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허물을 벗는 시간
그것은 기척도 없이 삶이 그늘져야 가능한 일이다
복권 당첨된 하반신 장애의 오후처럼 도발적 감정세포에서였다
헛구역질이 뜬금없는 뱀의 혀 같고 휘청거리는 못물 같고
무시래기 삶는 냄새 팥 칼국수집 나박김치 냄새 극심하게 거부하는
위기 암 덩이를 도려내고 한낮의 유등연지 움직임 없이 앉아 있는 나
얼룩진 혈거시대를 생각하다가 옛 거제포로수용소 시인을 읽었다
그는 목숨 사방을 경계하다가 방어 포착에 조준했다는 것
위기를 모면했던 영어 기술이 그의 보호색이었던 셈
사진 속 그의 커다란 눈이 연봉오리 닮았다
시신경이 진흙 어디쯤에서 역동했을 터, 쓸모없는 지폐처럼
풀은 풀로써 제 몫을 다해 몸으로 언어를 보이는 파충류를 보면 안다
내가 기어간다면 바닥의 진동을 듣는 아래턱과 내이가
더욱 새로워질 것이다
<시작 노트>
삶에서 무지와 아집, 두통과 소화불량, 모독과 치욕으로부터 극복으로 완성되는 시는 뱀이고 경계이면서 틈새이고 금기다. 혓바닥이 찢어지는 노역이다. 글로 써진 현실의 육체다. 시는 논리 밖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다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법, 사람들이 몰라보는 즐거움이 있다. 절벽에 매달려서 버섯을 따는 사람, 다리를 잃고 선수로 달리는 사람,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능력 키우면서 시를 쓰고 소통하면서 세상에 태어난 값을 조용히 치루고 싶었다.
첫댓글 이자규 시인님의 시 한 편 더 올립니다.
흰 개를 보냈던 기억
폭설 내린다
땟거리도 없는 외딴 집에
쌀자루 메고 그가 온다
희디흰 짐승으로
할 말 스러져 빗질한 맵시가
무릎 꿇는 형상으로 그가 온다
외면의 뿌리에서 기다린 충혈
솜이불 덮어 그를 묻었다
쌀밥 짓는 침묵의 말로 그득하게
천지가 한 몸 되는 날개는 돋아
돋아서 찻잔을 식히고
제 키를 낮추던 산봉우리들마저
겹겹 사라지고 그는 쉬지 않고
흰 이를 드러내 웃고 있다
-『대구의 시』(2021)에서
고생하셨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겠지요?
아파보면
느낌도 다르고 보이는 모든 사물도 달라 보이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 냄새도 진저리 치게 싫어질 때도 많겠지요.
내가 괴로우니 보이는 모든것이 정상으로 보일 리가 없겠지요.
혼자 싸우기는 너무 힘들어도 어찌할 수 없는 일
보는 가족들도 많이 힘들 것입니다
어디서 갑자기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그냥 멍 때릴수 밖에요.
뱀이 허물 벗듯 병마에서 벗어나 더욱 성숙된 모습 뵙기를 기원합니다
시를 읽고 무지와 아집 두통과 소화불량 모독과 또 극복으로 완성되는
당신의 시는 뱀이고 경계이고 틈새면서 노역인 것을 공감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밀려난 사람은 늘 있는 자리에 있던 파란 하늘과
빛나는 별, 달과 햇볕. 그리고 자연이 새롭게 보인다고 하지 않습디까?
그게 세상에 나온 값을 하는 것인지 모르지요.
그렇습니다
아름다웠던 사람은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시로 소통하고
당신이 기어간다면 분명 바닥의 진동을 듣는 아래턱과
내이가 더욱 새로워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혼자서 세상에 난 값을치루고 있는 당신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많은 박수를 보냅니다.
"헛구역질이 뜬금없는 뱀의 혀 같고 휘청거리는 못물 같고
무시래기 삶는 냄새 팥 칼국수집 나박김치 냄새 극심하게 거부하는~"
* * *
병마와 홀로 힘겹게 싸우고 있는 시인께서는 마치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는 그런 심정이었겠지요?
허나, '뱀이 허물을 벗는 시간'을 견뎌내며 파충류처럼 기어가고자 하는 모습이 실로 눈물겹고, 참으로 장하디 장합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