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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KAIST에서 원자핵공학으로 박사학위
현재 한동대교수
이 책에서 권하는 자기 개발의 방법은 그저 간단하다. 디지털 기술로 지식정보가 넘쳐나는 멀티미디어의 시대에 노트를 한 권 사서 무엇인가를 끄적거리기를 권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노트에 자시의 생각을 갈무리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나를 끄집어내는 일과, 느릿한 걸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단순함을 지녀야 한다. 그 단순함과 긴 세월을 버텨 줄 좋은 도구가 바로 노트이다. 한 두 쪽의 간단한 아이디어의 긴 세월을 버텨 줄 좋은 도구가 바로 노트이다. 한 두쪽의 간단한 아이다어의 나열이 아니라,수 십 권의 노트를 가득 채울 그런 즐겁도고 큰 주제를 잡고 살아간다면, 어느 순간 남과 많이 달라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전문가적 입지를 달성할 수 있을까? 청소년기에 누구나 꿈꾸는 열망이다. 이에 대해 이재영 교수는 명망 있는 과학자의 시간으로 개인 노트 작성이라는 경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여러 가지 실증적 사례를들어 설득력 있게 이끌어간다.
무릇 인간이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깊은 생각으로 무한한 상상력을 발동하기도 하고, 짧은 순간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이를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모아 놓은 것이 노트라는 사실에 공감한다.
기록의 습관은 비단 학문을 하거나 글쓰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치인,군인, 사업가뿐 아니라 단순 기능직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자기 개발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이런 고민을 오래 하다 보니, 어느새 어느 분야에서나 어느 정도 탁월한 위치에 오른 사람이 있으면, 항상 그 사람이 그렇게 된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 비결 중의 하나를 나누고 싶어 이 책을 썼다.
췌장암을 위험을 딛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의 탁월한 성능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실패로 끝나리라 예상되었지만 다시 아이팟으로 화려 하게 부활하여 우리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수학자 오일러는 그리스, 히브리,스위스, 러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대수학을 포함한 수학과 물리의 다양한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수많은 논문을 쓴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로 1700에서1800년대, 즉 그의 일생에 해당하는 기간의 수학, 물리학, 역학에 간한 전세계 논문의 1/3이 그가 쓴 것이었다. 그가 죽은 이후에도 발표하지 않은 논문을 1912년부터 다시 출간하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다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대략 800여편으로 그중 상당수는 500쪽을 넘기는 대작들이다. 오늘날처럼 복사기나 워드 프로세서가 없이 모두가 손으로 일일이 써야만 했던 시대에 그가 한 일은 정말 놀라우리 만큼 방대하다. 그것도 단순한 산문집이 아닌 고도의 수학과 과학 논문이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죽기 전에 17년 간 시력을 잃어 장님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맹인의 기간에 시력을 갖고 있던 시절보다 더 많은 결과물을 낸 것은 더욱놀랄 만한 일이다. 그가 13명의 자녀를 둔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모차르트는 6세에 이미 미뉴에트를 작곡했고, 9세에 교향곡, 11세에는 오라토리오, 12세에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모차르트는 35세의 짧은 생애 동안 600여 곡을 작곡했다. 그의 작곡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그의 악보를 베껴 쓰는 데만도 30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 천재도 오페라 마적을 작곡할 무렵 극도로 쇠약해졌고, 진혼곡을 의뢰받고는 이를 완성하지 못한 채 쓰러졌다.
홍길동은 세종대황 시절의 인물로 소설에 묘사되어 있는데, 최근에는 세종 당시의 실존 인물로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는 사회 체계상 벼슬을 할 수 없는 출신으로, 태어나자마자 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수련을시작한다. 들에 작은 나무를 심어놓고 매일 심부를믈갈 때마다 뛰어 넘었는데 점점 그나무가 자라 길동은 담장을 훌훌 뛰어 넘게 된다.
점진적인 수행을 통해 깨닫게 되는점수와 소승의 모든 단계를 거치지 않고 대승을 갑자기 깨우치는 돈오
거북이는 경쟁자인 토끼를 바란 본 것이 아니라 목표 지점을 바라 본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목표에 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 일은 자본이 투여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마음을 바꾸면 되는 정말 돈 안 드는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값싼 노트 한 권을 사라고 권하고 싶다.
노트에는 자신의 지식 경영이 기록된다. 그것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기 않은 사람의 차이는 자신의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과 물쓰듯 써 없애는 사람의 차이처럼 명확하다.
적과 흑의 스탕달은 자신의 연약한 암기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끝없이 기록을 했다.
천재와 광기라는 책에 소개된 그의 일화를보면 믿을 수 없는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 손에서 연필을 놓지 않은 그의 삶이 담겨 있다. 그는읽 은 책의 가장자리, 빈 종이 , 편지, 일기장에 끝없이 생각을 적어 놓았다. 심지어 누가 보낸 편지에도 그와의 만남, 어떻게 헤어졌는지 하는 시시콜콜한 사항까지 모두 적었다. 표현을 빌자면 그는 연필을 취어야 비로소 생각을 시작하는 사람 같았다고 한다. 빈약한 기억력을 지닌 그가 그것을 극복하고 무려 60~70권의 책을 저술한 바탕에는 이와 같은 기록의 힘이 있었다.
스탕달의 경우처럼 연필을 쥐는 순간 우리는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쓰게 된다. 단어 하나가 되었건 동그라미가 되었건 거기서 출발하여 우리의 의식은 깨어난다.
멕메슬 대학이 기리는 지성은 바로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었다. 그곳에는 러셀의 서재가 보였다. 사면이 온통 책으로 덮인 그의 서제 한구석엔 조그마한 책상과 그가 쓰던 만연필, ..
남의 서재를 둘러본다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의 머릿속을 들어갔다 나오는 것과 같다. 비밀스런 체험이다.
그러나 실험노트만큼은 바인더로 해서는 안된다. 실험노트느 연구자의 진실이 있어야 하므로 절대로 중간에 순서를 바꾸거나 조작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각 장마다 일련번호를 미리 매겨 중간에 일부를 소멸하지 못하도록 한다.
가난한 제본공이었던 마이클 패러데이
그는 1791년 9월 22일 영국 서레이 지방의 뉴잉턴 빈민가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그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대신 1805년 책 제본 공장에 견습공으로 들어가 제본 기술을 배웠다. 책을 제본하면서 패러데이는 종이의 위력에 사로잡혔고 제본하는 간간이 그 안에 담긴 인새된 활자가 가져다주는 묘한 마력과 다양한 그림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때로 제본을 끝낸 책을 읽으면서 향학열을 불태우게 된다.
책이 가져다 준 그의 인생 정환은 어느 학자의 책을 정성껏 제본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그 당시 유명한 험프리 데이브 교수의 화학 강연 입장권을 선물 받으면서 일어났다.
이곳에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구 일지를 작성한다. 그 일지에는 연구에 대한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 성공과 실패의 기록이며, 내가 얼마만큼 연구를 열심히 하고 얼마만큼 게으름을 피웠는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엄한 교수보다 더 무섭고 시계보다 더 정확한 것이 연구 노트인 셈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스승이 누구일까? 극것은 자기 자신이다. 우리는 하루종일 아무도 없는 곳에 있더라도 자기와 끊임없이 속삭인다. 적어도 자기가 하는 말의 70%는 자기와의 대화이다. 이 자기와의 대화는 자기 자신을 교육하고 개선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아후 내 실험실에 학생들이 들어오면 나는 스프링 노트 한 권을 사준다. 이제부터 연구 노트를 쓰라고 한다. 무엇이든 다 쓰라고 한다.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
그러므로 데카르트처럼 머리맡에 메모지와 필기구를항상 놓아두어야 한다.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 란 책에 나오는 곤충학자 류비세프의 일대기는 실로 신비롭다. 그는 평생 자신의 일하는 시간을 마치 금전출납부처럼 쓴 신비로운 사나이었다.
사진을 찍자고 하는 기자에게 그는 얼굴이 아닌 엉덩이를 내밀었다.
"내 얼굴 말고 엉덩이를찍으시요.이것이 오늘의 내가있게 한 것이니까요"
그는 '1년 동안의 취미생활' 이란 제목으로 65회의 내용을 소상히 적어 놓았다. 그가 보고 들은 영화, 음악회, 전람회 등이다. 그가 일에 몰두한 시간을 고려한다면 이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1주일에 1회 이상의 취미생활을 즐긴 것이다. 류비세프의 시간기록표는 단순한 일정관리 노트처럼 보이지만 실은 적극적으로 행복을 관리해간 흔적인 것이다.
일정한 장소를 정하고 문을걸어 잠그고,일정한 시간동안 글을 쓰는습관을 갖는 것이필요하다.
당장 노트를 사서 오늘부터 쓰는 실천이 필요하다. 그 내용이 무엇이 되었든, 시간이 지나면 글은 슷로 생명을 갖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화가는 앞에 놓인물체의색으로 변해버리는 거울처럼 행동해야 한다.
작은 방과 고독은사고의 몰입 상태를 고양한다. 생각해보라.작은 방에 놓인작은 책상을, 그리고 그 책상에는 집중된 조명이 있다. 그리고 그 조명 아래엔 반짝이는 종이가 묶인 노트 한 권 ... 노트 한 권이야말로 다 빈치가 들고 다니던 가장 작은 방이었을 것이다. 다빈치는 사색의 시간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겼다.
"나는 경험에 의해, 연구하고 있던 것의 윤곽이나 기타 다른 주목할 것들을 저녁 늦게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 대단히 이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기억해내는 것에 대단히 유용한 방법이다."
실제로 이러한 종류의 몽상적 사고자들의 특징은 노트가 매우 깔끔하다는 것이다. 사실 다 빈치의 노트는 거울에 비추어 글 씨를 보도록 썼을 뿐만 아니라 한 폭의 그림처럼 수정 사항 없이 메모가 되어 있다. 수학자앙리 포앙카레의 경우에도 수정한 흔적이 거의 없이 메모가이루어진다. 이는 그의 머릿속에서 거의 모든 계산과 논리가완성된 상태에서종이에 펜을 댄다는 것을 입증한다.
나의멘토인이시선생의노트 역시 수정의 흔적이 거의 없다. 몇백페이지의계사을 살펴보아도 거의 수정의 흔적이 없다. 혹시 다른 곳에 초벌로 쓰고 나서 다시 꼬꼼히정서ㅇ를 하신 것 아닌가 여쭈어본 일이 있다. 선생께서는 하루 종일 그 문제만 생각하고 모든 것이 명확해지면 그때서야 노트를 하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자시늬 친구인 전자곧ㅇ학자를 예로 들었다. 그 분의 경우 복잡한 전자회로를 서례계할 때 모든 부분이 머릿속에서 구성되고 확인된다. 그리하여회로를꾸며 남땜을 하면 틀림없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다빈치는 한 가지 한 가지 완성되지 않은 채로 다음 단계로 나가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진도보다는 근면함을 먼저 익혀라
가장 중요한 것은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는 것이다.
어떠한 주제가 떠오르면 우선 노트를 한 권 사라. 그리고 그 노트에 그 주제에 대한 모든 것을 천천히 기록해 나가는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를 읽다가 관련 자료들이 보이면 스크랩도 하고, 남의주장을 비판도하면섲신의생각을키워나가는 것이다. 토느의 절반 이상이 횡설수설일 수도 있고 아무리읽어보다오 무슨 뜻인지 스스로도 알수 없는 때가 있으며 밤에 쓴 연애편지처럼 유치해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정연한 논리가 자라나서 깔끔하게 정돈된 노트를발견하게 된다. 노트한 권에 하나의 주장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창조성을끄집어내는알라딘의 요술램프로서 손색이 없다.
이러한 방법은 퍼듀 대학의 히비키교수가 즐겨 쓰는 방법이다. 그는 항상 3공 스프링 노트를 들고 다니며 하나의 주제에 대해 한 권의 노트를 사용한다. 그곳에 그는 온갖 시시콜콜한 계산과 생각을 적는다. 생각이 정리되면 그는 항상 워드프로세서로 다시 타이핑하여 노트에 붙인다. 그러고 나면 스프링 노트는 어느 사이에 배불뚝이가 된다. 두툼한 배불뚝이스프링 노트는 마치 생각이 자라는 것처럼 점점 두꺼워지고, 어느 날 새로운 생각을 주장하는 한 편의 논문으로 탄생한다.
첫째, 노트가 두꺼워짐에 따라 생각이 자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둘째, 언제 어디서나 노트를 펼치고 생각을 할 수 있고 남과 토론할 수 있다.
셋째, 한 가지 일에 몰두하게 해준다. 우리는 컴퓨터를 켜는 순간 인터넷을 뒤지고, 이메일을 살펴보고 답장을 쓰고 쇼핑을 하는 멀티태스킹의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그 사이 우리의 집중력은 분산되고 생각을 키워나가기 어렵다. 노트에는 어떠한 멀티 태스킹의 유혹도 없다. 너무나 원시적인 아날로그적 존재일 뿐이다.
넷째, 우리는 노트에다 어느 순간 떠오른 영감을 끄적거린 껌 종이나 포스트잇을 마음껏 덕지덕지 붙일 수 있다. 이러한 물리적 매체는 언제나 그 내요을 전체적으로 인식하게 해 준다. 한 장 한 장 클릭을 해서 넘기는 디지털 문서가 갖지 못하는 매력이다. 내가 기록한 노트를 넘기면서 읽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두뇌는 다양한 사고를 융합하는 작업을 수행하기 땜누이다.
손수 쓴 글씨와 그림, 컴퓨터로 출력한 문서를 붙인 노트는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새로운 종류의 하이브리드이다. 그냥 낙서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는 노트에 생각을적극적으로키워나가는과정이다.
포앙카레는 어떤수학 문제를풀때 간간이 어떤 순간에 번개처럼머리를스치는 영감을붙잡아나간 경험을 술회한다.
고민거리에 대한 해결책은 그 고민에 대해 완전히 잊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이때 노트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다가도 어떤 의식이발현되면 이를기록하기 위해 머리맡에 노트를 두었던 데카르트 역시 이러한 몽상적 상태의 장점을 ㅈ라 알고 있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오나전한 의식이 아닌 반의식 상태를 만드는 좋은 방법은 침대에서 뒹구는 것이다. 완전히 깨지도 않고 완전히 자지도 않는 상태에서 머럿속을 오락가락하는 온갖 개념들 중에서 분명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줄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의 논문을 정성껏 읽기 시작했다. 하루에 몇 시간씩 논문을 읽으면서 배우는 자세로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고통도 적어졌ㄷ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머리를 사로잡았다.
리처드 파인만
<파인만씨농담도잘하시네> 리처드파인만
끝없이글을 써대는 상태인 하이퍼그라피아hypergraphia 는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끝없이 지껄이는 것과 는 달리, 끝없이써대는 이런상태는 심신을 지치게 한다.
변연계
이 부분은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창조적인 작업을 강력하게 동기 부여하는 곳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의 작가 루이스 캐럴 역시 이런 특징이 있었는데 그는 생애 동안 98721통의 편지를 썼다.
뉴턴의 경우만해도, 식사를 잊어버리고 노트에 필기를해댄 것도 그렇고, 친구가찾아와 이야기를나누다가 갑자기사라져 서재에서몇 시간이고글을쓴 것,그리고중년에 신경쇠약에 걸려 빈강의실에 가서 강의를하던것 등이 하나의예가 될 것이다.
극단적인 성적 특징을 가진 인물은뉴턴의 만유인력의 중력 상수를 측정했던 캐번지시인데, 그는 자신의 집에 자신만이 다닐 수 있는 특별한 계단을 ㅁ낟르어 여자 하인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는여자의 얼굴을보지 않으면서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던 과학자이다.
베스트셀러작가 스티븐 킹의 글쓰기
나는 일단 어떤작품을 시작하게 되면 부득이한 경우를제외하고는 도중에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경우가 없다. 날마다 꼬박꼬박 쓰지 않으면 마음 속에서 등장인물이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등장인물이 진짜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등장인물로 되고, 서술도 예리함을 ㅇ맇어둔해지고 이야기의 전개 속도에 대한 감각도 점점 둔해진다.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종이는 사실 재활용이 가능하고 특히 오래도록 간직할 문서는 그 중요성이나시간이 지날수록 발생하는 그만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아낄 일이 절대 아니다.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에 우리가 자랑하는 천재 화가 이중섭은 담뱃갑의 은박지에 못으로 그림을 그렸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저절로 재미도 생기고 처음에 구상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정신 없이 일하다가 잠깐 쉴 때에는 일하는 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풍부하고 신선한 발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이리저리 핑계 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일에 착수하는 것이다.
정보를 얻거든 가급적 프린트하라. 우리는 프린트를 하려고 할 때마다 프린트할 가치가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우선 필요한 일은 자신이 들고 다니기 편리한 크기의 스프링 노트이다. 스프링 노트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지만, B5 크기의 노트 정도면 정리하기가 아주 그만이다. 노트는 대부분 28칸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네칸씩 나누면 일주일이 구분된다. 칸마다 기능을 부여한다. 첫날은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보통의 달력이 일요일에 시작하기도 하지만 일요일의 첫 칸에 한 주일의 모토나 목표를 적을수 있기 때문니다. 종교인이라면 가슴에 새길 좋은 말씀을 저근ㄴ 것이 유익한 방법이다.
일정 관리를 위해서는 당연히 달력이 필요하다. 매월이 시작되는 페이지에는 달력을 오려 붙인다 달력에는 다양한 스케줄을 잡고 한눈에 체크하여 약속을 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처럼 스스로 만든 일정 관리 노트는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얼마든지 멋지게 만들 수 있다.
<CEO의 다이어리는 무엇인가 다르다>
노트의 첫 부분은 일지로 활용한다. 노트 한 권을다 사용한다고해도 통상적으로실제 일하는일자는60일을 넘기기 어렵다.
<프린키피아의 천재> 리처드 웨스트폴
뉴턴의 일생에서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노트들이다.
뉴턴의 위대함의 한 단면은 그의 첫 노트가 <질문들>이었다는 점이다.
1664년에서 6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뉴턴은 자신이 알게 된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끝에 <문델드>이란 노트를 만들어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의 <잡기장>이다.
1681년 5월 10일
나는 아침의 별이 금성이고 이것이 토성의 딸이며 비둘기 자리의 한 별인 것을 이해했다.
5월 14일
나는 삼지창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는끊임없이 글 을 썼다. 그의 전기 중에는 "절대 쉬지 않는 자"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일생동안짓ㄱ되는노트필기는맥주잔에간신히들어갊나큼작게 태어난뉴턴을그토록위대하게 만든언동력이었다
최근 다 빈치의 노트를 완전히 번역한 책이 나와 우리에게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 빈치는 마치 포앙카레나 아인슈타인처럼 자신의 시간을 구분하여 쓸 줄 알았다 포앙카레의 경우 하루 두번에 걸쳐, 즉 아침 두 시간, 오후 두시간만 수학 연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인슈타인의 경우, 그가 특허청의 말단 직원인 시절에 그토록 중요한 논문을 솓아 낼 수 있었던 비결에는 그의 삼등분 원칙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업무를 과학연고, 특허청 일, 가정 일의세 가지로 구분하여 시간을 3등분하여 사용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경우에도 아침에는 과학적 연구를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하고, 오후에는 후원자가 주문한 작품을 만드는 일을 하였따. 그리고 저녁에는 인체 해부를 하면서 또다른 탐구의 세계로 넘어갔다. 그가 인체를 연구한 것은 인체를 우주의 축소판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살을 흙으로 생각하고, 뼈르 ㄹ산맥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혈액은 물로 생각하고, 맥박은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으로 이해했다. 심장과 그 주변은 물이 가장 많이 고인 바다로 생각했다. 이와 같은 그의 은유적 이해는 끊임없이 인체를 연구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이렇나 인체 해부와 스스로의 삶의 경험을 토대로 건강법도 만들어 노트에 기록했다.
첫째, 배고플 때만 음식을 먹되 음식은 가벼운 종류로 먹는다.
둘째, 잘 요리된 것을 먹되 오래 씹어 먹는다.
벽에 묻은 얼룩에서도 무엇인가를 들으려 했다.
<다 빈치처럼 생각하기>
그의 노트에는 요리법, 금전출납부, 비행기 설계도, 편지 등 실로 다양한 주제가 망라되어 있다. 그 많은 실험과 도전을 지탱하면서 그의 생각을 정리해 준 도구는 바로 노트였던 것이다.
그런 패러데이에게 운명의변화는 사소하게 시작되었다. 고객 중의 한 사람이 패러데이가 너무 정성껏 제본을 해준 것에 감동하여 한 장의 티켓을 준 것이다. 그 티켓은 당시 유명한 험프리 데이브 경이 정기적으로 여는 강연회의 방청권이었다.
과학자로서의 경력이거의 마감된 시기인 1860년 경에 패러데이가자신의실험연구노트에 서술한 항목의 일려넌호는 무려 16000개였다. 제본공 출신답게 그는 그 노트를 몇 권의 책으로 나누에 제본하였다.
무엇을 나를 성공한 자연철학자로 만들었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알 길이 없다. 훙륭한 감각과 지성이 있고, 이에 더해 근면과 인내가 있었기 때문인가? 적당한 자신감과 열정이 필요조건이 아닐까? 손수하게지식을 얻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통한 명성을 바라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아닐까?
러시아 과학자 류비세프
편지 원고들 어느 것이고 다시 타자를 쳐서 책의 형태로 묶어놓았따. 대부분의 서류는 류비세프 본인이 작성한 것으로 그만의 스타일이 녹아 있었다.
준비(논문 집필 구상, 기타 원고와참고 문헌 열독) 14시간 30분
집필 29시간 15분
합계 43시간 45분(8일간 : 1921년 10월 12일 ~ 19일)
류비세프는 중간에 휴식한 시간은 근무시작에 넣지 않았다 우리는 일을많이 한다고 하면서 보통 말하기를 하루에 14시간 혹은 15시간을 일한다고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류비세프는 순수하게 일한 시간만을 계산했으므로,하루에 시간 이상 일하면 아주 많이 있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업무를 제 1부류와 제 2부류로 나누어생각했다. 제 1부류는 기본 업무로 글쓰기와 연구를 하였고, 일상업무에는 글 읽기,메모노트, 편지 쓰기를 넣었다.제 2부류 업무에는 학술 보고,강의, 학술 토론,문화 활동이포함되었다. 그는 모든 일에 사용된 시간을 적었지만 통계에는 언제나 기본 업무의것만을 합산하였다. 뿐만 아니라 매월말에는이것에 대한통계를 냈다.
1. 시간관리 : 시간을 통계를 내 사용한다.
5. 피곤하지기 쉬운일과 즐거운일을 교차시킨다
그는 하루를 세 등분하여 보냈는데 한부분은 특허청 업무, 한 부분은 자연철학, 한 부분은 가정이었다.
그 번득이는 천재가 드러나는 순간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오랜 노력으로 병아리가 달걀을 깨고 나오듯이 부리로 톡톡 쪼는 노력의 시간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아닌슈타인의 메모를 보면 그가 매우달필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것은 아인슈타인이엄청나게 많으 양의 글을 쓰고 있었다는것을의미한다.그의 글을 갖는 독특한 철학적냄새는 그가단순히 수리 물리적재능만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란 것을잘 대변한다. 그의 저서인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라는책을 읽다보면 그의 사고와 주장이 얼마나 정연한 논리와확신을 갖고 있는지 알 수있다.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소위 천재란 누구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형이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의 말을 빌자면, 그가 만난 물리학자 중에 천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
페르미는 ㄱㅊ칙적인 생활을 통해서 천재성을 발산했다
페르미는 아침 일찍 일어나연구를 하고는 식사를 한 뒤 출근해서 하루종일 연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엔리코는 1시의 점심, 8시의 저녁에 한번도 늦은 적이 없다. 오후3시만 되면 읽던 논문이나 테니스 경기를 멈추고 일을 시작했다
<원자가족> 로파 페르미
잘 알려진 대로 페르미는 정말 감탄할 강의를 했다 늘 그렇듯이 어떠한 주제든 페르미는 아주 간단한 예제를 들어 시작했고 공식부터 들이대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한 시간 강의를 댓ㄴ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작은 강의 노트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모든 강의 내용이 잘 준비되고 아주 철두철미하게 설명된 것이었다 그는 떠나기 전에 나에게 미리 강의를 했는데, 각 줄마다 감추어진 이유에 대하여 모두 설명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기억이 감퇴도리 것을 보완하기 위해 인공 메모리를 만들었다 그는 이 메모리를 오래도록 보관했다. 매우 중요한 연구논문들, 문헌에거 찾은 수치들, 비인더 노트에 명확하게 계산하여 쓴 자신만의 육필 논문 원고들을 모아다. 이들은 모두 번호가 매겨지고, 상호 참조를 하도록 만든 다음 캐비닛에 저장했다. ㄱ리고 그가 들고 다니는 노트에 색인화 되었던 것이다. ㄱ가 어떤 주제에 대ㅏ여 말할 필요가 생기면 그는 자신의 색인 노트를 뒤적인 다음 몇 분이 안 돼 자신이 갈무리한 중요한 지식을 술술 꺼내는 것이다
<엔리코 페르미, 물리하다> 에밀리오 세그레
가난하여 많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끝없이 자신을 개발하여 커다란 업적을 이룬 위인 중 빼놓을 수 업슨 인믈이 바로 벤자민 프랭클린이다. 18세기 미국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그는 겨우 2년에 불과한 정규교육을 받았다 그런 그가 정치, 외고, 출판,인새, 과학, 교육 등 각 분야의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도 역시 그만의 독특한 노트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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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프랭클린은 아주적은 돈이라도 생기면 책을 사 읽는 일에 열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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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이런 학구적인 모습을 본 아버지는 프랭클린에게 책벌레 기질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인쇄 이릉ㄹ 시켰다. 패러데이가 책 제본소에서 어떤 기회를 얻은 것처럼 플랭클린 ㅇ겨시인쇄일을 하면서 매튜 애덤스란 사업가의 눈에 띄게 된다. 프랭클린은 그가 소장한 많은 책을 읽으면서 정신 세계를 살찌워갔다.
이러한 독서를 통한 지적 성장한 곁들여 그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특수한 훈련을 시작했다. 그것은 1711년부터 12년 간 런던에서 발행된 <스펙테이터>라는 잡지에 매료된 이후였다. 그 잡지에 실린 글의 뛰어남과 문장의 명료함에 매료된 프랭클린은 이를 흉내내는 모방의 시기를 거친다. 그는 글 중에서 감명 기은 것을 읽으면 그 문장의 요점만을 간략히 적어놓았다. 며칠이 지나 그 문장이 잊혀질 만할 때가 됨녀 그는 그 요점만을 가지고 스스로가 스펙테이터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나서는 원래의 문장과자신이 쓴 문장을 비교했다. 그런 식으로 멋지고 감명 깊은 ㅁ누장을 작성하는 방법을 깨우쳐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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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과 요약 그리고 다시쓰기ㅡㄹ 통해 프랭클린으 문장력과 표현력을 키워나갔고 이는 자기 성장의 중요한 도구였다.
1. 절제 : 배부드로록 먹지 말라. 취하도록 마시지 말라
2. 침묵 : 자신이나 남에게 유익하지 않은말은 하지 말라. 쓸데 없는 말을 피하라.
3. 질서 :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정돈하라. 모든 일은 시간을 정해 놓고 하라.
5. 검약 : 자신과 남에게 유익한 일 이외에는 돈을 쓰지 말라. 낭비하지 말라.
9.온건 : 극단을 피하라. 상대방이 나쁘다고 생각되어도 충동적으로 상처를 주지 말라.
13. 겸손 :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아라.
프랭클린은 젊은 날에 인쇄업으로큰 성공을 거두어 이후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한 가지씩 집중하여 실천하는방식으로자신의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칸트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상관없이 새벽 5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칸트의 사환은 5시 15분 전에 정확하게 칸트를 깨웠다.
앙리 포앙카레는 수학문제를 풀 때 간간이 번개처럼 자신의 머리를스치는 어떤영감을붙잡아나간 경험을술회하곤했다.
사람에게 갑자기떠오르는 무의식은 어떤 과학적진실이나철학적진리ㅡㄹ발견하는데 중요한역할ㅇ르한다.
자다가도 어떤 의식이 발현되면 이를받아쓰기위해 침대 맡에 노트를두었던데카르트 역시 이러한 몽상적 상태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포앙카레의 일하는 스타일은 매우 독특하여, 오전에는 10시부터정오까지 오후에는 5시부터 7시까지 하루 네시간만 수학 연구를 했으며 저녁에는 학술지를 읽었다.
그는 기억력이 대체루 약했으나어떤 것에서 패터능ㄹ 찾아내는데는아주강했다. 그의 작업은 다른 사람들이 이전연구자의 결과에서 출발하는 것과 달리, 제 1원리에 입각한연구를하였다. 이것은 모든 문제ㄹ의 근본부터 출발하여 철저하게 모든 가정을 파헤치는 방법이다
헬름홀츠라는 과학자가 언급한 것처럼 지적 작업으로 녹초가 되었을 때 휴식 이후에 오히려 창조적 영감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교수가 되기 전에 헤겔은 몇 년간의 강사 시절을 보낸다. 이 시기에 그는 학자로서의 가능성과 교수로서의 자질을 입증해야 했다. 여기서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교재를 낭독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의 노트를 강독하였다.
헤겔은 종이를 한 장 준비했다. 그리고 그 종이의 맨 위에는 일반적인 개념의 주제를 크게 썼다. 그리고 그 밑에 깨알같이 관련된 개별적인 세부 내용을 적었다. 한 페이지 한 개념의 방식으로 그는 개념들을 스스로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 종이의 윗부분 중앙에 매우 큰 글씨로 주제어를 썼다. 이렇게 하고 나서는 그 종이들을 키워드의 알파벳순으로 정리했다.
헤겔의 이러한 개념을 정리하여 자신만의 사전을 만드는 작업은 변증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파고 들어가는 사고 방식과 더불어 그를 위대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다.
비트켄슈타인은 케임브리지 의학교수 자리를 버리고 시골의 초등학교 교사로 자원한 뒤에 그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도록 가르쳤다.
자기만의 사전을 만들어가는 사람의 지식의 정리와 연합은 실로 놀랍다는 것을 헤겔과 엔리코 페르키는 일찍이 증명한 것이다.
<천재와 광기>란 책을 읽을 때는 상당한 고통이 따랐다. 문학적으로도 완성도가 있는 츠비이크의 화려한 언술은 수없이 이 책을 쓰는 것을 포기하라고 명령하는 것만 같았다.
하워드 가드너는 현재 하버드 대학의 석좌교수이다. 그는 일곱 살 때부터 책을 ㅇ릭고 쓰는 것을 좋아하여 자칭 신문기자 노릇을 하여 집안과 학교의 신문을 출간하였다.
수많은 비범한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를 통해 가드너는 인간의 비법이 발현되는 과정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가 목표로 삼은 사람의 비범함은 분해되고 분석되었다.
공간지능
안내자, 사냥꾼, 건축가, 실내장식가, 발명가, 예술가에게 필요한 지능이다
청년 시절에 삼중당문고를 모두 읽어볼 요량으로 학교를 걸어다녔다. 한양대에서 서울운동장까지 걸어야 했으니족히 40분은 걸렸다. 그렇게 해서 모은 버스비로 일주일이면 삼중당 문고를 두 권 사서 읽었다. 그러던 중에 가슴을 후벼파던 수필이 있었으니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였다. 전혜린이란 이름은 그때부터 머릿속에 있었는데 그녀가 매우 똑똑한 수재였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로 마음이 아팠다.
결국 어린 아인슈타인의 경우 그의 행적을 보면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는 대단한 호기심의 소유자였고, 매우 비현실적인 대상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지능의 발아는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그의 지능이 퇴행하지 않고 자랄 수 있었던것은 탁월한 비범함과 더불어 가정에 비밀이 있다. 즉 실패에 대하여 지속적인 사랑을 유지한 그의 부모이다. 비록 그의 사회인 학교에서는 실패했지만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발현되는 환경은 충분했다.
이러한 예를 보면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 수 있다. 부모가 끝까지 곁에 있어 주는 아이가 성공할 가능성은 부모가 포기한 아이와 비교 자체가 어렵다. 다중 지능과 더불어 우리가 눈여겨보아야할 대목은 바로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임을 이 경우를 통해 확실히 알수 있다.
좀 튀는 이상한 놈을 좀 참아주는 톨레랑스가 요청된다. 이제 좀더적극적으로 우리는 남과 달라지기를규육하는 학교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한다.
지식을 획일적으로 대량 살포하고 어느 꽃이 활짝 폈는지 골라내는 화훼 농가처럼 우리의 학교는 일종의 공장이다.
<오륜서> 미야모토 무사시
실제로 임진왜란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수많은 서원에서 의병 장군이 나타난 것은 우리나라의 특이한 기질이다. 당시 왜적달이 가장 기가 질린 것은 성을 함락하고 성주를 처단하고 나면 당연히 성의 백성들은 자싲들의부하가 되어야 하는데,조선인들은 한명 한 명이 모두가 성주인냥 저항했던 것이다. 그 강인한 저항 정신은어쩌면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자주적 특징일 것이다.
그의 오륜서를 읽어보면, 그가 단순히 탁월한 검객이 되기 위해 신체적인 수련을강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는 가장 기본이 되는 운동 지능 이외에 이를 지원하는 심리적 요소들에 대하여 매우 밀도 있게 강조하고 있다. 그의 이론을잘 조망하면, 결국 탁월한 무사는 신체적 강인함과 민첩함 이외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제어하는 능력과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에 이르는 요소가 함께 해야함을 알려준다 .
이는 가드너의 이론을빌자면제 1 지능인 신체운동지능과 더불어 제 2 지능으로 개인 이해 지능이 필요하고, 제 3지능으로 대인관계 지능이 필요함을 일깨운다. 그는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제 2지능과 제 3지능이 뛰어나야함을 강조한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챙길 줄 알아라.
쓸데없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라.
고리는 무엇에 쓰는가? 그것은 꿰어 연결할 때 의미가 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이를 인정하고 다섯 개의 요소를 논하되 그것이 아나의 인간에게 동시에 발현되도록 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그는자신의 무술을 martial art라고 하지 않았고 martial science로 지칭했다.
라부아지에
젊었을 때 그는 이미 "나는 화학 혁명을 일으켜 보일 것이다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단지 나 혼자의 힘으로..."라고 말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세금 징수원으로 일한 경력이 문제가 되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가 죽자 사람들은 "그의 목을 끊은 것은 한순간이지만그의 머리를 만드는 데는 수세기가 걸릴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토마스 영
그는 의사답게처음에는 사람의 눈을 연구하다가 더 깊이 들어가 비의 회절과 간섭을 분석했다. 그 당시 견고한 빛의 입자설을 깨뜨린 것은 그의 연구와 프랑스의학자 프레넬의 연구 결과이다.
영국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경우에도 그는 몇 시간의 집중된 강의가 끝나면 3류 영화관에 가서 몇 시간씩 영화를 보았다. 그의 강의는 한마리의 야수가 표효하는 것같은 분위기로, 경우에 따라 성난 표정으로 학생들을 노려보기도 하고, 몇 분씩 말을 멈추고 강의실을 배회하는 카리스마가 넘쳐나는 고도의 지성을 분출하는 장이었다. 그는 그스트레스를 다른 종류의 지능을 강화하여 해소했던 것이다 .
innovator는 라틴어의 어원상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경제학자인 슘페터는그 새로운 것에 가치를 부여하여 정의를 좀더 구체화하였다. 그것은 상업적이거나 산업적인 가치를 지닌 어떤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한 시간 이상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는 빌 게이츠는 포스트 산업 시대를 열어온 이노베이터의 모델이다. 최근 그는 34년 만에 하버드 대학 졸업장을손에 쥐게 되었다. 그는 1973년 하버드에 입학했으나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전념키 위해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75년 자퇴를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노트를 매우 비싼 돈으로 사들인 것을 비롯하여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모습을 통해 기업가의 모델이 된 빌게이츠는 최근 매우 혁신적인 개념의 새로운 사회 모델을 제시하여 이노베이터로서의 면모를유감없이과시하고 있다.
그는 창조적자본주의crateive capitalism을 제시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양대 축의 시장과 기술 혁신을 이용하여 21세기 최대의 고민인 가난과 질병으로인한 인류 부평등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는하버드 시절에 경제학과 정치학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고, 과학의 진보를이룬 위해한 발견에 대해 배웠지만 이제 인간을 사랑하는 차원을 생각하면서 결국 그러한 지식이 인간의 불평등 과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어떻게 사용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진대제
삼성의 전CEO
대학생들이지만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시대의 변화를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보여진다. 마치 난파하기 전에 배의 쥐들이 먼저 아는 것처럼, 산업화 시대의 가치가 침몰하느시대에 이들으 가장 ㅁ너저 그 신호를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산업화시대의 이공계의 침몰의신호에 불과하다.
그는 좀냄새가 팡팡 풍기는 고서에서 오늘날 우리들의 뒷통수를 한 대씩 후려갈기는 명쾌한 진리르 ㄹ찾아 알려준다.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글들을 갈무리하는 특정한 장소를 하나쯤 갖고 있을 필요가 있따. 일종의 편지실, 집필실이고, 정연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육중하고 잘 장식된 책상과 서재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자신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다.
여행만큼 우리의 생각을 집중하게 하는 것은 없다
KTX를 타면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의 독특한 환경이 스스로 집중하게 하낟. 스포트라이트라도 켜면 강력한 불빛으로 펼친 간이책상의 면이 반짝인다. 한두 시간의 질주이지만 우리의 생각은 이리저리 날뛰며 이것 저것을 유도한다. 홀로 하는 여행의 고독은 이리ㅈ리 날뛰며 이것저것ㅇ르 유도한다. 홀로 하는 여행의 고독은 우리에게 많은 것ㅇ르 생각하게 하고, 새로운 각성을 ㅜ는 훌륭한 연장통이다. ㅡ저조금만 익숙하면 호텔에서 무엇인가 쓰는 일이 즐겁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저 파블로프의 실험처럼외구구 여행을 갈 때 호텔에서도 글을 쓰는 훈련으 ㄹ하면 된다.
노트를 사라. 그리고 써라. 항상 들고 다녀가. 심심하면 열어보고떠오르는 순간의 생각을 기록하다. 한 권의 노트에서 하나의 결론을 뽑아내라.
몇 년을 지속하면 당신의 서가에는 당신의 주장이 가득 담긴 노트가 꽉 찰 것이다.
ㄱ
그는무술이라는 특정영역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기술을 익히려면 이렇게 하라고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