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5(토)
겸재 정선이 녹운탄으로 명명했던
광주시 수청리
이곳은 나와 인연이 있다
녹운탄을 찾아서
숙종 대의 정승 여성제가 살았던 곳,수청리 소리 없이 스러져가는 지역 문화재 “○○씨, 이리 와서 이것 좀 봐봐.”한참 모니터를 보시던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2020년 하반기.해설사들은
cafe.daum.net
당연히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여성제 선생의 묘와 신도비,
그리고 생가터
그 모두를 찾을 수 없었던 늦가을의 기억으로
다음 해 나는 같은 곳을 다시 찾았다.
그것도 몇 번이나!
이날은 봄비가 제법 내리던 날이었다
어른이 한 명 더 있으니
이번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아이까지 함께 ㅎㅎㅎ
일단은 나루터 먼저.
이곳은 여 씨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름의 유래가 예쁜 수청리
푸른 강물만큼이나 청명한
우정과 인연이 녹아있고
아름다운 경치 속에 여정승의 집이 있어
묵어가던 나그네도 많았던 곳
그래서 이곳엔 정선이 반해서 그렸던 장소가 있다
지금은 팔당댐으로 인해 수위가 높아져
그림같은 느낌은 사라졌지만
그 옛날 수청리의 모습을 가늠케한다.
저 그림 속 기와 건물들은 아마도 여씨 집성촌을 그린 것이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배를 타고 나오면
강변 바위벼랑에
글이 새겨져 있는 바위가 몇개 있다니
그림처럼 이 근처에는 바위가 많았을 듯하다
차마 개님이 지키고 있는 생가터는 가보지 못하고
뒤돌아 수청리 마을로 들어왔다
여성제 묘역을 찾기 위해서다
분명히 저 위인데 들어가지를 못했다
남자 한 명 데려왔으니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비도 제법 내리고 사유지 같은 느낌에
들어가기를 머뭇거리고 있자
옆 주민이 저 위엔 살모사가 우글거려
아이를 데리고 가기엔 위험하며
발목이 긴 신발을 신고 오는 것이 좋고
살모사에 물릴 경우 약도 없어
양평 쪽으로 나가야 하는데
약 값만 30만 원이라는 말을 했다
우리를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 아닌듯했지만
일단 아이를 고생시킬 수 없어
하는 수없이 발길을 돌렸다
그래도 소득이 아주 없진 않았다
신도비는 찾을 수 있었던 것!
조선시대 석물인데 비교적 상태가 양호해 보이고
심지어 수려하기까지 하다
신도비 높이가 꽤 높은 데다
주변이 사유지라 아래에서는 접근이 어려워
반대쪽 윗길로 들어가 보니 이곳도 사유지...
집주인께서 나를 유심히 보시길래
양해를 구하고 신도비만 잠시 보고 떠났다
....기엔 뭔가 너무 억울했다!
아이 아빠에게 부탁해
수청교와 이어지는 산수로로 올라가다가
카카오 맵 상으로는 저렇게 논이 보여서
논두렁을 통해 여성제 생가를 뒤에서 접근해 보기로 했다ㅎㅎㅎ
맵 상으로는 생가터라고 할만한 게
보일만도 한데 전혀 집히는 것이 없다
게다가 이 주변에는
여이징의
(여성제의 아버지이자 삼전도 비문의 제목을 쓴 사람)
신도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은 작년에 나도 모르게 봤었는데 뭔지 몰랐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번의 두리번끝에
신도비가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은 인지할 수 있었다
실루엣이었지만 나는 반 측면을 본 것 같다
도로로 갈라져 있지만
여이징 신도비의 얼굴이 향하는 곳에
묘소가 있기 때문
절반의 성공(?),
결과적 실패지만 이만 진짜 돌아가는 걸로..
GO GO
아이까지 비를 쫄딱 맞혀서
생쥐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집에 갈 순 없지...
이날 나름 고생을 해서
어떤 맛으로 먹었는지 모르겠으나
아이까지 먹이고 나름 원하는 메뉴에 따듯한 국물까지 먹을 수 있어
우리에게 고마운 식당이었다
묘역을 확인 못했으니
다음에 다시 오자!!
녹운탄을 찾아서 3편 (feat. 조선시대 사대부의 무덤 백서, 주변 맛집)
2021.06.10 다시 방문한 수청리여성제 묘원과 생가터를 무조건 찾아야겠기에포기하지 못하고 다시 왔다 그런데 이날은 예상치 못한 분을 만났다 바로 함양 여씨들의 묘를 관리하시는선생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