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협곡에 놀라 얼굴붉힌 단풍’日소도시마
세토내해 한가운데 자리잡은 가가와현의 소도시마(小豆島). 동쪽으로는 오사카, 북쪽은 효고와 오카야마, 남쪽은 가가와현으로 둘러싸인 세토내해는 사실 일본에서는 가장 이름난 해양국립공원이다. 세토내해에만 1,000여개의 섬들이 떠 있어 우리로 따지면 한려수도나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같은 곳이다. 쾌속선을 타면 불과 30분거리에 있어 섬여행의 불편함도 없다.
일본 열도에서는 19번째, 세토내해에서 2번째로 큰 소도시마의 면적은 153㎢. 강화도의 절반 정도다. 127㎞의 해안도로를 한바퀴 도는 데 2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크기에 비해 제법 명승지가 많다. 일본의 3대 협곡 중 하나로 꼽히는 간카케이협곡, 일본 최대의 히트 영화 가운데 하나라는 ‘24개의 눈동자’ 영화세트장, 일본에서 최초로 올리브를 재배했다는 올리브 공원, 세계에서 가장 작다는 도부치 해협…. 그래서 연간 관광객이 1백10만명 정도나 된다.
이중에서도 자연경관이 가장 빼어난 곳은 간카케이(寒霞溪) 협곡이다. 한 굽이를 돌 때마다 올망졸망한 섬이 떠있는 다도해가 보이는 고갯길. 바다는 우리의 남해안과 비슷하다. 굽이진 고갯길을 타고 30분 정도 가다보면 협곡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암봉을 둘러싸고 단풍이 든 활엽수와 파란 침엽수가 적당히 섞여있는 산줄기는 자그마한 섬에 이렇게 산이 날카로울까 싶을 정도로 웅장하다. 비바람 때문에 단풍이 많이 지긴 했지만 협곡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다. 설악산의 공룡능선이나 천불동 계곡을 한토막 잘라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협곡 사이에는 날이 선 암봉이 기기묘묘하다. 마치 산을 뚝 쪼개놓은 것처럼 갈라진 간카케이 협곡은 호시가조산(817m)과 시보자시산(777m) 사이에 놓여 있다. 대부분이 경사가 급한 절벽지대라 등산로가 따로 없다. 협곡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케이블카로 20분 정도면 협곡을 건널 수 있다.
일본인들에게 인기있는 명소는 영화 ‘24개의 눈동자’ 촬영지이다. 1954년과 1987년 2차례에 걸쳐 영화화된 ‘24개의 눈동자’는 일본 최대 히트영화 가운데 하나. 문부성이 추천하는 권장영화로 지정돼 일본 학생들은 물론 일본인 대부분이 이 영화를 봤다고 한다. 소도시마가 일본에서 이름난 관광지가 된 것도 바로 이 영화 때문이었다고 한다. 1925년 소도시마 노마진조 소학교 나노우라 분교에 부임해온 여교사와 12명의 제자의 학교생활을 그린 것이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팔려가는 아이, 전쟁터에 끌려가는 학생의 이야기 등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한다.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를 배경으로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일본판 ‘사운드 오브 뮤직’쯤으로 보면 된다. 87년 리바이벌 때에는 ‘오싱’으로 유명한 다나카 유코가 주인공을 맡았고, ‘노란 손수건’ ‘남자는 괴로워’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낸 극작가 아사마요 요시다카가 극본을 썼다.
1만평이나 되는 세트장은 일본의 옛 시골마을을 연상시킬 정도로 예쁘다. 나무로 지어진 교사에는 당시의 교실모습이 그대로 복원돼 있다. 54년과 87년의 영화 스틸사진이 빼곡하게 붙어있는 교실에 들어선 일본 관광객들은 사진찍기에 정신이 없다. 세트장내 17동의 건물 중에는 ‘24개의 눈동자’를 상영하는 영화관도 있다. 영화관에서는 때마침 다리를 다쳐 할 수 없이 본교로 떠나야 하는 오오이시 선생을 두고 아이들이 배를 태워 직접 출·퇴근을 시키겠다고 울먹이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는데,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어촌 선생님의 훈훈한 사랑이야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영화가 얼마나 유명했는지 99년에는 오부치 총리가 직접 찾아와 코스모스밭 가운데 있는 청동판에 ‘선생님 놀아요’라는 글씨를 써놓았다. 모델이 된 나노우라 분교는 1902년 설립됐다가 72년 폐교됐는데 올 1년 동안 분교설립 100주년 행사를 벌이고 있다.
소도시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올리브 공원이다. 소도시마는 1905년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올리브를 최초로 재배하기 시작한 곳. 당시에 심은 100년이 조금 안된 올리브 나무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올리브 공원을 안내한 사람은 54년 ‘24개의 눈동자’에서 여교사의 아들로 출연했다는 야시로 유타카(55). 공원 내 2만4천평에 심어놓은 1,000그루의 올리브로 향료와 오일 등 다양한 관광상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공원은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풍차 같은 건축물과 올리브 농장, 온천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밖에도 소도시마에는 폭 9.93m, 길이 2.5㎞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도부치 해협, 기코만과 함께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100년 역사의 마루킨 간장공장 등 볼거리가 많다.
▲여행길잡이
가가와현은 일본 47개현 가운데 가장 작은 현. 위도는 제주도와 비슷하며 연중 눈이 내리지 않을 정도로 포근한 편이다. 서울~다카마쓰 항공편은 아시아나 항공이 매주 월·목·금요일 3편 출발한다. 다카마쓰 항에서는 소도시마까지 들어가는 쾌속선이 있다. 쾌속선은 1,020엔. 30분 소요.
가가와현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사누키우동의 발원지. 8세기에 당나라에 견당사로 다녀온 홍법대사가 처음 우동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사누키우동의 쫄깃쫄깃한 면발이 특징이다. 지역별로 우동학교까지 운영한다. 간장에 찍어 먹는 간장우동부터 국물이 맛있는 가케우동 등 우동 종류만해도 수십가지에 달한다. 일본관광진흥회 서울사무소(02-732-7525), 가가와현 관광진흥과(81-87-831-1111).
▲다카마쓰 리츠린(栗林)정원
가가와(香川)현에서 꼭 들러봐야 할 명소는 다카마쓰 시내에 있는 리츠린(栗林) 정원이다. 일본의 3대 명원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리츠린은 일본인들이 3대 정원보다 낫다고 평가하는 곳이다.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보려면 2시간 이상 잡아야 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75만㎡나 되는 정원에는 7개의 큼지막한 호수와 13개의 자그마한 전망대가 있다. 17세기 중반 사토시 영주가 짓기 시작했다. 100여년에 걸쳐 완성된 리츠린 정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소나무. 정원내 1,400그루의 소나무 가운데 1,000그루는 특별관리한다. 마치 분재를 연상시킬 정도로 이리저리 가지가 휘어져 있다. 소나무가 높이 자라지 못하게 가지를 붙들어 매서 만든 것이다. 호수에는 형형색색의 비단잉어가 뛰놀고, 왜가리나 까마귀 같은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일본 정원은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미를 강조한 우리와는 달리 인공적인 조형미를 강조한다. 일본 정원은 현실세계에 없는 이상향을 뜻한다. 일본 민족학박물관장을 지낸 민속학자 이시게 나오미치는 “일본의 모든 정원은 이상향이나 현존하는 명소를 압축시킨 것”이라고 했다.
/가가와(일본)/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2년 12월 04일 16: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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