풍부해. 기후변화 때문에 우리가 살기 힘들어진 건데 어떻게 옛날이야기를 끼어 맞출 생각을 했는지 대단하다.”
사람들은 해수가 엉뚱하다고 수군거렸지만 해수 엄마만은 해수가 남다른 상상력을 가졌다며 늘 칭찬했다. 해수가 달리는 차안에서 또 골똘히 생각하며 학교에 갔다.
해수가 방과 후에 학교 체육관 뒤에 새로 지은 야외수영장에 갔다. 친구들이 벌써 물속에 들어가 첨벙거리고 놀고 있었다. 너나할 거 없이 몰려드는 바람에 해수는 머리가 아파서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해마다 더워지더니 최근에는 4,50도가 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해수만의 비밀장소인 창고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앉자 바닥에서 시원한 바람이 올라왔다.
‘어, 이게 뭐지? 계단이 있네.’하며 해수가 바닥에 깔린 매트를 들추자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 보니 사방이 캄캄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희미한 등잔불을 들고 해수 쪽으로 걸어왔다.
“너 아침부터 내 흉 보더라. 나도 요즘 너무 더워서 지하세계에 내려와 있어. 괴물 사형제가 해를 네 조각내던 시절에는 이렇게 덥지도 않았고 눈을 못 뜰 정도로 해가 지독하게 내리쬐지도 않았어. 알겠냐?”
해치가 억울하다는 듯이 해수에게 으르렁거렸다.
“네가 정말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해치라고?”
“그래, 아무 잘못 없이 내 흉을 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니? 당장 만나서 단판을 지어야지.”
“괴물 사형제가 해를 네 개로 쪼갰을 때 가만 두었으면 지구에 골고루 햇빛이 비춰서 이렇게 덥지 않았을 거 아니야?”
해수도 지지 않으려고 덤볐다.
“괴물 사형제도 고약하지만 인간들처럼 괴상한 생명체는 처음이야. 내가 그렇게 보호한 지구를 이렇게 망쳐놓았으니 말이야.”
해치가 기가 막힌 듯 가슴을 툭툭 쳤다.
“사람들 때문이라고 들었지만 최초의 원인은 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생명체는 해를 보지 않으면 다 죽어. 난 지구의 생명체를 살리려고 한 일이거든. 너희들이 망쳤으니 다시 돌려놔.”
“해치는 듣던 대로 옳고 그름을 잘 가리는 구나? 내 말이 맞는 거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니?”
해수가 간절하게 쳐다보았다.
“지금이라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해. 그래야 지구를 살릴 수 있어.”
해치가 해수에게 걱정 어린 눈으로 말했다. 해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 어서 가서 지구를 살려.”하며 해치가 해수에게 등잔을 넘겨주었다. 해수가 서둘러서 왔던 계단을 다시 올라갔지만 체육관이 나오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자 새까만 어둠만 보였다. 마음이 급해진 해수가 막 뛰어 올라가니 체육관 창고가 나왔다. 마지막 계단을 밟자 어느새 계단도 사라졌다.
‘선생님, 얘들아, 우리 지구를 살려야해.’
해수가 혼자 중얼거리며 교실로 뛰어갔다. 학교나 마트나 사람들이 모인 자리라면 해수가 나가서 지구를 살리자고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해수를 보고 웃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해수는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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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한국일보에 게재된 작품입니다. 워낙 분량을 적게 요청해서 맘에 쏙 들게 쓸 수가 없네요.
우리 고전에서 소재를 얻은 작품입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4.04.07 16:35
첫댓글 삼국유사 보면 소재 될만한 거 많습니다. 한번 보세요. 이 작품은 분량이 정해져서 마음껏 쓸 수가 없었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