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 여행객들에게 각광받는 섬으로 남해안에 외도가 있고, 서해안에 선유도가 있다. 외도는 너무 인공적이고 이국적이어서 무수히 널린 다도해의 한 섬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관광상품처럼 느껴진다. 그에 견주면 선유도는 신선이 놀던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아름답고 자연스런 섬이다. 군산항에서 배를 타고 선유도로 간다. 당일치기 섬 여행은 무리다. 섬에서 하루 자고, 자지 않고의 차이는 대단히 크다. 잠깐 들렸다가 오면 연인과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지는 것과 같고, 1박을 하면 연인과 하루 밤을 함께 하는 것과 같다. 사귀는 정도가 달라진다. 잠을 자야, 비로소 고독한 섬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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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는 한 개의 섬이 아니다. 무녀도와 장자도와 대장도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다족류의 짐승처럼 보인다. 군산항에서 출항하는 선유도 유람선을 타면 고군산열도를 돌아볼 수 있다. 선유도는 고군산열도의 중심지다. 고군산(古群山)은 옛 군산이란 뜻이다. 바다 위에 섬들이 무리지어 있는 산처럼 보여서 군산(群山)이란 이름을 얻었다. 고군산에 소속된 섬은 선유도, 야미도, 신시도, 대장도, 장자도, 무녀도, 방축도, 말도, 관리도, 횡경도, 비안도 등 유인도 16개와 무인도 47개다. 조선시대에 선유도에 군산진이라는 수군기지가 있었다. 수군기지가 지금의 군산으로 옮겨지면서 이름까지 뭍으로 가버렸다. 이런 황당한 일을 선유도는 경험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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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에서 선유도까지는 배로 1시간 반이 걸린다. 선착장에 내리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긴 돌기둥 위에 횃불 문양이 새겨진 승공탑이다. 이곳에서도 남북 이데올로기의 쟁투가 벌어진 것이다. 승공탑 옆에는 선유도 안내 표지판이 있다. 승공탑에서 왼편 경사진 길로 올라가면 무녀도가 나온다. 무녀도와 선유도는 선유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무녀도는 염전도 있고, 수원지도 있다. 선유도 주변 섬 중에서는 가장 풍족하고 살기 좋은 곳이다. 아직은 여행객들이 무녀도 쪽으로 많이 가지 않지만, 새만금둑이 완공되어 신시도까지 찻길이 생기고 나면, 신시도와 무녀도 사이가 다리로 연결되어 모노레일이 깔릴 예정이란다. 그러면 무녀도에는 호텔, 카지노, 골프장, 놀이동산 따위의 도시의 위락시설 들이 들어올 것이라고 승공탑 옆 안내판에는 소개되어 있다. 아주 편하고, 아주 화려한 관광단지로 탈바꿈할 수도 있겠지만, 섬 여행과 어울리는 계획은 못된다. 개발은 인간을 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무사안일하게 만들어버린다. 여행은 때로 외롭고, 쓸쓸할 때 더 값지다. 그런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섬이다. 여행자들이 많이 향하는 쪽은, 승공탑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뻗은 해변길이다. 그쪽으로 가면 선유도 본 마을과 해수욕장이 나온다. 그리고 선유도의 상징이라고 할 두 개의 바위산 망주봉으로도 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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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서 망주봉을 바라보고 10여분 걸어가면 보건소가 나오고 파출소가 나오고, 작은 제방길이 나온다. 제방길 안쪽이 선유도의 중심 마을인 진리 동네다. 그곳은 민박집들이 많다. 섬까지 와서 번듯한 모텔을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 되도록이면 섬 사람들과 비슷한 잠자리를 공유하는 게 뜻 깊다. 하루나 이틀 섬사람이 되어보는 것이다.
선유도에는 차가 거의 없다. 찻길이 길지 않기 때문에, 차는 사치다. 차 살 돈 있으면 배 한 척을 사는 것이 더 낫다. 다만 선착장에서 멀리 떨어진 민박집에서 까다로운 도시인들을 위해서 낡은 봉고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종종 선유도 개발을 위해서 들어온 소형 짐차들이 눈에 띈다. 선유도의 최고 이동수단은 자전거다. 차가 드물어 자전거를 안심하고 탈 수 있고, 길이 좁아서 자전거라야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다. 게다가 선유도를 곡곡샅샅 돌아보려면 걷기에는 무리고, 자전거 하이킹이 알맞다. 이미 자전거 하이킹의 적소로 소문나 있어서, 산악자전거를 가지고 섬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자전거 대여소도 많다. 자전거 대여소가 많아, 혹시 자전거 대여소에서 운영하는 섬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자전거를 타고 가장 많이 찾아가는 곳이 진리 마을에서 장자도와 대장도 방면이다. 두 개의 섬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장자도와 대장도는 작은 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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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도는 야트막한 산 언덕이 하나 튀어나오고, 대장도는 작은 산봉우리가 하나 불쑥 튀어나와 이룬 섬이다. 장자도와 대장도를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방법은, 자전거를 타고 그 섬까지 가보는 것보다도 자전거를 세워두고 선유도의 선유봉에 오르는 것이다. 섬에 오면 바닷가에서만 놀다가기 쉬운데, 섬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면 섬의 산에 올라야 한다. 섬 산들은 그다지 높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트레킹하기에 좋다. 섬 산봉우리에 오르면, 사방에 바다가 보이기 때문에 마치 거대한 배 위에서 올라앉은 기분이거나, 큰 동물의 등위에 올라탄 기분이다. 바다로 길게 뻗은 땅들은 다리 같고, 불룩 솟은 산들은 등판 같다. 땅과 바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분명하여 상상하기 따라서는 다양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선유봉은 선유도 진리에서 가장 가까운 산봉우리다. 해변에서 선유봉까지는 900m로 그다지 가파르지 않다. 정상 부근은 바위덩어리다. 선유봉에 오르려면 투구봉을 지나게 된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투구봉은 장수의 투구처럼 보인다. 하지만 산 위에서는 투구는 보이지 않고, 바위 절벽만 가파르다. 선유봉에 오르면 동남쪽으로 주삼섬, 앞삼섬, 장구도 뒤로 무녀도가 보인다. 서쪽으로는 장자교와 대장도가 보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장관이다. 장자교 뒤편으로 대장봉 옆쪽으로 바다를 붉게 물들이면서 붉은 해가 떨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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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섬에서 낙조를 보는 것은 행운이 따라야 한다. 해무가 자주 끼어서, 해가 바다로 떨어지기 전에 희뿌연 기운이 먼저 해를 삼켜버린다. 선유봉을 내려와서 장자교와 대장교를 건너면 대장도에 다다르게 된다. 대장도의 대장봉은 30분쯤이면 오를 수 있는 바위 많은 산이다. 산 중턱에는 고깔모자 같은 원추형 바위가 솟아있다. 마을 사람들은 할매바위라고 부른다. 할매의 영험한 힘이 뭉친 바위라는 것이다. 바위에는 기다란 광목이 감겨있다.
서울의 한 사찰의 승려가 신도들의 이름을 적어서 해마다 초파일에 할매 바위에 둘러놓고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아마도 서해 용왕님께 천도제를 올린 것일 게다. 광목천으로 할매바위를 한번 감는데, 1필이 들어간다고 한다. 예전에 선유도 사람들이 풍어를 빌던 곳인데, 이제는 섬 선교회 사업을 주도하는 선교사들에 의해 섬의 주류 신앙이 기독교가 된 뒤로, 옛 풍습도 사라져 버렸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말한다. 대장도는 선유도에 연결된 섬 중에서 가장 작은 섬이지만, 대장봉에 오르면 선유도의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다. 선유도의 전경 사진도 주로 이곳에서 찍는다. 가히 대장이 올라서 진두지휘를 할 수 있는 대장봉이다.
선유도에서 가장 상징적인 지형은 선유도 진리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망주봉이다. 망주봉은 거대한 바위 한개로 이뤄진 봉우리다. 바위 암봉이 가파르기 때문에 오를 때는 어떻게 기어서 갈 수 있지만, 내려올 때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위태롭다. 망주봉이 있는 마을은 전월리다. 진리와 전월리는 모래언덕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생긴게 선유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의 서쪽은 모래사장이고, 동쪽은 드넓은 뻘밭이다. 뻘밭은 밀물 때 저수지처럼 변한다. 그 갯벌지대와 모래사장 중간에 포장길이 있다. 그곳을 달리면 바다 위를 달리는 듯하다. 모래사장을 지나 전월리 마을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진리의 선유봉을 바라보며 묘한 윤곽이 드러난다. 선유봉에서 시작된 선유도의 능선이 마치 누워있는 여자의 윤곽이다. 코는 낮은 편이지만, 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의 목과 가슴 윤곽까지 확연하다. 바다 위에 누운 여자의 혼이 선유도에 담겨있는 것 같다. 서해안의 바닷가는 밀물 때는 해수욕이 가능하지만, 썰물 때는 갯벌에서 놀아야 한다. 선유도도 마찬가지다. 물이 빠지면 수심이 얕아지고, 수심 깊은 곳으로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한다. 썰물 때는 차라리 삽이나 호미를 들고 갯벌을 뒤지는 편이 낫다. 섬에 들어가면 섬에 맞춰 지내야 한다. 밀물 때면 해수욕을 하고 썰물 때면 갯벌 체험을 하고, 무료하면 건너다보이는 산을 오르면 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선유도다. 여름 피서철에는 미리 배편을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붐빈다. 하지만 섬에 들어가면, 편안한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신선이 좋아 놀았다는데, 어찌 인간의 눈에 들지 않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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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Photo | 허시명 여행컬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