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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옹 섭생] 이 현대의 시대에 제사는 왜 지내는 거에요?
참고자료 인용처 : 허경연 강연 https://www.youtube.com/watch?v=5OaNZTswtiA
1. 그 가난했던 보리고개의 시대
지금으로부터 불과 7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는 먹고 살 식량이 크게 부족하여 매년 봄철 ‘보리고개’ 라고 하는 극심한 춘궁기(春窮期)가 있었는데, 그 시절의 어머님들에게는 조석(朝夕)으로 끼니를 지어 식구들을 멕여 살려야 하는 ‘살림살이’가 호랑이보다도 무서웠고, 또한 먹고 살 식량도 없는 ‘가난한 살림살이’에 조상님네 제사상 차리기가 정말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돌아가신 조상님 제삿날 돌아오는 게 마치 호랑이가 집에 찾아오는 것처럼 무섭던 시절이었던 것이래요.
그래서 그 시절의 가난한 집 부모들은 피임(避姙)이라는 것을 몰라 자녀들도 많이 낳아 단 한 명의 식구(食口) 입이라도 좀 덜어 보고자, 이제 겨우 12살난 어린 자녀에게라도 “제발 도회지에 나가서 배곯지 말고 잘 살아 보라.” 며 도회지에 있는 순 남의 집에 ‘수양아들’ ‘수양딸’이라는 이름으로 집을 내 보내서 친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했던 슬픈 시절이었대요.
말이 좋아서 ‘수양아들(收養子)’ ‘수양딸(收養女)’이지 사실 말이지만, 지금 시대의 가치관으로 보면, 사람을 노예처럼 그냥 자기 집안에 가두어 놓고서 아무런 인건비도 없이 순 공짜로 밤낮없이 집안일을 부려먹으면서 겨우 밥만 멕여주고 잠재워 주는게 고작인 그런 ‘선머슴(서툰 어린머슴)살이’ ‘선식모(서툰 어린식모)살이’ 인 셈이었던 것인데, 그런 자리마저도 매우 귀하던 시절이었던지라, 시골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유환무의(有患無醫)’요 환자는 있어도 의사가 없던 시대였고, 돈없는 사람에게는 ‘유병무약(有病無藥)’이라 몸에 병이 들어와도 약이 없던 시절이었던 거래요.
그리하여 그 시절엔 혹여 심한 유행성 홍콩독감(毒感)이라든가 콜레라, 장티프스, 폐결핵, 이질설사, 식중독, 몸살 곽란....또는 닭독감, 소독감, 돼지독감....등의 역병(疫病)이라도 크게 돌라치면 마을 사람들이 한꺼번에 막 죽어 나가고, 온 마을의 닭, 소, 돼지.... 같은 가축들이 한꺼번에 막 다 죽어 나가.... 그러는데도 죽은 가축들에 대하여 “가족처럼 귀히 여기면서 기르던 가축(음식재료)들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면서 역병으로 죽은 가축조차도 푹- 삶아서 온 마을 사람들끼리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그 혹독한 역병에 살아남은 가축들에 대하여 아주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겨 아주 소중히 생각해주던 그런 시절이었기에, 그 시절에는 무속인(巫俗人) 점쟁이가 마치 의사를 대신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행세했던 시절이라서, 어린 자녀가 역병에라도 걸려들라치면 부모들은 불안스러운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며 무속인 점쟁이를 찾아가서 점(占)을 쳐 보곤...하였다는데, 그 시절엔 점사(占辭)의 대부분이 “가난한 집에 태어난 아이의 팔자에 명(命)이 짧으니까 아이를 얼른 남의 집에 ‘수양아들 수양딸’로 팔아서 집을 내 보내야만 명(命)을 길게 이어줄 수가 있다.” 는 식이 대부분이었다고 해요.
이처럼 그 시절의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는 ’의료시스템‘ 이란 게 전혀 없던 때였고, 또한 먹을 식량이 크게 부족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양부족이 극심하면서, 상하수도 시설조차도 전혀 없어서 주거환경이 참으로 열악하였던 것이므로, 그 시절의 점사(占辭)로서는 나름 상당히 설득력 있는 처방이었던 셈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시골 마을의 가난한 집에서 3대 종손(宗孫)으로 태어난 10살 된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역병(疫病)에 엄마 아빠 두 부모를 잃고, 6살난 어린 동생과 함께 천애고아(天涯孤兒)가 되어서 오갈데 없이 이웃 마을을 돌며 아침마다 밥 구걸을 하여 어린 동생을 건사하며 지내는데, 주먹밥을 내 주는 집집 방문 앞에 내 놓인 요강단지(소변그릇)를 누가 시키지도 않건만 자발적으로 꼭꼭 요강 속까지 깨끗이 씻어 닦아 놓곤 하였는데, 이 모습을 지켜본 집주인 아주머니가 어느날, 자기가 두르고 있던 행주치마 앞치마에 꽁꽁 언 손을 닦고 주먹밥을 내 주면서 소년에게 물었대요.
“참 기특하기도 하구나! 그런데 얘야, 너는 어째서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남의 집 요강을 날마다 그렇게 속에까지 깨끗이 씻어 놓는 것이냐? 남이 밤새도록 오줌을 싸 놓은 것인데 더럽게 느껴지지 않느냐?”
그러자 소년이 대답했대요.
“아녀유 아녀유. 더럽기는유. 매우 고맙고 또 고마운걸유-. 저에게 이렇게 밥을 주시는 집주인 아주머니 아저씨가 마치 저의 어머니 아버지인 것처럼 생각되어서 고맙고 또 고마워서, 참말로 보고 싶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 요강을 씻어드리는 것처럼 생각되어 기쁜 걸유 머-”
2. 조실부모(早失父母)한 천애고아의 선머슴 살이
그리하여 그 10살 소년은, 눈물을 훔치는 그 집 아주머니의 청에 의하여 그 아주머니네 부부의 ‘수양아들(收養子)’로 들어가 새경(머슴의 년급료) 없는 ‘선머슴(서툰 어린머슴)’ 살이를 하면서 어린 동생을 건사하며 살았는데, 오갈데 없는 천애고아였던 자신이 그 수양부모(收養父母)님 덕택으로 그나마 동생과 함께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가 있었는데, 비록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낮에는 수양부모 집에서 농사일을 내집 일처럼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동네 서당(書堂)에 다니면서 천자문(千字文)부터 시작하여 소학대학(小學大學) 논어맹자(論語孟子) 중용(中庸) 등의 한문(漢文) 공부를 할 수가 있었다고 해요.
그리하여 그의 나이 17살이 되자 매일 새벽 5시에 자전거로 읍내에 있는 야학(夜學)학원 새벽반에 다니면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여 중학교졸업 자격의 검정고시 시험에 합격한 후, 계속 야학(夜學)학원 새벽반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여 그의 나이 19살이 되자 수양부모(收養父母)로부터 독립하고자, 육군부사관 시험에 합격 자원입대를 하여 4년여 동안 육군부사관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국가에서 주는 육군 하사 중사의 월급을 꼬박꼬박 착실하게 모아, 그 일부 금액을 수양부모(收養父母)님의 효도성금(孝道誠金)과 동생의 학비에 보태었대요.
그의 나이 24살이 되어 육군 중사(中士)로 만기제대를 한 후 그 마을로 돌아와 적으나마 10여 마지기의 논 밭과 집을 작만(作滿)하고, 비슷한 처지로서 남의 집 ‘수양딸’로 식모살이를 하고 있는 여자를 중매로 만나 결혼을 하여 스스로 가정을 꾸리고 나서, 부부가 서로 극진히 생각하여 사랑하면서, 부부가 열심히 농사일을 도모하여 논밭을 사서 넓히고, 또 사 넓혀서 그의 나이 45살 장년(壯年)때에는 그 시골 마을에서 제법 큰 중농(中農)의 가세(家勢)를 이룩해 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생활이 이렇게 어느정도 안정이 되자. 수년 동안 마을 이장(里長) 일도 맡아 보면서, 자신이 ‘선머슴(서툰 어린머슴)’시절 그토록 눈물겹게 참으로 하고 싶었던 못 다한 공부삼아, 고전(古典) 번역본(飜譯本)의 책을 사서 주경야독(晝耕夜讀)의 독학(獨學)으로 목민심서(牧民心書), 노자 도덕경(道德經), 탈무드, 유태인 신약성경, 반야심경(般若心經), 금강경(金剛經), 사서삼경(四書三經), 여사서(女四書), 주자가례(朱子家禮)... 등 고전(古典)의 번역책들을 소설책 읽듯이 읽어보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마을 유지(有志)가 되어 근동(近洞) 유림(儒林)의 행사에도 초청을 받아 참석하게 되고, 자녀들을 모두 도시로 유학을 보내어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공부하게 했다고 해요.
이처럼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早失父母)하여 오갈 데 없는 천애고아(天涯孤兒)로서 ‘선머슴(서툰 어린머슴)’ 출신이었던 소년이, 하늘 신(神)과 돌아가신 자기 조상님 부모님의 신(神)을 충실하게 믿는 믿을신(信)자 신념(信念)의 ‘신(信)’을 가지면서, 남의 집 부모도 마치 내 집 부모인 것처럼 생각하여 ‘효(孝)’하는 마음을 가지니 가는 곳마다 만나는 노인마다 모두 나의 부모 같아서 외롭지 아니하고, 또한 자기 자신의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는 ‘애(愛)의 마음을 가지니 하는 일마다 모두 나 자신의 집 일이라 생각되어 성실히 일하니 일이 끊임없이 계속 들어오고, 또한 부부가 사랑하여 자녀를 낳아 두 부부가 서로 자녀를 소중히 가르쳐 교육하는 ’교(敎)‘를 실천하니 남의 자식도 모두 내 자식과 같이 소중한지라, 모든 사람들이 다 경애(敬愛)스럽더라는 거예요.
그리하여 이처럼 진실한 신,효,애,교(信孝愛敎)의 마음으로 남이 싸 놓은 오줌의 요강단지(소변그릇)마저도 마치 내 부모님께서 사용해 놓으신 요강단지인 것처럼 생각하여 가장 낮은 자세로 정성을 다해 겸손하고 충실하게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그처럼 중농(中農)이 된 성공적 가세(家勢)를 이룩해 놓을 수가 있게 되어진 것이며, 또한 부부가 서로 극진히 생각하여 사랑하면서 열심히 자녀교육을 도모함으로써, 자녀들도 그처럼 성공적으로 대학교 대학원까지 공부를 하게끔 교육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4대 종손이 되는 아들이 대학원 석사(碩士) 공부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갔을 무렵, 같이 석사 박사 공부를 하고 있다는 대학원생 여자를 데리고 와서, “서로가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고 있어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려 왔다.” 면서 소개를 받게 되었기에, 초등학교만 나온 아들의 어머니가 아주 감읍하는 마음으로 크게 환영하여 맞이하면서 말했대요.
“오구오구 어서와유. 우리집 식구들은 아주아주 많이 환영혀유. 시골 농사 집이라서 이렇게 누추혀서 많이 불편허실 텐디 워쩐댜-. 그려두 마음 편히 갖으시구서 편하게 앉으셔유. 그리구 우리 아들이 4대 종손이 돼놔서 제사가 쬐끔 많은 편인디 괜찮으시것어유? 얘들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제사를 아주 끔찍하게 소중히 여기셔서 읎앨 수도 읎을텐디 워쪈댜-.”
아이구 어머님, 괜찮아요. 매우 편하고 좋아요. 그리고 어머님 아버님 인사받으셔요. (공손 큰절)
“오구오구 하이고 참 이쁘기도 허셔라! 귀허신 석사 박사님께서 절도 참 이쁘게 허시넹. 참 고마워유. 이 시골 사람에게 큰절까지 이렇게 이쁘게 해 주시니 매우 엄청 고마워유. 요즘 대학교에서는 절도 참 이쁘게 가르치시는 갑넹.”
3. 과학이 발달한 이 현대의 시대에 제사는 왜 지내는 거에요?
“호호호 어머님.... 감사드려요. 그렇게 칭찬해 주시니 참 감사드려요. 그런데 아버님, 오면서 보니까 이 마을 입구에 아주 큰 교회가 자리잡고 있던데, 사실은 저희집 부모님도 아주 독실한 기독교 크리스챤 이셔요. 기독교에서는 ”미신을 믿지 말라. 그리고 다른 신(神)을 섬기지 말라“고 하는 기독교의 교리(敎理)상 조상님의 제사(祭祀)를 아예 안 지내기도 하고, 또 제가 잘 몰라서 여쭙는데요, 아버님께서는 조상님의 제사를 왜 지내시는 거예요? 정말로 제가 몰라서 여쭙는데 이처럼 과학이 발달한 이 현대의 시대에 제사는 왜 지내는 거에요?”
오잉?? ....? 내 아들 4대 종손의 며느리 자리가 되고, 이처럼 과분하도록 훌륭한 대학원 석사 박사 자리가 되는 이 젊은 여자로부터 내심 만약 시집을 오게되면, ‘조상님 부모님의 제사를 아예 안 지내겠다’는 뜻을 표현하는 요구의, 제사(祭祀)에 대하여 이렇게 당돌하고 단도직입적인 요구의 질문을 받게 되자, 그야말로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早失父母)하여 오갈데 없는 천애고아로서 10살배기 ‘선머슴(서툰 어린머슴)’ 출신인 자기가, 그 어린 마음에 그처럼 가슴에 사무치도록 애달프게 그리웠던 부모님을 대신하여주신, 순 남남(他人)인 그 ‘수양(收養)부모님’의 은혜 덕택으로 그나마 초등학교를 동생과 함께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던 자신은, 그 고마웠던 수양(收養)부모님과, 어린 마음에 그토록 애달프도록 그리웠던 친 부모님에게, 자기로서 현재에 표현할 수 있는, 정말 온갖 정성을 다하여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오직 단 한 가지에 유일한 방법인 ‘제사(祭祀)’에 대하여, 4대종손 며느리자리 이면서, 자기 자신의 아들과 결혼을 하게 될 석사 박사 자리의 젊은 여자가 이렇게 당돌하게 단도직입적으로 자기에게 질문을 해 오자, 조실부모(早失父母)하여 오갈데 없는 천애고아(天涯孤兒) ‘선머슴(서툰 어린머슴)’ 출신의 시아버지 자리인 영감은 내심 무척 당황스럽고 난감한 마음이었대요.
‘정말 오갈 데 없던 10살 천애고아였던 내가 그 당시 어린 마음에, 이미 돌아가셔서 안 계신 부모님조차도 사무치도록 보고 싶고 참으로 그리웠던 마음을 내 어찌 잊을수가 있고, 네 어찌 그 마음을 알 수가 있으랴 마는....’
그래서 그 영감은 지긋이 눈을 감고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렇게 말했대요.
“훌륭하신 석사 박사님, 우리 가족에게 과분하도록 훌륭하신 석사 박사님께서 우리 가족이 되시겠다- 허시니 진심으로 크게 환영합니다. 이렇게 과분하도록 훌륭허신 석사 박사님의 질문에 맞는 답을 하려니 내가 부족하여 간단명료하게 답하지 못하여 미안스러우나, 답이 조금 길어지더라도 양해를 하시면서 끝까지 다 들어 주시면 고맙겠어요.”
그러니까 그 뭣이냐-, 현대 대학교 교육의 석사 박사 공부까지 하시는 젊은 분께서 장차 우리 아들과 결혼을 하여 시집 조상님 부모님의 ‘제사(祭祀)를 지내느냐 안 지내느냐-’ 하는 문제는 설사 제사를 안 지내겠다 하더라고 상관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 내가 해야 할 ‘나의 문제’가 아니라, 장차 우리 아들과 결혼을 한 후에 우리 아들 부부 ‘두 사람에 장차의 문제’인 것이기 때문에, 장차 그 때에 가서 제사를 지내든지 말든지- 우리 아들 부부 두 사람이, 각자 자기 스스로의 성품에 따라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철학(哲學)의 크기대로 잘 상의를 하셔서 좋으실 대로 결정하여 행하시면 될 일이에요.
다만 ‘제사(祭祀)’는 우리 민족(民族)의 전통(傳統)인 것이며 철학일 뿐인 것이므로 신(神)을 중심으로 한 ‘종교(宗敎)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에요.
그것은 왜냐-허면, 우리 민족의 ‘전통’이라든가 ‘철학(哲學)’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이기 때문에, ‘사람(人)’을 중심으로 한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민족의 입장에서, 그럴수도 있고 안 그럴수도 있고.... 하는 유연적(柔軟的)인 것이지만, ‘신(神)’을 중심으로 한 ‘종교(宗敎)의 문제’ 에서는 그 종교의 신(神)만을 중심으로 한 ‘절대 배척주의(排斥主義)’인 것이라서 “오직 내 종교가 아니면 전쟁(戰爭)조차도 불사하며, 신(神)을 중심으로 한 ‘종교전쟁’의 특징은 상대방 신(神)의 씨(氏=種子)를 싹- 말려 없애 버리겠다”는 식의 ‘죽기살기’에 ‘생사전쟁(生死戰爭)’의 싸움인 것이기 때문에 이기는자(勝者)도 죽고, 지는자(敗者)도 죽는 ‘죽기살기(生死)’의 싸움인 것이므로, 한 평생 자기 자신의 인생에 삶을 함께 같이 살아야 할 ‘부부’의 삶에서는 그 어떠한 이유로도 ‘죽기살기’의 종교싸움(宗敎戰爭)이 되어서는 절대로 아니되는 일인 것이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사람이 살다 보면 사소한 작은 일에도 서로 생각의 차이로 인하여 부부간에 또는 타인(他人)간에 “이랬소? 저랬소? 어쨋소?....” 하는 식의 ‘소/’싸움 같은 ‘말(言)’싸움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인데, 이때 ‘소/’싸움 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일하는 소(牛)끼리의 ‘소(牛)싸움’과 같은 것이라서 어느 한 쪽이 먼저 “내가 졌소. 당신이 이겼소.” 하고 슬그머니 머리를 돌려 꽁지를 보이면서 뒤로 물러나면, 이기는 자는 지는 자를 끝까지 쫓아가서 보복하지 아니하고 그냥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래 당신도 이겼소” 하고 그냥 슬그머니 싸움을 끝내고 말므로써 지는자(敗者)도 살고 이기는자(勝者)도 사는 것이 바로 일하는 소(牛)끼리의 ‘소(牛)싸움’ 인 것이래요.
이처럼 지는자(敗者)도 살고 이기는자(勝者)도 사는 것이 바로 일하는 ‘사람’끼리의 ‘소(牛)싸움’ 같은 ‘말(言)싸움’인 것이라는 거예요.
그에 비하여 신(神)을 중심으로 한 ‘종교전쟁(宗敎戰爭)’ 에서는, 예를 들어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전쟁, 이스라엘의 하마스 전쟁.... 등과 같이 상대방 종교신(神)의 씨를 싹- 말려 없애버리고자 하는 ‘죽기살기’ 식에 ‘생사(生死)의 싸움’인 것이므로 이기는자(勝者)는 지는자(敗者)를 끝까지 쫓아가서 보복하여 죽이려 드는 것이기 때문에 신(神)을 중심으로 한 종교전쟁(宗敎戰爭)에서는 “이랫쏘? 저랬쏘? 어쨌쏘?” 하는 식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무기(武器)를 막 쏘아대는 “말(馬=武器)전쟁”에 ‘생사(生死)싸움’인 무기전쟁(武器戰爭)이 되어서 결국 지는자(敗者)도 죽고, 이기는자(勝者)도 죽게 것이 바로 ‘종교전쟁’ 이라는 거예요.
그러헌즉, 우리네 삶의 부부간에도 있을 수가 있는, “이랬소? 저랬소? 어쨋소?....” 하는 식의 사소하고 작은 ‘소/싸움’ 같은 ‘말(言)싸움’이 일하는 ‘소(牛)싸움’으로서 끝내지를 않고서, “이랫쏘? 저랬쏘? 어쨌쏘?” 하는 식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무기(武器)를 막 쏘아대는 “말(馬=武器)싸움”에 생사(生死)를 건 무기전쟁(武器戰爭)이 되어서, 결국 지는자(敗者)도 죽고, 이기는자(勝者)도 죽게 될 수도 있는 것이므로, 자기 자신의 인생에 삶을 함께해야 하는 부부간에 있어서는 절대로 종교(宗敎)를 핑계하지 말고, 절대로 종교를 빙자(憑藉)해서 가족을 힘들게 하지 아니함으로써, ‘소(牛)싸움’ 같아야 할 ‘말(言)싸움’이 종교전쟁(宗敎戰爭) 같은 ‘말(馬=武器)싸움’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그저 ‘소(牛)싸움’의 수준에서 반드시 서로가 서로에게 슬그머니 뒤로 물러서야 된다는 거예요.
따라서 장차 우리 아들 부부 두 사람이, 각자 스스로의 성품에 따라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철학(哲學)의 크기대로 상의를 잘 허셔서 “조상님 부모님의 제사(祭祀)를 지내느냐 안 지내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할 때에 꼭 참고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 무엇인고- 허니, 우리네 ‘사람(四覽)’은 이 지구상에 있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만유영장(萬有靈長)’이라, 예를들어 멀리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도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눈으로써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볼 수가 있고, 또 현재에 없음(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이미 훌쩍 지나간 과거(過去)의 일이라든가, 현재에 없는 앞날에 다가올 미래(未來)의 일도 자기 스스로의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눈으로써 마치 현재에 있는 듯이 볼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므로 돌아가신 자기 자신의 조상님 부모님은 곧 이미 훌쩍 지나가 버려서 현재에 없는(존재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인생에 과거(人生過去)인 것이며, 제사(祭祀)는 곧 현재에 없는(존재하지 않는) 지나간 자기 자신의 인생과거(人生過去)를 자기 자신의 인생현재(人生現在)로 개치(改置)해 놓는 행사인 것으로써, 이는 곧 현재에 없는 자기 자신의 인생미래(人生未來)에 대한 공실(功失=돈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의 이치(理致)가 제사(祭祀)의 이치와 꼭 같은 것이므로, 자기 자신의 인생에 공실(功失)에 대한 이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각각 따로따로인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가 하나로 연결되어져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이치를 잊어버리 않도록 설날 제사, 추석날 제사, 기제사, 시제 제사, 이렇게 매년 춘하추동 1년에 4차례씩의 제사(祭祀)로써 연습하여, 현재에 없음(존재하지 않음)으로써 현재 보이지 않는 자기 자신의 인생에 미래의 공실(功失=돈이 아니라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을 자기 스스로가 ‘사람(四覽)’으로서 ‘람(覽)’하여 볼 수가 있도록 항상 자기 자신의 몸에 항상 배어있게 해 놓도록 연습하는 것이 곧 제사(祭祀)인 것이라고 합니다.
4. 조상무존 여근불견(祖上無存 如根不見)이라.
그리하여 우리네 옛 조상님들께서 하신 말씀에 이르기를, “조상무존 여근불견(祖上無存 如根不見)”이라, 조상이란 현재에 없는(존재하지 않는)것이라서 마치 큰 나무 뿌리와 같아 현재에 보이지 않는 것이므로, “유자성 종심기(唯自性從心起)”요,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성품에 따라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속으로 일으키는 것일 뿐”이며, “인생공실 여동불견(人生功失 如同不見)”인즉, 우리네 인생에 미래의 성공이나 실패(功失)도 꼭 이와 같아 현재에 없어서 보이지 않는 것”인즉, ‘제불망 연습관(祭不忘 練習慣)’이라, “제사로써 이것을 잊지 않도록 연습하여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속에 항상 배어있게 해 놓을 뿐인 것이다.” 라고 하였다- 합니다.
이와 같이 돌아가신 자기 조상님 부모님은 이미 훌쩍 지나가 버려서 현재에 없는(존재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인생에 과거(人生過去)일 뿐인 것이므로 오직 자기 스스로의 성품에 따라 마음속에 자기 스스로가 일으켜 제사(祭祀)로써 자기 자신의 인생에 현재(人生現在)로 개치(改置)해 놓는 것이므로, 자기 조상님 부모님의 제사(祭祀)행사는 곧 자기 자신의 인생과거와 인생현재와 인생미래를 하나로 연결시켜서,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음(없음)으로 인하여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아서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자기 자신에 인생미래(人生未來)의 공실(功失=돈이 아니라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의 이치가 현재에 없는(존재하지 않는) 조상님에 대한 제사의 이치와 꼭 같은 것이므로, 이러한 대자연의 이치를 잊지 않도록 자기 자신에 조상님 부모님의 제사로써, 현재에 없음(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자기 자신의 인생에 미래(人生未來)의 공실(功失=돈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을 자기 자신의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힘으로써 현재에 저절로 항상 미리 ‘람(覽)’하여 잘 보여질 수가 있도록, 연습하여 자기 자신의 몸에 항상 배어있게 해 놓아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만유영장(萬有靈長)인 ‘사람(四覽)’이 만약 자기 자신의 조상님 부모님에 대한 ‘제사(祭祀)’를 자기 스스로가 없애버림은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인생과거-인생현재-인생미래가 각각 따로따로가 아니라 하나붙이(不二)로 연결되어져 있음을 강제로 끊어내는 것과 같은 것으로써, 이는 곧 현재에 없는(존재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미래의 공실(功失=돈이 아니라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을 ‘사람(四覽)’으로서 자기 스스로의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힘으로 미리미리 볼람(覽)자 ‘람(覽)’하여 보여질 수가 있는 만유영장(萬有靈長)에 ‘사람(四覽)’으로서의 능력과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에요.
이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것은 왜 그런고- 허니, 예를들어 항상 강하게 끌어당기는 자력(磁力)의 힘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저절로 항상 따뜻한 남쪽만을 지향(指向)하여 가리키고 있는 지남철(指南鐵=자석)의 쇠덩이가 있다고 칠 때에, 겉 모양은 일반 다른 쇠덩이와 다름이 없게 생겨져 있는 것이지만, 일반 쇠덩이는 철(鐵)분자 속 원자(原子)의 회전방향이 제각각 아무 방향으로나 제멋대로 불규칙하게 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끌어당기는 자력(磁力)의 힘을 전혀 발휘할 수가 없게 되어져 있는 것이래요.
그러나 그 일반 쇠덩이에 강한 전력(電力)의 힘으로써 힘 센 전자력(電磁力)을 넣어 통과시켜 주게 되면 철(鐵)분자 속 원자(原子)들의 회전방향이, 센 전자력(電磁力)이 들어오는 순간 그 회전방향을 모두 일정하게 다 같은 한 방향으로만 규칙성있게 돌도록 바뀌어 짐으로써 강한 자력(磁力)의 힘을 발휘하게 되어서 지남철(指南鐵)이 되어진다는 것인데, 우리네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잠재의식(潛在意識)’과, 정신속에 자리잡고 있는 ‘무의식(無意識)’도 꼭 이와 같은 것으로써, 자기 자신의 돌아가신 조상님 부모님에 대한 ‘제사(祭祀)’는 곧 자기 자신의 마음속 잠재의식과 정신속 무의식에다가 강한 전력(電力)의 힘으로써 센 전자력(電磁力)을 넣어주는 것과 똑 같은 작용을 일으키게 되어지는 것이다- 이 말씀이어요.
5. 마음속 잠재의식과 정신속 무의식의 영향과 지배
이와 같이 우리 ‘사람(四覽)’의 마음속, 정신(精神)속에 자리잡고 있는 말나야식(末那耶識)의 잠재의식(潛在意識)과 아뢰야식(阿賴耶識)의 무의식(無意識)은, 우리 몸 세포(細胞) 분자(分子)속의 원자(原子)에서 한 단계 더 내려가 원자(原子)속에서 돌고 있는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에 의해서 우리 인간의 마음속 말나야식 잠재의식(潛在意識)과, 정신속 아뢰야식 무의식(無意識)이 99% 영향을 받아 지배되어 지는 것이며, 바로 이 99% 잠재의식과 무의식에 영향을 받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인생과거(人生過去)인 자기 자신의 돌아가신 조상님 부모님들의 못다한 소원이며 못다한 행실(行實)이었던 것으로써, 자기 자신의 ‘숙명(宿命)’ 또는 ‘팔자(八字)’라고 일컬어 지고 있는 것들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네 인생사에서 발생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은, 그 문제들이 현재에 발현(發顯)되어 나타나기 휠씬 이전에 이루어진, 대부문의 사소한 생각들과 사소한 행동들이 단초(端初)가 되어진 것에 대한 결과일 뿐인 것으로써 그러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 휘씬 이전에 단초(端初)로써 이루어진 그 사소한 생각이나 사소한 행동들은 사실상 자기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생각하여 지게 된 것이었고,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행동하게 되어진 것일 뿐으로써, 그 사소한 생각과 사소한 행동은 사실상 자기 자신의 마음속 말나야식(末那耶識) 잠재의식과, 정신속 아뢰야식(阿賴耶識) 무의식에 끌림(引力)의 힘에 지배를 받고 있는, 지남철(指南鐵=자석)과도 같은 작용의 결과였을 뿐이라는 거예요.
그러헌즉, 자기 자신의 ‘숙명’도 ‘팔자’도 따지고 보면 이처럼 자기 자신의 몸 밖에서 발생되는 ‘외적(外的)현상’의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의 몸 세포 원자(原子)속에서 돌고 있는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에 의하여 지배받고 있는, 자기 자신의 ‘내적(內的)현상’의 결과일 뿐인 것이므로, 우리네 일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숙명(宿命)’ 이라는 것도, ‘팔자(八字)’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처럼 자기 자신이 항상 지금 현재(現在)에 스스로 마음먹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음식먹고.... 하는 것들로 인하여, 자기 자신의 몸 속에서 내적(內的)으로 발생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몸 세포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 회전방향의 결과일 뿐이라는 거예요.
그리하여 우리 ‘사람(四覽)’ 자기 자신의 몸 세포(細胞)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이, 예를들어 자기 자신의 돌아가신 조상님 부모님의 ‘제사(祭祀)’ 라든가 묘소(墓所), 또는 자기 자신이 살고 있는 집터.... 등에 작용하는 풍수지리적 현상을 일컬어 이제까지는 소위 ‘동기감응(同氣感應)’이라는 말로 설명하여 내 몸 밖에서 외적(外的)으로 발생되는 풍수지리적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작용, 또는 샤머니즘적 귀신(鬼神) 빙의(憑依)현상의 작용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해 온 경향이 많았었는데 그런게 아니라, 사실은 이 모두가 자기 자신의 몸속에서 내적(內的)으로 발생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몸 세포(細胞)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에 영향에 받는,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말나야식(末那耶識)의 잠재의식(潛在意識)과, 자기 자신의 정신속에서 작용하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의 무의식(無意識)에 지배를 받는 마음의 기(氣)인 ‘심기(心氣)’와, 정신의 기(氣)인 ‘정기(精氣)’의 작용에 의하여 나타나는 과학적 현상의 하나일 뿐이라는 거예요.
즉, 자기 자신의 몸속에서 내적(內的)으로 발생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몸속 세포(細胞) 원자(原子)내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의 바뀜에 따라서 영향을 받아 지배되어지는, 자기 자신의 마음속 말나야식(末那耶識)의 잠재의식(潛在意識)과, 정신속 아뢰야식(阿賴耶識)의 무의식(無意識)은, 자기 자신의 인생에 과거(人生過去)인 돌아가신 자기 자신의 조상님 부모님의 ’제사(祭祀)‘라고 하는 행사에 무척 강한 끌림(引力)에 자극의 센 자력(磁力)을 발생시키게 되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마음속 말나야식 잠재의식과, 자기 자신의 정신속 아뢰야식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돌아가신 자기 자신의 조상님 부모님의 ‘제사(祭祀)’ 라고 하는 행사를 통하여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마음의 생각을 하는 순간,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말을 하는 순간,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행동을 하는 순간,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마음을 가지고서 음식을 먹는 순간, 마치 일반 쇠덩이에 강한 전자력을 넣어 주는 것과 같이 인체(人體) 세포내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이 순간적으로 다 같이 일정하게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사고의 좋은 한 방향으로만 회전을 하게 되어진다는 것이에요. 그리하여 우리말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心)’을 일컬어 마치 자기 자신이 항상 먹는 ‘음식(飮食)’과 똑 같게 “마음을 먹/는다. 음식을 먹/는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헌즉, 자기 자신이 스스로 좋은 마음을 먹고, 생각을 하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고, 좋은 생각으로 음식을 먹고.... 하게 되면 마치 강한 자력(磁力)을 가진 지남철(指南鐵)이 항상 따뜻한 남쪽방향으로만 끌림(引力)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자기 자신의 마음속 말나야식 잠재의식과, 자기 자신의 정신속 아뢰야식 무의식도 그처럼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방향으로 항상 저절로 끌려가게 되어지는 힘의 영향으로 인하여 미리미리 사소하게 하는 작은 생각들과, 미리미리 사소하게 하는 작은 판단들과, 미리미리 사소하게 하는 작은 행동들을, 저절로 미래에 좋은 결과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끌림(引力)의 힘이 작용하도록 되어짐으로써, 장차 큰 위험을 미리미리 저절로 회피하여 예방하게 되어질 수가 있게 되기도 하고.... 그런다는 거예요.
이러한 경우는, 예를들어 미리미리 저절로 어떤 사소한 행동을 하게 되어졌음으로 인하여 비행기를 타지 못하게 되어서 비행기 추락사고의 큰 위험을 회피하게 되었다든가, 또는 미리미리 저절로 어떤 사소한 행동을 하게 되어졌음으로 인하여 타고 있던 배에서 내리게 되거나, 타고 있던 차에서 내리게 됨으로써 큰 사고의 위험을 미리미리 저절로 회피하게 되어졌다든가, 또는 큰 실패의 위험을 미리미리 저절로 회피하게 되어졌다든가....하는 일들이 발생되기도 하고...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또한, 예를들어 장차의 미래에 관한 중요한 생각을 해야되거나 또는 미래에 대하여 중요한 판단을 해야될 때에도, 자기 자신의 몸 세포 원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이 이와 같이, 자기 스스로가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마음의 생각을 하는 순간,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말을 하는 순간,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행동을 하는 순간,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생각을 가지고서 음식을 먹는 순간, 마치 일반 쇠덩이에 강한 전자력을 넣어 주는 것과 같이 인체(人體) 세포 원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이 순간적으로 다 같이 일정하게 좋은 한 방향으로만 회전을 하게 되어짐으로써, 미래에 매우 긍정적이고 좋은 결과가 올 수 있게 되어지는 한 방향으로만 끌림(引力)의 힘을 발휘하게 되어지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몸 세포의 면역성(免疫性)이 향상되어 몸과 정신이 저절로 더욱 건강하게 되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상은 샤머니즘의 미신적(迷信的) 현상이거나, 귀신(鬼神)의 빙의적(憑依的) 작용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몸 세포 원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에 의하여 발생되어지는 매우 과학적인 현상으로써, 예를들어 웃음치료, 노래춤치료(歌舞治療), 기도치료(祈禱治療), 힐링(healing)치유....같이, 매우 강하게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좋은 마음을 먹게 하고, 좋은 생각을 갖게 하고, 좋은 말을 하게 하고, 좋은 행동을 하게 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음식을 먹게 하고.... 하는 것들의 치유효과도 같은 맥락의 예(例)인 것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인생과거(人生過去)인 돌아가신 조상님 부모님에 대한 ‘제사(祭祀)’라고 하는 행사는, 자기 자신의 몸속 세포들 원자속 양자들의 회전방향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줄 수가 있게 되어지게 하는 것이므로, 이는 마치 강한 끌림(引力)에 자력(磁力)의 힘으로써 저절로 항상 따뜻한 남쪽방향만을 가리키고 있게 되어지는 지남철(指南鐵)처럼,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의 좋은 방향으로 저절로 끌려가게 되어지는 힘의 영향으로 인하여 미리미리 자기 자신의 몸속 세포들을 저절로 긍정적 사고의 좋은 방향으로 질서 정연하게 절제(節制)하여 배열되어 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절로 자기 자신의 몸속 세포들의 면역성이 매우 좋게 향상되어서 몸과 정신이 저절로 건강하게 되어지는 것이라는 거예요.
6. 제사(祭祀)는 자기 자신의 몸속 세포 원자내 양자(量子)의 회전방향을 좋게 바꾼다.
그러함으로 돌아기신 자기 자신의 조상님 부모님에 대한 제사(祭祀)는, 제물(祭物)을 작만(作滿)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기 스스로가 매우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마음의 생각을 정성스럽게 하게 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과 제사를 지내는 동안,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 축문(祝文)의 독축(讀祝)을 통하여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말을 정중히 하게 하고, 제사를 지내면서 영신(迎神), 분향점적(焚香點滴), 참신(參神), 초헌(初獻), 독축(讀祝), 아헌(亞獻), 종헌(終獻), 첨작(添酌), 유식(侑食), 부복(俯伏), 사신(辭神), 절차의 과정을 통하여, 각 과정의 예절(禮節) 절차마다 2번씩의 절(拜)을 함으로써 제사를 한 번 지낼 때마다 총 18번 이상의 절을 매우 공손하고 정중하게 행(行)함으로써, 매우 좋은 마음의 행동을 몸소 직접 실천하여 자기 자신의 몸에 항상 배어있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우리 한민족의 절(拜)에는 절(拜)의 대상에 따라 급(級)이 있어서, 급(級)이 없이 평등한 서양의 거수경례(擧手敬禮)와는 달리, 예를들어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한번(單拜)의 절을 하고, 이미 하늘나라로 돌아가 있는(죽은) 사람에게는 두번(再拜)의 절을 하고, 스님(僧) 목사(牧師) 신부(神父) 성감(聖鑑)....등과 같이 신(神)의 대리급인 사람에게는 세번(삼배(三拜)의 절을 하고, 부처님, 예수님, 옥황상제님 공자님.... 등과 같은 신(神)의 대상에게는 네 번(四拜)의 절을 하고, 최고의 하늘님(天神)에게는 다섯 번(五拜)의 절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제사를 지낸 후에는 자신들이 작만하여 차려놓은 제물(祭物) 음식들에 모두 자기 자신의 조상님 부모님께서 정성껏 하늘나라에서 가져오신 소중한 복(福)들을 가득히 넣어 놓으셨다- 고 생각하면서 그 제사음식들을 여러 가족들과 함께 다 화합(和合)하여 몸소 그 음식들을 다 음복(飮福=복을 먹음)하여 먹음으로써,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마음의 생각과,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실천과, 좋은 복(福)이 가득 들어있다고 생각하며 그 제사음식들을 절제(節制)하여 먹으면서 몸소 실천하게 되어지는 것이므로, 자기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은 생각-가장 좋은말-가장 좋은행동-가장 좋은음식 섭취-의 사위일체(四位一體)를 몸소 직접 실천하여 연습함으로써, 이를 자기 자신의 몸에 항상 배어있게 해 놓는 일이 되어진다는 것이어요.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돌아가신 조상님 부모님에 대한 ‘제사(祭祀)’를 일컬어 우리말로 “자기 자신(지=識)에게 감사(謝)하며 지내는 행사”라는 뜻으로써 “지사(識謝)를 지낸다” 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뜻인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평소의 마음에서도 자기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돌아가신 조상님 부모님에 대하여 항상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가장 좋은 마음의 생각과 가장 좋은 말과, 가장 좋은 행동을 함으로써,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항상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가장 좋은 마음의 생각과, 가장 좋은 말과, 가장 좋은 행동과, 가장 좋은 생각의 음식을 먹게 하여 주는 가장 큰 절제(節制)가 되어지는 셈이라는 거예요.
이러한 절제(節制)를 통하여 자기 자신의 몸 세포내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이 항상 매우 정성스럽고 강하게 감사하는 긍정적 사고(思考)의 좋은 방향으로 다 같은 한 방향으로만 규칙성있게 회전하게 되어짐으로써, 미래에 대한 중요한 생각이나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될 때에는 항상 미래에 있을 좋은 방향으로 저절로 끌려지는 자력(磁力)의 힘으로써, 저절로 항상 따뜻한 남쪽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강한 자력(磁力)을 가진 ‘지남철(指南鐵)’처럼 매우 강한 힘으로써 저절로 끌리어져서, 미래에 있을 긍정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결정되도록 저절로 그쪽 방향으로 끌리어져 생각되어 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자기 자신의 몸 세포내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이 다 같은 한 방향으로 질서정연하게 돌게 됨으로써 몸 세포들이 배열이 빈틈없이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몸 세포의 면역성이 매우 강하게 향상되어서, 몸과 정신이 저절로 건강하게 되어져 평소에 생각하는 일도, 중요하게 결정하는 일도, 저절로 적절한 절제(節制)로써 매우 긍정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지게 되어진다는 것인데, 이러한 현상은자기 몸 밖에서 발생하는 ‘외적(外的)’인 샤머니즘의 미신적(迷信的) 현상이거나, 귀신(鬼神)의 빙의(憑依)적 작용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몸 ‘내적(內的)’인 몸 세포내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 말나야식의 잠재의식(潛在意識)과, 아뢰야식의 무의식(無意識)에 지배를 받는 마음의 기(氣)인 ‘심기(心氣)’와, 정신의 기(氣)인 ‘정기(精氣)’의 작용에 의하여 나타나는 과학적 현상의 하나일 뿐이라는 거예요.
7. 성주풀이는 자기 몸 세포 원자내 양자(量子)의 회전방향을 바꾸는 행사
그리하여 우리네 옛 조상님들께서는, 자기 자신의 ‘내적(內的)’인 몸 세포내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 말나야식 잠재의식(潛在意識)과, 아뢰야식 무의식(無意識)에 지배를 받는 마음의 기(氣)인 ‘심기(心氣)’와, 정신의 기(氣)인 ‘정기(精氣)’의 작용에 의하여 나타나는 현상들을 일찍이 다 아시고 설람, 자기 자신의 몸 조섭(調攝)상태가 어쩐지 좀 안 좋아서 ‘정기(精氣)’가 딸린다(모자란다) 싶다거나, 또는 도모하는 일이 어쩐지 잘 안 풀려서 ‘심기(心氣)’가 좀 불편하다- 싶을 때에는 자기 자신의 몸 세포내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주고자, 딱히 제사(祭祀)날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자기 자신의 돌아가신 조상님 부모님에게 제사(祭祀)를 지내는 것과 똑 같은 마음으로, 매일 아침 자기 자신이 먹는 아침밥상을 자기 자신이 잠자는 안방 윗목구석 천장(天障)에 붙여놓은 성주꽃(星主花=한지로 꽃모양을 접어서 달아놓은 꽃)밑에 놓고 정성들여 축원(祝願)을 한 다음 그 아침밥을 마치 음복(飮福)을 하듯이 자기 자신이 직접 먹었던 것이래요.
이것은 마치, 항상 남쪽 방향으로만 끌리는 힘(引力)을 작용함으로써 항상 남쪽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는 ‘지남철(指南鐵)’은 오직 같은 종속(種屬)인 철(鐵)에게만 끌림의 자력(磁力)에 힘을 발생시키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써, 자기 자신의 몸 세포내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끌림에 힘(引力)의 회전방향도 같은 족속(族屬)인 자기 자신의 조상님 부모님에게로 강한 끌림에 힘의 자력(磁力)이 발생하게 되어지는 것이므로, 우리네 옛 조상님들께서는 일찍이 이러한 사실들을 다 아시고 설람, 자기 자신이 매일 잠자고 먹고 사는 자기 자신의 집 안방 윗목구석 천장에다가 한지(韓紙)종이로 꽃모양을 접어 달아놓고는, 이미 돌아가셔서 별나라에 가 계신 자기 자신의 조상님 부모님을 상징하여 ‘성주꽃(星主花)’ 이라 이름붙여 놓고서, 마치 살아계신 자기 자신의 조상님 부모님을 모시듯이 정성껏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에 우리 한민족의 전통은 참으로 놀라운 일인 것이잖아요?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자신의 ‘내적(內的)’인 몸 세포내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 말나야식 잠재의식(潛在意識)에 지배를 받는 마음의 기(氣)인 ‘심기(心氣)’와, 아뢰야식 무의식(無意識)에 지배를 받는 정신의 기(氣)인 ‘정기(精氣)’의 조섭(調攝)상태를 좋게 잘 유지하기 위하여 그처럼 자기 자신이 스스로가 말나야식 잠재의식과 아뢰야식 무의식을 조절해 가면서, 자기 자신의 몸 세포내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을 관리해 가면서 살아 갔다는 사실은 참으로 거듭거듭 놀라울 일인 것이잖아요?
그러나 만약,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이렇게 자기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말나야식 잠재의식과 아뢰야식 무의식을 제대로 잘 조절해 갈 수가 없게 됨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의 ‘내적(內的)’ 몸 세포내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을 제대로 잘 관리해 갈 수가 없게 됨으로써, 아무래도 자기 자신의 몸 조섭(調攝)상태가 안 좋아져서 병(病)이 되어졌다거나, 또는 하고자 하는 일이 탈이 나서 잘 안 풀리게 되어졌다거나.... 할 때에는 아예 신기(神氣)가 강한 무속인(巫俗人)을 불러서, 요란스럽게 꽹과리를 치고 징을 치고...하면서 오장육부(五臟六腑) 속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온통 뒤 울려대게 하는 ‘성주풀이(星主不二)’ 행사를 거(巨)하게 치룸으로써 자기 자신의 몸 세포내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주고자 했다는 점도 사실은 놀라울 일인 것이잖아요?
8. 제사는 자기 자신의 인생미래를 ‘람(覽)’하는 습관을 몸에 배어있게 하는 연습.
그에 비하여 돌아가신 자기 조상님 부모님의 제사 때문에 그야말로 화(禍)를 입게 되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제사의 예절(禮節) 절차를 잘 못 지켜서 화(禍)를 입는 것도 아니고, 제사 지낼 때 제물(祭物)을 적게 차려 간편하게 지내서 화(禍)를 입는 것도 아니고, 제사의 날짜나 시간을 잘 못 지켜 제사를 잘 못 지내서 화를 입는 것도 아니고, 제사를 생략하여 안 지내서 화를 입는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 자신의 돌아가신 조상님 부모님의 제사(祭祀)는, 현재에 있지 않아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자기 자신의 ‘인생미래(人生未來)’를 항상 현재에 ‘람(覽)’하여 볼 수 있게 하는 능력과 습관을 항상 자기 자신의 몸에 배어있게 하는 연습일 뿐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만, 제사로 인하여 자기 자신의 마음이 불편해지거나 화가 날 때에, 그 불편한 마음상태와 화가 나는 정신상태 때문에, 자기 자신의 마음속 말나야식 잠재의식과, 정신속 아뢰야식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몸 세포 원자내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이 각각 제멋대로 뒤죽박죽 바뀌어져 버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예를들어 가족들 간에 “제사를 지낸다- 안 지낸다, 제사를 잘 지낸다- 못 지낸다. 제사에 참석을 한다- 안 한다” 또는 제물(祭物)을 작만(作滿)할 때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안 든다. 제물을 차리는 일이 너무 힘 든다- 안 든다.” 하는 등의 불평불만들로 인하여 가족들 간에 크고 작은 불화(不和)가 발생하여 화를 내게 되면, 그 불평불만의 부정적 사고(思考)에 나쁜 마음을 먹는 순간, 그 불평불만의 부정적 사고(思考)에 나쁜 생각을 하는 순간, 그 불평불만의 부정적 사고(思考)에 나쁜 말을 하는 순간, 그 불평불만의 부정적 사고(思考)의 나쁜 행동을 하는 순간, 그 불평불만의 부정적 사고(思考)의 나쁜 생각을 가지고서 제사음식을 먹는 순간, 자기 자신의 몸 세포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이 제각각 불규칙하게 제 멋대로 뒤주박죽 다 흩어져 버리게 되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마치 이제까지 강한 자력(磁力)을 가지고 있던 지남철(指南鐵)이 갑자기 자력(磁力)을 잃고 전혀 힘을 쓰지 못하게 되어지게 것과 같이 몸속 세포들의 면역력이 다 사라져 없어져서 저절로 건강이 차츰차츰 허물어지게 되어지거나 혹은 자기 자신이 사소하게 잘 못한 일로 인하여 앞날에 일이 크게 잘 못 되어진다든가, 또는 앞날의 중요한 일에 대하여 매우 심사숙고를 하며 신중을 기하여 판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를들어 “밤새도록 꾀를 낸 것이 오히려 죽을 꾀를 낸 꼴”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은 현상의 일들이 벌어지게 되기도 하고.... 그런다는 거예요.
이러한 현상은 제사를 잘 못 지낸 조상님 신(神)의 나쁜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작용이거나, 미신적(迷信的) 귀신의 작용 현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몸 세포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이, 불평불만의 마음으로 나쁜 생각을 하는 순간, 불평불만의 나쁜 말을 하는 순간, 불평불만의 나쁜 행동을 하는 순간, 불평불만의 나쁜 생각을 가지고서 제사음식을 먹는 순간, 자기 자신의 몸 세포 원자(原子)속 양자(量子)들의 회전방향이 제 각각 불규칙하게 제 멋대로 뒤죽박죽 다 흩어져 버리게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마치 강한 자력(磁力)을 가지고 있던 지남철(指南鐵)이 갑자기 자력(磁力)을 잃고 힘 없게 되어진 것과 같이 몸속 세포들의 면역력이 다 사라져 자신의 몸속에서 내적(內的)으로 발생되어지는 말나야식(末那耶識)의 잠재의식(潛在意識)과, 아뢰야식(阿賴耶識)의 무의식(無意識)이 영향을 받아 지배되어서 저절로 나쁜 방향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어지는 인력(引力)의 힘에 의해서 저절로 나쁜 방향으로 잘 못 생각하게 되고, 저절로 나쁜 방향으로 잘 못 판단하게 되어지는, 나쁜 방향에 마음의 기(氣)인 ‘오심기(惡心氣)’와, 나쁜 방향에 정신의 기(氣)인 ‘오정기(惡精氣)’에 대한 과학적 작용의 현상일 뿐이라는 거예요.
우리네 ‘사람(四覽)’은 이처럼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아서(없어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지나간 자기 자신의 인생과거(人生過去)와 똑 같이,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다가올 자기 자신의 인생미래(人生未來)의 공실(功失=돈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은 자기 자신이 항상 가지고 있는 네(四)가지에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눈과 귀로써 현재에 미리미리 보고 들을 수가 있는 것이므로, 우리네 ‘사람’을 일컬어 이 지구상에 유일한 ‘만유영장(萬有靈長)’이라 칭하여 지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네 ‘사람(四覽)’은, 현재에 들리지 않는 것도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귀로 들을 수가 있음으로써,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성공이나 실패라든가, 지나간 과거의 일도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덕(德)에 귀로써 훤히 들을 수가 있고, 또한 현재에 보이지 않는 것도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눈으로써 볼 수가 있음으로 해서,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성공이나 실패라든가, 지나간 과거의 일도 네(四) 가지의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덕(德)에 눈과 귀로써 알 수가 있는 것이므로, 우리네 ‘사람(四覽)’을 일컬어 “네(四) 가지에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으로써 볼(覽)수가 있는 것이다” 라고 하여 만유영장(萬有靈長)의 넉사(四)자 볼람(覽)자 ‘사람(四覽)’이라 칭(稱)하여지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헌즉 우리네 ‘사람’이 보는 것 중에, 현재에 존재함(있음)으로써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걸 일컬어 볼견(見)자 ‘견(見)’이라 하고, 현재에는 없음(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마음심(心)자 네(四) 가지에 ‘심령(心靈)’의 눈으로써 보는 것을 일컬어 넉사(四)자 볼견(見)자로 되어져 있는 볼람(覽)자 ‘람(覽)’이라 하는 것이랍니다.
또한 우리네 사람에게 있어, 현재에 존재함(있음)으로써 마치 문(門)여는 소리처럼 귀에 들리는 것을 듣는 걸 일컬어 문문(門)자에 귀이(耳)자로 이루어져 있는 들을문(聞)자 ‘문(聞)’이라 하고, 현재에는 없음(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귀에 들리지 않는 것도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덕(德)으로써 듣는 것을 일컬어 귀이(耳)변에 큰덕(德)자로 이루어져 있는 들을청(聽)자 ‘청(聽)’이라 하는 것이랍니다.
9. ‘사람(四覽)’은 신, 효, 애, 교, 네(四) 가지로써 람(覽)하여 보는 것.
그러헌즉 우리네 ‘사람(四覽)’은 자기 자신이 항상 가지고 있는 네(四) 가지의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눈과 귀로써, 첫째 자기 자신이 항상 머리박고 살고 있는 하늘신(神), 그리고 이미 하늘로 돌아가셔서 현재에 없는 돌아가신 자기 자신의 조상님 신(神)을 믿는 믿을신(信)자 ‘신(信)’의 눈과 귀, 둘째 자기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 충성하고 자기 자신의 부모에게 효도하는 효도효(孝)자 효(孝)의 눈과 귀, 셋째 자기 자신의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는 사랑애(愛)자 애(愛)의 눈과 귀, 넷째 자기 자신의 자녀를 가르치고 교육하는 가르칠교(敎)자 교(敎)의 눈과 귀, 이렇게 네(四) 가지에 심령(心靈)의 눈과 귀로써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고 들리지 않는 것도 들을 수 있도록 ‘람(覽)’ 하여야 되는 것이다-” 라고 하여 우리네 사람을 일컬어 네(四) 가지의 볼람(覽)자 ‘사람(四覽)’이라 불리워지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항상 가지고 있는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눈과 귀로써, 현재 있지 않아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지나간 자기 자신의 인생과거(人生過去)도 ‘람(覽)’하여 볼 수 있고, 현재에 있는 자기 자신의 인생현재(人生現在)도 ‘람(覽)’하여 볼 수 있고, 현재에 없는 자기 자신의 인생미래(人生未來)의 공실(功失)도 미리미리 ‘람(覽)’하여 볼 수가 있음으로써, 이렇게 항상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눈과 귀로써 신(信), 효(孝), 애(愛), 교(敎), 이렇게 네(四)가지를 ‘람(覽)’하여 볼 수가 있는 것을 일컬어 ‘사람(四覽)’이라고 한다는 것인데, 이 신, 효, 애, 교(信孝愛敎) 네(四) 가지가 사람은 누구나 다 항상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얼굴의 눈, 귀, 코, 입, 네(四) 가지에 ‘이목구비(耳目口鼻)’로써 표현되어 나타나는 것이므로, 성실한 ‘신, 효, 애, 교(信孝愛敎)’ 네(四) 가지가 없는 사람, 즉 자기 자신의 하늘님의 신(神)과 자기 자신의 조상님 신(神)등 신(神)믿는 믿음의 ‘신(信)’도 없고, 자기 자신의 나라에 충성하고 자기 자신의 부모에게 효도하는 효(孝)도 없으며, 자기 자신의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는 애(愛)도 없으며, 자기 자신의 아들과 딸을 교육하는 교(敎)가 없는 사람을 일컬어 우리말로 “네(四)가지가 없다” 며 된소리(사→싸)로써 “싸(四)가지가 없다” 라고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네 사람은 자기 자신이 항상 가지고 있는 ‘신,효,애,교(信孝愛敎)’ 네(四) 가지의 성질(性質=성품과 질)이, 자기 자신이 항상 가지고 있는 네(四) 가지의 ‘이목구비(耳目口鼻)’로써 얼굴에 표현되어져 나타나는 것이므로, 이처럼 ‘사람(四覽)’으로서 갖추어야 할 ‘신,효,애,교(信孝愛敎)’ 네(四) 가지에 심령(心靈)의 성질(性質=성품과 질)이 표현되어 나타나야 할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얼굴(面目)’이 없는 것을 일컬어 없을무(無)자, 알지(知)자, 차거울랭(冷)자, ‘무지랭(無知冷)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또한 이목구비 얼굴이 없는 ‘지렁이’를 일컬어 없을무(無)자 ‘무지렁이’ 라고 말하는 것이며, 사람이 무엇인가 결례(缺禮)되는 일이 있었을 때에 사과(謝過)하는 말로써 자기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낮추어 “신,효,애,교(信孝愛敎) 네가지를 제대로 나타내 보여드릴 수 있는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얼굴이 없습니다” 라는 뜻에 우리말로 “면목(面目=이목구비 얼굴)이 없습니다. 뵐 낯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뜻인 거라고 합니다.
그러헌즉, 우리네 사람은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도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눈으로써 볼 수가 있고, 현재에 없는(존재하지 않는) 것 조차도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눈으로써 볼수 있고, 또한 현재에 들리지 않는 것도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귀로써 들을 수가 있고, 현재에 없는(존재하지 않는) 것 조차도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에 덕(德)’의 귀로써 들을 수가 있음으로 해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유일한 ‘만유영장(萬有靈長)’인 것이라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네 ‘사람(四覽)’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아서 현재에 없는(존재하지 않는) 것도, 마치 현재에 있는(존재하는) 것처럼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의 눈과 귀로써 보고 듣고.... ‘람(覽)’ 하는 이 만유영장(萬有靈長)의 능력이 있음으로 해서 현대의 과학, 의학, 물리학, 천문학, 종교학.... 등의 모든 분야에 대한 석사 박사.... 같이 깊은 학문이 비로서 존재할 수가 있게 되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10. 제사는 인생미래사 불망연습관(人生未來事 不忘練習慣)
그리하여 우리네 조상님들께서 하신 옛말에 이르기를, ‘조상무존 여근불견(祖上無存 如根)不見’이라, “조상이란 현재에 없는(존재하지 않는)것이라서 마치 큰 나무 뿌리와 같아 보이지 않는 것”이므로, ‘유자성 종심기(唯自性 從心起)’요,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성품에 따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일 뿐”이요, ‘인생공실 여동불견(人生功失 如同不見)’인즉, “우리네 인생사의 성공이나 실패도 꼭 이와 같이 현재에 없어서 보이지 않는 것”인즉, ‘제불망 연습관(祭不忘 練習慣)’이라, “제사를 행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인생미래(人生未來)를 항상 ‘람(覽)’하여 볼 수 있는 능력을 잃지 않도록, 잊지 않도록 연습하여 ‘람(覽)’하는 것을 자기 자신의 몸에 항상 배어있게 습관화 할 뿐인 것이다.” 라고 하였다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돌아가신 조상님 부모님은 곧, 이미 훌쩍 지나가 버려서 현재에 없는(존재하지 않는) 자기 자신의 인생에 과거(人生過去)인 것이며, 제사(祭祀)는 곧 현재에 없는(존재하지 않는) 지나간 자기 자신의 인생과거(人生過去)를 자기 자신의 인생현재(人生現在)로 개치(改置)해 놓는 행사인 것이므로 이는 곧, 현재에 없는 자기 자신의 인생미래(人生未來)에 대한 공실(功失=돈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의 이치(理致)가 제사(祭祀)의 이치와 꼭 같은 것이므로, 자기 자신에 인생 미래의 공실(功失)에 대한 이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각각 따로따로인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가 하나로 연결되어져 있는 하나붙이(不二)인 것이므로 이러한 ‘람(覽)’의 능력과 이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잊어버리지 않도록 제사(祭祀)로써 연습하여, 현재에 없음(존재하지 않음)으로써 현재 보이지 않는 자기 자신에 인생미래의 공실(功失=돈이 아니라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을 자기 스스로가 ‘사람(四覽)’으로서 현재에 항상 ‘람(覽)’하여 볼 수가 있도록 연습하여 자기 자신의 몸에 항상 배어있어 습관으로 삼게 하는 것이 곧 제사(祭祀)인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현재에 없어서(존재하지 아니하여) 보이지도 아니하고 들리지도 아니하는 자기 자신의 인생미래(人生未來)에 대한 공실(功失=돈 문제가 아닌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은, 마치 현재에 없는 자기 자신의 돌아가신 조상님 부모님의 존재에 대한 ‘제사(祭祀)’와도 꼭 같은 것일진대, 만약 사람(四覽)이 자기 자신이 항상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의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으로써 자기 자신의 인생미래(人生未來)를 자기 스스로가 항상 ‘람(覽=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을 듣고 봄)’ 하여 볼 수 있는 그 만유영장(萬有靈長)의 능력을 잃지 않고 잊지 않도록, 자기 자신의 돌아가신 조상님 부모님의 제사(祭祀)를 행하여, ‘사람(四覽)’으로서의 만유영장에 ‘람(覽)’의 능력을 잃지 않고 잊지 않게 연습함으로써, 자기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인생미래를 현재에 항상 람(覽)하여 볼 수가 있는 능력을 자신의 몸에 배어있도록 습관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 무엇으로써 ‘사람(四覽)’으로서의 만유영장에 ‘람(覽)’의 능력을 잃지 않고 잊지 않도록 연습하여 자기 자신의 몸에 항상 배어있게 습관으로 삼아 놓을 수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네 인생의 삶에 있어 자기 자신의 인생미래(인생(人生)에 대한 ‘공실(功失’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의 문제인 것이므로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진실한 삶의 성공이나 실패의 ‘공실(功失)’은 대학교 석사 박사로서도 보장되지 아니하는 것일진대, 두 사람은 다행히도 이미 석사 박사 공부를 한 석학(碩學)이신 것이므로 자기 인생에 앞날의 진실한 성공이나 실패의 공실(功失)에 대하여,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인생의 진실한 삶의 문제에 대하여 ‘사람(四覽)’으로서의 ‘람(覽)’이 가능하겠기에 다행한 일이겠으나, 만약 결혼을 하여 훗날 자녀들을 갖게 된다면 그 자녀들에게 조상님에 대한 제사(祭祀)가 아닌 그 무엇으로써 과연, 그야말로 눈에 보이지도 아니하고, 귀에 들리지도 아니하고, 또 현재에 있지도(존재하지도) 아니한, 자기 자신에 인생의 삶에 있어 앞날의 성공이나 실패의 공실(功失)에 대하여, 만유영장(萬有靈長)의 ‘사람(四覽)’으로서 ‘람(覽)’하여 볼 수 있는 능력을 항상 잃지 않고 잊지 않도록 연습해서 자기 자신의 몸에 항상 배어있게 습관화 해 놓을 수가 있도록 해 줄 수가 있는 게 그 무엇이 있겠습니까? 있다면 대답 좀 해 주세요.
그리하여 자기 조상님에 대한 제사(祭祀) 대신에, 자기 자신의 인생에 있어 현재에 있지 아니하여 보이지도 아니하고 들리지도 아니하는 앞날에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성공이나 실패의 공실(功失)에 대하여, 만유영장(萬有靈長)의 ‘사람(四覽)’으로서 현재에 미리미리 항상 ‘람(覽)’하여 봄으로써, 미리미리 항상 사소한 좋은 마음과, 미리미리 항상 사소한 좋은 생각과, 미리미리 항상 사소한 좋은 말과, 미리미리 항상 사소한 좋은 행실과, 미리미리 항상 사소한 좋은 생각을 가지고서 먹는 음식으로써, 미리미리 항상 큰 위험을 저절로 피해가고, 미리미리 하상 큰 실패를 저절로 피해갈 수가 있도록 미리미리 연습해서 자기 자신의 몸에 항상 배어있게 습관화 할 수 있도록 해 줄 수가 있는 게 있다면 “나는 기꺼이 내 조상님의 제사를 없애어 지내지 아니하고, 제사를 대신하여 그 답을 내 인생미래사 불망연습관(人生未來事 不忘練習慣)’으로 삼으며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선머슴(서툰 어린머슴)출신 수양아들 출신의 시아버지 자리 영감님은 말하였다- 합니다.
혹시 여러분께서 “과학이 발달해 있는 이 현대의 시대에 제사는 왜 지내는 거예요?” 하고 새 며느리 자리의 젊은 여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고 친다면, 무어라 대답해 줄 수 있겠어요? 그 마땅한 대답을 좀 알려 줘 보세요.
그리고 또 혹시 여러분께서 그 새 며느리 자리의 젊은 여자라고 친다면, 선머슴 출신 수양아들 출신의 그 시아버지 자리 영감님에게 “과학이 발달해 있는 이 현대의 시대에는, 현재에 있지 않음(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앞날에 자기 인생의 진실한 삶에 성공이나 실패의 ‘공실(功失)’에 대하여 마음심(心)자 심령(心靈)으로써 ‘람(覽)’하여 자기 자신이 항상 잃지 않고 잊지 않도록 연습해서 자기 자신의 몸에 항상 배어있게 해 놓을 수 있는 방법은 “제사가 아니라 바로 요것 이에요.”하고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는지 좀 가르쳐 주세요. 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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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4.
아라리오 홍사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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