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곳에 가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없는 나라가 없습니다. 또 어느 나라에서도 우리 한국 사람은 거지로 살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그리고 세계의 유명한 학교에 가도 우리나라 학생들이 많고 공부를 잘 합니다. 미국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은 한국 학생이라 할 정도로 우리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미래를 한국 사람들이 이끌 수 있다고 예측할 정도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각계 각 분야에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강수진이라는 우리 한국의 딸이 깃발을 날리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라는 칭찬을 듣는 그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그 강수진이 쓴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연습이지요. 노력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매일 열 시간 이상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연이 있으면 밤 11시까지 연습을 한답니다.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 외에는 연습만 한답니다. 세상이 힘들다 해도, 아닙니다. 노력하면 반드시 그 열매가 오는 것입니다. 노력은 쓰나 그 열매는 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만 벌려 하니 돈이 벌리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일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돈은 따라 오는 것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성공하면 돈 걱정은 하지 않게 됩니다. 돈 때문에 일하는 사람은 참 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일이 좋아 그 일을 열심히 하면 돈은 따라 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회고록을 쓴 의학자 부키는 아인슈타인의 일생을 살핀 후에 '아인슈타인은 돈을 모르는 사람, 돈을 갖고 다니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연구에 바빠서 돈 쓸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일하지 않고 노는 사람은 돈 쓸 일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록펠러 재단에서 아인슈타인에게 연구비로 1500불을 주었답니다. 그때 1500불은 큰돈입니다. 그런데 그는 1500불짜리 수표를 받아서 책상 위에 던져 놓았습니다. 하루는 책을 읽다가 그 수표를 책갈피에 끼워 놓고 산책을 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도둑이 들어와서 그 책과 수표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때 아인슈타인이 "돈이 좋긴 좋구먼. 돈 따라 책도 가버렸네."라고 했답니다. 이렇게 일생 돈을 몰랐지만 그는 자기 일에 몰두하니 돈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오늘날 대학의 훌륭한 교수들 중에서도 돈 문제로 나래를 접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열심히 일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따라 합시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악한 것과 게으른 것은 같은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하지 않으면 악한 것입니다. 회사원이 일하지 않으면 악한 사람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착하고 선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살아야 됩니다. 디모데전서 4장 15절 말씀, 이 말씀을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노력하면 진보해서, 사람들이 “당신, 언제 그것을 했어요?”하며 깜짝 놀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그렇게 진보하여 잘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경영하는 병원이 진보해야 됩니다. 여러분의 사업장이 진보해야 됩니다. 학생은 학교 성적이 진보해야 됩니다. 안 되는 것 같아도 노력하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행가가 있습니다. 「안 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 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열심히 노력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삽시다. 열심히 살면 절대로 헛수고가 되지 않습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편 128:2)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손이 수고한 대로 먹게 되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십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살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성공케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열심히 살아서 나 하나 잘 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잘되면 물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내가 열심히 살고 잘되면서 이웃을 돌보는 마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자연적으로 마음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이 말씀합니다.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성도들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바울이 말씀합니다. 바울의 삶이 성도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살려고 일부러 노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고 나니 그것이 이웃과 성도를 위한 삶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외에는 하지 않고 사십니까? 여러분 중에 숨은 부끄러운 일을 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아내가 아는 남편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벗어 버려야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벗어버리게 되니 아내에게 떳떳한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신 그 일이 곧 우리를 위한 일이 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려 돌아가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일이 바로 하나님을 위한 일이고 곧 우리를 위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또 이웃의 사랑이 함께 나옵니다. 마태복음 22장 36절에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합니다. “예수님, 계명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37절에서 40절에 보면 예수님의 대답이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대 강령이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함께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이 좋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라고 하면 이웃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항상 이웃을 배려해서, 바울의 모든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의 모든 삶도 하나님을 위한 삶인 동시에 나 아닌 이웃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삶으로 꽃피고 열매 맺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 지용수 목사가 공부를 해도 저의 발전을 위해서, 설교를 해도 저를 위해서 한다면 저는 주의 종이 아닙니다. 10만 명을 구원해도 제가 유명해지려고 한다면 저는 나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귀한 말씀을 바로 전해야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해야지.’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일하는 것이 곧 여러분을 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삶이 여러분을 위해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참 신비롭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웃을 생각하며 살면 그 삶이 아름답습니다. 어느 날 간디가 여행을 가려고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기차가 출발하는 순간에 간디의 신발 한 짝이 플랫폼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간디가 나머지 신발 한 짝을 급히 벗어서 창 밖으로 던졌습니다. 옆에 있던 수행원들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아니, 어찌하여 한 짝의 신발마저 밖으로 던지셨습니까?” 미소를 머금고 간디가 대답했습니다. “생각해 보게나. 가난한 사람이 신발 한 짝만 주웠을 때 얼마나 안타까워하겠나? 내가 나머지 신발도 던져 주어야 그 사람이 신발을 신을 것이 아닌가?” 간디가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던진 것은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도, 하나님을 모르고도 그렇게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여러분과 저이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하는 동시에 이웃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많은 사람이 감사하게 됩니다. 값진 사람, 매력 있는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에 감사를 불러일으킵니다. 우선 가족끼리도 그렇습니다.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사는데,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속을 썩이며 한숨을 뽑아내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어떤 자녀는 부모의 가슴에 감사를 불러일으킵니다. 부모가 아들딸, 며느리를 생각하면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찌 저렇게 귀한 아들딸, 며느리를 제게 주셨습니까?”하는 감사의 마음이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부모의 가슴에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마땅히 되어야 합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의 가슴에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밤낮으로 술이나 마시며 나쁜 짓을 하고 다니면 자식이 상처를 받습니다. 부부 싸움을 하면 자식이 상처를 받습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근실하게 살면 아들딸이 “하나님, 아빠 때문에 감사해요. 엄마 때문에 감사해요.” 하며 행복해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 살면 그 자녀들이 부모 때문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생 때문에 고민하고 형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반듯하고 귀하게 살면, 요셉 때문에 열한 형제가 감사하듯이, 나 때문에 형이, 동생이, 누이가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성령을 따라 사는 아내는 남편의 마음에 ‘하나님, 내게 이렇게 귀한 아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운 내 아내!’ 하는 감사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잘못 사는 아내는 남편의 근심 덩어리가 됩니다. 남편이 아내를 보면 ‘어쩌다 저런 여자를 만나서 이렇게 사는고?’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부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우리 일생은 끝나게 되는데, 왜 남에게 아픔을 주고 미움을 받으면서 삽니까? 그리스도인답게 마음을 써서 가족과 형제, 이웃을 돌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룻기를 읽다가 향기를 맡았습니다. 룻기 2장 4절에 보면, 보아스가 자기 밭을 주욱 둘러보고는 거기서 일하는 종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복을 빕니다. 그러니 종들도 보아스에게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합니다. 보아스는 요즘으로 하면 경영주, 주인입니다. 경영주는 사원들을 축복하고 사원들은 경영주를 축복하고,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나라의 모든 회사가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경영주는 ‘어떻게 해야 우리 사원들이 우리 회사 때문에 좀 더 잘 살게 되고 사원들의 가정이 복될까?’를 생각하며 사원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또 사원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회장님, 우리 사장님이 기쁘게 사업할 수 있을까?’하며 경영주를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하며 회사를 위해 밀알이 되면 천국 같은 회사가 될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경제가 이렇게 어렵게 된 것은 노사 분규 때문입니다. 노사 분규가 없었다면 우리 경제가 얼마나 더 앞서 갔을지 모릅니다. 노사 분규가 없었다면 각 기업들이 더 많은 회사와 공장을 세워서 졸업한 우리 청년들에게 일자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노사 분규를 하는 것은 서로의 욕심 때문입니다. 사원들은 경영주와 회사를 위해 밀알이 되고 경영주는 사원을 위해 희생하면, 또 국가를 생각하며 모두가 크리스천의 마음으로 일하면 우리나라의 산업이 얼마나 일어나겠습니까? 덴마크의 국부적인 존재 그룬두비 목사님과 달가스는 자기 가족만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황폐하게 된 땅, 못 쓰게 된 땅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나라를 사랑합시다. 땅을 사랑합시다. 무기로 잃은 땅을 호미로 되찾읍시다. 밖에서 잃은 땅을 안에서 되찾읍시다.”라고 호소하며 사비를 털어 덴마크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마침내 덴마크 땅에 맞는 전나무를 심어 땅을 옥토로 만들었습니다. 어차피 흘러가는 세월인데, 나라를 위해 사니 그 은혜가 넘쳐 많은 사람이 감사하게 되고 그 감사가 넘쳐 또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15) 따라 합시다. “은혜도 넘치고 감사도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간단합니다. 내가 나만 위해 살면 감사도 없고, 은혜도 없고, 하나님께 영광도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 감사도 넘치고 은혜도 넘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나 때문에 은혜를 받고 감사하며 살고 기쁘게 살고 잘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귀하게 살아왔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조금 더 바르게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링컨을 아주 좋아합니다. 링컨을 생각하면 향기가 나고 참 기쁩니다. 링컨은 자신만 위해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도 생각하고 이웃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점원으로 일할 때의 일입니다. 한 손님이 차 500g을 달라고 해서 500g을 달아서 팔았습니다. 손님이 다 가고 난 후에 가게 문을 닫으면서 저울을 보니 저울의 눈금이 50g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손님에게 차를 450g밖에 주지 않은 것입니다. 링컨은 소스라치게 놀라 차 50g을 달아서 그 손님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저울을 확인하지 않아서 바늘이 50g 더 나가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여기 50g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링컨! 이 늦은 밤에 50g 때문에 이 먼 길을 오다니…….” “오늘 잘못한 일은 오늘 바로 잡아야지요. 죄송합니다.” 향기가 나지 않습니까? 그는 변호사 시절에도 아주 귀하게 일했습니다. 한 의뢰인은 재판에서 이기자 링컨에게 사례비로 25불을 주었습니다. 그 당시 25불은 큰돈이었습니다. 그런데 링컨은 “제가 일한 대가는 15불이면 충분합니다.”라고 하면서 10불을 돌려주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매사에 그렇게 사니 링컨을 그리스도의 축소판이라 합니다. 우리도 링컨이 될 수 있습니다. 링컨 한 사람 때문에 세계가 은혜를 받고 세계가 감사하며 세계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살면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한 교회에 전도를 아주 많이 하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신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전도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침에 일어나시면 동네 앞길을 다 쓰셨습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의 일을 다 도와주고, 이사 오는 집이 있으면 감자도 삶아 가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할머니의 삶이 귀하고 인격이 귀하니 사람들이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마을을 위해, 남을 위해 사니 전도 열매가 그냥 맺힌 것입니다. 인생은 쉽습니다. 공부도 쉽습니다. 공부가 보이는 사람에게는 공부가 쉽습니다. 은혜를 받고 공부하면 공부가 머리에 잘 들어와 공부가 잘 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분별이 잘 됩니다. 은혜를 받고 사업하면 사업이 잘 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자세가 아름다우면 우리가 무엇을 해도 잘 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위하고 모든 사람을 위해 사니 최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약의 최고 인물은 사도 바울이고, 구약의 최고 인물은 모세인데,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나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미국 마리브 해변에 20톤이 넘는 큰 바위 하나가 솟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변 쪽의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볼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저 바위가 넘어지면 우리 마을은 큰일 난다.” 특별히 이사 온 사람들은 그 바위 때문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바위 때문에 불안하니 바위를 없애 달라.’라는 진정서를 주 당국에 냈습니다. 주 당국에서 그들의 청을 들어주어 헬리콥터와 불도저를 동원하여 그 큰 바위를 마을 반대편 고속도로로 넘어뜨렸습니다. 그 바위는 이제 아무 쓸모없는 돌덩어리였습니다. 그런데 한 조각가가 그것을 백 불에 사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 배우 존 웨인의 상을 조각했습니다. 그것이 몇 백만 불에 팔렸습니다. 쓸모없는 돌이지만 조각가가 조각하니 값진 물건이 된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미완성 작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당에 갈 때까지 우리를 자꾸 다듬으십니다. 할렐루야! 오늘도 이 말씀으로 여러분과 저, 우리를 다듬고 계십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다듬어 주시는 대로 살면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주님의 모습이 조각됩니다. 그래서 우리 때문에 주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시고, 이웃도 은혜를 받고 감사하게 되고, 우리도 생애를 마칠 때 값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값진 사람이 되려고 그렇게 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나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오늘 본문 말씀처럼 많은 사람을 위해 사는 아름다운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내일도 또 주님 오실 때까지 남을 위해 살고 은혜와 감사가 넘치게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사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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