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영부인들의 업적은.. 말하자면 내조라고 할까요?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클린턴 힐러리 즉 클린턴 대통령의 영부인이나, 찰스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비처럼 활발한 사회활동은 벌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성사업에 관련해서 많은 공헌을 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 자료는 역대 영부인들에 대한 기사입니다. 역대 영부인들에 대한 업적에 대해서 잘 조사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들만큼이나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게 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후보들의 부인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각 후보들의 부인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를 앞세워 선거운동에 앞장을 섰다. 이들 가운데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는 집권기간 동안 영부인으로서의 자질과 활동 등으로 다시 한번 국민적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영부인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이라는 점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최고 정책결정자인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해야 하는 제1 참모이자 정치적 동반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역대 영부인 중에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이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비리사건 등에 얽혀 국민적 비난을 받았던 사례도 없지 않았다.
‘아름다운 내조는 천하를 얻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 부인의 적극적 내조가 선거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역대 영부인들의 모습을 되짚어 봄으로써 바람직한 영부인상을 그려본다.
영부인의 사전적 의미는 ‘지체높은 사람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줄곧 ‘대통령의 아내’로 일컬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초대 영부인였던 프란체스카 여사부터 지난 24일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새주인에게 넘겨준 이희호 여사까지 8명의 역대 영부인이 있었고 앞으로 5년이라는 임기 동안 영부인 자리의 새주인이 된 권양숙 여사가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각각의 임기 동안 또 각각의 다른 모습과 활동으로 국민에게 다가왔고 다가오고 있다. 개인의 성격, 학력에 따른 차이와 각 정권마다 국민들이 영부인에게 요구하는 역할과 임무가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다양한 영부인 유형
우리나라 역대 영부인들의 유형을 살펴보면 비서형의 프란체스카 여사로부터 조언형의 육영수, 정치적 동반자형의 이희호 여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빼어난 속기와 타자 능력, 그리고 국제자격증을 보유한 영어통역 능력 등으로 당시 비서실 체제가 약했던 경무대에서 실질적인 비서실장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건강과 신병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져 음식뿐 아니라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는 모든 정보를 차단하는 `과잉내조’로 이 대통령의 정치적 시야를 좁게 만든 ‘우물안 내조’에 그쳤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이어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는 5.16 쿠데타로 6개월만에 영부인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구속자 석방운동, 기생관광 반대운동, 원폭피해자돕기 운동 등을 전개하며 적극적인 사회운동가로서 퇴임 이후 한층 빛을 발했다.
영부인들과 대선 후보 부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한편 닮고 싶다는 사람으로 뽑히고 있는 육영수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의도와 다른 견해일지라도 이를 정확히 전달하고, 시중의 여론을 대통령에 전하는 투명한 언론창구역할을 해 ‘청와대내 제1야당’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육 여사는 많은 봉사활동과 경제재건사업을 실시했고, 재산욕·권력욕 등 사리사욕에 빠져들지 않으며 권력주변부의 역학관계를 명확하게 인지, 사리판단을 함으로써 역대 영부인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육 여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시절 장녀였던 박근혜 의원이 어머니를 대신하여 22살의 나이로 영부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규하 대통령 부인 홍기 여사는 역대 대통령 부인 중 재임기간이 가장 짧았고 대외활동면에서 가장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영부인으로, 전통적인 한국여인의 부덕을 지녔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에 반해 전두환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화려한 한복 의상으로, 국민의 정서와는 다소 배치된 ‘유별난 영부인’으로 새세대 육영회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으나 개인 비자금 조성 등 부정부패사건에 연루돼 육 여사와 같은 활동적 유형이면서도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노태우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는 막후 영향력을 발휘하는 `베갯속 내조형’으로, 유일하게 어록이 없는 영부인으로 기억될 만큼 취임 초기부터 ‘그림자 내조’를 내세우며 잠행 스타일을 고수하고, 대외적으로는 고전적 현모양처의 모습을 연출했다.
김영삼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는 ‘청와대 안주인’으로서의 한정된 역할을 주로 수행하는 전통적이면서도 소극적인 모습들을 보였고, 평생 야당정치인의 아내로서 남편의 건강과 심기만을 보좌했다.
친·인척 비리 문제 심각
이와 함께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남편에 대한 기나긴 옥바라지와 내조로 일생을 보냈고, 대통령의 아내이기 전에 민주화투쟁의 동지이며, 대통령의 가장 엄격한 비판자,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이희호 여사는 노령의 나이에도 역대 영부인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소외된 계층의 복지와 정책감시 등에 적극적 역할을 했으나 정책적 역할 수행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권양숙 여사는 정치에 소극적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여성의 자아실현과 유아보육 및 교육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하고 있어 이희호 여사와 같은 참여형의 영부인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처럼 역대 영부인들은 자신만의 이미지로 임기동안 대통령의 보좌관 역할을 톡톡히 수행을 해왔지만 임기가 끝나고 청와대를 나올 쯤엔 각가지 친인척 비리와 비자금 등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특히 이순자 여사는 친척 삼촌 이규광의 처제인 장영자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으며 ‘새세대 육영회’, ‘새세대 심장재단’의 자금마련과 자금을 직접 관리해 비리를 조장했다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김옥숙 여사 또한 소극적인 행동으로 대통령을 내조하는 여성으로 알려졌으나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개별적으로 비자금을 챙기고 비서관이나 경호실장도 알지 못하는 자금을 관리하는 등 철저한 동반자적 위치에서 부정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노태우 대통령이 비자금 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된 이후에도 잉여비자금을 김옥숙 여사가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그녀에 대한 비난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손명순 여사 역시 한보사태에 휘말린 아들 김현철씨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고 이희호 여사 또한 경기은행 퇴출 관련 로비사건에 친정조카 이름이 오르내렸고 옷로비 사건, 김홍업·홍걸 두 아들의 비자금 문제 등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렇게 영부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돼 자신의 이미지 뿐 아니라 남편의 대통령직 수행에도 많은 악영향을 끼쳤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역할
영부인의 사회적 위치를 시대적으로 본다면 프란체스카 여사와 공덕귀 여사는 공식적인 나라의 안주인으로서 영부인 등장기에 속한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영부인으로서 다른 활동보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건강에만 집착하는 행동을 보였고, 공덕귀 여사가 윤보선 대통령과 함께 취임식장에 참석했을 때 영부인 자리가 따로 마련되지 않았을 만큼 영부인의 존재는 작게 인식되고 있었다. 특히 당시 구시대적 관습이 팽배했던 사회전반적인 인식과 사회상황은 영부인을 청와대 안에 묶어둔 단조롭고 많은 제약을 가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어 육영수, 홍기 여사가 영부인이었던 시기는 영부인의 역할과 이미지가 형성됐던 시기였다.
당시 1960·70년대 한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로 소외계층의 문제가 심각히 대두되었고 소외계층을 감싸줄 수 있는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때 관심밖의 존재였던 영부인의 역할과 이미지가 이들 소외계층과 연관지어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영부인 활동의 확장기에 영부인의 자리에 있던 사람은 이순자 여사다.
광주항쟁으로 대통령 자리에 앉은 전두환 대통령은 정권에 대한 정통성 여부를 두려워해 삼청교육대 사회전회운동 등 변칙적 정치수단을 사용했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이순자 여사는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수행했다. 그러나 영부인의 지나친 사회활동의 확장은 오히려 국민들의 비난을 받게 됐고 영부인의 활동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으로 변했다.
김옥순·손명순 여사가 영부인의 자리에 있었을 때 영부인 활동은 다시 축소기로 접어들게 된다. 이는 전임 이순자 여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함께 경제의 침체기를 맞아 영부인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축소하고 활동을 자제하면서 조용히 안주인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기업·금융의 구조조정을 통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을 때 영부인의 역할은 구조조정으로 인해 낙오된 계층을 돕기 위한 손길 차원에서 다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희호 여사는 소외된 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여성권익을 위해 노력하는 등 영부인으로서의 역할과 활동을 활발하게 수행했다.
권양숙 여사의 역할과 활동은 아직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권 여사가 영부인으로서 가장 관심을 갖고 공개적으로 역할해 보고 싶다고 밝힌 분야는 보육이다. 젊은 시절 자신의 육아경험을 토대로 아이를 키우는 일과 여성이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진출하는 희망이 충돌하는 것을 개선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대부분 엘리트 출신
역대 영부인들은 그들이 살던 시대의 보통 여성들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에서 상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언어수업을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유학한 학력을 보유하고 있고 공덕귀 여사는 일신여학교 졸업 후 4년간 일본 요코하마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그후 다시 동경여자신학교에 편입했다.
육영수 여사는 배화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순자 여사는 경기여중·고를 나와 이화여대 1년을 다니다 결혼으로 인해 중퇴했다.
김옥숙 여사는 경북여중·고를 나와 경북사대 가정과에 진학했지만 가정형편으로 3학년 때 중퇴했다. 손명순 여사는 마산여중·고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했다.
역대 영부인들 중 가장 학력이 높은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전 문과 입학 후 다시 서울대 사범대학에 입학해 교육학과로 전과했다. 졸업 후 미국문화원, 램버스대학에서 공부를 계속 했으며 스카렛대학의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권양숙 여사는 부산계성여상 3학년 때 가정형편으로 중퇴했다.
또 역대 영부인들의 성격은 대체로 여성스럽고 온화하며 조용한 편이다. 공덕귀, 육영수, 홍기, 김옥숙, 손명순 여사 등이 대표적이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경우는 원래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심한 집착을 보여 강인하고 고집이 센 성격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편 육영수 여사는 성실·인내·노력을 신조로 삼는 여성스러운 성격을 갖고 있었고 이순자 여사는 화려하고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졌다.
권양숙 여사 역시 여성스럽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조용한 청와대 만들기
지난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제16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함에 따라 부인 권양숙 여사도 영부인의 자리에 앉게 됐다.
주변에선 권 여사의 최대 목표가 ‘조용한 청와대’ 만들기라고 말한다. 이는 잡음없는 청와대, 잡음없는 대통령 가족 만들기를 뜻하는 것이다.
권 여사는 청와대 안주인으로서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자식을 비롯한 친·인척 문제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아들·딸 등 직계가족을 포함해 친·인척 관리에 각별하게 관심을 쏟을 것으로 알려졌다. 수시로 친·인척에게 전화를 걸어 바른 처신을 당부하고 특히 최근 결혼한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 부부에게는 유난히 몸조심을 강조한 것은 이에 다름 아니다.
권 여사는 당분간 노대통령과 함께 하는 공식 행사에만 참석하고 외부 활동을 자제할 계획이다. 대신 청와대 기능과 자신의 역할을 익히고 설계하면서 대통령 부인으로서 준비를 할 계획이다.
영부인론의 저자 함성득 교수는 “지금까지 대통령 부인들이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며 “뒤로는 할 일을 다 하면서 겉으로는 다소곳하고 소극적인 척 하는 것은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의 부인들도 당선되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검증받아야 한다”며 “국민의 소리를 바로 듣고 최고 정책결정자인 남편에게 적극적으로 조언하는 제1참모이자 정치적 동반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