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원, 박기순, 박관현 열사를 소재로 한 영화 ＜부활의 노래(1991)＞

[윤상원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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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노래 (1990) - 이정국 <5.18...Pt.5> 201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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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정국

주연: 박지수, 김영건, 이경영, 김수경, 이상철, 김혜연, 박건희, 박종철, 박철민, 박대영, 권오현, 이원혜 

음악: 강인구

촬영: 유용옥, 김수경

18세 관람가 / Color / 9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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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Pt.5

5.18이 일어난지 올 해로 35년이 지났다. 그리고 매년 이 때가 되면 5.18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소개하려 했던 것도 어느새 다섯번째를 맞이했다. 2009년에 했던 첫 시작이 장선우 감독의 <꽃잎> 이었는데, 이전에도 이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날 놀랍게 했었다. 지금 보면 <꽃잎>이 '최초로 5.18을 전면적으로 다룬 작품' 이라는 말은 확실히 여러 부분에서 와전이 된 것 같다. 지금 보면 그 작품은 5.18이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보다는, 메이저 영화사를 통해서 항쟁 중에 있었던 금남로에서의 학살을 '실제 현장에서 전면적으로' 재현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방면으로 보자면 최초가 맞긴 맞겠다. 5.18 자체가 원체 규모가 큰 소재니까, 대규모 자본을 동반해서 제작한 <꽃잎> 만이 그나마 그런 순간들을 구현할 여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사전심의가 여전히 존재 했던 시대였지만, 아무래도 권력자보다는 국민의 눈치를 보던 시기인지라 작품은 크게 참견을 받지 않고 최종본을 만들어냈다. (이정현의 헤어 누드 정도만 모자이크 처리 됐었던 걸로 기억한다.)

<꽃잎> 이전에 만들어진 5.18 관련 작품들은 딱 한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16mm 필름으로 찍혔다. 그리고 독립영화의 형태로 정식 극장 개봉망을 이용하지 못하고 관객들과 만났다. 영화제작소 장산곶매에서 만든 <오! 꿈의 나라> 라든가. 그렇다면 제외된 '딱 한 편'은 뭘까. <꽃잎>은 커녕 <칸트 씨의 발표회> 에 대해 리뷰를 쓸 당시까지도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던 작품의 이름. 바로 이정국 감독의 데뷔작인 <부활의 노래> 다. 1990년에 제작을 완료하고 극장개봉한 이 작품은, 장선우 감독의 '<꽃잎> 이전' 에 최초로 극장에서 정식으로 공개된 5.18 영화였다. 

그러나 이정국 감독의 <부활의 노래>의 심의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암만 '보통 사람' 운운해도, 노태우 정부 시기였다. 당연한 일이다. 제작진들은 사전 탄압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매일 악몽을 꾸면서 작품을 제작했다. (주로 자신이 사는 집에 군인들이 군홧발로 쳐들어와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악몽을 꿨다고 한다.) 이들이 그나마 제작을 포기하지 않은 건 순전히 같은 해에 개봉했던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 덕분이었다고 한다. 빨치산의 전투 활동을 소재로 한 작품도 거의 온전한 상태로 개봉했는데, 우리 작품도 통과할 수 있겠지 싶었던 것이다. 마침내 <부활의 노래> 제작진은 처음엔 공연윤리위원회에다 1시간 40분 분량의 버전으로 심의를 신청했다. 그러나 공연윤리위원회 (이하 공윤) 는 아래의 말을 통보하며 심의 결과를 동봉했다.

 

'..광주운동의 아픔을 마무리해가고 있는 현 시점에 있어서 이 작품의 공개는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을 뿐만 아니라, 작품내용상 고증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결함이 있고 이같은 결함은 국민과 정부, 국민과 군 사이를 해치는 내용으로 일관케 했으며 비록 광주운동을 주제와 소재로 했다고 하나 운동의 당위성은 묘사하지 못함으로써 민중에 대한 무장봉기를 무조건 정당시하는 데만 그쳤음.'

문장과 문장 사이에 마침표를 찍어 쉬게 해 줄 생각도 안 한다. 공윤은 공청회, 횃불시위, 도청에서의 전투 장면 등을 포함하여 5.18과 연관된 총 25분 13초의 분량을 삭제하라고 통보했다. 여기서 자칫 잘못 했으면 <부활의 노래>는 '최초의 메이저 5.18 영화' 이전에, 사지절단된 수준인 1시간 15분 버전으로 공개됐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메이저 영화', '극장에서 정식으로 공개된' 운운했다만, 이전에 다른 영화사와 감독들이 만든 작품들에 비하면 돈 좀 들인 티가 난다는 얘기로서 한 말이다. <꽃잎> 생각하면 <부활의 노래>는 적어도 너무 적은 규모의 작품이었다. 이러다 보니 시대의 변화는 신문 기사를 확대한 것, 몇몇 사진 자료 의 확대로만 설명되며 5.18 당시의 이야기 역시 중반부에 잠시 보여지는 수준에서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공윤이 요구한 장면들을 삭제하면 이 작품은 남는게 없게 되었던 셈이다. 

작품의 이야기는 1978년, 광주의 한 대학생들로부터 시작된다. 김영건이 연기하는 주인공 철기는 야학을 통해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는 이경영이 연기하는 야학 선배 태일과 김수경이 연기하는 민숙, 이상철이 연기하는 봉준, 박지수가 연기하는 현실 등과 함께 다른 사람들도 가르치면서 사회의 모순을 알리려고 한다. 태일과 민숙은 사랑에 빠지고 철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 후, 대학 총학생 회장에 출마하여 당선된다. 그는 대중집회를 주도할 정도의 실력과 명망을 쌓아가는데, 이 즈음 광주에 어두운 구름이 몰려온다. 철기는 이 격변 속에서 도피생활을 시작한다. 이 바람에 계엄군에 맞서 도청을 사수하려는 현실, 민숙, 봉준, 태일과 헤어지게 된다. 철기는 이 중 어느 누군가와는 다시 보지 못할 정도로 영영 이별을 하고 만다.

 

<부활의 노래> 는 초반부만 보면 5.18 이야기가 대체 언제쯤 나올까 싶은 작품이다. 초반부는 아예 70년대 말을 배경으로 당시 '운동권' 으로 활약했던 사람들의 삶을 꽤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대학생들' 의 일상적이고 명랑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주목할만한 부분은 그 디테일한 묘사에 대한 상징 중 하나로 국악적 요소를 집어넣은 것이다. 태일이 이끄는 야학 일원들이 혼란한 시대 속에서도 활기를 잃지 않으려 날 잡아 시골로 놀러 가는 시퀀스가 있다. 그들은 막걸리를 마시며 놀다가, 마치 준비된 국악인인 양 북을 꺼내고 판소리를 하면서 풍악을 울린다. 아시는 분들은 아실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기에는 문화에 대한 삼엄한 검열이 이뤄진 바 있다. 포크와 록은 저항의 음악으로 분류되어 끊임없이 정권의 견제를 받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록 음악은 아예 70년대 중반에 '대마초 파동' 이라는 큰 피바람에 휩쓸리며 한 동안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한 반발작용일까? 훗날 '자국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사랑하자' 는 식의 이유를 둘러대며 군사정권 안에서 국악이 다시 부흥기를 맞이한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악은 '무대가 없어 듣고 싶어도 듣기 힘든 장르' 였다. 이는 박정희 정부의 치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 새마을 운동의 어두운 면모 중 하나이기도 하다. 미신타파를 명분 삼아서 전통 문화를 탄압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축소판이라 부를만하다. 국악이라는 장르 자체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도 있지만, 그런 여파로 당시 소리꾼들은 관객이 있는 무대를 아예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월간지인 <뿌리깊은 나무> 의 편집장인 한창기가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에다 '판소리 감상회' 무대를 마련하는 선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니면 황병기 정도가 끊임없이 창작 국악을 연구하며 발표하는 정도였다.

 

* 이런 탄압은 박찬경 감독이 2014년에 만든 다큐멘터리인 <만신> 에서 무속 분야를 통해 묘사되기도 한다. *

그러나 명맥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국악은 트로트, 클래식과 더불어 한국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음악 장르가 되어 있었다. 대마초 파동 이후 벌어진 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말기에 이르러서는 아예 전국 대학의 모든 '사회, 과학 서클' 이 해체되기도 했었다. 포크와 록이 사라진 당시의 땅 위에서 운동권 학생들은 마당놀이와 국악이 가진 '참여' 의 형식으로부터 투쟁, 혹은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그들은 국악을 자신들의 음악으로 삼고, 사회와 과학 서클이 부재했던 것에 대한 대체제를 고안해 낸다. 그것이 바로 '문화패' 였다.

학생들은 이 문화패에서 탈춤, 사물놀이, 소리 등을 배우고 연주하며 사회, 과학 서클이 할 일을 대신 한다. 암만 문화에 대해 검열했다고 할지언정 완전히 말살시킬 수는 없다. 게다가 이건 시위, 집회에 비하면 '순수 문화 활동' 처럼 보일 법 했다. 때문에 이것까지 마구잡이로 단속할 수 없었다. 작품은 초반 30여분 정도에 이 상황들을 응축하려고 한다. 그래서 학생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관해 많은 설명과 성의를 더하고, 아예 작품 전체의 스코어를 국악으로 작곡해 놓기까지 한다. 관객은 그렇게 학생들의 평화로운 모습과 그들이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시간 순서대로 전개가 되기 때문에 이렇게 1980년의 그 날로 넘어가겠거니 싶기도 하고.

그런데 작품은 예상과 다르게 갑자기 1980년을 생략하고, 1981년의 시대로 넘어가 버린다. 그 때 한국의 역사 속에서는 광주가 고향인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학생 김태훈이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자살 소식은 다음날 신문에서 전두환 정부의 '국풍 81' 행사 소식에 묻혀버렸다. 국악은 전두환 정부에 들어서면서 다시금 대중적인 대접을 받는다. 거기에 큰 공헌을 한 것은 당시 전두환 정권의 비서관이었던 허문도가 기획한 행사 '국풍 81' 이었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그 1981년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열심히 야학 활동을 하던 현실과 봉준은 각각 다방 레지, 깡소주 마시는 폐인이 되어 있다. 철기는 여전히 도망다니고 있는 중이다. 

* 1981년 5월 27일. 전남도청이 계엄군에 의해 함락됐던 날에 맞춰,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전두환 퇴진 시위를 벌였다. 그 때 학교 도서관 6층 창문 밖에서 한 청년이 큰 소리로 "전두환은 물러가라!" 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몇 번 외친 뒤, 항거의 의미로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김태훈이었다. * 

 

* 그러나 언론은 다음날, 그의 투신보다 전두환 정부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청년의 열과 의지의 힘이다' 라는 사상이 담긴 '문화 축제', 국풍 81' 의 개막식을 다루는데 훨씬 혼을 쏟았다. 광주에서 청년들 다 죽여놓고, 저런 말을 내걸고 행사를 만든 것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탄압받았던 전통 문화는 국풍 '81에서 인상적인 공연들을 연이어 선보이면서, 다시 대중적으로 부활했다. <부활의 노래>는 1990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모든 상황을 포괄적으로 다뤄보려 했던 것 같다. *

아마 당시 시사회로, 혹은 극장에서 정식으로 <부활의 노래> 를 감상했을 관객들, 그 중에서도 특히 유족들은 당황스러워 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나오리라 생각했던 '그 일' 이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작품은 그에 앞서서 먼저 항쟁기간이 지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죄책감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5.18의 이야기는 1981년의 시점에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보여진다.

 

<부활의 노래>가 제작될 당시에는 정권 교체의 바람을 타며 TV에서도 5.18의 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몇 편 방영됐었다. 이미 TV 다큐멘터리들이 자료 사진과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제 역할을 다 하고 있으니, 이 작품까지 진실을 파헤치는 동일한 흐름을 따라갈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본래의 사건보다, 그 '변두리' 에 더 중요하게 시선을 주고 있다. <부활의 노래>는 세상을 좀 더 좋게 바꿔보고자 했던 '운동권 학생들'을 향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운동권은 '우리와 다르다' 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 역시 세금 내고 살아가는 '시민' 이다. 이 사실은 변함 없다. 이를 나타내고자 작품은 5.18의 마지막날 전남도청 현장에서 살아 남은 현실과 봉준, 도망친 철기가 각기 느끼고 있을 트라우마를 먼저 보여준다. 흔히 '변두리'로 여기며 간과하는 것이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다. 실제로 5.18 의 생존자들 중 상당수가 예나 지금이나 그 때의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부활의 노래>는 영화다운 표현법으로 이를 표현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꽤 인상적이었던 시퀀스가 하나 나온다.

5.18 이후, 철기를 끊임없이 찾고 있던 현실은 우연히 그가 수배를 피해 구로공단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뒤따라간다. 두 사람은 마침내 만나서, 중화요리집에 앉아 어색하게 서로 궁금했던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이 때 철기의 뒤쪽에서 몇 명의 아이들이 아케이드 게임을 하고 있고, 마침 그가 현실에게 5.18 당시 태일은 어찌 되었는지를 물어본다.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면서 아케이드 게임의 총기 효과음이 소음처럼 커져간다. 관객은 곧 그 소음이 광주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총탄을 은유적으로 들려주고 있다는 것을 안다. 아. 지금 시작되려 하는구나... 여기서부터 작품은 5.18 당시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것이다.

 

 

<부활의 노래> 에서 5.18 이야기는 계엄군인 공수부대가 골목을 뒤지며 사람들을 잡아가는 모습, 시민군의 형성과정, 마지막 날 도청에서 계엄군과 시민군이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가 함축되어져 있는 수준이다. 그러므로 딱히 여기에 대한 묘사가 새롭거나 참신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영화답고 강렬하다' 고 할 수는 있겠다. 작품 속에서 과거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보여준 사운드 몽타주는 이장호 감독이 1983년에 <바보선언> 에서 앞서 시도한 적이 있다. 도청전투 부분으로 넘어갈 때, 앞에서 아이를 구하려다가 총을 맞아 죽는 민숙의 모습과 현실의 눈동자를 교차시키는 모습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전함 포템킨>의 느낌도 살짝 나며, 태일이 총탄 세례를 받고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묘사는 샘 페킨파 감독의 작품들을 떠올릴 정도로 잔혹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작품을 만들 때나 감독 스스로에게 영향을 줬을 법한 거장들의 미학을 성실하게 배웠다는 노력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비록 20분 남짓이지만, 굳이 여러가지 한계들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5.18에 대한 묘사는, 덕분에 꽤 인상적이다. '영화' 로서 먼저 다가가기 때문에, '운동권적 계몽 색채' 가 먼저이리라 생각한 관객들의 거부감을 줄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5.18의 이야기를 '위로' 로서 다루지 않는다. 시대적, 작품의 배경으로도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활의 노래>가 제작되던 시점은 5공 청문회가 별다른 소득 없이 어설프게 열리다 끝났던 시기였다. 김영삼이 3당 합당 후, 대통령이 되어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대통령 자격을 박탈시켜 버리고, 사형과 무기징역 선고를 내리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려야 했다. 그리고 5.18을 추모하는 묘역이 새롭게 조성되기도 전이었다. 90년대 초까지도 여전히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가 죄처럼 받아들여지던 시대이지 않았던가. 이런 당대 현실에 대한 반영이었을지 모르겠다. 작품 속에서 5.18에 대해 회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철기는 잡혀간다. 봉준은 더더욱 폐인이 되어가고, 현실만 혼자 남는다. ....위기다! 이들은 지쳤다. 지친 이들이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

 

* 물론 그 와중에 애틋한 사랑도 있다. 이런 스타일의 작품에서 섹스 신의 등장은, 어설프면서도 참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바로 섹스 신의 정서적인 연출 때문인데, 당시 민주화를 위해 싸운 사람들일수록, 자신들이 소수라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에게 더 의지하는 것처럼 연출해 놓았다. 소수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만들어져 의지가 계승되는 걸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

그래서 작품은 후반부에 등장인물들이 최선을 다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일어서겠다는 듯 굉장히 '격정적으로' 전개되는 모습을 보인다. 극복하려는 의지를 꺾지 않겠다는 듯, 국악 스코어는 더 크게 울려 퍼지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 5.18의 희생자들을 위해 조성된 묘역에서 벌어지는 영혼 결혼식, 교도소 감방에서 홀로 단식을 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철기의 모습이 쉴새없이 교차된다. 

국악은 80년대 들어서 대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전통 문화들 중 하나였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눈에는 곧 5~6공의 전유물처럼 보였다. 허문도는 국풍 '81을 통해 국악을 비롯한 여러 전통 문화들을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여기에 대학생들을 집어 넣으려 애를 썼다. 나중에 이유를 설명하는 문건이 하나 공개된다. 전두환 정부는 '학원 문제를 국풍으로 유도, 축제 속에 매몰' 시키려 이런 류의 축제를 계획한 것이었다. 물론 '국풍'은 81년에 한 번 개최되고 거기서 끝나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5공은 잊을만하면 국악과 전통 문화를 이용해 한 번씩 정권 정당성 확립을 위하려는 듯 행사를 개최했다.

당시 정권은 국악을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현실을 합리화 시킬 수 있는 도구로 봤다. 그리고 영화 같은 경우엔 현실로부터 눈을 돌릴 수 있게 만드는 도구로 봤다. 작품은 이에 맞서고자한 듯이 국악과 극적 이야기가 폭발하는 교차 편집 시퀀스를 만들어 넣었다. 그 어느 것도 독재자를 위한 전유물은 없다. 모든 것은 시민의 손에서 나왔으며 당신들을 위한 것임을 관객에게 직시 시키기 위해서.

* 물론 근래까지도 그 때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

<부활의 노래>는 여기서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신념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을 가진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역사를 통해 꾸준히 봐 왔기 때문이다. 아마 당시의 관객들은 신념을 가지고도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제일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싶다. 5.18 묘역에 가서 참배하는 행위조차도 신념이 필요했던 시대였다. 작품은 이를 유려하게 설명해내지 못한다. 사실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거의 기본 마음가짐이었을텐데 이걸 설명해야 하나 싶었겠지. 때문에 이 교차편집 시퀀스가 감정적으로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부활의 노래>는 관객에게 이 메시지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신념이 아니라 그건 권리라고. 이것은 그냥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오지 않으니 더 몸부림치라는 메시지다. 보복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음악도, 영화도 모두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어떤 한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다. 세상이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했던 5.18의 커다란 파도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듯 <부활의 노래>는 압도적인 삶과 죽음의 교차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적인 부분에서의 삶과 죽음일 뿐, 정신만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새로운 생명의 출산을 통해 말미에 강조한다. 죽지 않고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때까지 그 날을 노래하리라고 말이다. '35mm 필름으로 찍힌 첫 5.18 영화' 는 그랬다. 설사 백지 수표가 유혹해도 태워버릴 만큼의 뜨거운 결기가 있다. 

 

그 결기 덕일까? 작품은 비교적 무사히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이정국 감독은 공윤의 경고를 들었지만, 자르라던 25분 분량을 거의 다 남겨놓은 채 1시간 32분 버전으로 다시 심의를 넣는다. 이 버전은 감독의 말에 따르면 '심의보다는 작품을 위해서' 몇 개의 인서트 쇼트를 재촬영하고, 부분적으로 편집과정을 새로 거친 정도였다고 한다. 공윤은 사실 전면적인 재촬영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부활의 노래>를 만든 영화사 측에는 그럴 돈조차 없었다.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또 빌린 끝에 그나마 이런 형태의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재촬영 요구할거면 돈이라도 대주든가! 그것도 아니면서. 감독과 제작진, 출연진 모두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최초로 심의를 신청한지 3개월을 넘기고 나서야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조건으로 거의 원본 그대로 개봉과 수출 가능 판정을 받았다.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다던 감독도 필름이 온전한 상태로 되어 있는 것을 직접 보고 안심했다고 한다. <부활의 노래>는 딱 1분 정도만 잘려나간 채 (태일이 머리에 총을 맞고 죽는 순간이 잘려나갔다고 한다. 2~3분 더 잘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1991년에 개봉했다. 훗날 잘려나간 1분 분량까지 복원되어 1993년에 재상영되기도 했다. 

비록 그 때나 지금이나 <부활의 노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작품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억된다. 5월의 광주도.

 

p.s.1 - <부활의 노래>는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나 싶었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네이버 영화의 다운로드 서비스로 볼 수 있었다. ...이 작품도 볼 수 있구나 싶어 좀 놀라웠다. 비록 1.33:1의 화면비율이긴 하지만 화질도 깨끗한 편이다. 

p.s.2 - 리뷰 본문에서 '영혼 결혼식' 얘기하는 거 보고 "어?" 라고 느끼셨을 분들이 계실 것이다. 

맞다. <부활의 노래>는 사실 세 열사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은 윤상원, 박기순이다. 윤상원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학생으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에 의해 살해됐다. (계엄군은 화염방사기를 쏴서 그의 시신마저 불태워 버렸다.) 박기순은 광주 최초의 노동 운동가다. 1978년 성탄절의 다음날 새벽 광천동의 자취방에서 연탄중독으로 21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광주 노동운동의 대모로 불렸다. 두 사람은 실제로도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전남대 총학생회장인 박관현이 있다. 윤상원과 막역한 친구사이 였으며, 5·18 직전까지 광주시민과 학생들의 반독재투쟁을 주도하다가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와 동시에 보안사에서 재야 인사들을 체포하자 광주광역시를 빠져나가 여수로 도피했다. 1982년에 체포된 후 보안사에서 고문 당하고, 옥중에서 50일간 단식하며 시위 투쟁을 벌이다 절명했다.

<부활의 노래> 에서 등장하고 언급되는 '야학'은 위의 세 실제 인물이 활동했던 '들불 야학' 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p.s.3 - 이 때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 중 몇 명이 충무로에 남아있는지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일단 주연배우 몇 명은 여전히 크든, 작든 활동 중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는 '갓' 경영이겠지만.

이정국 감독은 이 작품 이후로 제작한 <두 여자 이야기>와 <편지> 만큼의 전성기를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주변에서나마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들이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그들은 노태우 정권 시절, 5.18과 관련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커리어에 닥쳐 올 불이익까지 감수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분명 시간이 지날수록, 그 때보다는 나아지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한 때는 또 그리 되어가는 듯 했는데, 지금은 다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대로 후퇴하는 듯한 풍경이 재현되고 있다.

p.s.4 - <부활의 노래>에 관련된 요즘 신문 기사들을 보면, 전부 다 공윤의 검열로 1시간 15분 버전으로 개봉됐다고 적어놓고 있다. 위에서도 끄적였지만, 작품은 결국 개봉 당시에도 1시간 30여분대의 버전으로 공개됐으니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나는 <부활의 노래>에 관련된 일화들을 영화 논문집인 <영화언어 : 1989년 봄에서 1995년 봄까지 II> 에서 감독이 직접 쓴 글로부터 찾아냈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하기엔 좀 그렇지만, 블로그에 글 싸지르고 있는 나도 최소한 작품에 대해 리뷰를 쓰기 위해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는데... 신문사에서 월급 받으며 쓰는 사람들이면, 더 잘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다못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조금만 검색해봐도 이 작품이 결국 개봉할 때는 감독의 의도에 가까운 판본이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말이다. 참..

뭐, 여튼 내년 5월에 또 뵙겠습니다.

 

부활의 노래리뷰보기

감독

이정국

출연

김영건, 박지수, 이경영

5.18...Pt.1 ~ 꽃잎 (1996) - 장선우

감독: 장선우주연: 이정현, 문성근, 이영란, 명계남, 추상미, 설경구, 박철민, 박광정, 조민철, 나창진음악: 원 일촬영: 유영길18세 관람가 / C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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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Pt.2 ~ 오! 꿈의 나라 (1989) - 이은, 장동홍, 장윤현

감독: 이은, 장동홍, 장윤현 주연: 권인찬, 김경선, 김선경, 김현주, 오지혜, 정진완, 박충선 음악: 조익환, 강헌 촬영: 김현철, 오정옥, 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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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Pt.3 ~ 칸트 씨의 발표회 (1987) - 김태영

감독: 김태영 주연: 조선묵, 김윤태, 김명수, 김영석, 변달수, 진영희, 백승찬, 낭희섭, 서갑숙 음악: 김기만 촬영: 김동기 12세 관람가 /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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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Pt.4> 오월애 (2010) - 김태일

감독: 김태일 음악: 시와 촬영: 김태일, 태준식, 고안원석 전체 관람가 / Color, Black & White / 101분 ..... 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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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블로그 > 홍준호님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