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묻는 것은 가축만이 아니다.
-2011 제30회 필봉 정월대보름굿 행사를 취소하며-
지난 30여 년 동안 음력 정월이면 쉬지 않고 필봉골을 쩌렁 쩌렁 울리던 신명의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명의 소리에 홀리어 전국 방방곡곡에서 먼 길 불편해 하지 않고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한 판 대동굿판을 벌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대동굿판 속에서 신명난 풍물가락에 춤추고 뛰면서 지난 일년 동안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활활 타오르는 달집에 소원을 담아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에 보내며 앞으로 일년 동안 살아갈 희망과 에너지를 얻어갔습니다. 내년 정월대보름에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면서... 누구도 정월대보름굿이 열리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IMF가 왔을 때도 외환위기가 왔을 때도 우리는 사람들이 원했기에 어떻게든 그 행사를 준비하고 치렀으니까요.
그러나 IMF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나타났습니다. 구제역입니다. 온 나라가 수백만 마리 가축들의 죽음으로 신음하고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에서 정월대보름행사가 정말 중요하더라도 같이 농사짓고 소, 돼지 키워 생활하는 이웃들의 걱정과 아픔을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해마다 정월대보름 행사 때 당산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한 덕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필봉골은 구제역 청정지역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우리 풍물굿이 추구하는 대동과 협화의 정신에도 어긋난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이에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많은 사람들의 중지를 모아 내린 결론은 지역사회의 구제역 예방에 일조하고 이웃 축산농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2011 제30회 필봉정월대보름굿”행사를 취소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기에 필봉풍물굿을 사랑하고 정월대보름행사를 일년 동안 기다려왔던 여러분들의 이해가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대신 우리는 2011년 6월 5일(일) 단오풍물굿 행사를 준비하여 필봉풍물굿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보답하고 정월대보름굿판을 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생각입니다.
비록 피치 못할 사정이었을지라도 2011 제30회 필봉정월대보름굿 행사를 취소하게 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필봉농악을 지속적으로 아껴주시고 필봉농악보존회가 행하는 모든 행사에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2011. 1. 27.
중요무형문화재 제11-마호 임실필봉농악보존회
2011 제30회 필봉 정월대보름굿 준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