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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 일주문 원문보기 글쓴이: 淸凉法山
춘향이는 왜 이몽룡 대신 방자를 택했을까영화 ‘방자전’ - ⑮ 안성 칠장사
춘향전은 원래 기생 춘향이가 암행어사로 출세하는 양반 이몽룡과의 러브스토리다. 하지만 영화 춘향전에서 춘향이는 몽룡의 몸종인 방자와 사랑에 빠진다. 난데없이 방자가 주인공이 돼버려 영화명도 ‘방자전’이다. 인물설정부터 심상치 않다. 멋지게 분해야 할 이몽룡은 얼굴에 주근깨 투성인 추남 류승범이고, 볼품없는 몸종 방자는 조각몸매에 핸섬한 마스크를 가진데다 진정성까지 두루 갖춘 김주혁이 맡았다. 춘향이(조여정)는 몽룡과의 결혼으로 신분상승을 꿈꾸기도 하지만 마노인(오달수)이 전수한 ‘여자마음 사로잡는 법’으로 단련된 방자에게 이끌려 멈출 수 없는 사랑에 퐁당 빠지고 만다. 춘향이는 무뚝뚝하지만 남자다운 방자와 꿈같은 사랑을 나눈다. 춘향의 모친 월매(김성령)가 운영하는 기생집 청풍각에서 일손을 도우면서도 둘은 틈만 나면 애정공세를 펼친다.
둘의 데이트 장소로 등장하는 사찰도 있다. 안성 칠장사다. 신라 7세기 중엽 자장율사가 창건한 칠장사에는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참 많다. 일곱도적을 교화시켜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혜소국사의 이야기, 신라의 왕실 서자였던 궁예가 유모의 손가락에 눈이 찔려 한쪽 눈을 잃는 기구한 운명에 처해진 채 칠장사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야기, 의적 임꺽정과 그의 스승인 병해대사 이야기, 어사 박문수가 기도를 올리고 장원급제한 이야기 등이 전해온다. 방자와 사랑에 빠진 춘향의 러브스토리 두 남녀 데이트한 칠장사엔 불두화 만발 지난 2일 칠장사를 찾았다. 때이른 더위에 몸살을 치다 반가운 봄비가 내린 후라 경내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일주문이 보이기 전 밭 가운데 높은 철기둥이 서 있다. 칠장사 철당간이다. 조선 중기에 제작돼 경기도 유형문화재 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철당간을 볼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 청주 용두사지와 공주 갑사 그리고 칠장사 세 곳 뿐이다. 혜소국사가 교화.제도한 일곱현인이 나와 산이름을 칠현산(七賢山), 절 이름을 칠장사(七長寺)라 했다고 전한다. 칠현산 칠장사 현판이 적혀 있는 일주문을 지나 은행나무길을 오른다. 진흙으로 조성된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는 사천왕문을 지난다. 달려들듯 사나운 표정을 가진 다른 사천왕상과는 다르게 자비로운 모습이다. 진흙으로 조성돼 흙의 기운과 느낌이 사천왕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한 듯.
대웅전은 빛바랜 단청색이 오랜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조선 후기에 세워진 대웅전에는 석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왼편에 원통전을 지나 나한전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일곱현인의 화신을 봉한한 나한전이 바로 박문수가 기도를 드리고 장원급제를 한 곳이다. 기도하고 하루를 머무는데 나한전 부처님이 꿈에 나와 과거에 나올 시제 총 여덟줄 중 일곱줄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급기야 장원급제한 박문수가 이 때 써낸 시가 유명한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다. 이를 기념하고자 칠장사에서 매년 ‘칠장사 어사박문수 백일장’이 열리고 있다.
나한전 앞에는 혜소국사비가 놓여 있다. 고려 문종 14년(1060)에 건립된 비의 문장과 조각이 매우 아름답다. 보물 제488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앞 쪽에 있는 명부전에는 칠장사에 관련된 인물들이 벽화로 묘사되어 있다. 임꺽정, 혜소국사와 칠현, 궁예들이 그들이다. 영화 ‘방자전’에서 방자는 서른살까지 가난한 천민이지만 자기의 처지에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았었다. 그런데 춘향이를 만나면서 달라진다. 명석한 양반 이몽룡과 대립하지만 결국 사랑을 성취하게 된다. “근데 당신도 참 대단하오, 어찌 양반의 여자를 데리고 도망칠 생각을 한단 말이요.” 후에 방자가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자 듣고 있던 대필가(공형진)가 참지 못해 한마디했다. 이에 방자가 답한다. “양반의 여자가 아니고 원래 제 여자예요.” 칠장사와 인연을 맺고 이야기를 갖고있는 많은 인물들은 모두들 자기 인생의 참 주인공이다. 천민이지만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임꺽정, 서자로 태어났지만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 문신 신분의 개혁가 어사 박문수까지. <임제록>에 ‘수처작주(隨處作主)’란 말이 나온다. 가는 곳마다 주인공이 되라는 의미다. 방자와 향단이도 몽룡과 춘향이처럼 살 수 있다. 벽을 깨고 마음을 열면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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