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진 스포츠 칼럼]
No need for speed
1999년 11월 7일, 뉴욕마라톤대회
요슈카 피셔의 공식 기록은 3시간 56분 13초(넷타임 03:55:07)
그의 나이 쉰 살.
1999년이라면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 보다 이미 1년 전에 그는 뉴욕마라톤에서 상당히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2000년 춘천국제마라톤에서의 나의 기록은 4시간 29분.
그와 나의 기록에서 무려 30여분의 차이가 벌어진 상태이다.
서브-4(포)는 아마추어 마라토너에게는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4시간 이내에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극소수이긴 하지만 서브-3(쓰리)에 도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42.195키로미터를 3시간 이내에 돌파한다는 의미다. 수없이 많은 아마추어 상위권 도전자들이 실패와 도전을 거듭하고 실패 이후에는 절망에 빠져 운동을 접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마라톤은 마약아닌 마약같은 중독성에 시달리는 운동이다.
어두운 밤 한강의 물결은 정박해둔 낡고 작은 선박을 끊임없이 뒤흔들고 있다. 미세먼지가 오늘밤도 채 가시지 않았다. 일요일 밤, 더구나 기온이 급강하한 밤이라서 그런지 걷기나 달리는 인적도 드물다.
누군가 뒤를 밟아 오는 후미의 발자국 소리를 느끼며 나는 천천히 앞을 보며 달린다. 때로는 위협적이고 때로는 정다운 느낌이다.
한밤 중 라인강변을 달리던 피셔도 그런 느낌이었을까.
누군가 뒤에서 줄기차게 엄습하듯 질주해 오기에 뒤지지 않으려고 나름 오버페이스에 걸렸다. 나의 속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시속 6분 30초 대.
후발 주자가 약간 비웃듯이 앞을 치고 나간다. 아무려면 어떠랴.
지난번 나는 이야기 원고를 두 편 작성해서 하나는 자유문학(2021년 가을호)으로 다른 하나는 노원문학(13호,2021년)으로 보냈다. 나는 첫번째 독자인 작은 녀석에게 원고 검토를 의뢰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매우 실망이었다.
'아빠 이야기는 결말이 왜 모두 비극이야? 카뮈 이야기도 그렇고, 고추잠자리 이야기도 그렇고.....'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이 얼마나 편협하고 옹졸한 성격이었던가를 알 수 없는 초속도감으로 느꼈다. 느낌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를 때가 있는 모양이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자 금새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정(negative)의 코드에서 긍정(positive)의 코드로 바꾸자. 그것도 최대한 빠른 속도로.
문제는 지금 당장 원고 마감이 임박해 있는데 전부를 어떻게 뜯어고친다는 말인가. 고민 끝에 퇴고 대신 부정문 결말에 긍정문 한 개씩을 덧칠해 보자고 생각했다. 늦었지만 세 줄의 땜질 원고문을 다시 띄웠다.
어느날 한 군데에서 이메일이 왔다.
- 가을호 편집이 모두 끝났고, 당신 원고는 이미 권 말에 실리게 되었어요. 갑자기 그런 이유는 뭘까요?
- 아니오, 제가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냉소했나 봅니다. 다시 수정해야 될 것 같아서요.
아니면 나는 그냥 원고 자체를 포기하겠습니다.
며칠 뒤 이번에는 직접 전화가 왔다.
- 당신 글 너무 좋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부득이 뺐고, 그대신 다음 호에 아예 권두에 실어줄테니 다른 데 원고 내지 말고 꼭 우리 한테 다시 보내주세요.
졸지에 꼴지 글에서 첫번째 글 순위로 올라선 것이다
그렇다. 부정(N)보다는 긍정(P)이 좋은 것이다.
요슈카 피셔가 뉴욕마라톤에 출전하기 3년 전만해도 그의 몸무게는 112 킬로그램이었다. 그는 1년 안에 무려 37 킬로그램을 줄였다. 그것은 결코 부정의 상태에서는 힘든 것이고 긍정으로의 변환 과정에서 일어나는 폭발적인 에너지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Slow & Steady
느린 마라톤맨 김이진
수필가🐧계간 자유문학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