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정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새로 하고 있는것 같다. 미천한 신분을 극복하고 정경부인까지 오른 성공한 여인에서 부터 한 시대를 난세로 이끌게 한 파렴치 한 여인에 이르기 까지.............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윤원형과 나란히 권력에 아부하여 매관매직으로 치부와 사치하고, 백성의 고혈을 빤 문정왕후의 치마폭에 피어난 독버섯으로 당시의 사관은 서릿발 같이 비판하고 있다.
정난정이란 여인은 도대체 어떤 여인이였을까?
중종의 제1계비 문정왕후의 남동생인 윤원형의 소실로 들어가 본부인 연안 김씨를 독살하고 정실의 자리를 차지하고 수렴청정하는 문정왕후에게 빌 붙어 윤원형의 형(시아주버니) 윤원로를 해남으로 귀양가게 하고 대윤인 윤임 일파를 죽게 한 을사사화를 일어나게 한 원인을 제공하였다.
정난정은 태생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경남 합천 초계 정씨 도총관 정윤겸과 소실 이씨 사이에서 태어 났다고 전하고 있지만 또 야사에는 허균의 스승이 되는 한문과 문장에 능한 손곡 이달과 정윤겸의 소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전해 지고 있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 이씨가 겪는 눈물의 세월을 지켜 보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은 첩살이를 하지 않을것을 다짐하면서 성장 하였다고 한다. 정난정이 혼기에 접어들자 그녀를 데려 가겠다는 청혼이 끊임없이 이어 졌으나 모두가 소실 자리 뿐 이였다. 소실의 딸이기 때문에 소실로 출가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법도였다. 올곧고 야멸찬 정난정이 매파가 다녀 갈때 마다 자작시를 지어서 매파를 돌려 보내곤 하였다. 바로 그 시가 당시 장안을 떠들석 하게 하였다.
庶女絶世恨 서녀절세한 ---소실의 딸로 태어난 것이 절세의 한이 되어
汝意斷肝腸 여의단간장 ---간장이 끊어 지는듯 서러워라
名婦是貞敬 명부시정경 ---명가의 며느리는 정경부인이라
放笑嘲婚客 방소조혼객 ---혼담 가져온 사람을 크게 웃어 조롱 하네.
윤원형은 문정왕후의 수태 불공을 드리려 봉은사에 갔다가 보우대사의 소개로 정난정을 알게 되면서 그녀의 깊은 수령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되었다. 중전 윤씨의 후광을 없고 도총관 정윤겸을 찾아가 자신의 소실로 줄 것을 간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윤원형의 후사를 이어주면 자신의 정실로 맞이 해 준다는 서약서를 써 주고 소실로 데려 왔으니 후일 정난정이 아들을 낳자 정실이 되기위해 본처를 독살하는 일이 벌어 졌다.
정난정은 남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그 뜻을 잘 헤아려 주는 영리함이 있어 문정왕후의 신임을 독 차지 할 수 있었으며 남편 윤원형으로 하여금 대윤과 소윤 싸움에서 대윤 윤임을 몰아내고 영의정 까지 오르게 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본부인을 독살 할 정도로 간악함도 함께 가지고 있었으니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조선왕조 실록에는 한 이간의 죄상에 대하여 장문의 기록으로 다음과 같이 그녀의 죄상을 서릿발 같이 기록하여 놓았다.
"중략...... 임금과 신하의 구분은 의복과 器用의 등급에서 분변되는 것인데 임금보다 사치하고 화려 하였으며 복식의 아름다움이 궁중보다 더 하였으며 집에서 출입할 때는 소교를 타고 계집종이 메고 가게 하였으며......중략
그는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그도 종말을 예견하듯 윤원형과 같이 파평 윤씨의 본향인 파주의 교하땅에 찾아 갔으나 이곳도 그들이 숨을 곳이 없어 다시 강음으로 도망하여 지내다 지나가는 파발의 말발굽 소리에 지례 겁을 먹고 의금부 나졸들이 잡으려 온 줄 알고 지니고 있던 비상을 입에 털어 넣고 자살하였으며 윤원형도 그를 안고 슬퍼하다가 열흘 뒤 자살 하였다고 전한다.
첫댓글 정사와 야사를 함께 잘 보았습니다.
씨방새같은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