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에는 여호야김 이후 시드기야까지 남왕국 마지막 왕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집트는 팔레스틴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벌인 전쟁에서 바벨론에 패하고 이제 근동지방은 바벨론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유다를 다스릴 때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약탈하고 고관들과 함께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압송하고,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시드기야는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25장은 예루살렘의 최후에 대한 기록입니다. 시드기야는 정세를 잘못 판단하고 바벨론에 반기를 들었다가 파멸을 맞고 맙니다. 그의 파멸은 개인의 파멸로 끝나지 않고 남왕국 유다의 종말로 이어졌습니다. 1~12절을 보겠습니다.
1 시드기야 왕 제 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빌로니아 느부갓네살 왕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도성을 포위하고, 도성 안을 공격하려고 성벽 바깥 사방에 흙 언덕을 쌓았다.
2 그리하여 이 도성은 시드기야 왕 제 십일년까지 포위되어 있었다.
3 (그 해 넷째 달) 구일이 되었을 때에, 도성 안에 기근이 심해져서, 그 땅 백성의 먹을 양식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4 드디어 성벽이 뚫리니, 이것을 본 왕은, 바빌로니아 군대가 도성을 포위하고 있는데도, 밤을 틈타서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왕의 정원 근처, 두 성벽을 잇는 통로를 빠져 나와 아라바 쪽으로 도망하였다.
5 그러나 바빌로니아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추격하여, 여리고 평원에서 그를 사로잡으니, 시드기야의 군사들은 모두 그를 버리고 흩어졌다.
6 바빌로니아 군대가 시드기야 왕을 체포해서, 립나에 있는 바빌로니아 왕에게로 끌고 가니,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고,
7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하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뺀 다음에, 쇠사슬로 묶어서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8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 제 십구년 다섯째 달 칠일에, 바빌로니아 왕의 부하인 느부사라단 근위대장이 예루살렘으로 왔다.
9 그는 주의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건물, 곧 큰 건물은 모두 불태워버렸다.
10 근위대장이 지휘하는 바빌로니아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의 사면 성벽을 헐어 버렸다.
11 느부사라단 근위대장은 도성 안에 남아 있는 나머지 사람들과 바빌로니아 왕에게 투항한 사람들과 나머지 수많은 백성을, 모두 포로로 잡아갔다.
12 그러나 근위대장은, 그 땅에서 가장 가난한 백성 가운데 일부를 남겨 두어서,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금은보화를 약탈해갔다는 내용과, 도성에 남아있던 잔존세력을 체포하여 처형했다는 내용, 그리고 유다 땅에 총독을 세워 관리하게 했다는 내용,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에서 환대를 받으며 여생을 편안하게 보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남왕국 유다도 서기전 586년 또는 587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서기전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패망한 이후 136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러나 북왕국과는 달리 남왕국은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정복자 아시리아의 민족말살정책으로 혼혈족속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되어버렸지만, 다행히 남왕국 유다는 지도 계층의 사람들이 대거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이 오히려 혈통과 문화를 보존한 이유가 되었고, 바벨론에 뒤이어 근동세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페르시아의 관용정책으로 포로가 되었던 사람들의 후손이 고향으로 돌아와 유다를 재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