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둔역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대한문학세계 기자, 소운/박목철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은 기차 여행의 추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계실 것이다.
지금은 살기가 좋아져 나들이하는 방법도 아주 다양해졌지만, 예전에는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대개 기차 편을 이용하는 게 일반적인 이동 수단이었다. 도로 상태도 열악하고
자동차도 많지 않아 자동차를 이용하여 장거리를 이동하는 경우는 드물어 여행하면 기차 여행이었다.
기차도 지금의 기차와는 비교할 대상이 아닐 만큼 속도도 느리고 여행 시간이 오래 걸렸다.
친척 집에라도 갈 양이면 기차표를 사려 정거장에 미리 가서 줄을 서야 했고, 기차를 타려면 줄을 서서
대기하는 시간이 서너 시간은 보통이었다. 좌석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통 2인승 좌석에 3명이 끼어
앉는 것도 호사에 속할 만큼 긴 시간을 서서 가는 사람이 가득한 것이 옛날 기차의 모습이었다.
서울, 부산 정도의 거리를 가려면 하루 밤낮을 꼬박 걸려야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급행이니 하면서 서울, 부산을 15시간에 주파한다고 했던 것 같으니 말이다.
기차는 정거장마다 정차해 어떤 역은 지겨울 만큼 정차 시간이 길기도 했지만 다 그러려니 해서
불만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긴 정차 시간은 여행의 지겨움을 덜어주는 요소이기도 했다.
기차가 정차하면 주변에 커다란 시장이 형성되곤 해서 인근 주민들이 들고 온 과일이며 밥이며
음료수를 사서 마시는 재미에 지겹다는 생각보다는 행복한 추억으로 기차 여행이 오래 기억되었다.
*삭틴을 때서 달리는 증기 기관차이다. 어른들은 증기 기관차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 (일본 기차 박물관에 보존된 옛 기관차)
요즘은 가족 여행을 기차로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여행하면 당연히 자가용을 이용한 여행을 떠 올릴 것이고 먼 거리는 당연히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몸은 편해졌지만, 아이들에게 쌓아 줄 추억이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하다.
이런 기차 여행의 추억 탓에 정동진역의 풍광에 반해 단번에 정동진을 관광지로 탈바꿈시켰지만,
정동진을 가보면 고즈넉한 옛 역사의 모습은 상상에도 남아 있지 않을 만큼 도시화 돼 버렸다.
우연한 기회에 양평 인근의 구둔역을 방문하게 되었고 아득한 추억 너머에 있던 옛 기억을 떠올렸다.
구둔역은 1940년에 지어졌으니, 옛 역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도 하지만 앙증맞게 작은
역사의 모습을 보면, 흡사 동화 속의 무대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사는 옛 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1940년 4월 1일 영업을 시작한 이래 청량리와 경북 경주를 잇는 철도로 강원도 강릉, 태백까지
수많은 화물과 사람을 실어 나르다 세월에 밀려 2012년 8월 16일 폐역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구둔역은 72년의 역사의 흔적을 풀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근대 등록 문화유산 제296호)
폐역이 되어 기억 너머로 사라질 구둔 역에 꿈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아깝게 방치된 공간을 문화 공간으로 가꾸려는 사람들을 만났다.
공연 준비에 바쁜 구둔역의 꿈나무를 심는 두 사람, 김영환 씨와 조재국 씨를 "잠깐 시간을" 하며
5백 년 수령의 향나무 밑에 펼쳐놓은 간이 테이블에서 얘기를 나눴다.
김영환 씨는 구둔 문화 공간을 총괄 기획하는 분으로, 뜻깊은 기획의 공을 장모님에게 돌리는 겸손함을
보였다. "장모님께서 지평과 인연이 있으시고, 구둔역을 아깝게 생각하셔 큰 꿈을 펼치셨습니다."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가족과 함께 찾아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가꾸겠다는 포부가
대단했다. 구둔역을 돌아보며 실현 가능한 꿈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 오른쪽 위가 김영환 씨이고 아래가 조재국 씨이다.
유치원 아이들이 공연과 체험 학습을 하겠다고 버스를 타고 단체 학습을 왔다.
양수리에 있는 양수 어린이집에서 온, 50명 정도의 어린이가 동화극을 보며 즐거워했다.
공연극의 프로그램을 짜고 기획하는 조재국 씨는 배우 생활과 극단 운영을 하던 베테랑으로
지금의 동화극은 -환상 특급 열차를 움직이는 비밀의 언덕- 이란 아주 유익한 동화극으로 기자도
재미있게 관람하였다. 공연 시간은 40분 정도, 세 명의 배우가 소품을 이용하여 재미있게 연극을 펼쳐 보였다.
올해 말까지는 환상 특급 열차를 움직이는 비밀의 언덕을 공연하고 후속 극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간소한 무대와 소품, 적은 배우로도 재미있게 연극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참 재간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양서 어린이집에서 체험 학습 차 구둔역을 찾았다. 동화극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구둔역 문화 공간은 9개의 주제를 가진 공간으로 가꾸고 있다고 했다.
아담한 카페도 있고, 5백 년 수령의 향나무에는 소망을 담은 황금빛 쪽지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고
선로 위에는 추억을 담은 옛 기차가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구둔역에 있는 동물들이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얀 돼지는 사람을 보면 만져 달라고 머리를 디밀고, 간이 의자에 잠깐 앉은
사이에 새까만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무릎에 오르겠다고 경쟁을 했다. 토끼도 있고, 커다란 개도 있다.
다 사람을 보면 좋아서 가까이하려 한다. 애들도 동물을 좋아하니 좋은 체험이 될 것같다.
*고백의 정원이다. 시계 앞에서 마음에 담아 둔 고백을 한다면?
*오백 년 수령의 향나무에 달린 온갖 소망들,
*돼지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역사(驛舍) 안(안이라 해야 정말 연극의 소품같이 작다)에는 옛날 시간표가 그대로 아직 걸려있다.
매표구 아래로 들여다보니 옛 도시락의 안내가 붙어 있었다. -도시락과 사이다, 달걀- 옛 기차 여행을
행복하게 했던 옛 메뉴 그대로였다. 밖에서 식사하기로 예정돼 있었기에 다음에 한 번 먹어봐야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아까 본 유아들이 생각나 관계자에게 물었다. -애들이 도시락을 잘 먹을까요?-
인스탄트 식품에 길들은 애들이 혹시 하는 마음에서였다. "지금 먹고 있는데 다들 아주 잘 먹어요"
녀석들도 옛 정서를 유전으로 물려받았나 보다.
*달걀과 사이다는 여행길이나 소풍에 빠지지 않던 메뉴이다.
*옛 열차 시간표와 운임표가 그대로 벽에 붙어 있다.
애들이 체험 학습을 하는 동안 역사 안을 둘러 보았다.
선로가 저 멀리 펼쳐져 있고,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아직도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부산도 있고, 강릉도 보였다, 지금이야 내 집 드나들듯 여행을 하지만, 예전에는 아득한 거리 너머의
미지의 세계였을 것이다. 코스모스가 살랑대는 철길에서 바라본 선로 끝 저 너머를 그렸든 옛 시절이
가슴 저리게 다가왔다. 이것만으로도 구둔역은 충분히 가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 매김 할 것이다.
*이정표는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득히 뻗은 철로가 적막에 싸여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보고 즐길 거리가 많지 않다.
이 글을 서둘러 쓰는 까닭도 긴 추석 연휴 동안 외국이나 하다못해 국내 여행도 떠나지 못한 많은
서민들이 시간 보내기가 마땅치 않으실 것이다.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구둔역은 이런 분들이
가족과 함께 찾을 좋은 문화공간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애들과 공연도 보고, 옛 도시락과 사이다도 맛보고, 소원을 적어 오백 년 은행나무에 걸며
작은 행복을 맛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기자는 아득히 뻗어 나간 선로를 보며 옛 추억에 흠뻑 젖어
행복을 느꼈다. 작은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작은 폐역 구둔역이 말하고 있었다.
구둔역, 소운/빅목철
구둔역에서
마음속 차표를 끊으려다
잠시 망설였다.
부산 자갈치 시장의 왁자한 삶의 소리,
강릉 경포대 바닷가의 철 지난 파도 소리,
어디가 좋을까?
깜장 고양이가 무릎에 올라
조심스레 손가락을 물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부산, 안동, 강릉, 망각된 이정표 너머
파아란 하늘로 잠자리가 날아올랐다.
구둔역의 가을이 높았다.
*구둔역을 찾으시는 분을 위한 안내, (이 기사는 문화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대가성 있는 홍보 기사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