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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달라야합니다.(마28:1-10)
2012, 4/8 부활절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마28:1-10절 말씀으로“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달라야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선포하겠습니다.
이 말씀, 선포될 때 부활의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하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절제하고 금식하며 새벽기도 하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고난의 어두운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 부활의 아침이 더 밝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어려고 힘들어도 부활의 소망을 갖고 항상 기쁘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모두 앞뒤,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마태복음은 세리였던 마태가 자신의 물질적 부요함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면서 그가 보고 듣고 경험했던 예수님이 선생이나 선지자가 아니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말씀은 주님의 부활을 언급함으로써 기독교가 보통 종교중의 하나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살아있는 종교, 천지를 바꾸는 파워풀한 생명체임을 성령의 감동으로 온 천하에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큰 은혜를 주십니다.
첫째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날마다 기쁨으로 살아갑니다.(8절)
둘째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주님을 예배하며 살아갑니다.(9절)
셋째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주님을 증거하며 살아갑니다.(8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매년 한 번씩 부활하신 주님을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만납니다.
어떻게, 올해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셨는지요?
주님이 참으로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신다면, 그래서 그 주님을 만났다면 우리 삶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활이라는 사건 자체가 상상이 안 되는 엄청난 일이고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본문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우리 모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서 날마다 기쁨으로 주님을 경배하며 주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고 이런 삶이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여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령님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날마다 기쁨으로 살아갑니다.(8절)
본문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아멘.
드디어 눈에 가시 같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기세가 등등하여 나머지 추종자들을 잡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3시간동안 온 세상이 어두워졌고, 지진으로 바위들이 터졌으며, 무덤이 열리고 주안에서 자던 성도들이 부활하고, 성전의 휘장이 둘로 찢어지는 초자연적인 이적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죽인 자들은 여전히 이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나머지 잔당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강팍하면 하나님의 이적을 보면서도 저렇게까지 될까 두려워집니다.
이제 세상의 심판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더 강팍해져서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 목사 아들이면서 노원갑에 출마한 민주당 국회의원후보가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대적하고 찬송가를 저질스럽게 바꾸어 부르다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 앞에서 한없이 낮아지고 겸손해져야합니다.
왜냐면 주님은 나의 생명이시고, 나의 삶의 목적이며, 장차 죽음이후의 삶까지도 책임져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제자들은 한 순간에 예수님을 잃고 목자 없는 양이 되어 엠마오로, 갈릴리로, 고향으로 뿔뿔히 흩어져 다시 옛날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서 은신처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요20:19)
다만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지 못하던 막달라마리아를 비롯한 몇 명의 여인들만이 비참하게 돌아가신 주님 때문에 가슴앓이하다 어두운 새벽에 두려움을 무릅쓰고 장례를 치루기 위해 향유를 들고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이 여인들도 어찌 다른 제자들처럼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이 두려움을 이기고 이들을 무덤으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믿음 좋은 것은 남자보다는 여자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국가면 구원받은 사람도, 상급도 여자들이 훨씬 더 많을 것 같아 초초합니다. 남자들도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인들이 열심히 무덤으로 달려갔지만 텅 비어 있는 무덤과 천사들만 봅니다.
6절입니다.“그가 여기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여러분!!! 얼마나 놀라 자빠졌을까요? 얼마나 경악했고 얼마나 기뻤을까요? 여인들은 두려움과 기쁜 마음으로 무덤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대로,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행2:24절 말씀에“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어라 생각하시는지요? 아마도 죽음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큰 죄도,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죽음 앞에서는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지난번 노무현대통령도 임기 중 비리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해버리니 수사가 종결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사망이 우리의 왕 노릇한다고 말합니다.(롬5:17) 때문에 영육간의 죽음에서 자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날 눈부시게 발달한 생명과학도 약간의 생명연장은 가능해도 죽지 않게는 못합니다.
그런데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인류에게 죽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죽음이후에 부활이 참으로 확실하다면 이거야말로 천지개벽의 기쁜 소식, 복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부활의 주를 모시고 산다면 죽음의 문제만큼은 확실하게 해결 받은 것입니다.
우리주님이 죽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예수그리스도는 부활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주를 믿는 우리도 죽어도 다시살고 살아도 영원히 살기 때문에 오늘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너무도 귀하고, 기쁘고, 소중한 이유기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주변에 주일이 오고, 부활절이 와도 예배에 대한 감격도, 부활에 대한 기쁨도 없이 그냥 기독교 명절이고 달걀 먹는 날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부활절이구나. 세월 참 빨리 간다. 이러면 이미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매너리즘이란 일정한 기법이나 형식이 습관적으로 되풀이되다보니 독창성과 신선함을 잃어버린 것을 말하는데 우리말로 타성에 젖어있는 상태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최대의 적은 아마도 이 매너리즘이 아닐까싶습니다.
직장인이 매너리즘에 빠지면 직장생활에 활력도, 의욕도 신선함도 잃어버리고 월급만을 위해 피동적으로 움직입니다.
공무원이 매너리즘에 빠지면 국가와 국민에게 불성실하여 큰 피해를 줍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앙의 매너리즘일 것입니다.
신앙의 매너리즘은 현재는 물론 사후세계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매너리즘을 벗어나 오늘 기쁨과 감사함으로 주님의 부활을 경험하시고 주님의 부활을 나의 부활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을 살아갈 때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보이는 현실에 크게 영향 받지 마시고 항상 기뻐하는 삶이 되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인들처럼 말입니다.
우리주님이 항상 기뻐하라고 제일 먼저 말씀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여러분!!! 부활의 소망을 떠나서는 진정한 기쁨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이 부활의 소망과 감격을 가지고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주님을 예배하며 살아갑니다.(9절)
본문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아멘.
여인들이 안식 후 첫날, 주일 새벽에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말을 천사에게 듣고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급하게 내려가다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평안하냐고 물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합니다.
이 여인들이 얼마나 흥분되고 긴장되며 감격했을까요? 아마도 심장이 터지지 않은 것이 다행일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그때의 감동이 전해집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이 왜 경배했을까요?
그것은 이번 부활사건을 통해서 그가 참으로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롬1:4절 말씀에“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시니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내가 함께했던 분이 하나님이시라니 경천동지할 일입니다.
주님과 함께 지낼 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늘 하시던 말씀도 반신반의했고, 베푸시던 기적도 자주 보니 그려려니했는데 정말 부활하신 주님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면서 주님께 감사함과 미안함과 고마움이 겹쳐 자동적으로 경배가 되었습니다.
여인들이 지금까지 주님께 드렸던 경배 중에 오늘, 최상의 경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최상으로 예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예배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왕 되심을 고백하는 자리이며, 그의 통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또 예배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만나주시고 당신의 영광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출29:42절 말씀에“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회막문 앞에서 소나 양을 잡아 제사할 때 거기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만나주셨듯이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 거기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제사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아 관계가 회복되었듯이, 우리도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제사드릴 때 솔로몬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던 것처럼 우리가 예배하는 곳에 주의 능력과 영광이 가득합니다.
오늘 이 여인들을 보십시오.
죽은 줄 알았던 주님이 진짜로 살아났으니 얼마나 기쁘고 충격이었겠습니까?
부활의 주님 앞에 감격과 감동으로 눈물콧물 범벅되어 주님을 경배했을 것입니다. 예배는 이렇게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예배가 이런 예배이신지요?....
그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얼마나 이 여인들의 예배를 기꺼이 받으셨겠습니까?
이어지는 말씀이 그걸 증거합니다. 10절입니다.“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사랑하는 여인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사명이 주어집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마지막 승천하시기전에 주어졌던 내용과 비슷합니다.
그만큼 여인들의 예배에 주님이 감동하셨다는 뜻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렇게 주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예배가 필요합니다.
ex) 세계2차대전발발, 영국황실은 당시 가장 존경받던 윌리엄템플(William Temple) 대주교에게 국민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부탁➜그때 템플주교가 이렇게 대답➜“지금은 위로가 해답이 아니라 예배가 해답입니다. 이 땅에 거하는 주의백성들이 살아계신 주님 앞에 엎드려 그를 경배한다면 역사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부활의 아침에 이 땅의 모든 주의백성들이 살아계신 주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고, 경배한다면 우리의 역사도 달라질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를 통해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내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면 우리 기독교는 다 시 한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는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야하는 삶의 이유입니다.
우리 모든 신앙행위들이 바로 이 예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정해진 시간에 그저 의무방어전 치르듯이 몸도 마음도 아무 준비 없이 나와 억지로 예배드린다면 살아계신 하나님께 정말 안 될 일입니다.
오늘 이 여인들처럼,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감격을 가지고 드리는 여러분들의 예배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진정한 예배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셋째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주님을 증거하며 살아갑니다.(8절)
본문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아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기쁘고 흥분된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려가는 그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미션을 주십니다.“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주님이 형제라 말하는 이는 제자들이고, 내가 갈릴리로 갈 것이니 그들도 갈릴리로 따라오라는 말을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왜 갈릴리로 가셨는지, 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오라했는지, 그것보다는 오늘 우리는 주님이 이 여인들에게 주신 사명에 포커스를 맞추고자합니다.
여인들은 주님께 사명을 받고 달음질하여 맡은 임무를 완수합니다.
이 여인들은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최초의 전도자, 최초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마도 이 여인들은 죽을 때까지 부활의 주님을 만난 감격을 가슴에 품고 평생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복음전하는 것이 비단 이 여인들만의 일일까요?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우리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천국만을 선포하시다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신이후에도 전도는 계속하여 제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마28:19절 말씀에“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명령을 주님의 지상명령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백성은 이 지상명령을 준행해야합니다.
오늘 이 평범한 여인들이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다면 우리도 그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전도는 은사가 있는 특정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주부가 밥하고 빨래하는 것이 특별한 은사가 없어도 하는 것처럼, 전도도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은사가 없어도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재주가 없어서 못 하겠다는 것은 가정주부가 살림을 안 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ex) 과거 나치독일에 항거하던‘복음주의목사 긴급동맹’이란 단체를 이끌던 ‘말틴니묄러’목사가 체포➞1937-1945간 강제수용소 옥살이➞어느날 감옥에서 히틀러가 주님 앞에서 심판받는 꿈➞주님이 히틀러에게 질문, 누가 너에게 전도한 사람이 있느냐? ‘예 제게 아부하고 저항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전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때 자기를 바라보는 주님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면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잠을 깸.➞그 자리에서 기도➞’하나님!!! 히틀러를 미워하고 저항했지만 한번도 그를 사랑하거나 전도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니묄러목사님은 간수, 옥중동료들, 취조하고 감시하던 나치간부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증거. 하나님은 그를 전쟁이후에도 전도자로 크게 사용.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부활의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얼마나 그 주님을 증거하시는지요?
그분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시어 산자와 죽은자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그를 기뻐하시고 증거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가슴에 품고 주님과 하나 되어 날마다 승리의 삶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인들을 통해서 부활의 아침에 소망을 말씀을 주셨습니다.
첫째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날마다 기쁨으로 살아갑니다.(8절)
둘째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주님을 예배하며 살아갑니다.(9절)
셋째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주님을 증거하며 살아갑니다.(8절)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신앙과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은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도 성령으로 오시어 우리 안에 함께하시면서 저와 여러분들을 도우시고 계십니다.
그 주님 날마다 사랑하시고, 날마다 사람들에게 자랑하시면서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충성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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