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년 8월 29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를 맡아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이동휘 독립지사가 태어났다. 3년 뒤인 1876년 8월 29일 김구 주석이 출생했다. 다시 그로부터 3년 뒤인 1879년 8월 29일 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인 한용운 선생이 한국사에 왔다.
1925년 8월 29일 명시 <님의 침묵>이 완성되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1912년 8월 29일 출생한 손기정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신기록 우승은 우리 민족의 정수박이에 새 희망의 꿈을 들어붓는 격려가 되었다. 손기정이 직접 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민족은 그의 쾌거에서 배달겨레의 능력과 독립 가능성을 보았고, 그래서 일제는 손기정 귀국 환영회도 열지 못하게 막았다. 손기정은 마라톤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대학 진학을 허락받았다.
1910년에 당한 경술국치 탓이었다. 8월 22일 이완용이 테라우치 마사타케와 체결한 '병합 조약'이 8월 29일 효력을 발휘한 때문이었다. 반만 년 역사와 문화국을 자처해온 '단군(천군)의 자손'은 어이없게도 '섬오랑캐"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8월 29일은 백제가 멸망한 날이기도 했다. 660년 8월 29일 이후 지수신, 흑치상지 등 백제 부흥군은 당군이 한때 철수를 논의했을 만큼 맹렬히 싸웠다. 뒷날 현진건은 소설 <흑치상지>를 신문에 연재했지만 조선총독부는 강제로 중단시켰다. 총독부는 현진건의 소설집 <조선의 얼굴>도 판매 금지시켰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 <마지막 수업>이 우리나라 교과서에 실린 적이 있다. 독일군에 점령당한 탓에 프랑스어로 진행하는 마지막 수업을 맞게된 알자스로렌 지역 학교의 그날 풍경을 담은 소설이었다. <마지막 수업>이 한국 교과서에 수록된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어 말살정책을 겪은 우리에게 동병상련의 남다른 공감대를 준다는 평가 덕분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측면도 있다. 굳이 외국 소설을 실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광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의 소원> 등 독립운동 그 자쳬를 다룬 비소설은 더러 교과서에 실렸지만 소설은 <상록수> 정도의 계몽주의 외에는 없었다. 박완서 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제목을 차용하자면, 한국 교과서 또는 교육철학은 우리 모두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