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세씨와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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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그러나 슬픈 이별!
지난여름의 끝자락에 433호 호스피스 병실에서 우린 그를 처음 만났다. 러시아 국적을 가진 사할린 동포 박 원세씨(54세) 그는 보다 더 풍요한 삶을 일구고자 40대 후반의 나이에 돈 벌어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하나로 한국 땅을 밟았었다. 사할린에 있는 가족을 가슴에 담고 이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동을 통해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일해 오던중 병을 얻어 입원하게 되었고 진단은 폐암 말기에 처해 있는 상황으로 8월 24일 호스피스환자로 등록되었다.
내가 병실에서 처음 만난 그 때도 숨 쉬는 것 초차 힘들어하리만치 상태는 악화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병원의 수호천사 김 희정 사회복지사님이 고충을 털어놓고 협조를 요청하셨다. 환자를 러시아의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하는데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라며 걱정하고 계셨다. 한국에 온지 5년이 넘어 여권갱신도 해야 하고, 사할린까지의 항공비도 준비되지 아니한 상태고, 게다가 혼자 몸도 가누기 어려운 환자를 누가 인천공항까지 가서 수속을 밟아주고 비행기에 탑승시켜 줄 것인지? 그러한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아름다운걱정? 은 도리어 우리를 신바람으로 몰아갔다. 왜냐면 우린 2005년 우리병원에 호스피스가 출범한 이후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말기 암으로 인생의 종점 가까이 다다른 환자분들에게 살아있는 동안 한 순간이라도 그분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이루어드림으로서 기쁨을 선물해 드리는 깜짝 이벤트를 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것은 '소원성취 프로그램'으로 호스피스봉사활동에 정착되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박 원세씨에게 가장 멋진 추억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이벤트를 벌여보자고 작정했다. 먼저 항공비 마련에 십시일반 도움을 성당교우 몇 사람에게 부탁해 둔 후, 우리는 간병인과 함께 승용차로 환자를 모시고 정동에 있는 러시아 영사관으로 가서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도움을 구했다. 몇 시간을 대기하며 우여곡절 끝에 항공권예약 사본을 제출하여 임시 출국허가증을 받아내는데 성공하였다. 이 순간 기다림에 지쳤던 환자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물론 우린 도구일 뿐이었고 실제적인 업무는 병원측의 자료제출과 몇 차례 담당자와 전화통화가 큰 몫을 해 냈다고 생각한다. 나는 즉시 환자에게 물었다. "우리 병원 빠져나온 김에 나랑 데이트 합시다. 어디가서 근사하게 점심 먹고 들어갑시다. 기력이 뒷받침 되겠습니까? 힘드시면 즉시 병원으로 차를 돌리겠습니다." 환자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오케이 싸인으로 받아들인 후 병원에 연락하여 승낙을 받아내었다. 성북동에 위치한 유명한 '오리 누룽지 백숙집'에서 정말 맛있게 식사를 하며 많은 얘기나누고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내 귀에 대고 그가 속삭이는 말 "한국에 와서 비싼 음식점 들어가 보긴 처음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행복해하니 내가 더 행복했었다. 내친 김에 그에게 물었다. 사할린에 가면 자녀는 몇이나 있느냐? 그래도 아버지가 돈 번다고 한국에 나왔는데 빈손으로 병든 몸을 이끌고 돌아가서야 되겠느냐. 우리가 식구들 선물을 준비해 줄테니 말해보십시오. 그러자 그가 두 딸이 있으며 시집간 딸은 손녀를 낳았다고 말 하였다. 다음날 여행빽 두 보따리의 선물을 마련해가지고 병실을 들리니 그는 반가움에 놀라는 눈빛이 역력했었다.
드디어 출국일! 우리는 김 희정 선생님과 약속한대로 8월 2일 수요일 아침 7시에 병원에서 윤 수진과장님과 사회복지사님 협조아래 출국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을 점검받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도착즉시 출국장 안내데스크를 찾아 협조를 요청, 그곳에서 휠체어 제공받아 업무를 볼 수 있었다. 우린 3층에 있는 사할린스크 항공사 사무실을 방문 병원측이 마련해 준 서류와 우리에게 도움을 제공해 줄 것을 부탁하는 협조문을 건네주었다. 그날 공항에서 가슴 뿌듯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서울의료원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라는 신분을 밝히고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두들 하나같이 적극적으로 우리를 도와주었으며 요구하는 사항을 넘어 협조를 아끼지 아니했고 도리어 그들도 기뻐하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우리가 환자를 안타까이 여기며 걱정하는 모습을 본 직원이 다가와 전해 주는 말 "선생님들 너무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가 도착지 공항에도 연결 그곳에도 의료진과 휠체어 대비하라고 조치해 두었습니다." 환자가 타고 갈 항공기의 기내 여승무원을 출국장 입구로 불러내어 인사시켜주고 함께 기념촬영도 하며 기뻐한 순간이었다. 여승무원은 기내 전용 휠체어까지 끌고 와 환자를 갈아 앉히고 나서 자기가 끝까지 잘 모실테니 걱정 마시라고 도리어 우리를 위로한다.
출국에 따른 모든 조치를 끝낸 후 아주 편안한 기분으로 한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하며 그에게 간략히 동안 진행결과를 말해주었다. "사실 복지사님 얘기를 듣고 주위에 부탁을 하였더니 원세씨 항공비에 보태라고 고마운 천사들이 돈을 모아 주었다. 그런데 항공티켓은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누군가의 기부를 받아 마련하셨다하니 우린 그 돈에서 몇 가지 선물을 구입했고, 의류는 우리가 운영하는 나눔 매장 '소금창고'에서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돈이 35만원 있는데 어떻게 해서 드릴까요?" 했더니 그는 달러로 환전해 주면 좋겠다하여 우린 그대로 환전하여 전해주었다. 잠시 그와 바깥에 나왔더니 그가 나에게 담배에 불 붙여 하나만 달라고 얘기하기에 전해 주었더니 그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 뿜으며 먼 하늘을 보듯 허공을 응시하며 한 동안 말없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보았다. 한 낮의 태양 빛에 반사되어 빤짝였던 그대 눈동자에 맺혀 머물다 흐르는 이슬방울을----그를 떠나보낸 후 돌아오는 차안에서 생각했다. '서울의료원 호스피스봉사자' 그것은 암행어사 마패와도 같았던 사랑의 위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8시 40분경 러시아에 도착한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모든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서 저녁 먹는 중 이라며 너무나도 고맙다며 자기를 도와 준 병원 선생님들에게도 소식 전해달라고 했다. 갑자기 그가 보고 싶다. 사할린 땅에서 손녀재롱을 보며 잘 지내고 있을까? 아니면 하늘나라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으려나? =2009년 12월 21일 호스피스회장 : 이 주희후안디에고=
#. 상기 글은 창고지기(이 후안디에고)가 2010년 1월 서울의료원 호스피스 소식지 '아름드리'에 게재한 글 전문입니다.
2009. 8. 27. 서울의료원 정원에서 정동 러시아 영사관에서 출국 서류 심사대기중에
러시아까지 박씨를 돌보아 줄 기내 승무원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바깥, 마지막 담배를 태우던 곳에서
출국 직전 창고지기들과 함께!
첫댓글 사람은 누구나 돈이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돈은 생할에 필수품일수밖에 사랑은 영원희 간직해야하는것 사랑이 없이는 살수가 없네요 병든 형제에게는 우선 돈이 필요 하겠지만 사랑도 있어야 한다.이주희회장님과 소금 창고 직원은 많은 돈이 아니지만 사랑이 있었기에 병든 형제 하나를 기쁨으로 감동시켜서 고국으로 돌려보내는데 끝까지 동행하지못한 사랑은 얼마나 마음이 져려올가요 소금창고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차고 넘칠것입니다.더큰 사랑이 함께 할거예요.^^*
아멘. 사고 이전의 건강을 되 찾아 어서 침대를 박차고 나오길 바래. 함께 이 길을 가자꾸나!.
고맙소 형제여! 육체적으로 더 불우한 처지에서도 물질적요소 보다는 영혼의 위로자 사랑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그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소이다. 주님의 은총으로 허리에 힘이 생기고 골육이 온전히 치유되어 자유롭게 활동하며 사랑을 나누는 봉사를 함께하게 되기를 빕니다.
님의 소중한 마음 씀씀이에 우리의 삶을 비추어 봅니다.
누가 할수 있을까?
나는 과연 이세상을 살아갈수 있는 존재 가치가 있을까?
어떻게 사는것이 생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걸까?
신앙을 갖고 그걸 빌미로
안일해져가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다시한번 나라는 존재를 생각하게 하네요.
님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비오는 밤.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저는 이기적입니다. 병든 그분이 계셨기에 저는 선행 할 기회를 얻었지요.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일이고, 잘 죽는 것이 잘 살았다는 흔적일 것입니다. 고로 저를 위해 그분이 몸을 제게 맡기셨으니 그분(박 원세님)이 제게 봉사해 주신 셈입니다. 빠뜨리님의 겸손되신 표현에 도리어 제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저도 허물 많은 죄인이랍니다.
하느님의실존하심을 님께서 하시는봉사활동에 함께하시고계시는군요..아멘
격려해 주서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