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s essay 열 한 번째 이야기
新聞 美手太利
요즘은 인터넷으로 여러 신문을 보고있기 때문에 굳이 구독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게 사실이다.
우리 집엔 조선일보가 배달되어 온다.
예전에 부모님이 살고 계셨던 이 집에서 그전부터 아버지가 보고 계셨던 신문인데 계속 배달되어 오기 때문에 그냥 보는 것이다.
대문에다 '조선일보 사절' 뭐 이런 거 쓰는 것도 매정한 것 같고, '인터넷으로 보기 때문에 부득이 끊겠습니다' 뭐 이런 것도 좀 구역질 나고 그렇다고 전화해서 '안보겠습니다'라고 말하자니 내 손가락이 너무 게으르다.
은행 가기 귀찮아서 몇 달씩 밀리곤 하지만 구독료가 한 달에 만원이니 그리 부담도 없고 해서 그냥 본다.
하긴 신문 펼쳐보는 재미도 쏠쏠하긴 하다.
작고하신 전상익(全商益) 氏(내 아버지)는 신문읽기로 거의 아침나절을 다 보내시곤 했다. 햇살 비치는 창가에서 파이프를 무시고 돋보기가 코 아래로 내려 온 채 신문을 차근히 읽으셨고, 항상 신문을 넘기실 때 '차악~ 하는 경쾌한 소리가 났던 기억도 있다. 그 차악~ 소리는 나도 가끔 흉내를 내 보지만 차악~ 소리보다는 어설프게 신문이 구겨지곤 한다.
내가 신문을 주로 보는 장소는 화장실이다.
꼭 뒤가 마려울 때 신문을 들고 들어가거나, 거꾸로 신문을 읽기 위해 볼일을 보러 가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신문은 미샤의 오줌받이로도 쓰이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이 신문은 보통 새벽 5시 즈음해서 배달되어오는데 우리 집이 2층이고 창가에 책상이 있기 때문에 가끔 밤 작업을 할 때면 배달원의 오토바이 소리를 듣곤 한다. 근 2년 동안 배달원이 수도 없이 많이 바뀐걸 느낄 수 있다. 어떤 달은 자전거를 탄 마스크 쓴 남학생이 올 때가 있고, 또 어떤 달은 돌돌이를 몰고 오는 아줌마도 발견할 수 있다.
혹, 배달원을 보진 못하더라도 신문이 집 앞에 놓인 모습만 보고도 배달원이 바뀌었음을 짐작하기도 한다. 지난겨울 내내는 신문이 가지런히 문 앞에 누워있었는데, 봄 즈음에는 우리 집인지 옆집인지 모르게 신문이 아파트 복도에 널브러져 있기도 했고 심지어 삼각형 모양으로 서 있기도 했다. 작년 같은 경우는 문을 열면 바로 집을 수 있도록 문 여는 방향을 피해서 신문을 둥그렇게 말아 놓기도 했다. 뭐 아무튼 별건 아니지만 이쁘게 놓여 있으면 왠지 기분이 좋기도 하다. 내 생각엔 남자 배달원과 여자 배달원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짐작도 해 본다.
그렇게 지나왔는데 이번 여름엔 없던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동아일보' 가 나타난 것이다.
아침에 문을 열면 가지런히 누워있는 조선일보 위에 항상 동아일보가 예쁘게 엎어져 있는 것이다.
'하하!' 이것은 알다시피 신문사에서 보통 행하는 방법이다. 몇 달을 이런 식으로 무료로 보여주고 나중에 신문에 중독이 되면 사은품 주면서 구독을 요청하는.....'하하!'
허나 우리 아파트는 부녀회가 극성스러워서 이런 일이 있으면 배달원과 보급소장들이 꽤나 시달림을 받기 때문에 1년전 쯤에 없어진 일인데 이번 여름에 멸종된 일이 생긴 것이다.
보는 신문도 안보겠다고 말을 못하는 난데 '동아일보 사절' 뭐 이런 거 써붙일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이 동아일보가 오면서 화장실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뭐 그 내용들이 그 내용인데 오히려 같은 뉴스를 놓고 이 신문과 저 신문이 기사를 쓰는 차이점을 분석하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허나 가장 난처할 때는 어떤 신문의 '오늘의 운세'를 믿어야 할 지이다.
뭐 둘 다 코에 걸면 코걸이 얘기지만 말이다.....
이렇게 2주 정도를 두 신문을 보며 즐기고 있었는데 또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선일보' 가 배달되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하루 정도야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 했는데 1주일이 넘어가는 것이었다. '왜 그러지?' 하며 궁금해 하긴 했지만 사실 내심 좋아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신문 값이 다섯 달치가 밀려있었는데 조선일보가 오지 않는다면 난 그 신문 값을 내지 않아도 되어 좋았고 지금 오는 동아일보는 신문 값을 요구하면 '난 구독신청한 적 없다' 라고 말하면 되니까 미샤 오줌받이 외에는 실상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신문을 끊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헌데 그건 그렇고, 왜 갑자기 동아일보가 나타나더니 한동안 두 신문이 같이 오다가 조선일보는 끊기고 동아일보만 착실하게 배달되어오냐 이 말이다. 난 또 쓸데없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분명 조선과 동아가 경쟁사이니만큼 구독부수 늘리기 경쟁이 붙은거야, 그러다가 동아일보 배달원이 쌈을 잘해서 조선일보 배달원(필시 여학생 인 듯)을 협박을 해서 배달을 못하게 했을 거야' 라고 생각해 봤다.
뭐 그 정도 밖에 상상할 수 없는 내 자신을 한탄하며....
그러던 어느 날이다.
쓰레기봉투 사러 슈퍼에 갔다가 조선일보 보급소장을 만났다.
그는 날 반갑게 맞았다. 왜냐하면 신문 구독료 밀린 것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요즘 바빠요? 집에 아무리 가도 없던데..."
난 선수쳤다 " 아니, 그건 그렇고, 왜 신문 안 와요? 요즘? 정말 이상하네!"
"네? 안간다구요?, 얼마나 됐어요?"
"한 열흘 됐어요, 아니, 그리고 웬 동아일보가 와요."
"동아일보가 온다구요?....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 한동안 동아, 조선 같이 오다가 조선은 안 오고 동아만 와요..."
"그래요.....이 사람이 햇깔리나....아니 그 아파트는 동아조선중앙을 한 사람이 돌리거든요, 아마 햇깔렸나 봐요, 미안합니다. 바로 조치할게요....그리고 신문 값은...."
"담에 줄게요, 잘 좀 배달해 주세요, 그리고 동아는 넣지 말아달라고 해 주세요"
공연히 신문 값 안내고 큰소리만 쳤다.
다음 날이다.
조선일보는 왔는데 동아일보도 여전히 왔다.
그 다음 날이 되었다.
다시 조선일보는 안 오고 동아일보만 오는 것이었다. 이틀 연속으로....
'아니 도대체 배달원이 바보도 아니고 햇깔릴게 따로 있지 한 사람이 배달한다면 구독유치경쟁도 아니고 뭐냐고, 이거!'
날 놀리는 것 같아 조금 화가 났다.
그러길 며칠이 지났다,
새벽까지 컴을 하다가 힐끗 창 밖을 봤는데 배달원은 없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같이 올려있는 돌돌이만 입구에 놓여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필시 배달원이 방금 건물 현관으로 들어간 것이다 판단하고 한마디 해 줄 양으로 얼른 문 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려는 순간 마침 발자국 소리를 들어서 급히 열고 난 말했다.
"아저씨, 왜 신문을 바꿔 너요?"
그리고 그를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저씨가 아니고 여자였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녀가 뇌성마비였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이런 말이 나왔다. '아이고......'
그녀는 계단이 울릴정도로 큰 소리로 뭐라고 뭐라고 말하고 있었는데...난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cool해지지.....?'
...하여간 어찌어찌 해서 문을 닫았고, 책상에 앉은 난 그 뇌성마비 아가씨가 돌아간 얼굴과 비뚤어진 입으로 힘겹게 말하는 모습이 한참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그 다음날인가 부터는 동아일보는 보이지 않았고 다시 원래대로 조선일보만 배달되어왔다. 이제 정상을 찾은 것이다.
헌데 며칠이 지나도록 그 조선일보는 여느 때처럼 예쁘게 누워있지않고 한번 접혀 문틈에 끼워져 놓여지고 있다.
에세이를 쓰는 오늘까지도......
john's essay 열 한 번째 이야기 끝
2001. 팔월 한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