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 SILVER DENARIUS NERO JVPITER CVSTOS 54-68 AD
*진품이 아닌 것으로 보여 반품 후 환불 처리함
Roman SILVER DENARIUS NERO JVPITER CVSTOS 54-68 AD
Obv: NERO CAESAR AUGUSTUS - Laureate Bust of Nero right
Rev: IVPPITER GVSTOS - Juppiter
Size: 17.5~18.5mm Weight: 2.9g
2017.10.28 ancientground
Roman Coin struck AD 65 Emperor Nero. 54-68 AD
*위조된 동전으로 보임
Nero. 54~68 AD
Obv: IMP NERO CAESAR AVGVSTVS. Laureate Bust of Nero right
Rev: VESTA. Six columns Temple of Vesta, statue inside
Size: 17.3~17.9mm Weight: 2.62gr
2017.10. 9 svetche
네로(Nero)는 로마 제국의 제5대 황제(37년 ~68년, 재위 54년 - 68년)이자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다. 본래 이
름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Lucius Domitius Ahenobarbus)이며, 황제가 되어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
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로 칭하였다. 클라우디우스의 외종손이자 양자이며 칼
리굴라의 외조카가 된다.
흔히 네로 황제라고 하면 정신 이상자나 폭군을 연상하지만, 그의 재위 기간 동안 로마의 문화는 융성하였다. 네로는 자신을 예술가의
지도자로 생각하여 시, 노래, 건축 등 예술을 지원했는데, 지금도 네로 시대 당시 지어진 화려한 건축물이 남아 있다. 그가 폭군으로
낙인찍힌 것은 로마 대화재 당시 민심 수습책으로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에 책임을 덮어씌우고 기독교도를 대학살해 기독교의 뿌리
깊은 원한을 산 이유가 크다
서기 37년 가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네로의 모친은 아우구스투스의 증손녀이자 게르마니쿠스의 딸인
율리아 아그리피나이다. 그의 출생 당시 로마 제국은 외삼촌인 칼리굴라의 집권기였으며,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는 사망하였다.
서기 49년 모친인 아그리피나가 숙부(네로의 외종조부)이자 당시 로마 제국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하였고, 네로는 클라우디
우스의 양자가 되었다. 클라우디우스는 이미 친아들인 브리타니쿠스를 이미 후계자로 정하였는데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아들 네로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클라우디우스를 온갖 수단을 동원해 설득한 끝에 네로를 후계자로 지명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언제 또 황제의 마
음이 바뀔지 불안하게 되자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하고 근위대를 동원하여 17세 소년 네로를 로마제국 제 5대 황제에 즉위시켰다
재위 시기
네로는 서기 54년 양부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인 세 살 차이의 의붓동생 브리타니쿠스를 제치고 황제로 취임하였다. 집권 전반기 그
는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와 근위군단 장교 부루스의 보좌를 받아 선정을 베풀었다. 또한, "로마의 신이 황제에게 로마 문화를
발전시키라는 명령을 했다."라는 신념에 따라 로마의 문화와 건축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아그라피나의 욕망은 끝이 없어 정치적 간섭과 섭정이 지속되자, 간섭과 등살에 견디다 못한 네로는 세네카와 브
루투스의 협력을 얻어 어머니로부터 독립했다. 좌절한 아그리피나는 '네가 정 이러면 브리타니쿠스를 황제로 만들겠다'고 악담을 퍼
부었다. 이에 분노한 네로는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해 제거하였고, 59년에는 그의 모친 아그리피나도 살해하고 만다, 또한 네로는 친구
오토의 처 폽파이아에 푹 빠져 아내 옥타비아와 이혼하고 폽파이아와 정식으로 결혼하였고 62년에는 전 아내 옥타비아도 살해하였다.
서기 64년 기름 창고 사고가 원인이 되어 로마 대화재가 발생하여 민심이 혼란스러워지자, 당시 로마 제국의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에
책임을 덮어씌워 기독교도를 대학살함으로써 로마 제국 황제 중 최초의 기독교 박해자로 기록되었다.65년에는 정치 스승인 세네카에
게 자살 명령을 내렸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여 2대 제전을 창시하였으나, 정치는 문란하여 68년에는 친위대까지 반란을 일으켰다.
죽음
68년 타라콘네시스 속주 총독 갈바가 일으킨 내전이 일어나고 이에 각지의 총독들이 동조하여, 마침내 원로원으로부터 "국가의 적"이
라는 선고를 받았다. 68년 6월 네로는 로마를 탈출하여 마지막까지 그의 편에 있던 해방 노예 파온의 별장으로 도망쳤고 군사들이 계
속 추격하였다. 측근들은 네로에게 자결을 권하자, "내가 죽고 나면 예술가는 다 사라지는 게 아닌가?"라고 원망했다 한다
바야흐로 별장으로 밀려오는 말발굽 소리는 더욱 가깝게 들려오고 있었다. 네로는 결심한 듯 호메로스의 시구를 읊었다.
"빠르게 달리는 군마의 발굽소리가 내 귀를 때리도다." 그는 자신의 칼로 목을 찔렀다. 이때 네로의 나이 31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