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2010/11/21 푸름산악회와 함께
장암역-노강서원-석림사-삼거리-왼쪽길로 능선에-기차바위-608-수락산-
헬기장-450-485-360-250-보리바위-마당바위-내원암길-청학리
모처럼 서울의 산을 간다. 몇년전 서울인 까닭을 산에서 찾고자 1, 2년간 주말마다 서울의
친구들과 서울 주변의 산을 하나하나 오른 적이 있고 이후 드문드문 찾은 곳이다. 서울을
싸고 있는 산은 우리 선인들의 사람의 삶터를 보는 안목이 과학을 앞세운 오늘날 항공 정찰
을 능가한 게다. 한 나라의 수도를 감싸고 있는 산들이 아름다움과 방어적 천연 성곽, 육산
과 골산 아니면 안산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꼭 거기 있는,
거기 있을 산인 게다
장암역 광장에서 내려 북한산을 등 뒤로 길을 건너 석림사 방향으로 수락을 오른다. 서울의
산 진입로는 산꾼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상가들이 양쪽으로 장터를 이룬다. 더구나
명산에서 흐르는 계곡의 끝자락이라 맑디 맑은 물을 끼고, 빈손으로도 산에서의 의, 식, 주
에 대한 걱정이 없게 한다. 급하게 앞서가는 이들을 세워 출발의 점을 찍고 안내문을 읽을
겨를도 없이 노강 서원을 지난다. 산 정상을 향한 성급함은 일상에서의 분주함과 무엇이 다
르랴.
'여가 기념사진 박을 데구먼. 자 서라구.' 허나 벌써 대다수가 산악행군으로 앞서 간다. 석
림사 일주문을 산행 기점으로 잡고 석림사 담옆을 돌아 곧바로 등산로로 들어선다. 아무리
그래도 절간 앞마당을 돌아 여유를 가져도 좋으련만, 앞서고 뒤서고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을 둘러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다 삼거리 갈림길이다. 수락산 정상으로 바로 오르는 직선 코스와 동막
골에서 수락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으로 올라 기차바위와 608 고지를 넘어 가는 코스로. 나
는 먼길을 택한다. 나대로 여유와 주능선을 비껴가는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스스로 보충하
는 게다. 잘 닦여진 정상 등산로와는 달리 아는 산꾼만 다니는 샛길 기분이 들어 꺼림직한 느낌이나, 길은 능선까지 이어져 있어. 갈림길 왼쪽 계곡을 따라 능선에 선다.
능선까지 푹파인 길을 걷다보니 순한 육산으로 살이 통통하게 찐 넉넉한 산으로 착각을 하
다가 정상을 향해 걷다보면 느닷없이 절벽이 늘어선다. '노약자는 우회하시오.' 란 팻말을
무시하고 궂이 암릉에서의 시원함을 선택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현인의 말은 소 귀에 경
읽기가 되고 나름의 하늘선을 따른다. 길게 파인 바위 홈통을 사이에 두고 굵다란 밧줄 두
가닥. 경사가 가파른 기차바위의 밧줄을 잡고 내 몸을 한발 한발 이삼십여미터나 끌어 올리
다 보니, 등에 땀이 홍건이 솟는다. '아이구 죽갔네. 에이, 존 말헐 때 돌아 갈 걸.' 옆줄에
매 달린 아녀자의 푸념과 함께 후덜거리는 팔과 다리를 본다. 오른 이들은 깊은 숨을 몰아
쉬며, 바위에 꽂힌 쇠울타리에 몸을 기대고 아직도 전력을 다 하는 이들에게 애처로운 눈길
을 보낸다. 금방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음을 망각하는 게다. 기차바위는 평범한 산꾼을 전문
가처럼 시험하는 멋진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경험시킨다.
기차바위를 지나 작은 언덕을 넘어 서울 둘레 산 정상마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본다. 정상에
가까워진 게다. 정상에는 미리 온 동료들이 지고온 막걸리랑 캔맥주, 하드를 파는 상인들
옆에서 목을 축이고 있다. 수락산 주봉, 오늘 산행의 반환점에 선다.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오름을 마감하고 아래 세상을 여유롭게 한바퀴 휘 돌아보고 내연암으로 가는 헬기장 옆에
서 점심을 먹는다. 헬기장에는 회원 대부분이 빙 둘러 앉아 점심을 먹고 그 중 나이가 많다
는 사람끼리 자리를 함께 한 셈이 되니 '야 헬기장은 먼지 일구는 바람이 불어 여기 자리 좋
네.' 한 게 조금은 어색하다. '성님들 막걸리 가져 왔어유. 와 여 떨어져 있는 교. 동생 애 믹
일라구.' 기어이 음식을 나눠주러 오는 후배님들의 손울 잡기도, 어쨌던 함께 온 동료임을
일깨우는 것 같아 미안하다. 그런 건 아닌데. 조촐한 식사와 정상주 핑게의 반주로 가을을
떠나 보내는 산행의 운취에 잠시 젖는다.
소나무들이 활엽수에 차츰 밀려나고, 내려오는 길은 무성했던 여름이 낙엽으로 산길을 덮
는다. 사각거리는 낙엽을 밟는 우리네에게도 가을은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다. 내연암
으로 내림길은 편평한 암반이 이어져 있어 시야가 훤하다. 정상의 펄럭이는 깃발은 좌우로
멋진 산줄기를 거느리고 있어 지나온 길이 한눈에 들어 온다. 곳곳이 전망대이니 들락날락
풍경을 잡는 재미가 쏠쏠하다. 계곡 아래 내원암은 아스라한 안개 속에 저녁연기 피우는 산
골마을을 연상시킨다.
마당바위와 보리바위 어느 게 어느 갠지 모르나 넓기도 하고 시원하게 알맞은 경사로 편안
하다. 내원사 계곡까지 이어진 암반은 산이 커다란 바위덩이인 게다. 아마도 선인들은 이
마당바위의 너른 공간에서 풍류에 취하고 가슴을 크게 가지면서 아무 것도 새길 생각을 하
지 않은 모양이다. 무엇인가 자취를 남기기에 그만인 바위가 풍상의 손짓에 그대로 맡겨져
있으니,
청학리 계곡으로 내려 온다. 상가가 즐비한 계곡은 흐름을 차단한 작은 시멘트 구조물들이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수만 세월동안 이루어가는 자연스러움을 망가뜨린 게다. 그대로 둠
과 만들어짐의 조화는 어려움이 있으나 지금의 모습은 아닐상 싶다. 계곡을 끼고 풍성했을
여름과는 달리 겨울 문턱에 선 썰렁함이 상가를 싸고 있으나, 좀도 자연과 가까운 정비를
하면 어떨까.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오는 富에만 끌리지 말고 그저 자연이어서 행복
하다는 계곡을 낀 산골이었으면 겨울이 겨울이 아닐 수 있으리라. 한참을 계곡 끝머리를 서
성이면서 수락산의 수려함과 등진 풍경을 안스러워한다. 버스에 오른다. 마땅히 하산잔치
할 곳을 찾지 못해 재빨리 도심을 빠져 나온다.
고속도로 휴게소 한 켠에 자리를 펴고 하산참을 먹는다. '우째 산행이 맨날 묵다가 볼일 다
보는 거여.' '등산 봇짐이 언제나 진수성찬이니 산에서 쏙 빼놓은 땀보다 더덕더덕 붙여가
는 먹새통이 더 큰기여.' 찌개 그릇을 앞에 두고 든 술잔 위에 웃음이 인다. '그라믄 묵을라
고 사는기구, 살라구 산 가는거 아이가.' 참말 그런가.
버스 안은 흥이 넘친다. 기차바위의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아이구 죽갔네 하며 탈진한 기
력들이 언제 였나 싶게 신이 난다. 노랫 속에 담긴 추억도 가슴에 들어 온다. 동동구리무의
애환이 잠시 옛날로 일행을 끌어 간다. 시골 마을 아낙네에게 설레임을 뿌리며 다니던 동동
구리무 장사. 우스꽝스럽게 어설픈 광대 분장에 발에 묶인 끈에 달린 북채가 등에 진 북을
동동 치고 앞 가슴에 구리무를 안고 동네 골목골목 다니던 장사. 그나마 돈이 있어 구리무
작은 통 하나 담은 걸 손에 넣고 환한 웃음을 띠는 어머니, 평생을 고운 얼굴에 구리무 바를
짬 없으신 어머니, 자식은 그게 한이 되어 철들고 구리무 사고 싶어도 이미 어머니는 안 계
시더란 노랫 말은 가슴에서 무엇인가 뭉클함이 솟게 한다. 어버이는 늘 어버이로서 자식은
늘 자식일 것 같은 세월이 어느새 자식이 어버이가 되어 어버이를 그리워 하는 철이 든다.
제자리로 온다. 수락산에 함께 내려놓은 하루는 구수한 된장국에 녹고 다음 산행을 약속한
다. 이런 저런 인연들로 이루어지는 사람들 삶의 한 장면이 기억으로 산화하여 재로 남는
순간이다.
그래도 아쉬움을 끊기 어려운 사람들이 만다래에서 회포를 푼다. 모르는 사람들로 만나 모
르는 사람이 아닌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알고 보면 한 세상 흐름에 동승한 것임을 아는 게
다. 술 한잔 한잔마다 가득 실리는 그들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좋다.
수락산 기차바위 위의 초소는
우리에게 묵묵히 수없는 우리네 이야기를 한다
아직도 화살을 겨누고, 방패를 들고.
누가 만든 비극인가를 묻는다.
의미없는 죽음을 부를 수 있는 이념들의 문제로
누르면서 살고자 하는 탐욕들이
편을 가르고 등을 돌리게 하고 필요없는 피를 부르고 있지 않느냐고.
참호 앞에서 천안함과 연평도의 불행을 애통한다.
도대체 그들의 慾은 무엇으로 지울까.
그래서 하얀 백지로 만들었으면 한다.
함께 한 이들과 소망을 공유하며.
2010/11/23
문경 산북의 산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