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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9월 4일 수요일
[(녹)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3,1-9
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여러분을 영적이 아니라 육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나는 여러분에게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3 여러분은 아직도 육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일고 있는데,
여러분을 육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4 어떤 이는 “나는 바오로 편이다.” 하고
어떤 이는 “나는 아폴로 편이다.” 하고 있으니,
여러분을 속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5 도대체 아폴로가 무엇입니까? 바오로가 무엇입니까?
아폴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정해 주신 대로,
여러분을 믿음으로 이끈 일꾼일 따름입니다.
6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7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8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9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8-44
38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39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41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2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의 여러 문제를 알고 있었고 또 코린토 교회 신자들이 바오로 사도에게 물은 내용들도 있기 때문에, 코린토 1서와 2서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먼저 나오는 문제가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서간 뒷부분에서 성령의 은사나 전례에 대하여 말할 때도 공동체의 일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에서는, 코린토 신자들이 어떤 문제로 갈라졌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 이들은 바오로를 추종하거나 아폴로를 추종하고 있으니, 그들 나름대로는 교회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저마다 분명한 소신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오로와 아폴로는 하느님의 밭인 교회의 신자들을 돌보며 심고 물을 주는 일을 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무리도 어쩌면 교회라는 밭을 열심히 가꾸려고 하는 사람들이었겠지요.
그런데 바로 그 일이 그들을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사람들의 이름이 그들에게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탐욕에 사로잡히거나 쾌락에 몰두하여야 육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하느님이 아닌 인간에게 눈길이 머물러 있을 때, 인간의 업적만 생각하고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1코린 3,6) 이심을 알아보지 못할 때, 쉽게 육적인 사람이 됩니다. 내 이름을 지우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임을 알아볼 때, 다른 모든 사람 안에서도 이를 알아볼 수 있을 때, “시기와 싸움”(3,3)이 사라지고 우리는 영적인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병고를 통해서도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병고가 찾아와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분들, 얼마나 고통이 크십니까? 얼마나 답답하십니까? 때로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저도 언젠가 크게 한번 아파봐서 아프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를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우선 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 내가 약해졌다는 것으로 인해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몸이 아프다 보니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활도 힘들어지고 자연스럽게 열외가 잦아집니다. 기력이 떨어지고 자주 위급상황에 빠지다 보니 자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종국에 가서는 병고를 하루하루 상해가는 내 몰골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합니다. 투병하느라 내가 계획했던 그 모든 것이 올스톱 됩니다. 가장 괴로운 일은 아무래도 세상과 인간으로부터의 점점 소외되는 것입니다.
이런 환우들에게 있어 가장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치유일 것입니다. 죽어가는 환자들, 불치병 환자들에게 치유란 단어처럼 반가운 단어가 또 있을까요?
이런 이유로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신경 쓰셨던 부분이 바로 치유 활동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시급한 필요성에 우선적으로 응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수제자 시몬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마침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시몬의 장모! 그 둘 사이의 관계가 참으로 특별합니다.
시몬의 장모 입장에서 예수님은 미운 사람이었습니다. 사위 시몬을 빼앗아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딸을 생과부가 되게 한 원인 제공자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사위 시몬과 자신을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으니 장모 입장에서 열불나게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에게 가까이 다가가시어 특별한 작업을 하십니다. 열을 꾸짖으십니다. 참으로 기이한 모습입니다. 그러자 즉시 열이 가셨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즉시 일어났습니다.
그 누구도 어떻게 하지 못하던 펄펄 끓는 열까지 호통치시고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메시아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시몬의 장모는 조금 전까지 꼴 보기조차 싫은 예수님이었는데 즉시 태도가 바뀝니다. 정성껏 예수님의 시중을 들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장모의 열병뿐만 아니라 억울했던 마음까지 한꺼번에 치유하신 것입니다.
시몬의 장모 열병 치유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환자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고 정성껏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그들을 오랜 병고로부터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있어 가장 시급한 필요성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시는 주님께 우리의 아픈 환부를 가감 없이 보여드리면 좋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오랜 병고를 치유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께로 아가면 좋겠습니다.
끔찍한 병고 한가운데에서 매일 부르짖고 견뎌내면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병고를 통해서도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너그럽게 만들고, 단단한 각오를 하고, 죽기 살기로 병고와 맞서 싸워 이겨내면서, 그 병고를 통해 하느님의 승리와 영광을 드러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더 이상 어찌할 바 없는 상황 앞에서는, 그런 힘겨운 상황 앞에서도 그런 끔찍한 현실조차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부단히 주님 자비와 섭리의 손길에 하루하루를 맡기는 것, 그것 역시 하느님을 증거하는 일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미사 끝나고 갈 때의 기분은 어때야 할까?
전삼용 요셉 신부님
며칠 전에 노숙자를 위한 성남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김하종 신부님을 만나게 된 것은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였는데, 저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 봉사할 기회가 없었기에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봉사를 몇 번 하고 그만두었습니다.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노숙자들에게 밥을 준다고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분들이 다 고마워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사제로서 봉사하면서 영광을 추구했는지도 모릅니다. 같이 봉사하는 분들이 오래되었다고 자기 자리에서 텃세를 부리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숙달되지 못한 저는 약간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봉사가 금방 지쳐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김하종 신부는 어떻게 40년 가까이 그런 봉사를 이어가며 “나는 봉사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며칠 전에도 노숙자들이 싸워서 말리다가 주먹으로 가슴을 한 대 맞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는 노숙자에게 손을 물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여덟 번 그들의 신고로 경찰서에 가기도 하였습니다. 마음이 더 아프다고 합니다.
‘내가 몇 년 동안 먹을 것을 주었는데….’ 저와 김하종 신부님의 차이는 이것입니다. 저는 봉사하는 목적을 제가 정한 것이었지만, 김하종 신부님은 사명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로 그 사명을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쳐주시고 악령을 쫓아내시다가 새벽에는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군중이 찾아와서 떠나지 말고 더 머물러달라고 청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파견’입니다. 기도는 파견받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파견받으면 봉사와 사랑에 지치지 않습니다.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던 한 선교사가 여러 해 동안 수많은 열정을 쏟았음에도 아무 선교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배에는 휴가를 얻어 아프리카에서 사냥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이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샌프란시스코항에 도착하였을 때 은은하게 울리는 군악대들의 예포 소리와 함께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이 부둣가에 나와 있었습니다. 배에서 대통령이 내려올 때 거기에는 붉은 주단이 깔렸고 많은 사람이 대통령을 맞이하였습니다.
대통령이 지나가자 붉은 주단은 걷히고 군악대의 나팔 소리도 멎었습니다.
그 뒤를 선교사 홀로 고독하게 내려왔습니다. ‘사냥을 갔다 오는 대통령은 저렇게 환영받는데, 큰아들과 둘째 아들 그리고 부인마저 잃고 선교하다가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환영객은 아무도 없구나!’하는 생각으로, 고독감과 실패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아직 고향에 돌아온 것이 아니다. 네가 고향에 돌아오는 날 군악대의 나팔 소리가 문제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내가 맞이해 주마. 붉은 주단이 문제가 아니라 황금의 유리길을 깔고 내가 친히 너를 마중 나오마. 사랑하는 아들아 끝까지 충성하라!”
이 말씀을 들은 선교사는 크게 뉘우치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미사 끝나고 성당 밖으로 나갈 때의 기분은 이래야 합니다. 최후의 만찬 후에 “자 일어나, 가자!”라고 하신 예수님의 모습과도 같아야 합니다. 미사 후에 ‘오늘은 무엇을 하도록 주님께서 파견하실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미사는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영광의 상징입니다. 모든 기도는 그렇게 끝맺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가 휴식이 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자동차에는 많은 기능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유리창을 닦아주는 와이퍼가 있고, 유리창의 먼지를 벗겨주는 워셔액 분사기가 있습니다. 냉난방을 조절하는 에어컨도 있고, 시트의 온도를 조절하는 열선도 있습니다. 내비게이션도 있고, 속도를 조절하는 쿠르즈 컨트롤도 있습니다. 방향을 유지하는 자율 주행 장치도 있고, 차량의 상태를 알려주는 계기판도 있습니다. 차선을 변경하는 깜빡이가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대부분 운전자의 편의를 위한 기능입니다. 그런데 깜빡이는 운전자는 물론 주위에 있는 차를 위한 기능입니다. 옆 차선의 차가 나의 차선으로 오겠다고 신호하면 나는 속도를 줄여서 올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내가 옆 차선으로 가고 싶을 때 신호하면 뒤에 오는 차도 속도를 줄여서 배려해 줍니다. 비상등도 있습니다. 양쪽 깜빡이가 모두 켜지는 상황입니다. 앞의 차가 비상등을 켜고 있으면 속도를 줄이고, 뒤에 오는 차를 위해서 똑같이 비상등을 켭니다. 그렇게 하면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뒤에 차가 있든 없던 상관없이 방향을 바꾸려면 깜빡이를 켜는 습관을 익히면 좋습니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면 위험하기도 하고, 짜증이 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깜빡이는 중요합니다. 깜빡이가 필요한데 지켜지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저는 국회에서 그런 모습을 종종 봅니다. 증인을 불러놓고 질문하면서 증인의 답변을 잘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증인이 답변하는데 큰 소리로 윽박지르기도 하고, 야단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원이 질의 하는데, 상대 당의 의원이 끼어들기도 합니다. 차가 엉켜서 교통의 흐름이 엉망이 되는 것처럼 국회의 운영이 난장판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학급회의 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회의 할 때도 가끔 깜빡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목소리가 큰 분들이 있습니다. 오랜 경험과 연륜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회의 중에 가끔 안타까운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예전에 해 보았는데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힘만 들고 효과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분위기가 가라앉기 마련입니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면 진행자는 방향을 정해 주면 좋습니다. 먼저 충분히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 좋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인들에게 방향을 정해주고 있습니다. 코린토인들 사이에 차가 엉켜서 오도 갈 수 없는 것처럼 분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이렇게 합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이보다 확실한 방향 설정은 없습니다. 이런 방향을 망각하면 공동체에 갈등과 분열이 생기곤 합니다. 성직자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성직자는 등대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파수꾼은 악의 세력이 들어오지 못 하도록 말씀의 등불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성직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수도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수도자는 이 세상에서 천상의 삶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수도자의 침묵과 기도에서 믿음의 향기, 희망의 향기, 사랑의 향기가 나와야 합니다. 교우들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교우들은 말과 행동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를 키우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늘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오늘의 성인
성 모세 (Moses)
활동년도 :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율법학자
지역 :
같은 이름 : 모이세스
성 모세(Moyses)는 출애급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요 예언자이자 율법의 중개자였다. 그의 절대적인 권위는 구약과 신약성서 시대는 물론 오늘날가지 이스라엘의 율법이 ‘모세법’이라고 불리는 전통이 철저히 지켜지는 데서도 드러난다. 구약성서의 모든 신학이 흘러나오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 ‘출애급 사건’과 ‘시나이 산 계약’이라고 한다면, 야훼 하느님이 모세를 선택하여 이 해방 사건과 계약의 중개자로 삼은 것은 바로 이스라엘 안에서 모세가 가지는 절대적인 권위의 근거가 된다. 출생에서부터 특별한 일화를 남기고 있는 모세는, 비록 모세오경 외의 구약성서에서 그 이름이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율법 중심의 이스라엘 사회에서 계약과 율법의 중개자로서의 그 독보적인 권위는 확고하다.
출애굽기 1장에 의하면 모세는 불어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위협을 느낀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이 낳은 자식 가운데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도록 명령한 시대에 태어났다. 그는 레위 지파에 속한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의 누이는 미리암이었으며 형제로는 아론이 있었다(출애 2,1; 6.16-20; 7,7; 민수 26,59; 1역대 23,12-14). 모세의 부모는 파라오의 눈을 피해 석 달 동안 기르다가 더 이상 숨기가 어려워지자 왕골 상자에 아기를 넣고 강물에 띄웠다. 파라오의 딸인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아이를 안아 들자, 이를 지켜보던 아기의 누이(미리암)는 아기의 친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하여 아기는 다시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다가 파라오의 딸에게로 보내졌다.
모세는 공주의 양자로서 이집트 궁중 안에서 성장하였다. 청년이 된 모세는 어느 날 이집트인이 한 히브리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쳐 죽여 몰래 모래 속에 묻어 버리지만, 이 일이 탄로난 것을 알고는 광야로 도망을 갔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시뽀라라는 여인과 결혼하고 장인 르우엘(혹은 이드로라고도 함, 출애 2,18; 3,1; 4,18; 18,1)의 집안에서 양 떼를 치는 목자 생활을 하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불꽃이 이는 가운데에도 타지 않는 떨기 가운데 신비로이 나타나신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극심한 노역에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고, 또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모세에게 이집트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해 당신이 약속하신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갈 것을 명하셨다(출애 3,1-12).
야훼 하느님의 사명을 받고 파견된 모세는 이집트의 왕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야훼를 섬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을 전하지만, 파라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역을 더욱 심하게 부과하여 모세는 같은 민족들로부터 원성을 듣게 되었다. 모세는 파라오의 고집을 꺾기 위해 야훼의 말씀에 따라 이집트 땅에 열 가지 재앙을 선포하였다. 결국 열 번째 재앙에 파라는 굴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주었다.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 나오지만 곧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받았다. 이 때 갈대 바다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서 바다를 건너고, 뒤쫓던 이집트 군대는 갈라진 바다 한가운데에서 다시 합쳐지는 물에 휩쓸려 몰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성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급을 한 지 석 달째 되는 초하룻날 시나이 광야에 이르게 되었다(출애 19,1). 야훼 하느님은 모세를 산 위로 부르시고 그를 중개자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삼아 계약을 맺으셨는데, 여기에서 모세의 특별한 위치가 분명히 드러났다. 모세는 산을 오르내리며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해 주었다. 모세가 백성 앞에 내놓은 하느님의 말씀은 곧 계약의 말씀으로서 주된 내용은 십계명이었다. 모세가 하느님의 이 모든 말씀과 법규들을 백성에게 전하자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환호하며 야훼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라 살 것을 서약하고, 모세는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의 제사를 드렸다(출애 24장). 이로써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야훼 하느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출애급의 해방 사건을 맞은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보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여행을 시작할 때, 광야에서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세에게 굶겨 죽이려고 이집트 땅에서 데려 내왔느냐는 식으로 대들고, 모세는 백성의 불평을 야훼께 아뢰어 만나와 메추라기와 물을 얻었다(출애 15,22-17,7).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생활을 하면서 단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수동적인 위치에만 있지 않고, 하느님의 법이 곧 삶의 길임을 백성에게 가르치고, 혹 그들이 하느님의 길을 벗어날 때에는 맹렬히 비난을 하면서도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분노를 풀어드리기 위한 기도를 끊임없이 드렸다.
이렇게 모세는 야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면서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로이 탄생하게 하는 중개자가 되었고, 40년의 광야생활에서 한편으로는 하느님 백성의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백성에게 하느님의 길을 가르치고 그들의 모함과 질시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죄를 일깨우고 하느님께 중재의 기도를 드려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 광야의 여정에서 만나는 이민족과의 전투에서는 군사 지도자로서 백성을 지휘하여 앞길을 터가야 했다.
40년 광야의 여정이 끝나고 예리고 맞은편 느보 산의 비스가 봉우리 위에서 야훼는 모세에게 요르단 강 건너편에 자리한 약속의 땅을 보여주셨다. 이때 모세의 나이는 120세였다. 그러나 모세는 그 강을 건너지 못하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때 출애급을 몸으로 경험한 세대는 이미 광야에서 다 죽고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만이 남아 있었으니, 모세를 포함한 출애급 세대에게 허락된 몫은 자신들이 아닌 그 후손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의 풍요함을 누리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모세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신명 34장), 그로 인해 그의 무덤은 전례적인 장소가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모세는 고별사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치고(신명 32장), 축복 예언(신명 33장)을 하는 부분은 모세에 관한 성서 내용 중 아름다운 에필로그를 이루고 있다. 모세오경을 끝맺는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모세에 대한 찬사는 모세의 업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성 마리노 (Marinus)
활동년도 : +4세기?
신분 : 부제, 은수자
지역 : 산 마리노(San Marino)
같은 이름 : 마리누스
성 마리누스(또는 마리노)는 달마티아(Dalmatia) 해안의 사람으로 채석공이었다. 그는 리미니(Rimini)의 성채를 재건한다는 소문을 듣고 다른 석수 레오(Leo)와 함께 그곳에 가서 몬테 티타노(Monte Titano)의 채석장에서 일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중노동을 하고 있던 일단의 신자들이 섞여 있었다. 성 마리누스와 레오는 그들을 위로 격려하면서 또 다른 개종자들을 얻고 있었다.
그 후 레오는 리미니의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어 몬테펠트로 갔고, 성 마리누스는 부제가 되었으나 이전의 석공 일을 계속하였다. 12년 동안 그는 수로공사 일을 하면서 뛰어난 기술자일 뿐만 아니라 신자 노동자의 모델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 발생하였는데, 한 달마티아 여인이 그를 자기 남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부인하지 않고 가만히 물러나서 몬테 티타노로 가서 숨어 살았다. 그 후 그는 계속하여 은수자 생활을 하며 여생을 지냈는데, 그가 살았던 곳을 중심으로 하여 오늘날의 산 마리노 도시가 탄생하였다.
성녀 로사 (Rose)
활동년도 : 1234-1252년
신분 :
동정녀 : 3회원
지역 : 비테르보(Viterbo)
같은 이름 : 로싸, 로즈, 노사, 노싸
이탈리아의 비테르보에서 태어난 성녀 로사(Rosa)는 병을 앓던 8세 때에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성 프란치스코의 수도복을 입으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후에도 집에서 그냥 지내면서 평범한 여성으로 자랐다. 병에서 회복된 그녀는 평신도의 회개 복장을 하였고, 우리 주님의 고난을 더욱 절실히 체험하게 되었으며, 죄인들의 무례함과 배은망덕을 대신 속죄하였다. 그 후 12세경부터 그녀는 타오르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길 수 없어 거리로 뛰쳐나가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그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무수한 경고를 하였다. 그로 인해 그녀는 집에 감금되었고, 만일 다시 정치 지도자들을 비방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경고를 받았다. 결국 성녀 로사와 그녀의 부모는 추방되어 소리아노(Soriano)로 갔는데, 여기서 그녀는 그 당시의 독재자인 프레데릭 황제의 죽음을 예고하였고, 그것은 꼭 13개월 후에 일어났다. 이때부터 그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고향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비테르보에 있던 로사의 성 마리아 수녀원 입회를 청했지만 거절당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본당사제가 성당 곁에 수녀원을 만들고 몇몇 동료들과 함께 살도록 주선하였으나 집으로 돌아와서 곧 운명하였다
성녀 로살리아(팔레르모)(St. Rosalia of Palermo)
신분 : 동정녀, 3회원
활동지역 : 비테르보(Viterbo)
활동연도 : 1234?-1251/1252년
같은이름 : 로싸, 로즈
13세기부터 시실리아에서는 성녀 로살리아 공경이 보편화 되었으나, 옛 순교록에는 그의 생애가 기록되지 않고 있다.
스틸팅 신부의 연구에 따르면, 성녀 로살리아는 젊어서 고향을 떠나 시실리의 비보나 교외 몬떼 꼬쉬나의 어느 동굴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후일 그녀는 팔레르모에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 그녀는 이 도시의 주민을 구했기 때문에 그녀가 팔레르모로 주민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으며, 그녀의 은둔소 위에 큰 성당을 세웠다.
1624년 이탈리아의 팔레르모 시에는 무서운 페스트가 발생하여 어떠한 치료 수단도 효과 없이 희생자가 속출했으며 사람들도 매우 불안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도우심 외에는 구할 길이 없다하여 모든 성인의 호칭 기도를 외우며 시가행진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마치 주님의 묵시나 받은 듯이 제각기 다른 길로 열지어 가는 성가대원들이 성녀 로살리아의 이름을 호칭 기도문에 덧붙여 노래했다.
더구나 이상한 것은 이 행렬이 끝나자 그처럼 맹위를 떨치던 열병도 즉각 멈추었다는 것이다.
로살리아는 어렸을 때에 부친과 같이 팔레르모에 와서 부친이 왕궁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녀는 왕비 마르가리타의 총애를 받아 그 감독 하에 좋은 교육을 받았다.
성년이 되어 어떤 귀족에게 출가시키려는 무렵 로살리아는 돌연 종적을 감추었다.
그녀는 우선 어떤 수녀원에 숨었다가 곧 인기척 없는 동굴 속에서 살았다.
그 소재지를 안 사람을 왕비 마르가리타 뿐이었으며, 그녀는 더 조용한 장소를 로살리아에게 택하여 주며 일생을 그 곳에서 지내도록 했다.
로살리아는 기도와 묵상으로 세월을 보냈다.
비바람을 가릴 만한 집이 페레그리노 산 위에 있었는데, 때때로 한 신부가 찾아와 그곳에서 미사를 지내 주었다.
로살리아가 아무도 모르는 이런 산중에서 일생을 마쳤으므로 그녀의 죽음과 묘지를 안 사람도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묘소와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셨다.
팔레르모에서 시가행렬이 끝난 후였다.
성녀는 어떤 노인에게 나타나서 "페레그리노 산에 가 보세요, 거기에 내 무덤이 있습니다"했다.
노인이 가보니 과연 가르쳐 준 장소에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무덤을 헤쳐보니 한 부인의 시체가 나왔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과연 성녀 로살리아의 시체인가?
이런 의문을 둘러싸고 의사와 신부들이 면밀한 조사를 한 결과 거의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데, 여기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다.
즉 묘지의 동굴 속에서 발견된 돌 한개에는 성녀 자신이 새겼는지 혹은 다른 사람이 새겼는지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었다.
"퀴스퀴나 및 로제스의 영주 시니발도의 영양 로살리아는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동굴에 거처하기로 정했다."
팔레르모 시민들은 즉시 그녀를 주보 성녀로 결정했다.
성녀가 살던 곳에는 아름다운 성당을 건립하고, 주교좌 성당 옆에는 조그마한 성당을 세워 그곳에 성녀의 유해를 안치했다.
성녀 로살리아는 팔레르모 시민의 신뢰를 어기지 않고 주보로서의 임무를 다했다.
우선 전술한 페스트 종식을 시작으로 1693년의 대지진 때에도 구원의 손을 뻗쳐 다른 도시 촌락에서는 수많은 사상자가 났었지만 팔레르모 시민만은 그 참화를 면했다.
그 뒤 성녀 로살리아에게 대한 흠모는 각국에까지 퍼졌고, 특히 페스트와 지진에 대한 구원의 성녀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
복녀 가타리나 (Catherine)
활동년도 : 1486-1547년
신분 : 동정녀
지역 : 라코니지(Racconigi)
같은 이름 :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카타리나 마테이(Catharina Mattei, 또는 가타리나 마테이)는 1486년 어느 가난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나 카타리나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가 낡아빠진 광에서 태어난 것은 묘하게도 그녀의 일생이 물질적으로 궁핍하며 건강치 못하고 또 이해받지 못한 사람으로 살 것임을 상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녀는 영적으로는 어느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그녀는 이미 5살 때부터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께 대한 남다른 신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집안에서 힘든 일을 하거나 굶주림으로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녀는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서 큰 위로를 받곤 하였다.
1500년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축일에 그녀는 이 성인에게 기도하였는데, 참으로 기적적으로 성 스테파누스가 발현하여 성령께서 특별히 보살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이때 세 줄기의 빛이 그녀를 비추며, “나는 네 안에 내 거처를 정하고, 너의 영혼을 깨끗하고 밝게 할 것이며, 생기를 주리라”고 했다. 그 후 카타리나는 신비적인 신랑과의 동정 서원을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손가락에는 신비스런 반지가 끼워져 있었고, 이때부터 그녀는 가시관과 주님의 오상의 아픔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다.
그 후 카타리나에게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영적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짓누르는 악마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등 오랜 병고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녀는 62세 때 카르마뇰라에서 운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10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녀는 라코니지의 카타리나로도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