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은하마을 별 바라기 소년
보현산 계곡은 댐을 만들었다. 또 실개천이 흐르는 은하마을도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조금씩 만들어진 자생 마을은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었다.
은하 마을 계곡 아래 옹기종기 여러 집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집 한 채.
큰비가 오면 불어난 계곡물과 함께 산이 품고 있다가 힘에 겨워 풀어버린 돌과 나무 황토에
쓸려 나갈 것처럼 너무 물가에 있어 위태해 보였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그런 적은 없었다.
‘성 한남’ 씨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집은 조금 오래되고 허름했던 집이었다.
군 제대 후에 답답한 시골집에 머물 수가 없어 직업을 찾아 서울 상경을 했다가 돌아와
얼마동안에 배운 솜씨로 리모델링을 한 집이다.
리모델링으로 세월을 거꾸로 흐르게 한 집.
지금은 2차선 포장도로가 생긴 별빛 테마마을은 어린왕자를 주제로 벽화마을로
관광객도 많아진 마을이지만 은하마을은 좀 더 숲속인 천문대 계곡 아래로 자리하고 있어
더디게 변하는 슬로우 산촌이다.
‘성 한남’씨처럼 23세 아들 ‘성 환희’도 제대를 하여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구 50사단을 떠나며 긴 기다림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에 그리던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집에 간다. 한 송이 기다려.’
대구 동부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영천 행 버스를 탔다.
화북면 정각리를 가려고 영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갈아탔다.
창가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던 송이 그림자 뒤에
가려진 아버지. 박 하순 해설사. 천문대 대장. 전 용철 연구원 등등 천문대와
천문 전시 체험관 직원들이 하나둘 그제야 떠올랐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제 송이를 만날 수 있을 거야. 찾을 수 있을 거야. 꼭 찾을 거야.
송이가 내 온 맘을 차지했어. 송이는 내 가슴에 붙박이별이야.’
2살 연상이라 머리에서는 누나 불러야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누나보다는 친구,
친구보다는 연인으로 오래전부터 키워 버려 돌이킬 수 없었다.
송이를 만날 수 있다는 부푼 꿈이 버스보다 앞서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궁금한 환희는 바위틈에서 나와 해를 보고 바람을 맞이하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연두 빛 새싹처럼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현실로 만들어 가리라 다짐했다.
군대를 제대한 성인이라기보다 그 마음은 아직도 소년 같은 생각이었다.
군 입대 전과 다름없는 어린 왕자였다. 아니 더 오래전으로 돌아간 초등학교 6학년
끄트머리로 졸업 날짜를 받은 졸업반이었다.
‘아버지도 집도 잘 있겠지? 내 방도 노송이도 잘 있겠지?
어머니 추억의 그림자는 그대로일까?’
노송이는 환희 부자가 오랫동안 키워온 늙은 개 백구이다.
1996년 보현산 천문대가 들어서고 그 다음해 초여름에 아버지는 보현산 천문대
계약직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계약직이지만 성실하고, 천문대 대장과의 처음 만남이 특별한 상황이라
그 정과 깊은 인연과환희로 인하여 연장 연장하며 경비 겸 시설물유지보수 관리자로
오랫동안 근무를 하고 있었다.
환희 어머니 ‘왕 별꽃’씨는 천문대 직원15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조리사였다.
버스에서 내렸다. 천문대 이정표가 보이고 ‘옥계교’를 건너 10분. 정각교회가 보였다.
환희가 가끔 특별한 날에만 다녔던 교회다.
정각리 천문로 9.3킬로는 아버지가 건설노동자로 일을 할 때 어머니 왕 별꽃 씨와
함께 참여했던 도로이다.
천문로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정각리 은하마을로 들어섰다.
한산한 산골마을이라 사람대신 오래된 정자나무가 반겼다.
조금 들어서자 사람들이 보였다.
언제나 그러듯이 천문대 관광을 온 사람들이 가끔 심심풀이로 산골 마을도 구경삼아
눈에 담아가는 마을이었다.
천문대 대장님 아내 김 인숙 국어 선생님처럼.
담 넘어 집들을 기웃대는 구경꾼만 보이고 오늘은 주말이 아니라고
주민들은 보이지 않았다.
환희는 마을을 관통하여 또 조금 걸어 외딴집 맨 끝집 마당에 들어섰다.
“와~ 우리 집이다.”
마당에서 뒤돌아있던 개, 엉덩이 털도 빠진 늙은 백구‘노송이’가 목줄도 없이
환희를 힐끗 돌아보았다.
‘언젠가 본 사람일까?’ 하고 두 눈을 꿈뻑거리다가 그제야 알아본 듯
느릿느릿 반가운 꼬리를 흔들었다.
“노송이~ 잘 있었냐? 많이 늙었네~ 내가 안 보던 사이에?”
털이 숭숭 빠진 늙은 개 노송이가 불쌍해서 안아 주었다. 눈가에 눈물과 먼지가
말라붙은 눈곱도 측은해서 닦아 주었다. 갑자기 울컥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렇게 많이 늙었냐~ 노송이는~”
환희의 목소리를 듣자 큰 개집에서 다른 개 한 마리가 목줄을 달고 불쑥 튀어 나왔다.
“어? 반송이다. 초송이가 벌써 반송이가 되었네?”
지난번에 휴가 왔을 때 보았던 새끼 ‘초송이’가 어느 사이에 훌쩍 자라 ‘반송이’가 되어있었다.
반송이는 노송이가 꼬리를 흔들어 아는 사람이라고 말해준 듯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펄쩍펄쩍 뛰며 쇠 목줄 소리를 요란하게 냈다.
윤기가 반지르르한 반송이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반송이도 잘 있었냐? 이젠 우리 넷이서 함께 살자~”
“아버지가 출근할 때 묶어놓고 가지 않으면 천방지축 지축을 흔들고
온 동네와 산을 뛰어 다닐까봐 목줄을 달았구나?”
반송이가 측은해서 안고 입 맞추고 부비고 안아주었다.
하지만 마음은 노송이 반송이가 아니었다.
군 생활 내내 기다렸던 개들의 이름 속에 담긴 ‘한송이’였다.
송이는 백구가 처음 들어왔던 6학년 어느 날 환희의 마음속에 찾아든 별과 같은 존재였다.
그 송이라는 신성을 바라보아야만 행복한 별 바라기 어린왕자였다.
6학년.
동네 할아버지가 키우던 백구가 새끼를 낳았다.
졸업은 아직 멀었는데 졸업선물을 핑계 삼아 주셨다.
“아이구 한남씨 우리 백구가 새끼를 10마리나 낳았는데 너무 많아서 키우기가 곤란해~
아들이 혼자 놀기 심심할 텐데 졸업 선물로 한 마리 키울래요?”
“아 예 감사합니다. 환희가 날마다 천문대에서 별만 보고 컴퓨터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잘 됐어요.”
“잘 됐네~아버지랑 천문대 대장님이랑 사모님이랑 쉬는 날에 함께
산에도 데리고 다니면 아주 좋을 거야.”
“예. 고맙습니다.”
환희네 집에서 태어난 개들은 새끼를 낳고 늙어죽고 대를 이어온 백구의 혈통은
죽을 때까지 이름이 네 번 바뀐다.
백구를 선물로 받은 환희는 아버지와 함께 개 이름 짓기에 들어갔다.
이름 짓기는 천문대 대장의 아내 인숙을 보고 자라서 자신도 모르게
따라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안계서서 외로움을 탄 환희의 마음속에는 막내이모나 어머니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 환희는 아버지와 함께 먹고 자고 살아서 남자의 향기가 나야 했지만
마음속에 그리움이 여성성을 더 많이 자라게 만들어 때론 소녀 같기도 했다.
딸부자 집에 막내아들처럼. 남녀 경계의 벽을 넘어 티 없이 자란 소년처럼.
“환희야 개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하얀 개니까 백구가 어때?”
“아니야 할아버지네 개도 이름이백구인데 같으면 안 돼지~”
“하긴 그래, 백구야 하고 부르면 할아버지네 개가 달려오겠다. 그치?”
아버지는 건장한 체격의 공병대 출신이지만 아들만 보면 눈높이가 낮아져
아들처럼 말하기도 했다.
서 너 살부터 혼자 키운 사랑스러운 아들이라서.
“맞아요. 아빠 하늘에 별도 모두이름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다르게 지어야 해요.”
“아하 그렇구나~ 하늘에 별자리도 봄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어? 아버지도 별에 대해서 잘 아시네요. 서당 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는데 이 히히히.”
“어쭈 나도 천문대 밥 13년이나 먹었다.”
아버지가 별자리를 이야기를 꺼내자 천문대 ‘별 신동’ 환희는 신이 났다.
아버지가 아들을 유도한 질문대로였다.
“환희야 별자리 노래 주저리주저리 한번 해야지?”
“예 아빠. 봄엔 처녀와 목동자리, 무서운 사자와 사냥개자리, 왕관자리를 탐내는
마음이 새까만 까마귀자리.”
“아하 그렇구나~ 우리 아들은 기억력도 대단해. 그럼 여름엔?”
“백조를 사냥하는 독수리와 궁수자리, 잡았다고 신이 나서 연주하는 거문고자리.”
“와우~ 그럼 가을엔?”
“가을에는.....페가수스 안드로메다.”
“그럼 겨울에는?”
“할아버지네 새끼 난 큰개 작은개자리, 개 얼굴 모두 닮은 쌍둥이자리, 앞집에 황소 오리온자리.”
아버지는 아들이 별 자리를 암기하는 법이 똑똑해서 무척 행복했다.
“와~우리 환희는 커서 별 박사가 될 거야 하하하하. 아 근데 지금 우리가
개 이름 짓다가 뭐하는 거야 별 신동님?”
“어? 아빠도 별 신동이라고 불러요? 이 히히히...”
환희가 처음엔 주방 일을 하는 엄마 등에 업혀서 천문대에 들어왔다.
모두들 산골에 태어난 아기를 숲속에 사는 사슴처럼 좋아했다.
조금 자라서는 아빠를 따라 들어와 돌아다니며 심심한 직원들의 관심과
대화 상대자가 되어 갔다.
그 이유는 환희가 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날마다 보고 배운 것이 남다르게
차곡차곡 쌓여 모두를 놀라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환희라는 이름대신 ‘별 신동’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또 관람객들도 혼자서 별 이야기를 조잘 대는 아이를 보고 신기한 듯
말을 걸더니 놀라 말했다.
“어우 애가 별신동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붙은 별칭 ‘별 신동’.
많은 사람들이 애칭을 부를수록 기분이 업그레이드되고 별에 대한 관심은 한층 더해 갔다.
칭찬이 환희를 춤추게 했다.
별자리 이야기를 끝낸 환희는 개 이름을 떠올렸다.
그러자 개 이름 대신 중2누나 ‘한 송이’가 생각났다.
“음....아빠 개 이름을 ‘송이’라고 지으면 좋겠어요?”
“송이? 그게 뭐야 아빠랑 산에 가서 비싼 송이버섯을 따서 송이라고 지었구나?”
“에? 아 아 아니에요 그냥 눈이 조금작고 초승달처럼 귀여우니까 초자를 넣어서
‘초송이’라고 지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럼 초승이가 자라서 할아버지네 개처럼 커도 어울리지 않게
초송이라고 부를 거냐?”
“아하...아빠 그럼 초승달이 크면 반달이 되니까 그때는 ‘반송이’라고 부르고
보름달만큼 크면 그때는 보송이라고 바꾸면 되겠어요. 이 히히히.”
“그럼 보송이가 늙으면?”
“그럼 늙어서 노인이 되었으니까 노송이 라고지어요.”
“와~좋다. 우리 아들은 개 이름도 이렇게 잘 지어 도래미파 솔라시도~”
“개그여 아빠?”
“그래 개에그다 하하하하.”
눈만 뜨면 부르는 송이. 매일 부르는 송이. 생각만 해도 송이라는 개 이름이 정말 좋았다.
이후로 초송이가 반송이가 되고 반송이는 보송이가 되고 보송이는 노송이가 되었다.
참 좋은 송이였다.
보송이가 꼬물꼬물 새끼를 10마리나 낳았다.
“환희야 초송이가 10마리나 되는데 이름은 어떻게 지을지 고민 되겠다?
아빠는 키우기도 어려운데 시장에 내다 팔아야겠다.”
“아빠 헤어지는 게 서운하지만 그래야겠어요. 한 마리만 키워요.
아빠하고 나처럼 둘이서만 행복하게.”
“어? 그그 그래 그러자. 둘이만 행복하게.”
한남은 행복하게라는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물을 감추려고 개 이름은 뭐라고 지을지 다시 물어 보았다.
이미 지어놓은 개 이름인데 눈물 때문에 당황해서 물어 본 것이었다.
“아빠 물어보나마나 우리 집 개 이름은 다 알잖아요~
이제는 절대로 안 바꿔요. 별자리 이름이 바뀌는 것 봤어요?”
“어? 아아 아니?”
아들의 말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렇게 개 이름은 대를 물려가며 받았다.
개들도 제 이름이 바뀌면 헛갈릴 법도 하지만 송이라고만 부르면 초송이든 반송이는
보송이든 노송이든 반갑게 꼬리쳤다.
송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부르기만 해도 설레고 기쁜 이름이었다. 마치 눈밭을 뛰는 강아지처럼.
환희는 개들에게서 투영되는 송이생각을 하다가 바람이 돌아 나오는 모퉁이 벽을 보았다.
아버지가 봄부터 모아 두었을 고사리. 약초. 버섯. 무말랭이. 나물들이 그물망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빠는 산나물하고 약초가 싫다고 서울로 떠나놓고 나를 먹이려고 많이도 모아 두었네?”
아버지가 리모델링한 파노라마 동창을 바라보았다.
커튼이 가려져 있었다. 아버지가 외출을 했다는 커튼의 말이다.
“천문대로 찾아갈까? 아니 퇴근해서 오면 깜짝 놀라게 해 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