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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7.25 (토)
인천공항출발 -> 섬서성 성도 서안 -> 감숙성 성도 란저우 |
2일차 7.26 (일)
감숙성 란저우 -> 감숙성 자가나 티벳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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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7.27 (월)
감숙성 자가나 티벳마을
-> 샤허 ( 상커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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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 7.28 (화)
샤허 라브랑스 (랴브랑스, 상커초원) -> 감숙성 란저우 (감숙성 박물관) -> 감숙성 장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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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차 7.29 (수)
감숙성 장예 (칠채산, 대불사 티벳불교사원 마티스) -> 감숙성 둔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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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차 7.30 (목)
둔황 (세계문화유산 막고굴, 명사산, 월아천,둔황시 박물관) -> 신장위구르자치구 투루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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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차 7.31 (금)
투루판 (지하수로 칼징, 교하고성, 아스타나 무덤, 화염산, 투위그, 베제크릭 천불동) ->우루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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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차 8.1. (토)
우루무치 (신장위구르박물관, 고원호수 천지, 위구르시장 바자르) -> 섬서성 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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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차 8.2. (일)
서안 (자은사, 서안성벽)
-> 인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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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7월 25일부터 8월 2일까지 8박 9일 동안 실크로드를 다녀왔다. 이번 여행도, 내가 늘 다니던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사업단에서 진행하는 중국 소수민족을 찾아가는 공정여행이었다. 실크로드의 시발지인 시안에서 시작해서 감숙성 성도인 란저우와 장예를 거쳐 둔황과 신장위구르의 투르판과 우루무치 등, 여러 개의 실크로드 코스 중 오아시스육로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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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인솔자도 역시 우리나라 공정여행의 개척자, 내 여행의 스승, 최정규여행작가다. 공정여행은 주로 버스를 이용하고 민박을 하기 때문에 사실 돈도 더 들고 힘도 더 들지만, 가능하면 여행지 지역민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여행이다. 앞으로 모든 여행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우리가 여행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현지인들이 자기 땅에서 쫓겨나고 소외된다면 그건 그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정여행 얘기는 나중에 다시 좀 더 하기로 하고. 인천지하철 부평시장역에서 새벽 첫차를 타야 약속시간 7시에 늦지 않는데 부평시장역에서 지하철을 거꾸로 탔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치매 초기인가? 동수에서 내려 다시 계양 방향으로 탔다. 어쨌든 이제 내가 나를 못 믿는 나이가 됐다. 새벽부터 비가 퍼부어서 더 정신이 없었나? 여행 중 트렁크를 끌 때 비만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거우니 들 수도 없고, 우산 써봐야 가방은 비를 다 맞고. 비행기 안에서 읽은 신문에 나온 책 소개 중에 책 두 권이 눈에 띈다. 먼저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곤도 마리에라는 젊은 일본여성이 쓴 책. 그녀의 마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그렇구나. 두 번째 책은 이채훈의 <클래식 400년의 산책>. 비행기 안에서 그레고리 펙,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고전 영화 ‘로마의 휴일’을 봤다. 분명히 옛날에 봤을 텐데 진실의 입, 스페인광장에서 오드리헵번이 먹던 아이스크림 등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 로마의 어디인지 알고 보니 영화가 더 재미있다. 물론 영화 내용은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에 불과하지만.
3시간 넘게 걸려 시안에 도착했다. 공항 밖으로 나가니 강렬한 태양 아래서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에 눈뜨기조차 어렵다. 듣던 대로 날씨도 대단하다. 한 40도는 될 것 같다. 이런 날씨에 돌아다니는 건 미친 짓 같다.
제일 먼저 진시황 병마용갱을 봤다. 중국을 처음으로 천하 통일한 진시황이 사후에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려는 목적으로 병사와 말의 모형을 흙으로 빚어 실물 크기로 만든 것이다.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가 파편을 발견하며 알려졌고, 그 거대한 규모와 정교함으로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현재도 계속 발굴 중인데, 보병부대군단인 1호갱의 규모가 제일 크고, 2호갱은 마차부대군단, 가장 작은 3호갱은 잔차에서 부대를 지휘하는 사령부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발굴된 병마용은 대략 병사 8,000 점, 말 520점 전차 130개 정도로 알려졌다. 입장료도 비싸다. 병마용갱이 150원, 막고굴은 380원이나 한다. 요즘 1일 관광객이 46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입장료만도 어마어마한데 사진 찍기 좋은 위치는 또 돈을 받는다. 그런데 출구 쪽에는 스키장을 만들어 놨다. 대단한 상술이다.
시안이 성도인 섬서성은 대한민국의 2배 크기다. 지도의 모습이 마치 사람이 무릎 꿇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바둑 판 모양의 도로. 시안은 장학량 등이 장개석 등을 감금한 시안사변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현종과 양귀비 등의 화청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진시황릉은 차창으로만 지나가다가 봤는데 그냥 커다란 산 같다. 도굴을 대비해 수은 등 화학약품 처리를 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개장을 못한다는 말이 있다.
시안 성벽을 관람했다. 두께 12미터 높이 12미터로, 주원장의 아들이 건설했다. 당나라 때 건설한 것은 대부분 남아있지 않다. 이태백의 시에 나오는 당나라 장안성이 바로 이곳이다. (물론 현재의 성벽은 명나라 때 것이고, 1980년대까지도 계속 개축했다.), 당시 장안성의 인구가 백만이 넘었다니 참으로 놀랍다. 성벽이 넓으니 전기차도 다니고 자전거도 탄다.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모습이 수천년의 시간이 무색하다. 물을 사 마셨는데 이 성벽 꼭대기까지 오직 인간의 힘으로 나르는 모습을 보니 얼마를 불러도 싸다.
한조 때 도읍을 정하고 이름을 장안이라 했다. 장안(長安)은 ‘자손들이 영원히 평안하기를 바란다(欲其子孫長安)’는 뜻이다. 현재의 성벽을쌓은 명나라 때 이름이 시안으로 바뀌었다. 11개 왕조, 1100년 동안 도읍지였던 곳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다.
뷔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국수 만드는 솜씨가 예술이다.
밥을 먹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다. 성벽에 불을 밝히니 시안 시내는 낮과는 또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사우나 왔는데 무지 비싸다. 만 육천원. ㅠ 농민공들 거의 한 달치 월급이다. 티비도 있고,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수건도 건네준다.
시안에서 감숙성 성도 란주까지 밤새 기차를 탔다. 중국에서 기차 타는 일은 전쟁이다. 천신만고 끝에 기차를 타면 그 다음은 좌석이 문제다. 상, 중, 하 중에서 '상'이 지옥이라면, '하'는 천당이다. 나는 '중'. 그나마 다행이다.
* 시안
중국 산시성의 성도,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세운 호경(鎬京)에서 비롯되며, 그뒤 한(漢)나라에서 당(唐)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1,000여 년 동안 단속적이었으나 국도(國都)로 번영한 역사적 도시로 그 동안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1943년에 시(市)가 설치되었다. 가장 번영했던 당대에는 동서 9.5km, 남북 8.5km의 규모에 인구 100만이 넘는 계획적인 대성곽 도시를 이루어 멀리 서방에도 그 이름이 알려졌다. 그러나 당나라의 쇠퇴와 그에 따른 병란으로 장안도 파괴되어 쇠퇴하였다. 현재의 시역(市域)은 명(明)나라 때 구축한 주위 13k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와 교외로 되어 있으며, 구시가는 당나라의 장안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고도의 면모를 간직하는 한편 관공서와 상점 등이 밀집해 있다. 역사적 도시로 사적이 풍부하다. 남쪽 교외에 있는 자은사의 대안탑은 현장이 창건한 45m의 7층 전탑(塼塔)으로 그 위에서 조망하는 관중분지의 풍경이 뛰어나다. 양귀비가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화청지 등이 유명하다. 또 성내에 있는 역사박물관(옛 공자묘)에는 부근에서 출토된 유물이 진열되어 있고, 북쪽의 비림에는 당·송나라의 고비가 많이 보존되어 있다.
실크로드의 출발점으로 중국과 유럽을 잇는 오랜 역사를 간직해온 천년 고도 시안이 이제 중국 시진핑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 계획의 물류, 교통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일대일로 계획은 시진핑 주석이 2013년 9월과 10월 제시한 것으로 시안-중앙아시아-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푸젠성 취안저우-동남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연결하는 무역로 구축을 말한다. 시안은 서부 내륙이라는 지리적 위치 탓에 해상 물류 이용이 어려워 중국의 연해 중심 경제 성장에서 오랫동안 소외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향해 열린 창으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60%에 이르는 40억명,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에 달하는 20조달러 규모의 60여개국을 아우르겠다는 일대일로 계획이 고도의 잠을 깨운 것이다.
* 병마용갱(兵馬俑坑)
중국 산시 성 시안 시 린퉁 구에 있는 진시황릉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는 유적지로 흙을 구워 만든 수 많은 병사, 말 등의 모형이 있는 갱도이다. 병마용갱은 진시황제의 장례에 사용된 테라코타(terracotta)이다. 1974년 농민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되어 지금까지 4개의 갱도가 발견되었다. 병용은 키가 184cm에서 197cm로 큰 편이며 장군이 병사들 보다 크게 만들어져 있다. 병마용은 전사, 전차, 말, 장교, 곡예사, 역사, 악사 등 다양한 사람과 사물을 표현하고 있다. 발굴된 4개의 갱도 중 3곳에 모두 8천여 점의 병사와 130 개의 전차, 520 점의 말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아직도 발굴이 되지 않은 상당수가 흙 속에 묻혀 있다. 병마용의 병사들은 장인들에 의해 머리, 몸통, 팔, 그리고 다리가 각각 제작된 후 결합되었다. 연구 결과 제각기 다른 얼굴을 위해 8 종류의 틀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다른 부위도 각기 여러 종류가 있어 이들을 조합하여 다양한 형태의 병마용을 제작한 것이다. 다리 부분은 대부분 동일한 형태로 같은 틀을 사용하여 대량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조립을 위해서는 각각의 부분을 맞춘 뒤 다음 과정으로 넘겨주는 생산 공정에 따른 조립 라인이 있었을 것이다. 최근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 기와의 생산과 같은 일상 생활 용품의 제작에서도 이러한 생산 라인이 존재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병마용은 살아있는 듯한 모습의 등신대로 제작되었으며 얼굴 부위에는 채색의 흔적이 있다. 병마용의 존재는 진시황제의 강력했던 권력을 상징한다.
* 진시황릉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사기는 진시황이 340만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기원전 246년에 건축되기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릉은 지상의 황궁을 그대로 옮긴 것과 같은 규모이며, 수은이 흐르는 5,000여개의 강과 수십 개의 망루를 가진 도성 안에 온갖 보물과 병사로 화려하게 조성하였다고 전한다. 진시황릉은 지상 궁전을 재현한다는 개념으로 지어졌으며, 완공이 된 후에는 도굴을 막기 위해 동원되었던 인부들을 모두 사살하였다고 한다. 2003년 1월 9일 진시황릉의 부장릉이 발견되어 진시황릉이 병마용 뿐만 아니라 실제 황궁을 재현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최근 조사 결과 병마용갱 부근의 리산의 토양이 많은 수은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이곳이 바로 진시황릉이 조성된 곳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자면, 진시황릉은 높이 76미터 넓이 350 평방미터에 이르는 흙으로 조성된 거대한 피라미드인 것이다. 리산에 대한 발굴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7년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원격 탐지 장치를 이용하여 내부에 벽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 시안 성벽
14세기 명나라에 의해 조성된 성벽. 현존하는 중국의 성벽 중에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나다.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