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타임스>
<김진수의 들꽃에세이 89>
함박만한 얼굴에 함초롬한 미소 - 산작약(山勺藥)
학명: Paeonia obovata Maxim.
쌍떡잎식물강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 작약속의 다년초
꽃의 품이 함지박처럼 크고 탐스러워 함박꽃이라 부르는 『산작약』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특산식물이다. 흰 꽃이 대부분이고 드물게 붉은 꽃도 발견되는데, 함경도지방에서는 산작약을 북작약(北勺藥)이라 하고 강원도에서는 강작약(江勺藥)이라 부른다. 유사종으로 참작약(씨방에 털이 촘촘히 난 것), 호작약(잎 뒤의 맥에 털이 난 것), 작약 등 여러 종이 있다. 근래는 대부분 의성과 호남지방에서 재배하므로 약재시장에서 의성작약, 호남작약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개가 설사를 할 때 먹이면 즉효를 낸다 하여 ‘개의 보약’의 의미로 북한에서는 ‘개삼’이라고도 부른다. 작약의 원산지는 한국과 중국, 시베리아 지역이며 일본은 삼한시대 백제로부터 작약을 얻어갔다고 한다.
속명 파이오니아(Paeon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파이온(Paeon)에서 유래하였다. 종소명인 ‘오보바타(obovata)’는 ‘도란원형(倒卵圓形)’이라는 뜻으로 거꿀달걀꼴의 잎 모양에 잇닿아 있으며, 명명자 막심(Maxim.)은 한국식물을 세계에 소개한 러시아 식물학자 막시모비치(Karl johann Maximowicz)의 약자이다.
작약을 크게 산에서 자라는 작약과 집에서 기르는 작약으로 나눌 수 있다. 재배 작약인 백작약의 ‘백(白)’은 뿌리가 희다는 의미이고, ‘작(芍)’은 함박꽃처럼 크고 화려하게 핀다는 뜻이다. -참고로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서는 꽃이 붉은 색으로 피는 것을 산작약이라 표기하면서 비추천명을 민산작약이라 하였고, 흰색으로 피는 것을 백작약으로 표기하고 비추천명을 산작약으로 정리하였다.- 산작약이 탐스럽고 귀한 만큼 사람 손에 의해 해마다 개체수가 줄어 1989년 환경부에서 특정야생식물로 지정했고, 2005년 3월 자연환경보존법 및 야생동식물보호법의 개정에서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산작약은 우리나라 전역의 깊은 산중에서 자라며 약 50cm로 곧게 선다. 둥근 꽃부리 속의 암술은 많은 수술들에 에워싸여 길게 자라고 끝이 뒤로 젖혀진다. 백작약의 뿌리가 짧게 양편으로 번식한다면 산작약은 사방으로 길게 뻗는다. 한방에서는 오래 전부터 백작약과 적작약을 구분하여 약재로 써왔는데 두 구별은 약용부위인 뿌리에 따른 것이다. 백작약은 꽃이 붉고 뿌리가 흰 것을 말하고 적작약은 반대로 꽃이 희고 뿌리가 붉은 것을 말한다. 《대한약전》에서는 2002년부터 적작약 백작약이라는 약재 구별을 없애고 모두 ‘작약’으로 통일했다. 그러나 분류학적으로는 아직 정리되지 않아 논란이 많은 식물이다.
작약의 꽃말은 ‘수줍음’이다. 영국 전설에, 잘못을 한 요정이 부끄러워 작약 꽃그늘에 몸을 숨겼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하는데 산작약은 붉은 꽃이든 흰 꽃이든 활짝 피지 않고 입을 반쯤 벌린 상태로 개화를 마친다. 이 개화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군말 없이 꽃말에 부합된다. 이는 약재로 재배하는 백작약과 뚜렷하게 비교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목단을 《본초강목》에서는 "당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목작약이라고 불렀다. 꽃은 작약과 비슷한데 몇 년을 지난 줄기는 나무를 닮고 있기 때문" 이라 하였다. 즉 작약과 비슷한 목본이란 뜻으로 모란을 목작약(木芍藥)이라 하였고, 작약을 부를 땐 초목단(草牧丹)이라고 함으로써 둘에 우열을 가리지 않았다.
모란과 작약을 화왕(花王)과 화상(花相)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모란이 백화의 왕이라면 작약은 재상이라는 말로 나무인 모란과 풀인 작약이 꽃세계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화암수록》 ‘화품평론’에서는 "작약은 충실하고 화려함이 화왕 모란보다 못하지 않으므로 아마도 화왕에게 머리를 숙이고 신하 노릇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28友’에서 연은 정우(淨友), 죽은 청우(淸友), 매는 방우(芳友), 모란은 열우(熱友), 작약은 귀우(貴友), 송은 노우(老友)로 의인화하였다. 그런데 ‘귀한 벗’ 작약의 개화기간은 차마 3박4일! 피인 하늘이 높은 만큼 지는 땅의 나락도 큰 법. 만사 허울에 따르는 대가는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