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이야기다...
늦은 밤 하숙집 아주머니의 목소리 톤이 높다..
[아고 내가 몬살것어...뭔 술만 먹음 노래를 불러 대는지.
아~~고만 하고 어여 자기나 혀~~~!!!
안그래도 애들 공부 하는데... 뭐하는 짖여~~!!! ]
복도 건너 의과대를 다니는 한 대학생은 오늘도
기타를 팅기며 임지훈의 [사랑의 썰물]을 불러 제낀다...
처음엔 무슨 노래인지도 몰랐지만..
일주일에 한두번은 늘상 듣는 곡이 되었고...
언젠가부터는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학창시절...
고교3년을 하숙하며 지냈다.
대학교안에 고등학교가 있다보니.
학교정문 하숙집들은 대부분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같이
받고 있었고..내가 하숙 하던 그집엔 대부분 의과대생이었다.
복도 하나로 나뉘어진..고등학생과 대학생..
어쩌다 마주치면 고개만 숙일분 별다른 대화가 없던
그런 사이에....어느 겨울밤...
그들이 서로 한자리에 모일 일이 있었다...
하숙집 아주머니의 생신날...^^*
저녁을 먹고..
자연스레 그간 얼굴만 보아왔던 사람들끼리..인사를 나누엇고.
금새 방안 가득....웃음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늦은밤 기타를 치던
그 대학생이 기타를 들고 오며..
나를 포함한 여고생들에게 노래 한곡씩을 청했다..
다들 어찌나 노래를 잘 부르는지..
신해철..변진섭....이상우.....
기타 반주에 어울러져 참 많은 박수를 받으며
지나 갔고....드디어 나의 차례였다...
순간 아는 노래 하나 떠오르지 않은 것이엇다.
[ 저~~아는 노래 없어요....]
에~~~이~~~~~ 어떻게 노래 하나 모를까~~
다들 그런 말들이 나왔고..
기타를 들고 있던 그 대학생이 그런다.
[그냥 생각 나는 노래 아무거나 해봐 내가 맞추어서 반주 넣어 줄테니..]
순간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고..창피 하던지..
할수도 안할수도 없는 상황에서...
난...일순간 입가에 나오는 노래 하나를 나즉히 불렀다...
♪~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있네
바람부는 하룻날에 아버지를 찾으러
바닷가에 나가더니 해가져도 않오네
내사랑아 내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두고 영영어딜 갔느냐.~.
그러는 순간 기타 소리가 흘렀다...
.
.
Oh, My Darling Clementine ~~~~~~~~~~~
[클레멘타인의 유래]
1849년 금광을 찾아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의 캘리포니아로 몰려왔던 포티나이너(forty-niner)들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포티나이너들은 영양실조와 인디언의 습격 등으로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다. 또한 자신들이 캐낸 황금이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허탈감에 빠져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던 한 포티나이너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지…〉라는 자조섞인 노래를 부르게 된 이후 널리 퍼져나갔다.
한국에 전해진 것은 1919년 3·1운동 직후였다고 한다. 소설가 박태원에 의해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로 한국인 정서에 맞게 노랫말이 고쳐져서 불리게 되었다. 다장조이며, 4분의 3박자에 보통 빠르기로 부른다.
[歌話]
첫댓글 추억이 듬뿍 뭍어나는 가화님 글과 그림 그리고 클레멘타인 노래가 너무 좋아, 가화님대신 제가 리바이벌했습니다..^^;;
가화님께 말씀 안드리고 그냥 올린건데 ,,,
근래 가화님의 흔적을 통 볼수없으니...-ㅣ-... 전주로 가화님을 찾으러 가볼까나?..ㅋ
http://blog.naver.com/letter670
내사랑아~ 내사랑아~ 나의사랑 000 사오모카페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 ㅋ..^^;;
ㅎㅎㅎㅎㅎ 하숙생님과 뭔가가 통했나 봅니다^^...이글을 보고 온게 아닌데...ㅎㅎㅎ 지금 보앗는데...이랗게 당황스럽고 황당할수가..^^ 감사합니다..하숙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