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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2월 6일 토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0206토] 교육행정 투명화로 비리 차단하길
교육계가 위기다. 교원ㆍ교육공무원 비리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교육계를 보는 시선이 싸늘해졌다. 교육공무원의 6월 교육감선거 개입 움직임에 정치적 중립 의지에 대한 의심도 커지고 있다.
급기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어제 긴급 기자 간담회를 갖고 교과부와 시ㆍ도 교육청의 감사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판ㆍ검사 등에게 감사를 맡겨 교육계의 고질적 '제 식구 감싸기'를 근절하려는 것이다. 일선 교육청에 각종 비위나 기강 해이 사례를 감시할 감찰반을 운영하고, '학부모 명예 감사관'을 임명해 교육청 감사에 참여토록 했다.
교육공무원 비리 척결 노력을 폄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교육계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유사 대책이 되풀이 발표된 뒤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됐다가 다시 부정부패의 싹이 자라는 근본 원인을 찾지 못하면 비리 근절은 요원할 따름이다. 교과부 장관을 비롯한 교육 당국 책임자들은 과연 이번 대책에 비리 근절 의지를 얼마나 담았는지 자성해 봐야 한다.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는 식의 공직 사회 특유의 무사안일이 아니고서는 곪은 상처의 뿌리를 제거하는 데 이런 대증요법을 대책이라고 들고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미래 세대를 육성하는 교육계는 공직 사회 중에서도 가장 청렴하고 투명해야 하는 곳이다. 교원과 교육공무원의 말과 행동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는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교원과 교육공무원에게 높은 도덕성과 엄격한 자기 관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교직에 몸 담는 순간부터 학부모ㆍ학생과 묵언으로 약속한 도덕과 청렴을 지키지 못한 이들은 교육계에서 영원히 퇴출시켜야 한다. 비리 적발 전의 공로 등 정상 참작의 여지를 인정해주는 풍토나 태도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래야 교육계가 산다.
교육 비리 근절은 투명한 교육ㆍ학교 행정에서 출발한다. 비리 소지가 있든 없든 교원ㆍ교육공무원 인사나 교육ㆍ학교 관련 사업은 진행 과정과 결과를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어려운 여건에서도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 교원들의 명예와 자긍심이 회복될 수 있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0206토] 낙태 논란, 법·환경 정비 계기 돼야
지난 3일 산부인과 의사 모임인 ‘프로라이프’가 불법 낙태 시술 병원을 고발한 것을 계기로 낙태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프로라이프 쪽이 낙태를 불법화하고 있는 현행법에 의지해 낙태근절운동을 펴겠다고 밝힌 반면 여성계에서는 낙태를 강요하는 사회적 조건을 놔둔 채 처벌 위주로 나가다가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낙태문제가 이런 식의 논쟁으로 비화한 일차적 원인은 법과 현실의 괴리다. 우리나라는 낙태를 불법으로 치부해 낙태를 하는 여성과 낙태를 도운 의료인을 모두 형법으로 다스리도록 돼 있다. 낙태가 허용되는 경우는 모자보건법에 규정된, 본인이나 배우자의 유전학적 장애나 질환 또는 강간에 의한 임신 등 다섯 가지 예외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보건복지가족부조차 연간 35만건가량의 낙태 가운데 불법으로 이뤄지는 비율이 95%가 넘는다고 인정할 정도다. 가임여성의 연간 평균 낙태율이 1000명당 30명으로, 법률적으로 낙태가 우리보다 폭넓게 인정되는 미국(21)이나 영국(18)보다도 높다.
상황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역대 정부의 무책임이다. 그동안 정부는 법을 현실에 맞춰 바꾸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사문화시킴으로써 불법을 방조했다. 그렇다고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제공한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아서 키울 사회경제적 여건을 제대로 마련해준 것도 아니었다. 이러니 생명경시 풍토가 생기고 산부인과가 낙태를 주수입원으로 삼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낙태가 너무나 쉽게 이뤄지는 현실은 분명 바꿔야 한다. 그러나 사문화돼왔던 법을 갑작스레 강제하는 방식은 여성의 건강 문제를 비롯해 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위험천만하다. 낙태는 윤리문제일 뿐만 아니라 복잡한 사회문제이기도 한 까닭이다.
문제가 공론화됐으니 정부는 이제라도 각계 의견을 수렴해 현실에 맞게 법을 전면개정하고 불법 낙태를 유도해온 사회경제적 환경을 개선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상당기간 논쟁을 거쳐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법을 마련해놓은 나라들의 전례를 참고할 만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낙태 논쟁이 서구처럼 프로라이프 대 프로초이스(여성의 선택권)로 발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태아의 생명 못지않게 여성의 생명과 삶도 존중받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100206토] 69세 원고에게 "버릇없다"고 한 39세 판사
39세 판사가 69세 소송 당사자에게 법정에서 "버릇없다"고 한 데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소송 당사자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소속 법원장에게 주의 조치를 하도록 권고했다.
이 판사는 작년 4월 자신이 맡은 민사사건 원고 Y씨가 소송 상대방 주장에 이의(異議)를 제기하려고 "판사님" 하는 순간 "조용하세요, 어디서 버릇없이 툭 튀어나오고 있어"라면서 "할 말 있으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어서 하라"고 면박을 줬다고 한다. 충격을 받은 Y씨는 "판사에게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버릇없다'는 말은 어른이 예의를 지키지 않는 젊은이를 나무랄 때 쓰는 말이다. 아무리 재판 중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해도 젊은 판사가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 판사의 부모가 어디 가서 그런 대접을 받았다면 판사도 펄펄 뛰었을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20대 중반에 갓 임관한 새파란 나이의 판사나 검사를 '영감님'이라고 부르며 치켜세우던 때가 있었다. 이 판사는 자신이 그런 시대에 사는 줄로 착각한 모양이다.
소송을 하는 사람들은 억울하고 분한 사정을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법정까지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법관이 그들의 사정을 성의있게 들어주는 것 자체가 그런 억울함, 분함을 풀어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법관은 차가운 머리뿐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법관이 소송 당사자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기는커녕 거만한 자세로 면박을 주거나 빈정대거나 하면 소송 당사자는 재판제도 자체에 불신과 환멸을 품게 될 수밖에 없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달 발표한 법관 평가 조사를 보면 변호사들이 재판 진행 과정의 문제점으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이 '편파 재판'(32%)에 이어 '고압적 태도나 모욕'(30%)이다. 서울변호사회가 공개한 사례 중엔 "나 이 사건 참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못하겠네"라고 한 판사도 있고, 증거로 제출된 녹취록에 대해 "확 찢어버릴 수도 없고"라고 한 판사도 있다.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들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는 판사들이 일반인 소송 당사자들에게야 어떤 태도를 보일지 알 만하다.
Y씨는 판사에게 모욕을 당한 뒤 한 월간지에 이렇게 썼다. "사법부가 나를 섬겨주지 않아도 좋다. 다만 적어도 '버릇없다'는 말을 어떤 경우에 쓰는지 정도는 확실히 아는 법관이 재판을 하는 사법부가 됐으면 좋겠다."
[서울신문 사설-20100206토] ‘당선무효 벌금’ 슬쩍 올리려는 국회의 뻔뻔함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또 낯 뜨거운 일을 저질렀다. 그제 전체회의에서 10개월여 활동을 사실상 마무리하면서 정치자금법 위반시 당선 무효형(刑)에 해당하는 벌금 기준을 현행 1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에 합의했다는 것이다. 추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원내대표 협상에 넘겨 최종 확정짓겠다고 한다. 죄를 저질러도 어떻게든 의원직만은 유지하려는 꼼수가 그저 역겹기만 하다.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이 나랏일과 민생은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세비를 올리고, 보좌관을 늘리며, 권력의 명줄을 붙잡는 데는 참으로 재빠르고 부끄러움조차 없다.
2004년 3월에 바뀐 정치관계법(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은 정치판의 ‘고비용 저효율’을 ‘저비용 고효율’로 개선하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당시 오세훈(현 서울시장) 의원이 핵심 역할을 해 ‘오세훈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실적 어려움이 많았으나 국민의 지지가 컸기에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당선 무효가 ‘벌금 100만원’으로 정해진 것은 국민이 의원들에게 요구한 최저 수준의 ‘직위박탈기준’이라 할 수 있다. 이 기준이 없었다면 18대 국회의 ‘돈선거 의원’ 15명을 가려내지 못할 뻔했다. 국회의원들이 입법권을 가졌다고 해서 마음대로 벌금 기준을 상향 조정하면 이는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정개특위는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벌금을 처음엔 500만원으로 하려다가 여론을 살펴 300만원으로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벌금 300만원이면 어지간히 중죄를 짓지 않고는 의원직을 내놓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정개특위는 지난 연말에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정치인에 대해 형사처벌을 면제·감경하는 법 조항을 신설하려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임기만료 ‘180일 이내’면 승계가 안 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경우 ‘90일 이내’로 줄여 3개월짜리 의원을 만들려고 했다. 국회의원들의 돈줄과 관련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는 누가 뭐래도 움켜쥐고 있다.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선거구제는 손도 안 대면서 마지막 활동이 고작 벌금을 높여 자리를 보전하겠다는 발상이었다. 기득권은 절대로 안 내놓고, 불리한 법 조항은 유리하게 고치는 뻔뻔스러운 행태가 여의도식(式) 정치 개혁인가.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0206토] 호암(湖巖)의 기업가 정신 오늘에 되살려야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이 탄생한 지 오는 12일로 100주년이다. 삼성그룹은 이를 기리기 위해 어제 기념식을 갖고 사업보국,인재제일,문예지향,백년일가,미래경영 등 그가 일생 동안 추구했던 정신과 기업경영의 가치를 되새기는 자리를 마련했다.
물론 한 개인의 탄생 100주년 그 자체가 큰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암의 경우 인재제일과 사업보국을 축으로 하는 철학과 실천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기업경영 이념으로서 영구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생전 어떻게 기업을 일으키고 성공을 거두었는지 등의 과정을 다시 조명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 경제가 기업가 정신의 쇠퇴라는 심각한 난제에 직면해 재도약을 위한 활력을 잃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호암이 기업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의 피폐했던 경제 여건에서 1938년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설립하고 이후 제조업을 통해 지금 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과정은 우리 경제의 압축성장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를 딛고 설탕과 모직 등 '먹고 입는' 소비재 산업을 일으킨 것부터 오늘날 삼성을 세계의 1등기업으로 끌어올린 반도체사업에 이르기 까지,삼성은 우리 경제의 산업화를 이룩하는 중심적 존재였다.
그가 창업한 삼성그룹이 2세들로 이어지면서 삼성 · 신세계 · CJ · 한솔 등 4개그룹으로 분화 · 발전하고,이들 그룹이 모두 139개 기업에 매출액 226조200억원(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22%를 차지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삼성의 수출만 해도 전체 수출의 20% 가까운 비중이다.
이처럼 삼성을 나라 경제의 버팀목이 될수 있도록 씨앗을 뿌리고 가꿔낸 것이 고 이 회장의 시대와 산업의 흐름을 앞서가는 선견과 혜안(慧眼),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진출이 대표적이다. 모두 반대했지만 나라 경제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확신과 책임감으로 밀어붙인 결과가 오늘의 성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100조원,영업이익 10조원을 달성하면서 세계 1위 IT(정보기술)업체로 성장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업가정신의 고갈이라는 위기를 맞고 있다. 어느 때보다 기업가정신의 고양을 통한 경제위기 극복과 경제구조의 혁신,일자리 창출이 절실한 때인데도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기업활동을 저해하는 정부의 각종 규제,불합리한 노동운동 관행 등이 새로운 사업에의 도전을 가로막고 나라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
호암이 일생을 통해 보여준 덕목(德目)은 바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정신이었고,그것이 성공의 밑거름이자 사업보국을 실현할 수 있는 길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호암이 기업을 세우고 새로운 사업을 벌여 성장시켰던 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던 상황이었음에 틀림없다. 지금 그의 끊임없는 도전적 기업가정신과 미래를 내다보는 경영철학을 다시 되살려 우리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고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지지 않으면 안될 이유다.
[매일경제신문 사설-20100206토] 유럽경제 불안, 대비는 하되 패닉은 금물
유럽발 금융 불안이 또 한바탕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남유럽, 동유럽, 발틱3국 등 유럽 대부분 지역의 경제가 위험 요소를 안고 있지만 특히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해 세계 경제 뇌관으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2.7%를 기록한 그리스는 지난달 재정안정화 방안을 EU위원회에 제출해 2012년까지 GDP 대비 3%까지 낮추겠다고 했지만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 최대 규모의 파업까지 발생하면서 국채 디폴트 리스크가 높아지고 증시가 폭락했다. 여기에 GDP 대비 각각 11.2%와 8%에 달하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재정적자 역시 쉽게 해소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이들 국가의 신용부도스왑(CDS) 가산금리가 치솟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미국의 금융규제 강화와 중국의 긴축조치 등으로 세계 경제가 또다시 흔들리고 있는 와중에 유럽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세계 경제 더블딥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유럽 경제가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재정적자 문제가 하루아침에 불거진 게 아니라 오랜 기간 누적돼 온 것이고 이미 예고된 것이라는 점에서 세계 금융ㆍ외환시장과 증시의 반응은 지나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유럽에 총수출의 15%(지난해 560억달러)를 의존했다. 금융회사 익스포저(유가증권, 대출금 등 위험자산 규모)도 지난해 말 현재 140억달러를 넘고 있다. 유럽 경제가 위기 상황에 놓인다면 적지 않은 피해를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치명적인 충격을 입을 정도로 우리 경제가 취약하지는 않다. 경제주체 모두 유럽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만반의 대비를 하되 패닉 상태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 오늘의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오늘과내일/정성희(논설위원)-20100206토] SAT 50점과 맞바꾼 양심
모두가 돈에 눈이 먼 거죠. 이상한 동네예요, SAT 학원가는….” 어느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강사의 고백대로 매일같이 터져 나오는 SAT 학원과 강사들의 행태는 시쳇말로 ‘진상’이다. 문제지 유출로 시작된 파문은 SAT 스타강사 납치사건으로 이어지더니 납치당했던 당사자가 문제 유출의 원조라는 주장으로 반전해 미스터리극을 연상케 한다. 그동안 관리감독의 무풍지대에서 떼돈을 벌던 SAT 학원과 강사들이 타격을 입게 되자 서로 비방하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 유학가려 不正인생 시작하는 비극
서울 강남구 대치동이 국내 진학학원의 메카라면 SAT 학원은 강남역 사거리와 압구정동에 몰려 있다. 건물 하나 건너 하나씩 보이는 SAT 학원 간판들은 유학준비생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케 한다. 미국 학생 및 교환방문자 프로그램(SEVP)이 공개한 외국인 유학생 현황을 보면 2009년 한국 유학생은 10만3889명으로 중국(11만8376명)에 이어 2위다. 3위는 인도 차지다. 우리나라 인구는 중국의 25분의 1, 인도의 20분의 1인데 말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미국 유학생이 10만 명을 돌파했으니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유학 열기는 가열됐음을 알 수 있다. 10만 명이면 국내 수도권 4년제 대학 신입생 정원(10만6208명)과 맞먹는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까지 SAT 학원이 성업 중인 데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조기유학을 간 학생들까지 방학이면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그 특별한 무엇은 바로 SAT 문제지 유출에 대한 기대였던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은 몇 번이고 문제지를 빼낸 학원과 강사들에게 있다. 학원 측은 빼낸 문제지를 ‘살 수 있는’ 일부 학부모와 개별접촉을 하고 거액을 받아왔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일부 학생과 학부모의 잘못도 크다. 학부모들은 문제지를 입수하지 못하는 강사들을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으며 문제지 유출을 부추겼다.
SAT 부정행위를 하면 성적이 얼마나 오르는 걸까. 태국에서 문제지를 빼낸 김태훈 씨에게서 e메일로 시험지를 제공받은 고교생 두 명의 SAT 성적은 2400점 만점에 각각 2250점과 2210점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들의 모의고사 성적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점수는 모의고사 때보다 50∼100점 올랐을 뿐이다. 실력대로만 해도 웬만한 대학은 다 갈 수 있는 좋은 성적인데도 ‘몇 점 더’에 매달려 부정행위자가 됐다. 한국식 점수 집착증이 학생의 앞날도 망치고 나라 망신도 초래했다.
우리 학부모들의 이런 경향은 미국 사회의 흐름과 역행하는 것이다. 미국 대학들은 SAT를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꾸고 있다. 2100개의 대학 중 3분의 1이 넘는 739개 대학에는 SAT 성적을 제출해도 되고, 안 내도 상관없다. 학생의 선택권이 그만큼 넓다. 과거엔 SAT 성적 제출을 의무화하지 않은 대학이 음대 미대에 국한됐으나 최근 캘리포니아주립대를 비롯한 유명 대학들도 가세하고 있다.
* “똑똑한 학생 많지만 좋은 학생은…”
미국 대학들이 학생을 선발할 때 SAT 성적 외에 내신 에세이 과외활동 봉사활동 등을 두루 고려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 학부모만 SAT를 우리나라 수능시험처럼 여기며 다걸기 하는 것이다. 이런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졸업이 쉽지 않아서다.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14개 명문대학에 진학한 한국 학생의 중도탈락률이 44%란 통계도 있다.
“한국엔 ‘똑똑한(smart)’ 학생이 많습니다. 하지만 ‘좋은(good)’ 학생은 드뭅니다.” 오래 학생선발을 해온 미국의 한 대학 입학사정관이 했다는 이 말이 가슴에 남는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구희령(사회부문 기자)-20100206토] 산업스파이
17세기 중반 서유럽의 섬유산업은 이탈리아가 지배하고 있었다. 최고급 비단이 주력상품이었다. 기술자의 출국을 금지하고 기술을 유출하면 사형에 처하는 등 ‘기술 보안’에도 신경 썼다. 그런데 1717년 날벼락 같은 일이 터졌다. 영국 더비에서 롬브 형제가 이탈리아의 볼로냐 비단 못지않은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볼로냐 비단 길드는 큰 충격에 빠졌다.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형제가 볼로냐 비단공장의 평면도를 훔쳐냈던 것이다. 격분한 길드는 암살단을 보내 동생인 존 롬브를 독살했다. 그러나 살아남은 형 토머스 롬브는 훔친 기술로 특허까지 얻었다. 기사 작위도 받았다. 그의 성공 이후 영국 내에서 최신 방적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국 산업혁명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산업화를 이룬 영국은 기술 유출에 엄격했다. 외국인은 공장을 견학할 수 없었고 기계 반출도 금지됐다. 핵심 기술자는 해외여행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스물한 살의 섬유기술자 새뮤얼 슬레이터는 1789년 감옥에 갈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영국에서 공장을 차릴 만한 자본이 없었다. ‘미국은 직조기 기술자를 우대한다’는 불법 유인물이 그의 맘을 끌었다. 슬레이터는 미국에서 브라운 형제를 만났다. 브라운 대학교 설립자다. 슬레이터는 이들의 자본으로 1790년 로드아일랜드에 방적공장을 세운다. 미국의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슬레이터를 ‘미국 제조업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가 쌓은 부는 현재 가치로 2억5300만 달러(약 3000억원)에 이른다. (권홍우, 『부의 역사』)
미국인 캐벗 로웰은 부유층 출신으로 하버드대를 졸업했지만 슬레이터와 같은 길을 걸었다. 그는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당시 최첨단이던 카트라이트 방직기 제작 기술을 훔쳐냈다. 1810년대 로웰이 훔쳐낸 기술로 미국에 방직기가 대량 보급되면서 영국의 독점 시대가 끝났다. (스티븐 핑크, 『기업스파이 전쟁』)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산업스파이가 영웅 대접을 받은 것은 국익에 기여했다는 명분 덕이었다. 슬레이터는 ‘제2의 조국’인 미국에선 영웅이지만 고향인 영국에선 지금도 반역자 취급을 받는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을 훔쳐낸 ‘산업스파이’는 미국 회사 쪽 한국 직원이라고 한다. ‘애국심으로 포장할 수조차 없는 산업스파이’. 두 글자로 줄일 수 있다. 도둑.
[경향신문 칼럼-여적/김철웅(논설위원)-20100206토] 보스
갱 영화의 최고봉은 역시 <대부(代父)>다. 주인공은 뉴욕 마피아 조직의 보스 돈 콜레오네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다정다감하지만 ‘패밀리’의 이익을 위해 잔혹한 범죄를 서슴지 않는 보스의 역할을 배우 말론 브랜도가 잘 해냈다. 콜레오네 패밀리의 ‘사업’에는 중대한 협상전략이 있었다.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던지라’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거부는 곧 죽음임을 깨닫게 하라는 말이다. 이 무시무시한 제안은 영화 전편에 걸쳐 반복되고 실행된다. 1972년 나온 이 영화는 요즘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와는 달리 느리고 어둡고 무겁다. 그래서 지루하다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올드 팬들에게는 가장 인상 깊은 영화로 남아 있다.
엊그제 정운찬 총리가 국회에서 “세종시 정쟁은 정치인들이 국민의 목소리보다 자기가 속한 정당이나 계파 보스의 입장을 앞세우기 때문”이란 발언을 했다. 정 총리의 ‘보스’론을 접하면서 생각난 것은 유감스럽게도 암흑가 범죄세계의 보스와 조직원들이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보스’에, 친박계를 ‘보스를 무조건 따르는 집단’에 비유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 총리는 이튿날 ‘내 말에 거친 부분이 있었다면 불찰’이라고 물러섰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총리의 국회 발언은 범부(凡夫)의 취중 실언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것인 만치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의 말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기는 어렵다. 교차투표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국회의원은 당론의 거수기에 불과하다. 친박계가 계파 보스인 박근혜 전 대표의 뜻을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 진실일 뿐이다. ‘보스’론으로 따지면 친이계는 어떤가. ‘이명박 보스’가 지침을 내린 후 이들이 보여준 일사불란한 입장 정리는 그저 우국충정의 발로일 뿐인가. 총리가 일전에 “세종시로 행정부가 오면 나라가 거덜날지 모른다”고 한 것, 권태신 총리실장이 세종시 원안을 사회주의 도시에 비유한 것은 문제가 없나.
무리한 주장을 펴다 보면 엉뚱한 말이 나오게 마련이다. ‘보스 운운’은 의회정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점잖은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총리는 정치의 격을 떨어뜨리는 발언을 삼가기 바란다.
[서울경제신문 칼럼-기자의 눈/이재용(생활산업부 기자)-20100206토] 공정위의 고무줄 잣대 논란
공정거래위원회의 소주업체 담합 과징금이 당초 심사보고서상의 8분의1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 무려 88%나 경감된 셈이다. 심사보고서에 기재된 과징금 액수와 전원회의로 확정되는 과징금 액수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지만 이번 경우는 좀 심하다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담합에 따른 관련 매출액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데다 소주업체들이 물가안정에 협조했다는 점을 과징금 대폭 경감의 이유로 들었다. 과징금 대상이 된 조사기간에서 실체적 증거와 제재 근거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공정위 위원장의 해명도 있었다.
소주업체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공정위의 무리한 과징금 부과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소주업체의 한 관계자는 "과징금이 8분의1로 줄었다는 것은 애초에 공정위가 소주 값 담합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주 값 담합은 사실 국세청의 행정지도 문제로 논란의 여지가 많다. 소주시장 1위 업체인 진로가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면 다른 업체들이 이를 가이드라인으로 삼는 것이다. 과다 규제 논란이 있는 국세청 행정지도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과징금을 산정하는 공정위의 고무줄 잣대는 분명 문제다. 이번 일로 담합 과징금이 합리적 기준에 따라 산정되기보다는 공정위의 자의적 판단으로 결정된다는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 이 같은 모호한 기준으로는 공정위에 대한 업계의 불신을 해소할 수 없다. 오히려 공정위를 향한 업계의 공격 수위만 높일 뿐이다.
정부 정책이 신뢰를 얻으려면 합리적 기준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일관성은 물론 합리적 기준조차 의심되는 행보가 이어진다면 공정위에 대한 업계의 불신도 따라서 깊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확고한 원칙을 세워야 '경제 검찰'로서의 공정위 위상도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