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8장
성령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확신
(찬송 186장)
2023-2-14, 화
맥락과 의미
로마서 8장은 7장과 연결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1:17)는 로마서의 주제입니다. 3-4장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5-6장은 믿음으로 생명을 풍성히 누린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성도들이 이제는 죄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7-8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일에 율법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7장에서 율법은 죄를 드러냅니다. 율법은 선하지만 우리가 그 선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고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8장에서는 율법의 선한 요구가 성령님 안에서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성령님이 율법을 따라 참 생명을 누리도록 만드십니다. 첫째, 성령님 안에서 우리는 죄를 이기고 선한 삶을 살아갑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지만, 그 가운데 우리를 위하여 선한 일을 이루십니다. 땅에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고, 하늘에서는 그리스도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1. 생명의 성령: 죄와 사망에서 해방하여 생명으로 옮김(1-13절)
7장 24절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기서 “나”는 사도 바울 자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아는 사람의 입장을 대변해서 ‘나’라고 말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선한 것이 무엇인지 배워서 압니다. 선한 것을 행하고 싶은 생각도 내 마음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 속에 또 다른 더 큰 죄의 세력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려고 하는 내 안에서 내가 싫어하는 죄가 나를 죄로 끌어갑니다. 죄는 실체가 아닙니다. 내 의지의 방향입니다. 인간의 의지가 워낙 부패해 있습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구약 율법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과 죽음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몰랐다면 양심의 고통은 적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알기 때문에 고통이 더 심합니다. 누가 나를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여 주겠는가? 하고 탄식합니다.
그것에 대한 답이 7장 25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육신의 자연적 본성이 죄의 법을 섬기려 합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성령님이 일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감사가 8장에 다시 나옵니다. 1-2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7장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고민했는데,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7장에서 성령님의 구원의 능력이 드러나기 전에 양심의 고통을 말했습니다. 이제 8장에서는, 성령님께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강하게 선언하십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 빠진 너를 해방하였다!
우리가 율법을 알고 있지만 육신의 자연적인 본성 때문에 행할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3절).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죄가 있는 육체적인 모양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죄는 없으시지만 죄의 본성을 가진 사람처럼 되셨습니다. 죄의 유혹을 받을 수 있는 분으로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육신에 죄를 정했습니다. ‘죄를 정했다’는 속죄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죄인인 우리의 죄의 모든 책임을 가져가시는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주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십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의’가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의 실제적 내용은 의로운 삶입니다. 그 의로움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령을 따르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 즉, 성령적인 일을 추구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9,11절) 성령적인 일을 추구합니다.
‘거한다’는 말이 7장에서도 나왔습니다.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7:17,20) 본래 내 속에 죄가 거했습니다. 율법을 알고 선을 행하려는 생각이 있지만, 죄가 자리를 차지하고 주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성령님이 주인으로 거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계속 죄를 이기고 멸하십니다. 하나님은 죄 때문에 죽은 우리 몸을 성령님을 통해서 살리십니다.
11절의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는 바로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부활 사건이 우리 안에서도 계속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한번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죽음과 부활 사건이 계속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런 은혜 때문에 우리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입니다.
2. 입양의 성령: 부족함을 아버지 하나님이 위로하심(12-18절)
우리는 죄악된 본성대로 살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통해 본성의 악함(육의 행실)을 죽이면서 거룩한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세우신 그 거룩함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함을 봅니다. 이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실까? 두렵습니다.
15절, 이제 우리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습니다. 나는 나의 죄를 보지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양자의 영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아들 딸로 삼으셨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죄의 본성을 보면서도 그것 때문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성령님의 능력으로 선을 행합니다. 이 복이 큽니다. 나의 죄가 보이지만 죄를 이기신 성령님이 있습니다.
17-18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용서하셨고 선을 이루게 하시지만 고난에도 참여하게 합니다. 새로운 세상이 올 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참여할 것입니다.
3.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인내하며 선을 이룸(19-39절)
1) 고난 가운데 탄식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됨(19-30절)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고난 가운데서 탄식하며 부르짖습니다. 고난 가운데 부르짖는 일은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피조물이 탄식합니다(22절). 온 우주가 탄식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피조물 전체가 허무함에 굴복하게 하셨습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서 자기들을 허무함에서 해방시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영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땅을 다스리고 정복해 주기를 기다립니다.
둘째, 성령님을 첫 열매로 가진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도 탄식합니다(23절). 우리에게 아직 남아 있는 죄와 비참으로부터 구속해 주시기를 탄식하며 기다립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소망하면서 인내하면서 죄와 고통과 싸웁니다.
셋째, 성령님이 탄식하십니다(26절). 탄식하며 부르짖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와 함께 성령님이 탄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십니다. “말할 수 없는 탄식”은 사람의 말이 아닌, 그래서 우리가 들을 수 없는, 말로 탄식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그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모든 것이 고난 가운데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선이란 우리가 수동적으로 받는 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는 행위가 선입니다. 7장13절에 “선한 것이 나에게 사망에 되었느뇨?” 하나님의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나의 죄악 된 본성은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내 안에서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28-30절, 우리는 이 땅에서 고난 가운데 연단받으며 영광을 향해 나갑니다.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우리는 계속 죄와 여러 고통스러운 일과 싸웁니다. 하지만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28절). 이 선이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모양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29절).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 딸로 입양해 주셨습니다. 원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우리를 다듬어 가십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기 전에 미리 아시고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복음을 통해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을 때 의롭다 인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처럼 영광스럽게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2) 확신: 죄의 용서와 고난 가운데서 돌보심(31-39절)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도 남아 있는 죄를 볼 때, 우리는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는데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는가?
죄 용서를 확신하면 동시에 고난 가운데 돌보심을 확신합니다. 37절에서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것도 끊을 수 없습니다(39절). 성령님이 우리 안에 살면서 이 일을 이루십니다(9,11절).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일을 믿고 바라봅시다.
믿고 복종할 일
두 가지를 기억합시다. 첫째, 율법이 가르치는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벗어날 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성령님 안에서 거룩을 이룹니다.
둘째,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때 항상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넉넉히 이깁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우리가 의를 이루게 하십니다. 죄와 비참함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고통과 고난을 없애 준다고는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통해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내하고 이기며 나갑니다. 특별히 지금은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말씀을 잘 배우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많은 열매 맺는 하루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최근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고난이 무엇입니까?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변화시켜 가신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만 의지합시다.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3절, “죄를 정했다”(페리 하마르티아)= 속죄 제물
“죄를 정했다”(페리 하마르티아)는 ‘속죄제물’을 헬라어로 번역한 말입니다.
<참고> 4절, “율법의 요구”
율법(노모스)의 요구(디카이오마)는 율법이 요구하는 ‘의’(디카이오시네)를 말합니다.
<참고> 율법의 세 가지 용도: 죄를 알게 함, 거룩한 삶의 인도자, 국가와 세상의 기준
하나님께서 율법을 세 가지 용도로 주셨습니다.
첫째 용도는, 우리가 죄를 깨닫고 또 죄로 인한 심판을 알게 합니다. 우리를 깊은 양심의 고통에 빠뜨립니다. 죄라는 병의 통증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께 우리를 인도합니다.
둘째는,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생명을 풍성히 누리도록 하는 도구로 율법을 사용하십니다.
셋째는, 시민 사회와 국가에서 살아가는 삶의 기준을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