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오픈(1997~2008: 12회)
SK텔레콤오픈은 총상금 3억5000만원, 우승 상금 6300만원을 걸고 이동 통신사 중에 최초로 ‘SK텔레콤클래식’이란 대회 명칭으로 개최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시절 만들어졌으나 그 뒤로 꾸준히 개최하고 있으며 2001년부터는 명칭을 ‘SK텔레콤오픈’으로 바꿔 아시안투어와 공동으로 개최되는 국제 규모 대회로 격상되었다. 또한 최경주, 프레드 커플스, 코리 페이빈, 애런 배들리, 레티프 구센 등 세계 정상급 톱프로를 초청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골프 천재 소녀’로 불린 미셸 위를 초청하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 최경주는 최다 3승(7, 9, 12회)을 기록하고 있으며, 박남신(3, 4회)과 위창수(5, 6회)가 2승씩을 거뒀다. 대회장은 일동레이크GC가 6번, 비에이비스타CC가 3번, 스카이72가 2번, 레이크사이드가 한 번 개최했다.
1997년 6월5일부터 일동레이크GC에서 열린 1회 대회 우승자는 박노석이다. 프로 데뷔 4년 만에 3언더파 285타로 노장 최상호를 1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최종일 68타를 쳐 최상호에게 역전승을 거둬 무서운 신인으로 등장했고 그 해 3승을 거뒀다.
1998년 일동레이크에서 열린 2회 대회의 승자는 최광수였다. 2라운드에서 9언더파 63타로 18홀 최저타 기록을 수립한 데 이어 19언더 269타로 역대 최저타 우승 기록도 세웠다. 1999년 3회 대회는 김완태, 박남신, 박부원이 4라운드 합계 10언더파 278타로 동타를 이뤄 연장 두 번째 홀에서 우승자가 가려졌다. 파4 17번 홀에서 열린 연장 첫 홀에서 셋 모두 투온시켜 박남신, 박부원이 버디를 잡아 두 번째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파3 18번 홀에서 열린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박부원은 2온 2퍼트로 보기를 범한 반면 박남신은 파로 마무리하면서 우승을 챙겼다.
2000년 4회 대회는 전년도 우승자 박남신이 버디 4개, 보기 1개로 13언더파 275타를 기록하며 막판까지 추격한 모중경을 1타 차로 제치고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마지막 3홀을 남겼을 때까지만 해도 4명이 11언더파로 엎치락뒤치락 했으나 마지막 홀에서 박남신이 아이언 샷을 홀컵 2m에 붙여 한 타를 줄이면서 극적으로 우승했다.
2001년 5회 대회는 아시안투어와 공동으로 개최하면서 규모가 커졌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최경주, 일본에서 뛰는 김종덕이 초청 선수로 참가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예선 탈락하는 이변을 낳았다. 이 대회는 강욱순, 사이먼 예이츠, 위창수 세 선수가 7언더 281타로 공동 선두가 되면서 연장전에 돌입했다. 18, 17번을 오가면서 무려 7번이나 연장 홀을 펼치는 피말리는 접전 끝에 위창수가 104야드 거리의 웨지샷을 홀컵 50cm 앞에 붙여 버디를 낚으면서 우승했다. 2002년 레이크사이드에서 열린 6회 대회에서 위창수는 16언더 272타로 신예 나상욱과 미국의 킴 펠튼을 2타 차로 따돌리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2003년 백암비스타(현 비에이비스타)CC에서 열린 7회 대회는 미PGA투어에서 2승을 올린 최경주의 무대였다. 둘째날 폭우로 경기가 취소되어 3일간 개최되었으나 국내 장타자 신용진과 201타 공동 선두로 경기를 마친 뒤 연장전 두 번째 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버디를 잡아 우승했다.
2004년 8회 대회는 최경주, 프레드 커플스가 초청 선수로 출전한 가운데 펼쳐졌으며 한국에서 연장전에서 두 번이나 져서 ‘준우승 전문’이란 꼬리표를 달았던 스코틀랜드의 사이먼 예이츠가 마지막날 2언더로 선두를 역전시키고 19언더 179타를 몰아치면서 우승컵을 안았다. 2005년 일동레이크GC로 옮겨 개최된 9회 대회에서는 최경주가 2위 프레드 커플스, 호주의 앤드루 버클을 5타 차로 제치는 활약을 펼치면서 2승을 했다.
2006년 스카이72 하늘 코스에서 열린 10회 대회는 상금이 전년도보다 1억 오른 6억원 대회로 규모를 키웠으며 세계의 이목도 집중했다. 천재 소녀로 이름난 미셸 위가 남자 대회에 도전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날 태국의 프롬 미사왓이 8언더파 64타의 맹타를 휘두르면서 선두로 뛰어올랐다. 3라운드는 폭우로 대회가 취소됐으며 마지막날 7언더 65타의 불꽃타를 휘두르면서 선두권을 위협했던 최경주는 5위에 그치고 만다. 미셸 위는 최종 합계 3언더 213타로 공동 35위를 했고, 태국의 프롬 미사왓이 우승했다.
2007년 비에이비스타에서 열린 11회는 미국의 애런 배들리, 한국의 배상문, 홍순상, 김경태 등 젊은 피의 대결 구도로 짜여졌다. 첫날 64타로 선두에 오른 배상문이 마지막날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17언더파 271타로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했다.
2008년 스카이72GC(오션 코스)에서 열린 12회 대회는 최경주와 메이저 2승을 한 레티프 구센이 초청되었다. 하지만 대회의 모토는 ‘최경주와 포스트 최경주의 대결’이었다. ‘최경주처럼 한국을 대표할 선수가 누구인지를 찾아본다’는 기치를 내건 대회 결과 최경주가 대회를 압도하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인천 지역 수은주가 한 때 24.8도까지 오르는 땡볕이 이어진 열전(熱戰)이었다. 2라운드에서 64타를 치면서 선두로 뛰어오른 최경주는 절정의 샷 감각을 자랑하면서 16언더 272타로 우승했다. 그 뒤로는 강경남(12언더), 레티프 구센(11언더), 강성훈(10언더) 등이 이었다. ‘아직 최경주의 뒤를 이을 국내 선수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대회였다.
2009년 작년과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13회 대회는 최경주의 대회 2연패가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1라운드에서 부진했던 최경주는 2, 3 라운드에서 타수를 줄이며 2연패의 가능성을 부풀렸고, 1라운드부터 선두권을 형성한 김도훈과 박상현 또한 첫 우승의 꿈을 키운채 4라운드가 시작됐다. 4라운드에서 최경주가 타수를 줄이지 못하고 있는 사이 김도훈과 박상현은 나란히 타수를 줄이며 첫 우승의 꿈을 키웠고, 결국 18번홀에서 최종 우승자가 가려지게 되었다. 김도훈은 가까운 거리의 퍼팅을 놓치며 주저앉았고, 박상현은 차분히 파로 마무리하며 생애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첫우승을 차지한 박상현은 최경주가 직접 우승자켓을 입혀주며 그 기쁨을 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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