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스미노 요루/소미미디어
우선 호기심이 문제다. 이 책은 제목 하나로 선취득점을 얻었고, 읽어본 사람들의 괜찮다는 입소문에 의해 그야말로 신예 작가에게 최고의 영예를 안겨줄 만큼의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일본은 너의 췌장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니, 이게 그렇게 대단한가, 확인하기 위해 일단 구매를 했다.
초반의 신선도는 60점 정도라 할 수 있겠다. 본래 이렇게 짜게 주는 스타일 아닌데 말랑한 표지의 로맨틱한 분위기에 비해, 생각보다 독특한 소년의 나레이션이 초반의 몰입감을 주었던 것은 인정해야겠다. 소년의 이름은 '하루키'. 누구나 다 아는 그 하루키를 소설 주인공 이름으로 앉힌 것이 우습기도 하고, 그렇다고 여주인공 이름 또한 '사쿠라'라니... 이미 표지는 사쿠라 만발한 봄의 절정이자 청춘의 절정을 뜻하고 있다. 그것은 꽃 피는 것이 지는 것인, 소녀의 이미지와 노골적으로 맞아떨어진다. 일본말을 모르는 사람도 알 만한 벚꽃을 데려다 놓고 4월의 벚꽃놀이 데이트를 한다. 바로 그 드러남에서 나의 인색함이 드러났다 하겠다. 내가 원하는 소설 주인공이라면 이렇게 흔해선 곤란하단 점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진행 방식과 읽히는 재미 등으로 봐서 베스트셀러의 요소를 갖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뻔 한 이야기를 뻔 하지 않게 해결해내는 것에서 그렇다는 점이다. 봄처럼 순하고 봄처럼 빨리 지나갈 만큼 술술 읽힌다. 지나치게 가벼워서 싱겁게 여겨질 수 있을 정도로.
췌장을 먹고싶다는 것은 우선 '좋아한다'는 표현이라 하겠다. 일단 그들의 대화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문장에 그것이 깔려 있다.
'누군가 나를 먹어주면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산다는 신앙도 외국에는 있다던데.'(37p)
독특한 영혼소유설이 어디에서 근거하는지는 모르겠으나, 1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쿠라의 췌장암은 아무도 모르는 소녀만의 일급비밀이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연상할 수 있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채로 대강의 얼개가 그려진다. 맹장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았던 하루키에 의해 우연히 발견한 그녀의 '공병노트'. 그것은 시한부 소녀가 병과 함께 살아가는 기록물이고, 짧은 생애의 쓸쓸한 기록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소설의 표지처럼 밝은 이들의 데이트 장면이나 톡톡 튀는 대화들에서도 시한부 인생의 그림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책을 펼치자마자 사쿠라의 죽음을 전제해 놓고도 잔잔하게 할 얘기를 끌고 간다는 점이 괜찮았다. 그리고 결말이 예상되는 지점에서 갑자기 사쿠라의 죽음이 다른 궤도를 그린다는 점이다. 이미 예견된 죽음이지만 췌장암이 아닌 뜻밖의 사건, 묻지마 살해에 의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결미 부분이 예고된 죽음의 예상을 벗어나기 위한 반전을 위함인지 조금 생뚱맞은 감도 없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어떤 성향을 느끼게 하는 지점으로 이해했다. 그것이 작가이든 그 나라의 풍토이든...
열린 시작에도 소설적 플롯이 촘촘한 덕분인지, 구성이 허접스럽지 않고 재미난 연속극 보듯이 그림 그려지는 점은 좋았다. 이 신예 작가는 거의 소설가로의 길을 내다보고 고교 시절부터 소설 투고 웹사이트에 필명의 작품을 올렸다고 하는데, 이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유난스런 현상이자 부러운 현상의 하나가, 젊은 작가에게 문단이 열려 있다는 것이었는데, 전설적인 작가들 대부분이 이미 젊은 시절 발표한 대작으로 굉장히 성공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혹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단편소설에 적합할 것 같은 소재를 장편으로 만든 점도 특이하고, 소설의 말미가 의외로 지루했다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초반의 신선도가 말미에 오면 완성도에 달하기 위한 파급력을 더욱 이끌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이 소위 딸린다,는 인상이었다. 사실 이 리뷰를 쓰는 시기가 책을 읽은지 몇 달이나 지난 시점이라는 의심스런 탓도 있겠지만, 그때 느꼈던 가장 강렬한 인상이 그것이었음은 또렷이 남아 있다. 다시 말해 나는 스토리의 힘보다 플롯이나 완급조절 같은 걸 따지며 보는 편이므로, 그 인상으로 인해 점수가 깎였다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가 '스미노 요루'라는 신예에 대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도 특이하다. 예를 들면 프로필란에 등장할 만한 나이와 얼굴 사진 등의 기본적인 신상이 없다는 점이다. 보편적인 것이 아예 없을 때 인간의 호기심이 커진다는 것을 의도한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나로서는 이 소설의 내용보다 이 책이 갖고 있는 이상한 진행방식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