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비유비공중도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삼성과 삼무성은 각기 진리의 한쪽 측면만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삼성은 있다[有]는 측면만을 앞세우고 있고, 삼무성은 공空하는 측면만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이면에는 삼무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있다는 데만 치우친 편유(偏有)가 아니며, 또 삼무성이 공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이면에는 삼성이 전제되어 있으므로 공하다는 데만 치우친 편공(偏空)도 아니어서, 일체 모든 사물의 진리란 반드시 있지도 않고 반드시 공하지도 않은 중도라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하는 중도라는 것에는 어떤 뜻이 있을까. 중도라는 말은 대·소승의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폭넓게 쓰이며, 비록 그 이해하는 깊이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모두 바른 길, 올바른 지혜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中庸과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고苦와 락樂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소승의 팔정도나, 단斷과 상常 등의 어느 쪽에도 얽매이지 않는 견해를 의미하는 삼론의 팔부중도나, 뒤에서 말하는 천태삼관의 중도 등이 모두 그런 예이다.
그런데 일체의 모든 법은 오직 제8 아뢰야식이 전변한 것으로서 그 실상은 비유비공非有非空의 중도라는 유식사상에서는 중도를 설명하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즉 일법중도와 삼성대망중도라는 것이 그것인데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일법중도
일법중도一法中道란 삼성의 각각의 한 법마다 비유비공의 중도의 의미가 갖추어져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즉 변계소집성은 망정으로는 있으므로 공한 것이 아니고[非空] 이치상으로는 없으므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非有] 중도를 이루고 있고, 의타기성은 꼭두각시[幻]와 같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있으므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非有] 중도를 이루고 있으며, 원성실성은 진리인 진여는 절대로 변함이 없는 진공眞空이므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非有] 인연을 따라 묘하게 있으므로[妙有] 공한 것이 아니어서[非空] 중도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하나의 법 위에서 각각 비유비공의 중도를 설명하므로 일법중도라고 하는데 이것은 또 다른 말로 일성중도一性中道라도 한다.
삼성대망중도
삼성대망중도三性對望中道란 삼성이 각기 서로 마주보면서[對望] 비유비공의 중도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즉 변계소집성은 우리들의 허망한 인식의 착각에서 나타난 것이므로 체성이 전혀 없어 실제로 존재하는 법이 아니므로[情有離無] 있는 것이 아니고[非有], 의타기성은 비록 상주하는 실체는 아니지만 인연으로 말미암아 거짓으로라도 있는 것이므로[如幻假有] 공한 것이 아니며[非空] 원성실성은 진여의 체성이 본래 불생불멸하며 절대로 변함이 없는 공적한 것이지만[眞空] 인연에 따라 묘하게 있는[妙有] 진실 원만한 실재이다. 그런데 변계소집성의 공空과 의타기성·원성실성의 유有는 비록 공과 유로서 서로 대치되지만 본래 모든 법은 삼성을 모두 갖추고 있으므로 공이 그 법의 참모습[實相]이라고 할 수 없는 동시에 유도 참모습이라고 할 수도 없어 비유비공의 중도이며 이와 같은 중도가 일체 모든 법의 참모습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