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과일일까, 쭉정이 벼 이삭일까.
류 근 만
토요일 아침, 오늘따라 화창한 봄날이다. 조촐하게 차려진 아침밥상을 물리고 쉼터로 출근을 했다. 잠시 후 아들이 뒤따라온다. 애비의 일손을 보태려는 심산이다. 땀을 흘리면서 내 일을 돕던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 오늘 점심은 어떻게 할까요?’ 나는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집에 가서 먹자’고 대답했다. 아들은 제 어머니와 통화를 하더니 바쁘게 움직인다. 밭에 와서 삼겹살 파티를 하기로 했단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실은 오늘이 내 일흔 세 번째 생일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우리부부만 미역국을 끓이고 조촐한 아침식사를 할 계획이었다. 어제 전화를 한 손자한테도 ‘섭섭하지만 코로나19가 잠잠하거든 만나자’고 했다. 원주에 사는 딸한테도 오지 말라고 전화를 했었다. 그런데 서울에 사는 아들은 금요일 오후 회사에서 반차를 내고 혼자서 온 것이다. 딸네는 주말부부다. 금요일 늦게 도착한 제 신랑한테 아이들 맡기느라 늦었다면서 한밤중에 들이 닥쳤다. 애비의 존재가 무엇인지, 한편으론 고맙고 또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하다. 전 세계가 야단법석인 코로나19가 야속하다. 우리네 삶을 바꿔놓고, 나라가 나라꼴이 아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도 예단하기가 어렵다.
아들은 야외화덕에 불을 붙이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딸과 제 엄마는 집에서 가져온 음식 차리느라 분주하다. 농장주인인 나도 내 인생 이모작을 하고 있는 나만의 ‘쉼터’에 온 손님맞이에 분주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른 봄부터 매일 출근하면서 애써 만든 농장 ‘쉼터’가 아닌가. 이런 쉼터에서 아들딸이 함께 하는 생일파티가 얼마나 기쁜지 꿈만 같다. 그렇지 않아도 자랑할 기회를 찾고 있던 중이었는데!
조개탄이 벌겋게 달궈진 불판위에서 삼겹살이 지글거린다. 함께 자리하지 못한 며느리 사위 손자들이 눈에 밟힌다. 신종코로나정국이 더욱 야속하다. 아들이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찾아낸다. 농장의 쉼터에서 즐기는 삼겹살 생일파티치고는 행복만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미완성의 신접살림이라 어설프지만 말이다.
식사를 마친 다음 밭으로 가서 이것저것 자랑삼아 설명도 했다. 손자들 오면 따먹을 과일나무도 심었다. 아직 이른 봄철이라 씨앗을 부치려고 갈아놓은 텅 빈 밭이랑도 보여주었다. 농장의 구석구석을 살펴본 자식들은 ‘아버지는 평생직장, 건강농장이 있어서 최고’라면서 ‘엄지 척’을 한다. 애비 듣기 좋으라고 호들갑을 떠는 자식들이 고맙기만 하다. 점심 후식은 농장주인 내가 손수 커피를 타서 한잔씩 마시라고 권했다. 그리고 멀리 가야하는 아들과 딸을 서둘러 보냈다. 손자손녀와 함께하지 못한 생일파티가 아쉽기만 하다. 각자 차를 몰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니 가족이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하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년 초부터 애써 가꾼 농장, 화창한 봄날에 자식들에게 선보이니 마음이 뿌듯하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서 좋다. 밭 면적도 전에 비하면 삼분지 일로 줄였다. 밭 모양도 괜찮다. 이번엔 농장을 마련하는데 유난히 정성을 들인 이유가 있다. 지난번에 시행착오가 많았기 때문이다.
전번에 고향에 있던 밭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내가 직접 경작을 했다. 700여 평이나 되는 땅을 현직에 있을 때라서 주말에만 가야했다. 그 당시는 토요일도 오전근무를 할 때였다. 한참 젊은 나이였기에 일하는데 겁을 내지도 않았다. 은퇴 후를 생각해서 복숭아과수원을 시작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주말만 관리한 탓이었다. 그 후 관상수를 식재했으나 판로가 문제였다. 더구나 전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헐값에 넘기고 말았다. 그 후부터는 밭을 묵이지 않으려고 경작이 용이한 작물만 골라서 재배를 했다.
공직을 은퇴할 무렵에는 이모작인생을 준비한다고 전원농장을 꾸몄다. 인간백세시대 삼십년 앞을 보고 준비한 것이다. 그 당시는 60대 초반이었다. 한창 일 할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하는 두려움을 모르고 밤낮없이 전원농장 만들기에 사력을 다했다. 아내의 반대에도 굽히지 않고 탱크처럼 내 뜻대로 밀어붙였다. 전원생활이 즐겁기도 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나면서 점차 상황이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대전에 거주하면서 전원농장과 고향을 오가면서 농사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은퇴할 당시의 생각은 언제까지나 힘이 펄펄 솟을 줄로 믿었던 것이 불찰이었다. ‘人生七十古來希’라는 뜻을 생각지 못한 것이다. 고희를 넘기면서 칠십대와 육십 대 힘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지난해에는 운이 좋았던지 고향에 있는 밭이 팔렸다. 나는 그 돈으로 서둘러 유성의 집 근처에 삼 백여 평의 밭을 대토로 샀다. 그리고 전원주택도 팔려고 공인중개사에게 의뢰했다. 물론 아내의 뜻은 반대였다. 나이 들어서 농사일도 예전만 못하고, 늙어서는 부동산보다 현금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나는 들개마냥 들에서 일을 해야 하는 성격이어서 아내를 이해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더구나 근교에 땅을 사려면 대출도 받아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아내의 반승낙을 받았다. 아내마음이 변할까봐 서둘러 농협에서 대출도 받고 소유권이전등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밤에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면서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기 바빴다. 눈만 뜨면 밭에 가서 이리저리 길이도 재고 폭도 재본다. 이웃 농사꾼 경험담도 듣고, 분주히 발품도 팔았다. 컨테이너를 설치할까, 비닐하우스를 지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같은 비용으로 창고 겸 쉼터로 활용키 위해 조그맣게 비닐하우스를 짓기로 했다. 전기도 끌어오고, 지하수도 연결하여 여름철 땀 흘리면 등목 할 샘터도 만들었다. 고물상에 가서 뒤 꼭지가 불룩한 TV도 사서 설치했다. 농자재를 보관하는 창고 겸 쉼터도 훌륭했다.
언젠가 일간신문에서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25세까지는 봄이고, 50세까지는 여름, 75세까지는 가을, 그 이후는 겨울이라는 내용이었다. 농부는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정성을 다해 가꾼다. 그래야만 가을에 풍년을 기약할 수 있다. 잘 자란 벼는 가을에 고개를 숙인다. 잘 가꾸어진 과일나무라야 탐스럽게 잘 익은 열매를 딸 수 있다. 인간은 직장에서 은퇴하면 가을에 접어드는 나이다. 현직에 있을 때 인성을 가꾸고 성숙해야 은퇴 후 노숙(老熟)한 어르신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가을의 끝자락이고, 2년 후면 겨울에 접어드는 나이가 아닌가. 내 나이가 벌써 칠십이 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밭에서 삽질을 하거나 농사일을 할 때는 사십대 젊음을 불허한다. 그러나 가는 세월을 어찌하랴! 흐르는 세월에 도전 할 수 없고,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전원주택도 살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농장에 있던 짐을 급하게 옮겼다.
추수기를 맞이한 농부의 심정이다. 내 나이에 걸맞고, 분에 넘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내도 동참하고, 자식들도 좋아하고, 내가 노후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쉼터로 가꾸어야 한다. 나무시장에 가서 과일나무도 골고루 샀다. 감자도 심고 강낭콩도 심었다. 4월이면 옥수수도 심고 호박도 심어야 한다. 각종 채소도 심고 고구마도 심어야 한다. 오늘따라 꿀벌들도 반가운 손님을 아는지 분주하게 움직인다.
앞으로 이삼년이면 농장다운 농장이 되어 나의 평생직장이 되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화창한 봄날을 코로나19가 삼켜버렸다. 모든 국민들이 약국 앞에 줄지어 마스크를 구입하느라 야단법석이다. 가족모임도 친목모임도 자재하느라 고독한 생활자가 늘어만 간다. 이런 와중에 나는 매일같이 출근할 곳이 있어 다행이다. 평생직장인 쉼터에서 조촐하지만 자식들과 함께한 생일파티가 행복하기만하다. 나도 가을의 끝자락에 선 나이, 이제는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마냥 수확기를 기다릴 때다. 여름철에 잘 가꾼 농작물처럼 내 삶도 잘 살았는지 평가를 받을 차례다. 과연 나는 탐스럽게 잘 익은 과일일까, 쭉정이 벼 이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