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장 경상도 여행기/ 전 성훈
2년 만에 다시 동갑내기들이 뭉쳐 길을 떠났다. 환갑을 맞으며 시작한 동갑내기 여행, 봄이 무르익는 5월에 떠나는 여행은 올해로 네 번째다. 우리나라 해안선을 따라가며 정갈한 음식을 맛보고 더불어 정감 있는 우리 산하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여정이었다. 서해안 대천과 변산반도를 시작으로 남해안 목포, 여수, 강진, 보길도와 완도를 거쳐, 작년에 남해와 진주까지 찾았고, 이번에는 통영과 거제도 그리고 부산과 양산 통도사까지의 일정이었다.
다음에는 울산과 포항을 거쳐 동해안을 남에서 북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우리나라 제일의 경관이자 한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해안선 일주를 함께 할 예정이다. 아쉬운 건 여행을 기획한 친구가 갑자기 다리를 다쳐서 함께 가지 못한 것이다. 여행지의 구경거리와 맛집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파악하여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친구의 빠른 쾌유를 비는 마음을 전한다.
5월 10일(목) 여행 첫날, 아내 품을 벗어나 집 떠난 초로의 남자들이 해방감에 젖어 발걸음 가는대로 마음 놓고 떠들며 세상구경을 하면서 즐겁고 멋지게 하루를 보냈던 일탈의 시간이었다. 통영 별미 멍게비빔밥을 먹고, 통영 명물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를 타고, 통영 중앙시장에서 회를 떠서 거제도 KT수련관에서 술파티를 벌리며 하룻밤을 보냈다.
승합차를 빌려서 동갑내기 6명이 떠난 경상도 여행,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서울을 출발한 탓에 음성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첫 목적지 통영에 도착하니 오후 2시경이었다. 통영 중앙시장 음식점에서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멍게 비빔밥을 먹었다. 초장을 듬뿍 넣고 잘 비벼 한 숟가락 크게 떠서 입안에 넣었더니 멍게의 향내가 입안 가득했다. 뭉클한 멍게를 밥과 함께 씹으니 입안에 감도는 느낌에 저절로 입가에 흐뭇한 웃음이 떠올랐다. 두 숟가락을 떠먹고 나서 옆자리 친구에게 멍게비빔밥 정말 맛있다고 한 마디 건넸다. 음식은 본래의 고장에서 맛을 보아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더니, 왜 이곳 사람들이 멍게비빔밥을 칭찬하는지 이제야 알았다. 맛있게 점심 식사를 끝내고 동피랑 벽화마을을 찾았다. 마침 충청도 부여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자, 나 또한 나이를 잊고 그들처럼 기분이 좋았다.
동피랑 벽화 구경을 마치고 통영의 명물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를 탔다. 기다랗게 줄을 섰지만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케이블카는 우리 일행 6명만 탔다. 건너편 미륵산 정거장에 내려 미륵산 정상까지 계단이 조금 가파라서 힘이 들었지만 씩씩하게 올라갔다. 많은 관광객 틈에 끼어 정상에 올라가서 보니, 한려수도를 다도해라고 말하는 이유를 실감했다. 날씨가 맑지 않아서 다도해의 멋진 모습을 눈 가득히 담지 못해서 조금 아쉽고 서운했다. 미륵산 정상에서 다도해 구경을 하고, 거제도에서 숙박하게 되어 회감을 떠가려고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한 아주머니와 물건 흥정을 하다가 틀어졌다. 구매자와 판매자의 저울질이 맞아야 흥정이 되는 법인데 회감을 파는 아주머니가 조금 다혈질인 인 듯했다. 남는 게 없다며 던지는 말이 신경질 투였다. 장사는 파는 사람의 수완에 달린 것 일 텐데, 바로 옆집 총각과 다시 흥정을 하여 회감을 떴는데 가격과 물건이 거의 비슷하였다.
KT에서 퇴직했던 친구가 거제KT수련관 방을 운좋게 얻었다. 그 덕분에 아주 싼 숙박비로 하루를 머물렀다. 커다란 사우나실과, 저렴한 가격의 뷔페식당,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객실 등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단 하나 ‘옥의 티’라면, 이토록 멋지고 좋은 시설의 우리나라 최대 통신회사 KT수련관에 왜, 어째서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숙박을 마치고 퇴실할 때 건의서에 와이파이 불편사항을 기록해 놓았다. 통영에서 떠 온 회를 안주로 술을 마셨다. 와인과 맥주 그리고 소주까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한 잔씩 마시다가 소주를 많이 마셨다. 평소 주량의 2배 이상을 더 마신 것 같았다. 집을 떠나면 술을 많이 마실까봐 아내가 늘 걱정을 하는데 이번에는 아내의 기대를 저버리고 술 파티에 스스로 젖어들었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먼저 떠나간 녀석을 그리워했고 누군지 모르지만 늦게까지 남아 있을 녀석을 생각하면서 서로 건강을 위해 노력하자고 큰 소리로 외치기도 하였다. 앞으로 10년 동안 스스로 건강을 잘 챙겨서 여행과 술자리를 빛내자고 약속하였다. 정말 신나고 기분 좋은 초로의 남자들의 일탈이었다.
5월 11일(금) 여행 둘째 날, 40년 전에 보았던 거제 해금강을 다시 찾았고, 외도-보타니아 섬에서 불굴의 의지와 집념을 보여준 사람을 보았다.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보면서 우리나라를 누가 지켜줄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해버린 것 같은 부산, 세월만 변한 게 아니라 인간의 삶 또한 변해버린 모습에서 애잔함을 느꼈다.
나이가 육십 후반이라서 그런지, 어제 밤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고도 새벽같이 일어났다. 사우나 문 여는 시간에 맞추어 사우나에 가서 목욕을 하니 몸과 마음이 개운하였다. 수련관 아침식사는 뷔페식으로 3천원의 가격에 비해서 진수성찬이었다. 특히 후식으로 숭늉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KT수련관을 나와서 거제도 해안 도로를 달리며 시원한 바다 바람과 절경을 구경하면서 거제 해금강과 외도-보타니아를 찾았다. 해금강은 70년대 초반 대학 시절에 갔었다. 그때는 낚싯배를 타고 갔었는데 이번에는 비록 시설은 좋지 않지만 조금 큰 유람선을 탔다. 햇볕도 좋았고 게다가 파도가 잔잔하여 관람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해금강 주위에서 유람선이 천천히 움직여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입담 좋은 유람선 선장이 해금강의 소나무와 기암괴석 그리고 자연이 빚어낸 만물상에 대하여 구수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해금강 구경을 끝내고 찾은 곳은 외도(外島)다. 거제도에서 떨어져 있는 땅이라 외도라고 불린 곳, 48년 전 한 부부가 그 버려진 섬을 사서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었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대단한 열정과 끈기와 인내를 가진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간 남편에 대한 애끓는 아내의 사모곡이 새겨진 글을 읽으면서 정말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외도를 나와 ‘바람의 언덕’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마침 할아버지와 할머니에서 간난 아기까지 일가족 10여 명이 올라온 사람들의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
바람의 언덕의 풍차는 돌아가지 않았다. 풍차를 세워 둔 곳의 높은 부분까지 어떻게 올라갔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왔다는 표시로 이름이나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을 새겨놓았다.
비릿한 바다냄새를 뒤로 하고 거제 시내로 들어가서 ‘대구지리탕’을 먹었다. 심심하게 끓인 대구지리탕, 펄펄 끓는 국물에 미나리 향기가 가득했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고니와 대구살은 살살 녹았다. 토속 소주 한 잔을 입안에 털어 넣자 ‘대구지리탕’이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기분 좋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방문하였다. 군대생활을 전방 철책선에서 한 탓인지 그다지 감흥을 느낄 수 없었고 마음에 와 닿는 메시지도 없었다. 우리 땅과 하늘과 바다는 우리가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는데 아직도 꿈속에서 꿈을 꾸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지 모르겠다. 거제도를 벗어나 부산으로 향했다. 해저터널로 이어진 가거대교(가덕도와 거제도)을 건너서 부산으로 가서 동백섬을 걸으며 일주하였다. 제철이 아닌지라 동백꽃은 볼 수 없지만, 동백섬 산책로에서 시작하여 해안 데크길로 걸어가면서 바다와 어우러져 멋진 위용을 자랑하는 해운대를 보았다.
해운대를 벗어나 하루 밤 머물 곳을 찾아 부산진역 주변에서 적당한 곳을 골랐다. 숙박할 곳을 마련하고 부산진역 먹자골목에서 ‘꼼장어구이’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모두 취기가 올랐다. 주변 야경을 구경하며 보니까 30년 전 보름 간 머물었던 부산진역 부근이 완전히 새롭게 변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라는 말이 꼭 들어맞았다.
5월 12일(토) 여행 마지막 날, 부산에서 양산 통도사를 거쳐 언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서울로 올라왔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그동안 좋았던 날씨가 비를 뿌리기 시작하였다. 운전하는 친구에게 안전한 운행을 부탁하고 피로 때문에 짬짬이 차안에서 골아 떨어졌다. 부산을 벗어나 양산 통도사로 향했다. 주말이자 이른 아침 길이라서 자동차도 별로 없었다. 천천히 달렸는데 금방 양산 통도사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서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절 경내를 구경하니 부처님 오신 날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많은 보물과 국보를 가진 법보사찰 통도사, 문화유적을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벗겨진 단청을 새롭게 하지 않았는지 절집은 고색창연하였다. 부처님 진신 사리는 친견하는 시간에만 볼 수 있어서 보지 못해 유감이었다. 통도사를 나와 언양으로 가서 언양 불고기를 먹기로 했다. 함께한 사업가 친구가 언양에서 불고기 대신 꽃등심으로 한턱내어 아침 겸 점심으로 맛좋은 언양 등심과 육회를 맛보았다. 석쇠에서 살짝 구운 꽃등심 한 덩어리를 입안에 넣으면서 모두 ‘아, 맛있다’고 한 마다씩 했다. 좋은 고기를 대접해준 친구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고, 앞으로 여행을 할 때마다 이곳을 꼭 들려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 후기 >
우리의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어쩌면 올 가을 동해안 일주 여행을 할지도 모른다. 늙어가면서 친구들과 하는 여행은 그야말로 수다와 실없는 농지거리의 연속이다. 게다가 아직 입맛은 살아있어 맛있는 음식을 무척 반긴다. 싱싱한 동해안 횟감과 술에 쪄들은 속을 달래줄 곰치국 해장이 벌써 눈앞에 어른거린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로를 아끼고 생각하면 더욱 더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함께 길을 떠났던 동갑네들, 동행하지 못한 친구들 모두가 다가오는 가을엔 단풍을 맞으러 동해안 길로 떠나면 어떨까. (2018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