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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오조로에 위치한 ‘신좋은식당’.
일일 매출 3만 원, 작은 테이블 4개가 전부인 이곳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식사 뭐로 하시겠어요?”
“식사 아니고 할 얘기가 있어 찾아왔어요.”
‘신좋은식당’의 영업주 박미영(35) 씨는 그 날 “로또를 맞았다”고 말했다. 아니, 로또 맞은 것보다 더 행복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게가 ‘맛있는 제주만들기’ 5호점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하늘이 자신을 돕고 있단 느낌을 받았다. 그 날의 일을 떠올리던 미영 씨의 얼굴 위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이 번져나갔다.
▲ 맛있는 제주만들기 프로젝트
'맛있는 제주만들기'는 호텔신라 임직원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제주의 음식문화 경쟁력을 강화하고 영세 자영업자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프로젝트다. 대상 식당은 제주도청 주관 선정위원회의 심의절차를 거쳐 선발되며, 재개장 준비 과정은 지역 방송사를 통해 매주 방영되고 있다.
미영 씨에게 찾아온 시련, 그리고 기회
‘신좋은식당’은 미영 씨의 아버지가 직접 바다에 나가 채취해온 보말(바다 고둥)을 가지고, 미영 씨와 어머니가 조리와 서빙을 했다. 4년 전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매출이 나쁘지 않았다. 올레길 덕분에 찾아오는 손님도 꽤 있었다.
하지만 1년 뒤, 올레길에서 사건이 터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하루종일 영업해도 일일매출은 3만 원이었다. 그 후, 모시고 살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바로 한 달 뒤 미영 씨의 큰오빠마저 돌연 세상을 떠났다. 건강한 줄만 알았던 첫째 아들이 발작 증세를 보였다. 서울 시내 병원에서 ‘뇌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9살, 10살, 11살 연년생 세 아이를 키우는 미영 씨 부부에게 병원 입원비는 감당키 어려웠다.
'좋은식당' 사장 박미영 씨. 그녀는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아직 쑥스럽다고 했다.
그녀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답답한 맘에 점집도 찾았다. “거기서 그러더라고요? 저보고 음식 장사 잘할 거라고. 근데 왜 잘 안 될까 했거든요. 아마 맛있는 제주만들기 5호점 선정되려고 그랬나 봐요.”
맛있는 제주만들기 5호점의 숨은 일등공신들!
미영 씨는 교육을 받기 위해 7월 초, 처음으로 호텔신라를 찾았다. “호텔신라는 근처에도 안 가봤어요. 거긴 돈 많은 분들만 찾는 곳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처음에는 너무 쑥스러웠어요. 조리복 입는 것도, 조리실 안에 들어가는 것도, 이것저것 질문하는 것도요.” 낯 가리는 그녀에게 먼저 친절하게 다가간 것은 호텔신라 임직원들이었다.
이창열 총주방장을 필두로, 맛있는 제주만들기 T/F장인 이창민 책임, 조리 교육을 맡은 박영준 셰프와 김현구 셰프, 서비스 교육을 맡은 신정식 대리, 내부 시설 담당 양상옥 선임이 그녀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 호텔신라 이창열 총주방장
이창열 총주방장은 "제주도민을 돕는 일이지만, 우리 후배 셰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값진 경험이다. 메뉴 선정부터 재개장하고 그걸 유지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함께 하면서 새로운 시각도 생기고 한층 성장할 수 있다"며 "영세 자영업자분들이 우리의 말을 경청해주고 전문가로 봐주시고 그대로 따라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천 리 길도 시장조사부터
하지만 임직원들의 재능기부가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반드시 재기에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그래서 ‘신좋은식당’의 주변 시장조사부터 시작했다. 실제 이웃과 관광객 3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까지 실시했다. 조사를 통해 가게 인근의 성산일출봉, 올레길을 찾은 분들이 제주 특산품이면서도 가격이 적당하고 안줏거리가 될 만한 음식을 원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신좋은식당’ 메뉴의 가짓수를 대폭 줄였다. 기존 김치찌개, 된장찌개, 보말국, 국수 등 스무 가지도 넘는 메뉴에서 보말죽, 보말해장국, 보말초무침, 치즈등갈비 등 대여섯 가지 메뉴로 바꿨다.
“예스, 셰프!” 매일같이 조리 연습
신메뉴를 익히기 위해 미영 씨는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매일 호텔신라를 방문해 박영준 셰프로부터 교육을 받는다. 처음에는 낯설고, 주방 구조도 복잡하고, 서 있느라 다리도 아팠다. 교육받은 지 어언 20일. 그새 익숙해졌고 셰프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미영 씨가 가장 놀랐던 것은 보말로 이렇게나 맛있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단 사실이었다.
▲ (왼쪽부터)보말죽을 만들어 보고 있는 호텔신라 박영준 셰프, '좋은식당' 사장 박미영 씨, 호텔신라 김현구 셰프
“사모님, 보말죽이 얼추 완성되면 쌀알을 보세요. 투명하면서도 형태는 남아 있도록. 미음 되면 안 돼요. 미음은 환자만 먹는 거예요. 고객을 환자로 만들면 안 돼요. 아시겠죠? 마지막에 뭘 넣는다고요? 참기름이요! 수첩에 참기름이라고 10번씩 쓰세요.” 박 셰프의 농담 섞인 말에 수첩에 열심히 필기하고 있던 미영 씨도 웃음이 터졌다. 이날 조리해본 음식은 보말초무침과 보말죽이었다.
▲ 완성된 보말초무침
보말초무침은 무, 양파, 양배추에 밑간으로 소금과 설탕,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고, 제주 특산물 돌문어와 보말을 먹음직스럽게 버무린 음식이다. 쫄깃쫄깃 신선한 보말에 새콤달콤함이 더해져 맛이 일품이다. 보말죽은 다시마로 간을 한 쌀알에 보말 육수를 넣고 제주표고버섯을 썰어 넣은 뒤 10분간 자박자박 끓여내 먹음직스럽게 담아낸다. 조리부터 고객의 오감을 자극하는 플레이팅 방법까지, 미영 씨는 하나라도 놓칠세라 박 셰프의 설명에 귀 기울였다.
“거울 보고 미소 지으세요” 서비스 교육도
서비스 교육도 빠질 수 없다. 호텔처럼 정중하고 격식 있는 서비스를 권하진 않는다. 이웃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이기에 서비스 하는 법도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서비스 교육을 담당하는 신정식 선임은 미영 씨에게 거울 보며 자주 표정을 확인하고 밝게 미소 띨 것을 요청했다. 롤플레잉 시뮬레이션도 한다. 손님이 들어왔을 때 ‘솔’ 음으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해보는 식이다.
▲ 호텔신라 신정식 선임
신 선임은 미영 씨가 처음보다 훨씬 밝아지고 더 자주 웃는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맛있는 제주만들기 프로젝트에 선정된 분들이 어려운 형편 등으로 마음의 상처가 있으시거든요. 그분들이 훌훌 털고 달라진 모습을 보면… 제가 교육했지만 참 뿌듯해요.”
새 단장, 새 마음으로 출발하는 ‘신좋은식당’
교육을 마치고, 미영 씨와 함께 재개장을 일주일 앞둔 ‘신좋은식당’을 방문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머무르던 방을 확 틔워 홀을 확보하고 주방 공간도 더 넓히고 노후화된 시설물은 전면 교체했다.
▲ 리모델링이 한창인 '신좋은식당'
시설 파트를 담당하는 양상옥 선임은 인테리어, 주방설비. 하다못해 메뉴판, 식탁, 그릇 등등 식당 내부에 들어가는 것을 다 책임지고 있다. 그는 작은 공간일수록 디테일하게 고민할 점이 많다며, 회를 거듭할수록 더 어렵다고 했다.
▲ 호텔신라 양상옥 선임
“5호점은 홀이 작고, 영업주의 부모님이 주무시는 방이 전체 면적의 절반을 차지했어요. 방을 트고 테이블을 더 넣었죠. 혼자 조리도 하고 홀 서빙도 해야 하니 동선 확보가 급선무였고요.”
미영 씨는 아직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가게를 둘러보며, ‘메뉴판은 어디 붙일까’, ‘첫 손님은 누굴까’, ‘테이블이 꽉 차도 나 혼자 다 해낼 수 있을까’ 등의 생각에 설렌다고 했다.
미영 씨, 웃어요!
“박 셰프님을 존경하게 됐어요. 첫날부터 친근하게 대해주시고 노하우를 많이 전수해주셨거든요. 호텔신라는 멀게만 느껴졌는데, 이번을 계기로 생각이 달라졌어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이제 정말이지 웃을 일만 남은 것 같아요.”
맛있는 제주만들기 5호점 ‘신좋은식당’은 오는 30일 재개장할 예정이다. 맛있는 제주만들기 1호점 ‘신성할망식당’, 2호점 ‘동동차이나’, 3호점 ‘메로식당’, 4호점 ‘보말이야기’까지. 재개장된 음식점들은 호텔신라의 꾸준한 도움하에, 제주도민과 관광객 사이에서 입소문도 퍼지고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성공 행진에 힘입어, 미영 씨와 호텔신라 임직원의 오랜 노력도 좋은 결실을 맺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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