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전라북도문화관광해설사회 원문보기 글쓴이: 유태길
8월 7, 8 일 1박2일로, 아내와 위도를 다녀왔다. 피서, 관광여행 겸 문화재 조사 차.
출발 전 위도 지도를 자세히 보니 섬의 모양이 고슴도치가 아니라 공룡을 빼닮았다. 위도지도를 거꾸로 돌려서 보니, 네 다리를 움직이며 입을 벌리고 먹이(食島)를 노리는 공룡이 틀림없다! 위도 방파제와 여객터미널이 위아래 턱을 만드는 입이 되고 석금마을이 꼬리를 이룬다.
위도의 현황
인 구(2008 6월현재) : 1,462명 (남 755, 여 707) 가구 : 797
행정 구역 : 8리 11분리 26반
도 서 수 : 30개섬 (유인도6, 무인도 24)
고려시대 이래(1478~1895) : 전라도 부령현 소속
조선시대 말엽(1895~1914) : 전남 지도군 소속
일제시대 이래(1915~1962) : 전남 영광군 소속
행정구역 개편(1963~현재): 전북 부안군 소속
문화재 지정문화재 : 국가지정문화재 위도띠뱃놀이, 전북 유형문화재 위도관아
비지정문화재 : 고려 고분군, 고인돌, 노거수 등.
위도 8경
내원모종(內院暮鐘) - 내원암의 저녁 종소리.
정금취연(井金炊煙) - 정금마을의 밥짓는 연기.
식도어가(食島漁歌) - 식도에서 들려 오는 어부들의 노래소리.
망봉제월(望峰霽月) - 망월봉에 떠오르는 달.
봉산출운(鳳山出雲) - 진리 뒷산에 떠오르는 구름.
선소귀범(船所歸帆) - 벌금 앞바다에 귀항하는 돗단배.
왕등낙조(旺嶝落照) - 왕등도의 낙조.
용연창조(龍淵漲潮) - 진리마을 포구에 가득찬 바닷물.
훼리호운임 대인 : 8,500원(경로7,000), 어린이: 3,500 승용차: 25,000원(운전자1명 포함)
93년 훼리호 참사 현장 임수도, 심청의 인당수 근처로 추정
훼리호참사 위령탑
해양문화의 보고, 전설의 땅, 심청이의 "인당수"와 홍길동의 "율도국"의 위도!
위도 해역은 중국 상선들이 항로였고, 위도는 수장 풍습이 전래되었다. 수장은 사람을 용왕님께 받침으로서 한 해 무사고와 풍어를 기원하는 위도 만의 풍습이었다.
심청전의 본고장이 곡성이니, 인당수는 백령도 근처니 설이 많았으나 연세대 국악연구원에서는 이곳이 심청이 빠져 죽은 인당수로 비정한 바 있다.
배는 292명의 인명이 희생된 훼리호 참사 현장, 인당수로 알려져 있는 물살이 제일 세다는 임수도 해역을 통과한다.
사고 당시, 1993. 10. 10. 10:10 경, 110t 승객정원 200명인 서해훼리호에는 362명의 승객이 탔고 파고 3~4m의 악천후였다. 당연히 구명정이 부족했고 (타이타닉호 처럼), 아마 구명의 착용이나 구명뗏목 진수가 제대로 안 되었을 것이다.
나는 선내의 구명시설을 확인해봤다. 양현에 25인용 팽창식 뗏목이 8개, 선미에 스치로폼 뗏목(1m×1m ×15cm)이 15개가 있고 선실에는 개인용 구명의가 비치되어 있다. 문제는 비상시 선원 4명과 승객들이 아무런 교육도 없이 이것들을 모두 신속히 작동 시켜 안전하게 퇴선 시킬 수 있는냐가 문제인 것 같다. 아내가 또 해군 출신 티를 낸다고 타박하며 걱정 붙들어 매시란다. 오늘날의 사고 예방에 대한 대책은 옛날에 비하면 완벽하다 할 것이다. 고귀한 인명의 희생이 사고 불감증에서 벗어나게 한 값비싼 대가인 셈이다.
사람을 수장하다가 짐승을 용왕님께 받치고 나중에는 돌에 사람 모습을 깍아 수장을 대용했더니, 진노한 용왕님이 그동안 못 잡수신 살아있는 재물들을 한꺼번에 가져가셨다는(훼리호 참사)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원래 풍어와 안전을 빌기 위한 해신에게 순수하게 바치는 제사였던 원당제도, 띠뱃놀이가 문화재가 되면서 신이 아닌 인간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식이 되면서 해신의 불만을 거져 오지는 않았을까?(위도의 흉어)
그러나 홍길동이 꿈꾸었던 이상향인 "율도국", 위도는 언젠가는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 믿어본다.
격포항 출발:9:10. 위도 파장금 항 도착: 10:10
(꽃게탕)
해너미 민박집 식사는 메뉴가 단촐하면서도 깔끔한 것이 특징, 맛이 일품이다. 캡을 쓰고(조리의 청결 위하여) 혼자 조리하며 서빙하는 여사장 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수기인데도 방문객이 한산하여 방이 많아도 다른 업소는 성수기 요금을 부르는 데 이 집은 비수기 요금으로 싸게 받는다. 방도 깨끗하고 냉방기 갖춘 펜션 수준, 도착 한 날 점심은 꽃게탕(2인 2만원), 저녁 식사는 백반(1인 5,000원) 다음날 아침은 대합홍합죽(1인 6,000원)을 먹었다. 다음날 점심은 백제횟집에서 자연산 광어회(4인, 1.5kg☓5만원=75,000원) 아늘 내외가 다음 날 손녀 데리고 왔다.
민박집 앞에서 꽃게 그물을 손질하는 64세의 부인과 이야기 나눔. 요즘 꽃게도 안 잡히고 기름 값도 오른 데다 관광객마저 줄어 섬 주민들 살아가기 너무 힘들다고 한숨. 방사능 폐기장 유치 반대 한 것을 지금은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겠죠. 힘 내세요 말했지만 가슴이 아프다.
파장금은 1920년대부터 칠산어장의 중심지로 80년대까지 파시가 형성된 위도 제일의 항구다. 격포에서 여객선이 출발해서 제일먼저 닿는 곳(14km)이기도 하다. 파장금 이라는 이름은 칠산어장을 끼고 있어 많은 어선들이 왕래하고 폭풍이 몰아치면 어선들이 대피하는 마을이며 물결이 길면 어선이 모이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내가 80년도에 왔을 때만해도 이곳 파장금 부두 술집들이 호황을 누릴 정도로 칠산어장의 황금기를 구가했는데 지금은 퇴색한 건물들이 과거의 추억만을 간직한 체 퇴락하고 있다. 파시(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어시장) 때면 개들도 굴비인지 만원지폐인지를 물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
진리에 있는 위도 관아
위도 관련 문헌, 扶安蝟島鎭地圖(부안위도진지도,1872)를 보니 상단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建置沿革
本島乃是成均館折授之處也 當初未設陣前所産靑魚科 水則成均館檢營地方官三處
各送差人以爲收稅而田稅則 自館獨當收稅矣康熙辛酉 二十年分因扶安金蒙斗上疏
使其身因除萬戶矣翌年 壬戌九月日階號僉使 戰船一隻兵船一隻伺候船
二隻 舟師軍二百五十名 社倉場市無
(본섬은 성균관에서 절수한 곳으로 처음에는 진이 없었다. 청어 종류가 산출된바 성균관 검영지로 인원을 보내어 성균관 자체적으로 田稅 등 세금을 징수하다가 강희 20년 신유년(1681년)에 부안 김몽두의 상소로 그를 만호로 임명하고 다음해 첨사로 승진 시켰다. 전선 1척, 병선 1척, 척후선 2척 승선수군 250명이 있고 창고가 있으며 장시는 없다.)로 대충 해석 해 봤다.
성균관에서 이 섬의 세금을 걷어 자체 경비로 썼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 옛 지도에는 부안 위도 진지와 관아 위치 등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객사(客舍) 교청(校廳) 이청(吏廳) 군기(軍器) 아사(衙舍) 사령청(使令廳) 선소리(船所里) 성황(城隍) 어변정(禦邊亭) 창고(倉庫)) 등이 표기되어 있다.
어변정(禦邊亭) 앞 바다에는 함선 4척이 그려져 있고, 연안 바다의 수심이 표시되어 있다.
『문헌비고』에 의하면 숙종 8년(1682년)에 처음으로 위도진을 두어 첨사라는 종3품직의 무관을 두었으며, 숙종 9년(1683년)에는 가리포에 수군 진영을 설치하여 고군산, 우포, 다경포, 법성포, 금모포, 군산포, 지도 등이 위도에 속했다고 하였다.
이것은 전라우수영의 관할구역이 너무 광대하므로 두 개로 나누어서 그 하나의 진관을 위도의 가리포에 새로이 두어서 옛날의 도만호(都萬戶)처럼 첨사와 만호진(萬戶鎭)을 관할케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찾은 관아(전북도 유형문화재 제101호)는 건물 한 채만 복원되어있다. 앞으로 부속 건물을 복원하여 위도의 문화 관광 산업의 효율성을 높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관아 옆에는 1800대에 세워진 공덕비가 6개 있다. 왜 공덕비는 태평성대 보다는 백성이 고통 받던 시대에 더 많은지?
觀察使 李鎬俊 善政碑 崇禎紀元後 4 壬申(1872). 僉使 金興駿 恤民善政碑 光緖14年 戊子(1888) 十月, 僉使 金?重 永世不忘碑 道光13 癸巳(1823) 六月.
위도 관아가 있는 마을은 진리(鎭里)라고 하는데 수군의 진이 있어 "진말"로 부르다가 진리라 칭했다고. 진리엔 면사무소, 중고등학교와 우체국, 농협등과 같은 행정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진리는 다른 마을에 비해 파도와 바람이 온화하고 평야지대를 가지고 있어 논농사도 짓고 있다.
2004년 부안군과 원대 박물관에서 지표조사 한 비지정문화재 지석묘(벌금리, 치도리)와 2000년에 발견된 비지정문화재 고려 고분군(연세대)은 끝내 찾지 못하고 포기했다. 폭염 속에서 예상 역의 칡넝쿨과 풀숲을 헤치며 찾아 봤으나 정확한 위치도가 없는데다 면사무소 직원도, 주민들도 위도의 고인돌은 처음 듣는다며 모른단다. 치도리 모정의 노인들은 폭염에 무슨 뜸굼 없는 바위를 찾는냐며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고구마 줄기를 벗기던 70대 후반의 부인이 “바위 돌을 뭐 하러 찾소?” 묻기에 “예쁜 바위가 있다기에 볼려구요.” 했더니, “그럼, 바위가 예쁘긴 하지.” 멋진 이 할머니의 말이 나를 감탄시켰다. 시답잖은 선문답(?)을 마치고 고려 고분군, 고인돌 찾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내원암 가는 샛길로 가는데 좌측 밭가에 칡넝쿨에 감긴 바위 하나가 보인다. 고인돌 여부는 모르지만 어쩐지 고대인의 체취가 풍기는 것 같다. 시진만 5장 찍었다.
치도 마을 어귀 도로변에 300년 이상된 팽나무 노거수가 아깝게 죽어있다.
아담한 정취 지닌 숲 속의 내원암!
치도리에서 서쪽으로 1.5km떨어진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위도의 유일한 사찰 내원암은 조선 숙종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하다. 내원암은 심구미리(깊은금)마을에 있다. 절터가 여인의 자궁을 닯아 이곳에서 아들을 기원하면 득남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곳 내원암은 전설 속의 종이 하나 있는데 아주 오래전 이곳 절에서 종을 치면 저멀리 왕등도까지 들렸다한다. 열려진 법당문 뒤쪽에 보이는 범종이 바로 그 종인지는 모르겠다. "내원모종(內院暮鐘)" - 내원암의 저녁 종소리는 위도 팔경의 첫 번째로 꼽는다.
대웅전 앞에는 수령이 170년된 배롱나무가 있다. 내원암은 오랜 역사의 탱화를 소장하고 있다.
대리(大里) 띠뱃놀이 전수관, 전시관
진리에서 치도를 거쳐 서쪽으로 약 6km에 위치한 마을. 대리마을이 바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2-다호(1985년)인 위도 띠뱃놀이가 전해오는 마을.
매년 정월 초사흗날 어민들의 풍어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공동제의(共同祭儀)의 마지막 절차로 띠배를 띄워 보내는 데서 ‘띠뱃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골목길을 어렵게 차를 몰아 띠벳놀이 전수관과 전시관을 찾았으나 모두 문이 잠겨 있다. 내일 면민의 날 행사 준비로 관계자들이 행사장(위도 해수욕장 등)에 갔다고. 주민 한 분이 꼭 전시관 안을 봐야 한다면 전화하여 문 열어 주겠다고 하는데 사양하고 돌아왔다. 새롭게 현대식 건물로 새 전시관을 짓고 있었다. 띠뱃놀이의 성격상 바닷가에 세웟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도로에서 골목길 같은 샛길로 들어가는 구석에 전시관이 위치하고 있다. 어제 학생들 참관한 띠벳돌이 체험행사가 있었단다. 행사 때 사용했던 소품들이 전수관 건물 앞에 비닐에 덮혀 쌓여 있다.
위도 고슴도치 해수욕장
해수욕장은 한산해서 좋다. 모래가 콩가루처럼 미세하고 부드럽다. 오랜만에 수영을 했다. 수온이 적절하고 물은 맑다. 매점에서는 맛 조개 잡는 맛소금, 바지락 잡는 갈퀴 등을 팔거나 빌려준다. 목제 차양시설이 20칸 설치되어 있고 그 안에 매점에서 놓은 평상이 시원하다. 휴게소라 간판 붙은 매점이 세 곳인데 튜브를 빌리거나 먹거리 등을 구입하면 평상을 사용할 수 있다. 주차장, 샤워시설, 화장실, 야영장 모두 무료다. 노래방 영업도 하는 모양이다. 넓은 백사장에는 축구 골대가 서 있다. 낙조를 관상할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목책이 설치되어 있고 야외 공연장에서는 면민의 날(8. 8) 행사가 한참이다. 마을별 민속 경연이 벌어지고 있다. 윷놀이, 제기차기 등. 대리 마을 띠벳놀이보존회에서 띠벳놀이 농악 공연이 있었다. 굿거리장단에 맟춰 갓 쓴 분이 마이크를 잡고 간간히 “헹이야 헤영~ 으로 시작하는 민요를 부른다.
대한민국 최고의 낙조를 볼수 있는 곳!
서해안에서 아름다운 노을을 볼수 있는 곳으로 새천년 밀레니엄 해넘이 축제가 열렸던 격포를 꼽지만 위도 해수욕장에서 보는 낙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가 아닌가 싶다. (디카 성능이 안 좋아 사진을 별로 지만.)
튜브 대여 5,000원 고무 보트 대여 10,000원. 빙과류 등 식품 가격도 육지와 동일하고 바가지가 없다고 한다.(아내의 말)
승용차 주행거리 : 정읍 - 격포항 왕복 53km×2=103km. 위도 내 주행 49km 총 152km
자연과 민속이 함께 숨쉬는 위도에 한 번 가보기시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