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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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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및서평 스크랩 낙타와 낙타풀 외 / 송재학
또다른나 추천 0 조회 13 10.01.12 15: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낙타와 낙타풀 / 송재학 

 


세상의 모든 낙타들은 다 길들여졌으나 고비 사막 어딘가 야생 낙타가 남아 있다고 한다 신기루 따라 걷는 야생 낙타는 타박타박, 그 소리는 사막 아래의 지하수 물이 우는 소리와 비슷하다 한때 이곳이 바다였듯이 내가 물고기라면 검은 아가미가 가만가만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낙타가 먹는 소소초라는 풀, 사막의 먹을 거리란 뻔한데 그마저 가시가 있는 낙타풀, 다른 짐승이 얼씬도 못하게 심술이 닿은 소소초의 운명은 고비 사막이 자꾸 넓어지는 것과 닮았다 소소초 안에도 모래와 자갈뿐인 사막이 있어 타박타박 야생 낙타가 걸어가고 물고기였던 나는 화석으로 발견되곤 한다 소소초를 씹을 때 낙타의 입은 가시 땜에 피가 흥건하지만, 내 육신은 막 떨어지는 해를 떠받치지 못해 피곤하다

 

 
 

********** 이 시의 탄생지는 생명의 물기란 물기는 다 말려내는 사막. 사막이

고난에 뒤덮인 삶을 상징하는 것은 아주 익숙한 상징이다. 하지만 사막에 자라는 소소초라는 풀은? 경단초라고도 불리우는 이 풀은 사막을 건너는 낙타들이 좋아

한다고 한다. 이 풀에는 가시가 많아서 씹는 낙타의 입에는 피가 가득 고인다고

한다.  그러니 소소초는 시의 제국이 발견한 삶고난, 그 상징의 극도가 아닌가 싶다.  소소초말고는 아무런 양식이 없는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위장과 입을 피로 물들이는 풀!  더구나 이 풀은 자신의 영토란 영토는 다 사막으로 바꾼다.

살아간다는 일은 사막을 넓혀가기도 하는 것. 사는 것 자체가  사막의 어머니인 것.  한 존재가 존재의 연장을 가능하게 하는 양식을 넘기며 피를 흘린다면 삶은

얼마나 살벌한 터전인가. 언젠가는 바다였던 사막의 현장을 바라보는 시인은

그 안에 남아있는 물고기화석. 장구한 세월 속에서 자연과 삶은 이렇게 뒤엉키며 사막을 만들어 낸다. 장엄사막.  

 

/ 허수경 시인

 

 

 

 

 

 

 

 Gate to Enlightenment

 

 

 

 

 입김 같은 절 / 송재학

 



느티나무 잎 안에 들어가본 내 생각
나는 잠시 엎드려 죽었다가 다시 일어난다
느티나무 잎새가 만지는
절터와 별똥별은 나의 앞인가 뒤인가
불타고 헐어버리고 사라지는 것들 떠받치며
나무들 자라서 죽고
구절초 산부추가 새살처럼 돋는다
눈알 빠개지도록 부릅뜬 시선에 들어온
너른 땅 모두, 내 몸 합쳐 절이라 부르자
그 절간의 주춧돌은 새벽서리 앞세워
입김 같은 절을 짓는다
가을 갈색을 이기지 못하면
내 입김 안에 빈터가 있으니 어서 기둥부터 세워라

 

 

 

 

 

 

 

 

 Anydri,Crete.For Roger Sonneland.

 

 

 

 

붉은 기와 / 송재학 



피렌체의 지붕은 붉은 기와, 죄다 붉은색이니까 색감이 흐려져서 흰색의 얼룩이 생긴다 붉은색은 홍채의 북채색이다 석조 건물에 박혀 차츰 희미해지는, 햇빛이 쏘아올린 화살촉 일부는 아직 파르르 떨고 있다 그런 건물은 3층까지 어둡다 햇빛 때문에 길이 더 좁장해진 거와 다르지 않다 가령 바닥도 돌인 골목길을 몇 시간쯤 걸었다면 햇빛을 짓이긴 발바닥은 부르트는데, 그건 싸움의 흔적이다 햇빛과 싸우지 않으려면 햇빛처럼 강렬해야 한다면서도, 붉은 기와들은 종일 하품한다 게을러지기 위해 눈부신 햇빛 속에 가만히 있어본다 손톱에서부터 차츰 녹아가는 육체가 있고, 그건 내 마음이나 또 무언가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붉은 기와란 건 햇빛에 바짝 구워진 물상이다

 

 

 

 

 

 

 

 

See no evil, hear no evil, say no evil!

 

 

 

 

마애불 / 송재학

 

 

 

저 부처를 의심하지 말자 햇빛이 헤아리는 나뭇잎을

내 눈썹 사이 찡그리는 시냇물에 비춰 보면 나무는 다시

싱싱해진다 돌 속에 처음부터 부처가 있었다* 꽃나무에

달린 열매가 내 몸을 지나면서 붉어졌지만 예정된 일,

언젠가 나도 팔 벌리고 머리통을 열매로 내놓으리라

경주 남산의 바위는 죄다 부처가 숨은 적멸보궁이다

어떤 부처는 이제까지 잘 놀다가 다시 돌 속으로 회귀

하는 중이어서 손발이나 얼굴이 돌에 가깝다 

 

 

 

* 경주의 향토 사학자 윤경렬 씨는 경주 남산의 부처에 대해 "석수장이가

   돌을 쪼아 부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돌 속에 있는 부처님을 찾아 돌을

   쪼고 있다"는 시인 청마의 노래 구절이 가장 적절하다고 강조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개구리밥 / 송재학  

 

 

 

초록이 밀사를 보냈다네
그 왕국은 아직 선포되지 않았지
며칠 전 이 늪은 고요하기만 했었네
지금 초록은 물에 비치는 푸르름만으로
한껏 울지 못하겠다고
마침내 밀사를 보내
수면에 제 왕국의 흥망을 빽빽하게 펼쳤네
수많은 초록이 물 위에 누워 한껏 게을러졌다네
이것을 개구리밥이라고만 부르지 말라
수줍음처럼, 또렷하게 작은 꽃이 핀다네
그들이 초여름의 날랜 병정들이라네 
  

 

 

 

 

 

 

닭, 극채색 볏 / 송재학 

 

 


 

볏을 육체로 보지 마라
좁아터진 뇌수에 담지 못할 정신이 극채색과 맞물려
톱니바퀴 모양으로 바깥에 맺힌 것
계관이란 떨림에 매달은 鍾이다
빠져나가고 싶지 않은 감옥이다
극지에서 억지로 끄집어내는 낙타의 혹처럼, 숨표처럼
볏이 더 붉어지면 이윽고 가뭄이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마라
지금 한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누에 / 송재학

 

 

 

 아마 내 전생은 축생이었으리 누군가 내 감정을 건드린다면 하루아침에 나는 누에로 되돌아가버릴지 모른다 출퇴근길에 만나는 강변의 야산이 친애하는 벌레처럼 다가오곤 했다 그러고 보니 잠들면 나는 늘상 몸을 뒤척이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게다가 고기를 멀리하고 나무 그늘의 통통한 물살에 온몸을 자주 맡겼다 잎맥을 거슬러가는 애벌레의 날숨에도 내 생로병사가 느껴진다 실크로드에 병적으로 집착한 것도 수상하다 아니다 고백하자 5령이라는 잠을 자고 나면 누에는 이승과 저승의 해안을 가볍게 날아드는 나비, 더 고백하자 그 나비의 날개라는 반투명이 내 후생임을   

 

 

 

 

 

 

 

소래 바다는 / 송재학 

 

 

 

돌아가신 아버지를 소래 포구의
난전에서 본다. 벌써 귀 밑이 희끗한
늙은 사람과 젊은 새댁이 지나간다
아버지는 서른 여덟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지난 날
장사를 하느라 흥해와 일광을 돌아다니며 얻은
병이라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소래에 오고 싶어 하셨다
아니 소래의 두꺼운 시간같은 뻘과 협궤 쪽에 기대어 산
새치가 많던 아버지, 바닷물이 밀려나가는
일몰 끝에서 그이는 젊은 여자가 따르는
소주를 마신다, 그이의 손이 은밀히 보듬는
그 여자의 배추 살결이
소래 바다에 떠밀린다
내 낡은 구두 뒤축을 떠받치는 협궤 너머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산다
  

 

 

 

 

 

 

얼굴을 붉히다 / 송재학

 

 

 


  임하댐 수몰지구에서 붉은 꽃대가 여럿 올라온 상사화를 캤다 상사화가 구근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놀랍도록 크고 흰 구근을 너덜너덜 상처 입히고야 그놈을 집에 가져올 수 있었다. 아무도 없었지만 얼굴은 붉어지고 젖은 신문지 속 구근의 근심에 마음을 보태었다 깊은 토분을 골라 상사화를 심었어도 아침에 시들한 꽃대를 들여다보면 저녁에는 굳이 외면하고 말았다 여기저기 물어 비료며 살충제며 잔뜩 뿌리고 잔손을 대었지만 상사화의 꽃을 보고자 함은 물론 아이었다 살릴 수만 있다면 꽃은 아주 늦어도 대수롭잖다고 다짐했다 상사화 꽃대가 차례로 시들어갈 때 내 귀가는 늦어졌다 한밤중에 일어나 바깥의 상사화를 들여다보고 한숨쉬는 내 불안을 알아보는 식구는 없었다 나는 꽃 필 상사화에 기대어 이제는 물 아래 잠긴 땅으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언젠가 이곳도 물에 잠기리라 결국 내가 시든 줄기를 토분에서 뽑아냈을 때 상사화는 그러나 완전한 구근과 수많은 잔뿌리를 토해 내었다 그 아래 두근거리는 둥근 세계가 숨어 있었으니, 시든 꽃대 대신 뽀족한 푸른 잎이 구근과 무거움을 딛고 겨울을 준비하였으니! 내 근심은 겨우 꽃의 지척에만 머물렀던 것이다 나는 얼굴을 붉히고 상사화가 스스로의 꽃대를 말라죽인 이유를 사람의 말로 중얼거려보았다 

 

  

 

 


 

애월 바다까지 / 송재학

 

- 제주시편 2

  

 

 

바다를,
물빛을,
가만히 내버려둘 것
한눈으로 붙잡지 못하는 부피가 버겁다
아무리 퍼내도 걷잡을 수 없는
코발트 물빛이다
방파제와 정적이 서로 혀 들이미는 오후,
내 꿈을 유채꽃 대궁 위에 올려놓는다
가까이 다가가면 애월 길은 미끈거리는 食道
검은색의 비애에 사로잡힌 건 내 소용돌이다
칼날이 된 바다가 옆구리에 박힌다
천천히 서 있는 전신주들,
느낌표처럼,
터질 듯 부푼 어떤 생의 입구마다 꽂혀 있다
애월 바다는 파랑 주의보에 익숙했으리
검은색 따라간 며칠 새
몇 개의 부음을 받았다
길 전체가 목관 악기인 애월에서의 해미 같은

 

 

 

 

 

 

눈의 무게 / 송재학 


 

 

느티나무 가지에 앉은 눈의 무게는 나무가 가진 갓맑음이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느티나무가 입은 저 흰 옷이야말로 나무의 영혼이다.
밤새 느티나무에 앉은 눈은 저음부를 담당한 악기이다 그때 잠깐 햇빛이 따뜻

하다면 도레미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도 보일 게다  

  

 

 

 

 

 

미안하구나 / 송재학 

           

 

 

  1.
  외할머니는 아흔이 넘었다 잎 없는 감나무 둥치에 머문 햇빛도 외할머니의 해바라기를 부축하고 있다 외할머니는 밥공기에서 반 쯤 밥을 자꾸 들어낸다 외숙모는 더 큰 그릇에 밥을 담아 외할머니가 밥을 들어내도 일정량이 되도록 조절해왔다 아무도 없을 땐 밥 한 공기를 다 비우신다 같이 식사할 때만 자꾸 밥을 비워낸다 반 공기의 밥도 살기 위해서 먹는 게 아니라고 중얼거리신다

 

 

  2.
  외할머니는 아흔이 넘자 묘법연화경을 태워버리셨다 아무리 경을 읽어도 당신은 아직 이승이라고 쫑긋하셨다 파킨슨병으로 하루에도 몇 번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맑은 마음으로 읽어가던 묘법연화경이었다 과두문자처럼 비뚤비뚤한 자필 한글본 묘법연화경이었다 올해도 감나무는 늦게 새 잎을 내려나보다

 

 

 

 

 

 

 

 흰뺨검둥오리 / 송재학 

 

 



그 새들은 흰 뺨이란 영혼을 가졌네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에서 흰색까지 모두
이 늪지에선 흔하디 흔한 맑음의 비유지만
또 흰색은 지느러미 달고 어디나 갸웃거리지
흰?검둥오리가 퍼들껑 물을 박차고 비상할 때
날개 소리는 내 몸 속에서 먼저 들리네
검은 부리의 새떼로 늪은 지금 부화중,
열 마리 스무 마리 흰뺨검둥오리가 날아오르면
날개의 눈부신 흰색만으로 늪은 홀가분해져서
장자를 읽지 않아도 새들은 십만 리쯤 치솟는다네
흰뺨검둥오리가 떠메고 가는 것이 이 늪을 포함해서
반쯤은 내 영혼이리라
지금 늪은 산산조각 나기 위해 팽팽한 거울,
수면은 그 모든 것에 일일이 구겨지다가 반듯해지네

 

 

 

  

 

 

가시연꽃  / 송재학                                            


당신은 가시처럼 아픔의 방향으로만 간다
몸과 꽃에 돋은 가시연꽃의 가시를
당신이란 말로 바꾸면
연꽃이나 당신은 생략되고 알몸에 꽂힌 가시만 남는다
그리움만 남는다 
 

 

 

 

 

 

 

 악기가 필요할 때 / 송재학  

 

 



겨울숲에 가면 무슨 음계라도 필요하다
어금니가 턱에 박히듯 내 혀에 맞춤한 악기가 있었으면

곧 지상 3000 미터에서
편서풍이 黃沙를 몰고온다,
성숙해의 별보다 더 많은 호수가 내 안에 새겨지는 꿈을 꾼다
나는 편서풍처럼 높은 악기를 얻을 생각은 없다
앙상한 활엽수림과 내가 원한 것은
눈내리는 열명길로 데불고 가는 침묵인 악기
그 안에는 어둡지만 현악기의 활처럼 굽은 오솔길이 열리고
저녁에는 들끓는 분화구를 틀어막고 잠드는 生인 악기가
날 기다리지 않느냐

숲에 가면 침묵이거나 우우 울부짖는
악기란 이름의 공기는 늘 불꺼진 채 우는지 모른다
그 악기의 공명통에서
날개죽지가 상한 새를 끄집어 내었느냐
남지나해까지의 항로를 보았느냐

숲이, 겨울이
악기가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잠시 그곳을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연두빛 새순이 검은 색을 밀어내면
이제야 알겠다, 내 얼굴이
밖에서 새겨진 것이 아니라 안에서 천천히 이루어졌음을,
그리하여 눈은 내 안쪽의 어둠을 먼저 들여다보고 외부를 보았음을

  

 

 

 

 

 

감은사에 가다 / 송재학                                         
       



감은사는 없다 감포 바다가 눈높이까지 밀려와도 감은사 스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무너진 돌들을 쌓아놓은 두개 석탑이 감은사를 변명한다 지도에도
감은사로 적혀 있고 길을 물어보면 모두 아 감은사 말이지요, 감탄한다 시
커먼 찰주까지 남아 있는 감은사 탑과 탑의 균열은 감은사의 不在와 더불어
꽃핀 현호색을 에워싼다 
저 연보랏빛 현호색을 가로질러 감은사를 볼 수 있으리라
절은 늘 가파르다 계단과 회랑과 높은 천장의 가파름은 삶과 절의 경계인
것 현호색은 감은사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동안 보랏빛인 양 내 속에서
번진다
그곳에 감은사가 있어야 하는지 저녁 예불소리를 듣거나 석등의 불빛을 바
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몇백 년 동안 감은사는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 감은사
에서 바다까지 수로의 기록과 석탑을 찾았다 내가 감은사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곧 밀어닥칠 해일의 기미와 내 마음을 본뜬 수줍은 현호색 무더기
 

 

 

  

 

 

격포 / 송재학                                                    



격포에 간다는 것은
사소한 나만의 일몰을 가진다는 것!
머리통만한 물거품과 폭설이
서쪽 바다를 죄다 세로로 앞장세웠다가
가로로 눕히곤 한다
나에 속한 죄를 끄집어내어
바다에 헹구어본다
아귀가 맞지 앉는 날의
오물이 자주 막히는 몸이 싫다
구석바닥에 쪼그려 울어보기도 한다
갈라터진 마음마저 염전으로 맡기고픈
격포에선
무엇이든 다 눈동자가 있어
그리 많은 눈이 내리는가 보다
무엇도 용서할 수 없었던 내가
아무에게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시선을
받아들였던 격포
아직 날은 어둡지 않은데
벌써 눈뜨는 불빛은 무어냐
거기 옹이처럼 박히자

  

 

 

 

먼길 2 / 송재학 

                                                 
- 어머니 울음  

  


이제 비름꽃 소낙비에도 가슴 서늘해지고
물소리 울음 소리 고이 들을 수 있네
쉬이 부르던 노래 검은 머리,
돌아보면 흩어지니
한 잎 명아주 싹에도 눈물 마주쳐
어찌 길 떠나지 않으랴
옷 태우고 책 사르고 정든 사람,
한세상 보냈듯
눈물 굴헝 좇아
할미꽃 이승꽃 아롱거리겠지
굽이굽이 붉은 땅 늙은 소나무,
잠들 곳 있으리
물길 따라 누우면
팔다리 여위고
천리길 왼통 꽃비 흐드러지니
시월 맨드라미 참하게 울겠네

지는 해 뜨는 달 먼 곳을 보면
낭랑한 목청 맑은 손톱조차
희미하리라
산역꾼들 노랫자락 분명
들 에움길 돌아 들려오는데
앞은 점점 보이질 않네
못물마다 개구리밥 가득하고
여름꽃 마르고, 길은
생시인가 꿈인가 아득아득 널려 있으니
어찌 먼 길 떠나지 않으랴
물소리 따라 누우면
한줌 기쁨이고 슬픔이고 죄다
살여울로 흘러버리니
몇십 년의 땅에서도 갈 길 더욱 멀고나
돌아보면 미루나무 머리 풀어 울고
떠나온 길 깜깜한데
홀로 먹는 저녁밥술 목이 잠기네

 

 




모슬포 가는 까닭 / 송재학                                  

 


나 할 말조차 앗기면 모슬포에 누우리라
뭍으로 가지 않고 물길 따라 모슬포 고요가 되리
슬픔이 손 벋어 가리킨 곳
모슬포 길들은 비명을 숨긴 커브여서
집들은 파도 뒤에서 글썽인다네
햇빛마저 희고 캄캄하여 해안은
늙은 말의 등뼈보다 더 휘어졌네
내 지루한 하루들은 저 먼 뭍에서 진행되고
나만 홀로 빠져나와 모슬포처럼 격해지는 것
두 눈은 등대 불빛에 빌려 주고
가끔 포구에 밀려드는 눈설레 앞세워 격렬비도의
상처까지 생각하리라
 

 

 

 


 

 

 

  

 

 

빈집 / 송재학                                                 



나는 오래 폭설을 기다렸다 

해평 마을의 빈집은 해면처럼 나를 빨아들인다
받아들일 수 없던 사랑, 낙동강의 결빙음, 매지 구름은
내 육체가 붙들던 난간이었다
간유리문을 지날 때 어딘가 지독하게 아프다가
물바람처럼 사금파리 빛 띄우면
히말라야시다는 가지 꺾고 귀로를 가로막는다
입술이 닿은 성에꽃에 매달린 내 청춘이
온기 한 점 구하지 못할 때
빈집은 폭설에 무너진다 

그 사랑에는 육체를 피한 흔적이 있다 

 


 


섬 1 / 송재학      

                                              
- 편지  




아우로부터 편지가 왔다.
고등 2년 때 가출한 그를 찾으러
갈꽃 피는 여수 남쪽 섬을 간 적이 있었다.
흙바람 가득한 섬은 아우의 행방보다
더 나를 사로잡았고, 지금도 그를 보면
흙바람같다.
아우는 밤에 홀로
사고한다고 썼다, 그리고
편지 끝에 원서비용으로 6만원이 필요하다고
부기했다.
나는, 시골 관청의 8급 주사보이고
점심은 사무실에서 시켜먹고 화투를 쳤고 가끔
여자들이 도시에서 찾아왔다, 밤에는 그러나
혼자 잠들고팠다.
안개는 무시로 깔려와
기관지를 자주자주 다치더니
나는 몇칠의 병가를 내고 버스를 탔다.
아우는 지방대학의
철학과와 신축도서관에 묻혀지냈다.
그의 흙바람내 나는 서랍을 뒤져보았다.
스스로 고독한 짜르라 칭한 아우의 비망록
악필이었던 글씨는 여전했고
끝없는 단상과 부호같은 일기, 반 년 전부터 복용하는
아이나와 에탐부톨이 칼로 자른 넋처럼
하얗게 빛났다.
결재화일과 대차대조표를 뒤적이다가
봉화, 영양, 안동, 예천으로 출장을 떠나며, 나는
혼자일 때는 머나먼 섬까지의 뱃시간을 베끼고.
문득문득 아우가 보낸 편지가 왔다, 아우는
회의주의학파의 색인을 정리하고
나는 시를 쓰다 관두다 했다, 사흘마다
숙직실에서 밤을 새웠다, 유리창은 늘 두텁게 서리끼고
연탄가스는 조금조금 스몄다, 아침이면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 도장을 찍고
1,300원의 숙직비로 점심을 때우거나
겨울 문예지를 샀다.
아우는 19세기 러시아지성사를 번역해갔다, 나는
섬이 외로움으로 깊어진 밤에
이윽고 술을 마실 뿐.
아우는 읽던 책을 건넸다, 나는 사람과 싸우며
며칠을 끙끙거리고 아우는 아침마다
스타디그룹에 나갔다.
아우로부터 편지가 왔다, 밤에 스피노자를 읽으면
집 근처 신기료 사내는 마치
우리들 보행의 자유를 위해 신발을 고치는
도시의 스피노자처럼 보인다고 적었다.
편지 끝에
비트겐슈타인의 논리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부기했다, 나는
싸늘한 숙직실 유리창에
서리 흔적으로 섬이라고 써보았다.
 

 

 


 

속꽃 / 송재학    

                                                            


눈이 바닷가 자드락 밭을 덮는다
무화과나무,
어린 열매는 겨울눈[芽]으로
일월과 이월 안팎에 있다
열매 속에서 가만히 속꽃이 핀다, 결코
보이지 않을 암꽃과 수꽃이
연분홍 어린 형태로
여름을 향하고
햇빛과 싸우는 바다의 얼음 어는 소리 들린다
늙은 사람이 와서 무화과 산밭을 돌아다닌다
이십 년이라니, 역마살이 끼었어
아니 이십 년간 감옥살이 했다더군,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바람 사이사이 눈발이 흩어진다
파도 소리가 속꽃을 잠재우면
마른번개와 수십 번의 밀물이 속꽃을 깨운다
소나기와 여름 더위로 무화과는 황홀하다
갈색 열매 노란 살갗 그리고 음악,
늙은 사람이 더욱 늙어 속꽃을 본다
그가 죽었다. 그 나무의 꿈은
아무도 보지 못할 분홍 속꽃인가 

 

 



안 보이는 사랑 / 송재학   

                                

 
강물이 하구에서 잠시 머물듯
어떤 눈물은 내 그리움에 얹히는데
너의 눈물을 어디서 찾을까
정향나무와 이마 맞대면
너 웃는 데까지 피돌기가 뛸까
앞이 안 보이는 청맹과니처럼
너의 길은 내가 다시 걸어야 할 길
내 눈동자에 벌써 정향나무 잎이 돋았네
감을 수 없는 눈을 가진 잎새들이
못박이듯 움직이지 않는 나를 점자처럼 만지고
또다른 잎새들 깨우면서 자꾸만 뒤척인다네
나도 너에게 매달린 잎새였는데
나뭇잎만큼 많은 너는
나뭇잎의 불멸(不滅)을 약속했었지
너가 오는 걸 안 보이는 사랑이 먼저 알고
점점 물소리 높아지네 

 



 


애인 / 송재학  

                                               


너는 악을 통해 다가 왔다
석류꽃 향기를 밀어 내는 밤이
흰 손가락으로 타이프라이트처럼 찍는 너의 발자국은
내 체온을 따라와 흑백으로 인화되어 있다.
섭씨 39도 쯤에서
너의 고백이 나를 불심검문하리라
너는 곧 알게 되겠지
왜 내 두 손이 붕대를 감고 있는지
내가 만졌던 너는 벌건 숯덩이 이전에
악의 두께였다
심장에서 손바닥까지 흐르는 피를 보듯
사랑을 시작할 때가 아니다
너는 나의 애인이니
너 안에서 불탄 몸을 밟고 가던 나를 보았겠지
참담하여라, 그러고도 너는 출렁거리는 호수이다.

 

 



어머니는 무엇이던 잠재우신다 / 송재학                    
  


식구들을 잠재우고 어머니는 화초마다 물을 뿌린다 서늘한 기분으로 나무
들은 편안하고 어머니는 쓸데없는 텔레비전과 카세트의 전원을 뽑는다 자
주 헐거워지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바깥의 어수선한 어둠을 커튼으로 가린

그리고 자리에 누우면 어머니 몸 안팎으로 밀려오는 것들, 비가 몸을 적시
고 늘 축축한 머리맡엔 장마가 이어진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억하는 방마
다 향을 피운다 죽은 사람과 향냄새를 피해 뱀은 어머니 아랫도리를 파고든
다 구더기는 허벅지 살 속에 알을 슨다 거미들은 잇몸을 물어뜯고 새는 흰
머리를 쪼아댄다 누군가 피를 토하고 노래를 부르고 미쳐 날뛰는 밤은 아,
하고 입을 벌린다 날마다 파헤져지는 절개지는 넓거나 붉고 감당하지 못할
밤은 길고긴 소맷자락을 갖추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잊어버렸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천리향이나 침묵으로
떠올린다 어머니는 아버지 이야기 대신 아이들 옷을 빨거나 새삼스레 흰고
무신을 한 켤레 산다 아이들이 제 할아버지를 궁금해하면 스님 이마 씻은
물맛 같은 사람이야, 둘러대고 햇빛 끝에 혹 벌초를 핑계삼아 버스를 탄다
어머니는 향을 다시 피우고 뱀에게 살을 베어주고 구더기 새끼들을 키운다
거미들은 어머니 잠그늘마다 거미줄을 친다 새는 그 위에 둥지를 튼다 짐승
의 마음들이 고이 잠들고 나면 밤은 천수경처럼 환하다



 

 

얼음시 3 / 송재학 

                                           
- 다산 생각



한밤중에 깨어났다 꿈을 꾸다가, 기침을 하면 늑골까지 얼음이 깔리고

명(耳鳴)의 귀에 흩어진다 결빙음(結氷音)은 내가 읽는 요즘의 책에도

있는 데 밤의 내륙 땅에서 강진의 앞바다를 떠올린다 백일홍은 봄날이라도

어둡고 초(艸)의 구절은 마른번개처럼 울린다 돌아보면 그의 땅에는 버린

노래들만 가득한데 청솔가지 유배지(流配地)의 꿈을 되풀이 꾼다 이월 봄밤,

전을 펴들고 짚어가는 기민시(飢民詩)는 먼 곳으로 띄우는 편지*처럼

적막하다 강진의 땅은 누군가 기다리는 것으로도 쓸쓸하고 물소리 울리며

강은 늘 그곳까지 흐른다 내 방의 고요도 내 그리움의 이름들도 차가운 노래

남녘말까지 흐른다 지금 내 몸은 새벽 추위에 있고 찬(撰)의 말들은 이

땅의 역참마다 아침이슬이나 풀씨로 머물러 있음을 본다 먼 바다 이월 해일은

믐이면 해변 다복솔을 덮칠 것이고 흰 파도 검은 바위는 뒤엉켜 있으리라
 



주전 / 송재학                                                   


검은빛은 죽음이 아니다, 비애가 아니다 검은빛은 환하다 때로 파도와

물리면서 新生의 거품을 떠밀거나 버려진 돌들을 이끌고 바다 깊이

담금질하며 주전의 검은 돌들은 더욱 맑아져 사람의 삶을 부추기고,

그때 검은빛은 심연의 입구이다
검은빛을 세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빛이 그로부터 비롯된다면

은빛을 관념이라고 적지는 말자 어떤 애벌레들은 마흔날이 되면 다시

제 몸에서 애벌레를 게워낸다 해안의 검은 돌들은 물을 통해 소리친다

파도가 적신 돌과 햇빛에 마른 돌의 경계를 걸어보라 이쪽은 저쪽과 전혀

다른 정신이고 그 사이에 완강한 문이 있다
늘 새벽이었던 해안은 금빛 호른의 포물선과 저음에 그늘을 지운다
그러고도 검은 빛은 남아서 하루나 이틀 내 삶을 간섭하다가 문득 사라






진눈깨비 / 송재학                                               



미간을 더 자주 찡그려야만 했다 진눈깨비 탓이다 전봇대가 아무것도 모르
겠다는 듯 광고지를 더덕더덕 붙인 채 팔 벌리고 있다 전봇대 같은 변명을
하자는건 아니다 진눈깨비를 헤아린다는 건 탄식을 듣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염없이 斜視로 떨어지는 진눈깨비를 징검다리 삼아 위로위로 시선
을 올리자 그 성층권의 시렁 위엔 결국 전봇대처럼 가지가 다 부러진 나무
들이 줄지어 서있다는 생각, 그냥 물끄러미 서서 진눈깨비가 하자는대로 떠
밀리면 나마저 전봇대처럼 안이 텅텅 비워진다 내가 속삭이는건 나도 한때
저렇게 많은 팔다리로 어떤 운명을 향해 미친 듯이 달라 붙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겹벚꽃을 피우는 벚나무의 이유도 미리 내 눈썹을 때렸던거다


 

 


창이 있었네 / 송재학                                          


마음의 서쪽에
창이 열렸던 때가 있었네
담장 옆 수수꽃다리를 밟고 올라가면
이층 단칸방 모두
한 방울 눈물인 유리창
주인집 피아노 건반을
하나하나 꺽어 세운 계단은
늘 등꽃에서 끝나곤 했네
이층 그 아래가
깍아지른 벼랑이던 날
풀먹인 호청 누빈
금빛 이부자락이 서쪽의 끝까지 닿았네
금방 불타오르던 이층의 앞날은
그 유리창처럼 산산이 부서졌네
피묻은 유리파편이
등꽃의 향기임을 너에게 말해줄까

 



청량산 / 송재학                                                 



봄 山色이 숨겨논 문짝을 보지 못했는가
층층나무 흐드러진 꽃잎이 경칩소리 울리며
내 발꿈치 바로 뒤, 경계를 닫아버리는 그곳
침묵은 외딴 인간의 눈썹 같은 울타리를 거느린다
푸른 띠살문 삐걱이는 소리를 들었는가
뿌리째 뽑혀 무너지는 생나무냄새를 맡았는가
건더기보다 국물만 씹히는 밥집을 나서면
指紋투성이 문이 나를 통과시키고 깊은 내 등뒤에서 등불을 끈다
붕대를 푼 나무 사이
정자살문 빗살문 꽃살문 따위를 헤아리면
빗장 걸어주던 꽃냄새는 살붙이처럼 속에말 걸어온다
돌을 뒤엎던 맑은 물살은 금방 내 실핏줄까지 범람한다
아픈 내 머릿속 절개지에도 경칩 달린 외짝 문이 닫히며
몸 일부는 낮달의 봉분을 끌어당기는데
두 발바닥에 구멍 뚫려서 잔기침까지 새어나가는 느낌
그 문을 지키는 看守의 목은 흰 꽃가지로 바뀌어 있다
  

 




청춘 / 송재학                                                    



어떤 옥탑방에는 밤 사이 신발이 가지런하다
집나간 아들이 몰래 들어와 잠만 자는 것이다
물론 그 집 식구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청년이 화가지망생이란 것도 놀랍지 않다
그 집 옥상에서 열린 전람회는
얼마나 많은 색깔을 구워냈던가
양치식물과 빗방울은
그에겐 푸른색에 가까운 내재율이다
비밀이 시작하는 것이다
간혹 내 중년도 청년에 의해 푸른 추상화가 되곤 했다
그곳이 머위잎 녹음처럼 부드럽기에
셀로판지를 통과하는 햇빛은
다시 햇빛의 바늘귀를 지나간다
그건 생의 주름을 잡는다

옥탑방의 목록에 새털구름이 떠나닐 무렵
청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물탱크가 들어선 것도 그쯤이다
나도 한때 청춘을 어딘가 구겨 넣었지만
노란색 물탱크는 비가 오지 않아도
안간힘으로 새 것이다

 

 

 

 

푸른빛과 싸우다 1 / 송재학 

                                 
 - 등대가 있는 바다

 



등대가 보이는 커브를 돌아설 때 사람이나 길을 따라왔던 욕망들은 세계가
하나의 거울인 곳에 붙들렸다 왜 푸른빛인지 의문이나 수사마저  햇빛에 섞
이고 마는 그곳이 금방 낯선 것은 어쩔 수 없다 밝음과 어둠이 같은 느낌인
바다
바다 근처 해송과 배롱나무는 내 하루를 기억한다 나무들은 밤이면  괴로
움과 비슷해진다  나무들은 잠언에 가까운  살갗을 가지고 있다  아마 모든
사람의 정신은 저 숲의 불탄 폐허를 거쳤을 것이다  내가 만졌던 고기의 푸
른 등지느러미, 그리고 등대는 어린 날부터 내 어두운 바다의 수평선까지
비추어왔다
돛이 넓은 배를 찾으려고  등대에 올라가면  그 어둔 곳의 바다가 갑자기
검은 비단처럼 고즈넉해지고  누군가가 불빛을 보내고 그의 항로와 내 부끄
러움을 빗대거나...... 죽은 사람이 바다 기슭에 묻힐 때  붉은 구덩이와 흰
모래를 거쳐 마침내 둥근 지붕 생기고 그 아래 파도와 이어지는 것들......
혼자 낡은 차의 전조등 켜고 텅 빈 국도를 따라가면  고요를 이끌고 가는 어
둠의 집의 굴뚝이 보인다, 낯선 이가 살았던 어둠,  왜 그는 등대를 혹은 푸
른빛을 떠나지 못하는가
바다를 휩쓸고 지나가는 햇빛은  폭풍처럼 기록된다, 그리고 등대

 

 



풀 잎 / 송재학                                                     


 
풀잎앞에 쓰러져
울어준 것들만의 힘으로
풀잎은 초록은 아니다
풀잎이 가진 초록이란
일생을 달리고도 벗어날수 없는
오랑캐 들판
그 넓이 만큼 죽음이나 여름을 만난다
풀잎은 지는 해를 위해
수평선의 고요을 아꼈던 것
초록이 운명에 휩쓸릴 때
초록은 그곳가지 한달음에 도착하기도 한다
풀잎속이라면
초록은 일제히 일어나야 할 때를 알고 있다





하구에서 / 송재학

                                             
 - 아버지의 시간




아버지는 술에 취해 늦게 들어왔다
내 속으로 한번도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 아우는
나쁜 잠버릇으로 돌아누웠다
얇은 베니아벽 너머 헛방에서 욕지기를 삼키며 나는 연필칼로 시끄러운

집, 다투는 사람과 부글거리는 마음을 바람벽에 새겼다 그곳의 시간을

퍼내는 내 손에는 더러운 강이 지나갔다
이곳을 기억하지 말자, 세상은 나의 손을 떠났다
  아우는 내가 읽는 책의 표지를 향해  벌써 이 세상 중심에서 버려졌다는
악담을 퍼부었다  아니다, 세상이 스스로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 않다는

실을 너도 알아야 한다
하구에는 얼음덩어리가 밀려왔다
준설선이 바다에 떴다
아버지가 가꾸는 푸른 선인장이 시들어 누런 냄새 퍼지는 봄날 아버지는
다시 떠났다 아버지의 날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이미 늙어버린 사람의

선지 쪽으로 햇빛과 헝클어진 시간 무더기가 총총히 따라갔다
아버지는 흘러버린 날짜의 맨 앞에서 내가 들고 있는 책의 첫 페이지에 서
있다 그곳의 시간은 늘 멈추어서 저 아래 검은 물 날카로운 절벽 끝인데


 
 

 

 

 

소리族 / 송재학   

 

 

 

  내 귀의 소리族들은 오래 살림하며 번식해왔다 그들은 내 입이고 나는 그들의 비명이다 육신의 빈틈이 또 다른 생의 거푸집이라는 예감은 있다 그 생이 또 다시 무언가의 거푸집인 것도 분명하다

  줄의 한 쪽은 내 귀에 닿아있고 다른 한 쪽은 소리를 힘껏 물고 있다 내 몸통 안에 한 줄의 현악기가 있다는 느낌은 무얼까 갈대와 바람이 서로 눕히는 소리, 오늘 깨끗이 씻어야 하는 머위잎 위의 하루를 적시는 빗소리, 너무 먼 곳까지 온 일몰에 잠기는 생각은 현악이지만 거푸집이 낡았다고 불평하는 건 어린 소리族들이다 꽃잎의 낙하를 읽으라고 내 귀와 꽃의 귀에 동시에 속삭이는 늙은 소리들 덕분에 생의 느린 장면, 생의 정지화면과 함께 할 수 있다 씻어내려고 게워내려고 하지만 소리는 이미 내 귀를 나팔꽃 닮은 공명통으로 바꾸는 중이다

 

 

 

 

 

**************************소리를 듣는 일이 존재의 이유  


 “분명히 와본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그러면서 ‘내 것이다’라는 느낌,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발견됐다는 느낌 말이에요.”

 

  고2 때 신문에서 본 실크로드 사진 한 장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시인은

기어이 비단길을 밟고야 말았다. 그곳에서 송재학은 마치 전생에서 본 듯한

풍경들을 여럿 마주쳤다고 했다. 그 경험을 두고 “풍경과 나와의 연대감”

이라고 말한다. 본디 내면에 있었던 것들이 들리고 보일 뿐이라는 얘기다.

“개울물 소리가 내 마음에 있으니까 그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그렇게 여행과 일상에서 마주치는 풍경들에 느끼는 연대감은 곧 시가 됐다.

“송재학은 정지된 풍경 속의 어떤 움직임을 포착하는데 탁월하다. 그런데

그 움직임은 이미 주체의 내면에 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소리族’에서도 그 특징은 드러난다. 소리는 본래 바깥에서 나서 내게로

들어 오는 것이지만 시인은 그것이 원래 내 안에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귓속에서 이미 “소리족들은 오래 살림하며 번식해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내 귀의 소리와 꽃의 소리, 즉 내부의 소리와 외부의 소리는

하나의 악기가 되어 함께 공명한다.”(이광호 예심위원) 그렇게 ‘연대’하고

있으니 세상을 향해 불평쯤이야 할 수 있어도 증오하거나 해를 가할 수는

없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박수연은 시집 『진흙 얼굴』해설에서 “그의

시는 싸움의 앞면을 보지 않고 뒷면의 상처를 감싸 안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소리’일까. 세상을 어루만지는 그의 감성은 왜 주로 청각에

의존하고 있는 걸까. 시인의 답은 짧다. “소리는 그 존재를 느끼는 일이니까요.

” 대상을 바라보고, 만지고, 냄새 맡는 대신 주파수를 맞춰 ‘듣는 일’은 그 존재

를 완연히 느끼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소리의 운동성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소리의 어미는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불꽃 속에서 똬리를 틀’고(‘징’), 소리가 태어날 때의 고통스러

은 ‘담금질에 겨우 눈뜨며 풋울음 하나가 여린 잎새처럼’(‘징’)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태어난 소리는 때로 ‘살점 없이 야위기도’(‘목성과의 대화’) 한다.

그의 언어를 거쳐 소리는, 애면글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이 된다.

문혜원 예심위원은 “소리를 시각화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풍경 안에

시인이 들어가서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등단 20년이던 2006년 처음으로 낸 시인의 산문집 『풍경의 비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젊은 날,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방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책을 가득 쌓아둔 선배의 방을 한없이 부러워하던 그가 처음 방을 갖게 됐을

“방과 길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단다. 시인의 깨달음은 이렇다.

“방은 어디론가 숨어야 한다. 방에는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는 무거운 커튼이

드리워져야 한다.”

 

  옳다. ‘나만의 방’ 없이는 풍경을 들일 곳이 없다. 소리족들이 살고 풍경의

비밀이 숨어있는 곳, 그 방이 문득 궁금하다. 

 

/ 임주리 기자  


  

 


 

 

 

 

****************************************************************

송재학 시인의 시 '늪의 內簡體(내간체)를 얻다'가 2009년 '작가'(문예지)가

선정한 '오늘의 시'에서 최다 추천작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발표된 시 가운데

시인과 문학평론가, 출판편집인 150명이 가장 많은 추천을 했던 이 시는,

지난해 웹진 시인광장이 뽑은 '2008년 올해의 좋은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가'는 권두언을 통해 "이 시편은 송재학 언어감각의 한 절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늪'이라는 대상과 시를 말해가는 화자 사이의 틈이 거의 없는 채로

형상화 되었다"면서 "한 중진 시인의 가열한 자기 갱신의 의지가 읽히는 작품"

이라고 평했다.


"한국시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언어미학주의가 송재학에 이르러 뚜렷한

자기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고 한 박수연(평론가)의 말처럼 '늪의 내간체를

얻다'는 무심코 스쳐가는 평범한 곳의 놀라움을 발견해 내는 송씨의 '시인본능'

을 여실히 드러낸 작품이다.


모호성의 이미지를 구축해 온 송씨의 시적 본질은 '풍경과 사람의 이미지'이며

그의 시학은 '풍경과 자아의 연대의식'이다. 송씨는 '늪의 내간체를 얻다'에서

'수면의 믈거울'에

2

담기는 '새털'구름과 '되새 떼''흰 낮달' 등

을 수면의 항라 보자기로 싸 언니에게 보내는 동생의 내밀한 마음을 고어표기의 산문체로 풀어냄으로써 의미나 서사구조가 아닌 이미지에 의존하는 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 이미지는 사물을 읽는 도구이며 사물은 '나'에게 다가와 '나'와 섞이는, 결국 내가

사물의 일부가 되는 다소 낯선 방식이다.


송씨는 "'늪의 내간체를 얻다'는 '흰뺨 검둥

오리'라는 시의 속편 격으로, 우포늪에 대한 나의 오마주"라면서 "늪의 이미지와 여성의 세밀함을 고어체의 편지글로 옮겨 시의

분위기를 오롯이 살릴 수 있었다"고 설명

했다.


장옥관씨는 "이 시는 '수사와 미학으로 세계를 읽으려는' 송재학의 욕망이 도달한 한

극점이다. 동시에 언어조형물이 정신의 단면과 몸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내는 드문 사례를 한국시가 얻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고 평했다.


송 시인은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얼음시집''살레시오네 집''푸른빛과 싸우다''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기억들''진흙얼굴'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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