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영의 ‘아포리즘 경영학’ (aphorism) · 1 ~ 9 回 |
아포리즘 경영학 1. ‘리더십 - 리더십은 올바른 일을 하는 것’ |
리더십은 올바른 일을 하는 것.
경영은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 리더십은 올바른 일을 하는 것. … 리더는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지 고민하고 깨달아야
아포리즘(aphorism)은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 이다. 아포리즘에는 격언, 금언, 잠언, 경구같은 게 있다. 진리를 논한다는 점에서 아포리즘은 학문과 동등하다. 어떤 경우에는 아포리즘이 학문보다 낫다. 아포리즘에는 힘이 있다. 아포리즘은 어떤 복잡한 이론보다 현실을 더 압축적 으로 표현하며 미래를 설계할 영감을 준다. 잘 익혀 활용한다면 아포리즘은 인생의 교과서가 될 수도 있다. 시나 유행가 가사에도 인생을 밝혀줄 내용이 있지만 아포리즘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속담이다.
속담과 아포리즘은 무엇이 다를까. 속담은 익명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온 백성, 국민, 시민이 함께 만드는 게 속담이다. 속담과 달리 아포리즘은 인류나 어떤 나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이 저자로 알려졌다. 위인, 셀레브리티(celebrity)들이다. 저자를 알 수 없는 아포리즘도 있다. 그런 경우 저자는 무명씨, ‘익명(anonymous)’이라고 표기한다.
리더십은 민주주의와 산업발전의 부산물
사랑이라든가 우정과 같은 삶의 영역에 대해서는 속담도 있고 아포리즘도 있다. 흥미롭게도 지도자, 리더, 리더십이 등장하는 속담은 없다. 옥스퍼드영어사전(OED)에 따르면 리더십(leadership)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등장한 건 19세기다. 리더십이라는 개념이 민주주의와 산업사회 발전의 부산물이라는 걸 시사한다.
근대적 의미의 리더십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은 평등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리더십에 대해 다룬 초기 이론은 ‘리더십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명문대가 집안에서 태어났든 아니면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났든 상관 없지만 리더십은 교육이나 환경보다 유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타고나길 지도자로 태어났든 각고의 노력으로 리더십을 갖췄든 지도자란 무엇인가. 지도자는 ‘무엇’을 하는 ‘누구’인가. 지도자는 국민의 희망, 회사와 같은 조직원의 희망이 아닐까. 나폴레옹에 따르면 지도자는 희망을 파는 사람이다 (A leader is a dealer in hope).
리더와 짝을 이루는 리더십도 생각하기에 따라 그리 어려운게 아니다. 캐나다 총리를 지낸 장 크레티앙이 말했다. 리더십이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이다 (Leadership means making people feel good).
얄궂게도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야 하는 지도자 자신은 ‘욕 먹는 사람’이다. 정계, 재계 지도자들만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을까. 지도자가 되려면 웬만한 비난에도 눈깜짝하지 않는 맷집을 갖춰야 한다. 세네카는 말한다. “군주가 갖춰야할 첫째 기예(art)는 미움을 이겨내는 힘이다 (The first art of a monarch is the power to endure hatred).”
어쨌든 희망을 팔고, 희망을 사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면 지도자는 자신이 맡은 나라 (대통령, 총리, 위원장)나 회사(CEO)나 가정(여성이든 남성이든 ‘가장’)을 위해 자신과 구성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알아야 한다.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가장 힘든 업무는 올바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올바른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A president’s hardest task is not to do what is right, but to know what is right)”고 말했다.
지도자에게 앎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클래런스 랜들만큼 잘 표현한 사람도 없다. 랜들은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절 미 대외 경제 정책을 입안한 인물이다.
그는 “지도자는 알아야 하며, 자신이 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안다는 것을 충분히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The leader must know, must know that he knows, and must be able to make it abundantly clear to those about him that he knows)”고 말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좋은 전략(strategy)이, 전투에서 이기려면 좋은 전술 (tactic)이 필요하다. 전쟁과 전투, 전략과 전술만큼이나 다르기때문에 구별해야 하는 게 경영(management)과 리더십이다. 피터 드러커는 다음과 같이 그 차이를 표현했다.
“경영은 일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요 리더십은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 (Management is doing things right; leadership is doing the right things).” 자신의 소명에 대해 알고 조직 안팎의 환경을 아는 지도자는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선택을 해야 한다. 나폴레옹은 “선택 능력 만큼 어려운 것은 없기 때문에 선택 능력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 (Nothing is more difficult, and therefore more precious, than to be able to decide)”고 강조했다.
선택 못지 않게 어려운 건 다스리는 것이다. 다스리는 건 일을 시키는 기능을 포함한다. 그래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은 어렵지만 위대한 일을 시키는 것은 더 어렵다 (To do great things is difficult; but to command great things is more difficult).”
태어나면서부터 남에게 일을 잘 시키는 사람은 없다. 치고 받는 과정에서 싸움을 잘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다스려보고 다스림의 대상이 돼봐야 리더십을 키울 수 있다. 남이 시킨 일을 잘하는 사람이 남을 잘 부린다. 거의 모든 학문의 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통치자가 되려는 사람은 우선 통치를 받아야 한다. (He who is to be a good ruler must have first been ruled).”
다스림의 대상이 돼봐야 리더십 키울 수 있어
좋은 교육을 받고 실력을 갖추어도 취업이 쉽지 않고 경영도 쉽지않은 시대에 리더십 운운하는 건 한가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대일수록 리더십이 필요한 게 아닐까. 교육학자인 다이앤 래비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떻게’를 아는 사람에겐 항상 일자리가 있다. ‘왜’를 아는 사람은 항상 일하는 사람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 (The person who knows “how” will always have a job. The person who knows “why” will always be his boss).”
‘무엇’을 ‘어떻게’, ‘왜’에 대해 고민하는 지도자가 참 지도자다. 그 어느것 하나 모르는 지도자는 사기꾼에 불과하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위대함의 댓가는 책임이다(The price of greatness is responsibility). 그런데 지도자의 첫번째 책임은 현실을 정의하는 것이다(The first responsibility of a leader is to define reality). 미국 작가 맥스 드프리가 한 말이다. 우리 지도자들이 현실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 이코노미스트 1119호 | 김환영 | 2012.01.02 |
아포리즘 경영학 2. ‘시간 - 시간을 아끼려면 시간을 투자하라’ |
시간을 아끼려면 시간을 투자하라
미국에서 ‘시간 감사’가 유행하기도 … 내 몸에 맞는 시간 관리법 찾아야
시간이란 무엇인가. 정치 · 경제나 종교, 의식주에 대해선 누구나 많은 생각을 한다.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을 하고 나라의 미래에 대해 이런 저런 아이디어가 있다. 누구나 다양한 관점에서 한 마디씩 할 수 있다. 우리 존재를 구속하는 것 가운데 시간만큼 말할거리가 빈곤한 것도 없다. 일반인만 그런 게 아니다. 기독교 교부(敎父)인 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시간이 뭐냐고. 질문을 받기 전에는 시간이 뭔지 알 것 같았는데, 막상 설명하려고 보니 모르겠다 (What then is time? If no one asks me, I know what it is. If I wish to explain it to him who asks, I do not know).”
위대한 철학자에게도 아리송한 게 시간이지만 시간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이다. 샤를 드 몽테스키외가 한 말처럼 “대부분의 경우 성공은 성공에 걸리는 시간을 아는 데 달렸다 (Success in the majority of circumstances depends on knowing how long it takes to succeed).”
많은 사람이 성공에 필요한 시간을 알아내려는 의지가 없다. 의지는 있어도 방법을 모른다. 알아내도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 프랭클린 필드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거대한 경계선은 단어 다섯 개로 표현할 수 있다. ‘내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이다 (The great dividing line between success and failure can be expressed in five words: I did not have time).”
현대인은 자신이 시간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 그럴수록 시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미국 역사학자 조 테일러의 말처럼 “시간을 절약하려면 시간이 든다(It takes time to save time).” 시간 관리(time management)에 대한 책을 사 읽고 실천하는데도 시간이 드는 것이다.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경영이나 비즈니스에서도 시간 관리는 중요하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젊은 상인을 위한 충고(Advice to a Young Tradesman)』(1748)에서 했다는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라는 말은 개인·조직 모두에 해당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시간은 비즈니스의 척도다(Time is the measure of business)”라고 했다. 영국 속담에는 ‘시간은 비즈니스의 영혼이다 (Time is the soul of the business)’라는 것도 있다. ‘경영을 발명한 사람 (the man who invented management)’이라는 평가를 받은 피터 드러커도 시간을 가장 중시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매니저에게 가장 희소한 자원은 시간이다. 시간을 관리할 수 없으면 그 어떤 다른 것도 관리할 수 없다 (Time is the scarcest resource of the manager; If it is not managed, nothing else can be managed).”
시간은 비즈니스의 영혼
기왕에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냈다면 우선 시간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영국 속담이 강조하는 것처럼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Time flies).’ 시간은 매정하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Time and tide wait for no man).’
시간의 이런 속성은 사람을 수렁에 빠지게 한다. ‘미루는 버릇(procrastination)’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면 시간을 아껴 써야 하는데, 오히려 시간을 넉넉히 잡으려는 욕구가 생긴다.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오후 3시는 하려는 일을 하기엔 항상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르다 (3 o’clock is always too late or too early for anything you want to do).”
공감이 가는 말이기도 하지만 오후 3시에서 남은 일과시간, 잘 때까지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영국 정치가 체스터필드(1694~1773)는 이렇게 말했다. “분(分) 단위로 일을 처리하면 시간들은 스스로 처리된다 (Take care in your minutes, and the hours will take care of themselves).”
시간 관리 전문가인 로라 밴더캠은 “1분, 1분이 선택이다(Every minute is a choice)”고 했다. 일주일에는 1만 80분이 있다. 분 단위로 시간을 관리하는 것에는 사실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으로 쪼개봐도 일주일에는 168시간이나 있다.
분 단위건, 시간 단위건, 시간 관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기법이 나와 있다. 밴더캠은 두 개의 목록을 만들어 보라고 권한다. 목록의 제목은 ‘30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In 30 minutes, I can…)’과 ‘10분내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In 10 minutes or less, I can…)’이다. 할 수 있는 일의 목록을 만들면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위급성과 중요성이다. 미국 제34대 대통령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했다는 말에 실마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위급한 경우가 드물고, 위급한 것은 중요한 경우가 드물다 (What is important is seldom urgent and what is urgent is seldom important).”
창조형 인간에겐 시간 관리가 무의미
한때 미국에서 시간 관리는 문화 신드롬이었다. 자신이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일일이 적어보는 ‘시간 감사(time audit)’가 유행했다. 플래너(planner) 사용도 열병처럼 번졌다. 학교에서 시간관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시간관리는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됐지만 성과는 제한적이다.
금연·금주만큼 힘든 게 시간의 정복이다. 다이어트와 마찬가지로 시간 관리에도 ‘요요현상’이 있다. 시간 관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을 정리해보면 ‘말짱 도루묵’이 되지 않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둘째, 자신에게 맞는 시간 관리법을 찾아야 한다. 좌절과 실패 속에서 나만의 시간 관리법을 개발해야 한다.
시장에 나와 있는 시간 관리법들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좌뇌형 인간’들에게 특히 잘 맞는다는 주장도 있다. 산만한 경향이 있는 창조적·직관적인 인간은 그만큼 시간 관리에 익숙해지기가 힘들다. 어쩌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시간 관리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다빈치가 남긴 그림은 대작 중의 대작이지만 15개 남짓에 불과하다. 그의 미루는 버릇은 작품 의뢰자들을 종종 절망하게 했다. 변명처럼 다빈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인류 역사에서) “무엇이라도 끝난 게 있었는지 내게 말해다오 (Tell me if anything was ever done).” “예술이 완성되는 일은 없다. 미완의 상태로 포기될 뿐이다. (Art is never finished, only abandoned).”
- 이코노미스트 1120호 | 김환영 | 2012.01.09 |
아포리즘 경영학 3. ‘지식 - 지식은 호구지책 지혜는 인생지책’ |
지식은 호구지책 (糊口之策), 지혜는 인생지책 (人生之策)
지식 평준화 시대에 앞서 나가려면 지식 - 실행 동시화 이뤄야
사회·경영·경제 앞에 ‘지식’을 붙여야 허전하지 않은 세상이다. “지식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라는 말이 부쩍 힘을 받는 시대다. 그러나 지식사회에서도 “모르는 게 약이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 사어(死語)가 될 기미는 없다.
지식의 문제점은 동서고금 공통으로 지적된다. 구약성경에서도 “아는 것이 많을수록 고통도 많다 (The more knowledge, the more pain)” (전도서 1:18)고 했다.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라는 경영학 개념에 따르면 지식의 불균형이 소통을 어렵게 한다. 노자는 “국민을 다스리기 어려운 이유는 국민이 너무 많이 알기 때문이다 (People are difficult to govern because they have too much knowledge)”라고 주장했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들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제한적이다. 상상력은 온 세상을 에워싼다 (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 Knowledge is limited. Imagination encircles the world).”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과 무지의 관계도 간단치 않다. 지식의 우월성에 대해선 이런 말들이 있다. “사실 두 가지가 있다. 과학과 의견이다. 과학은 지식을 낳고 의견은 무지를 낳는다 (There are in fact two things, science and opinion; the former begets knowledge, the latter ignorance).”(히포크라테스). 미국 언론인 로버트 퀼런(1887~1948)은 이렇게 말했다. “토론은 지식의 교환이다. 말싸움은 무지의 교환이다 (Discussion is an exchange of knowledge; argument an exchange of ignorance).”
지식이 무지를 항상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양적인 차이 때문이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1902~1994)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지식은 유한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무지는 필연적으로 무한하다 (Our knowledge can only be finite, while our ignorance must necessarily be infinite).”
무지는 번식력도 우수하다. 찰스 다윈은 “지식보다는 무지가 자신감이라는 자식을 더 많이 낳는다 (Ignorance more frequently begets confidence than does knowledge)”고 지적했다.
지식이 힘이지만 힘없는 지식은 공허하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지식은 많으나 아무런 힘이 없는 게 사람들에게 가장 쓰라린 고통이다 (This is the bitterest pain among men, to have much knowledge but no power)”라고 했다.
지식은 지혜 앞에만 서면 왜소한 모습이다. 미국 로비스트인 샌드라 케리는 이렇게 경고한다. “절대로 지식을 지혜로 착각하지 말라. 지식은 호구지책(糊口之策)이요 지혜는 인생지책(人生之策)이다 (Never mistake knowledge for wisdom. One helps you make a living; the other helps you make a life).” 임마누엘 칸트도 한 마디 거든다. “과학은 조직화된 지식이다. 지혜는 조직화된 삶이다 (Science is organized knowledge. Wisdom is organized life).”
이런 지식의 부작용이나 한계에도 사람들이 지식을 추구하는 이유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천성적으로 지식을 희구한다(All men by nature desire knowledge).” 지식욕은 인간의 본연적 욕구인데다가 효용도 많다. 지식 속에 영원한 청춘이 있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말했다. “스무살이건 80살이건 배움을 멈추는 사람은 늙은이다. 계속 공부하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이다 (Anyone who stops learning is old, whether at twenty or eighty. Anyone who keeps learning stays young).”
지식에는 즐거움이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말했다. “쓸모 없는 지식에서 큰 쾌락을 얻을 수 있다 (There is much pleasure to be gained from useless knowledge).”
- 이코노미스트 1121호 | 김환영 | 2012.01.17 |
아포리즘 경영학 4. ‘변화 - 개인의 변화가 평천하의 출발점’ |
개인의 변화가 평천하 (平天下)의 출발점
진실에서 분노가, 분노에서 변화가 나온다. … 조직 변화의 첫 단추는 시급성 인식
역경(易經)』과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Who Moved My Cheese?)』가 얼핏 주는 느낌은 매우 다르다. 그러나 실은 두 책 모두 변화가 주제다. 변화에 대한 회의도 있다. ‘변화는 없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도 있다.
머리 · 힘 아니라 변화 능력이 생존 조건
프랑스 작가 장밥티스트 알퐁스 카(1808~ 1890)는 “바뀔수록 똑같다 (The more things change, the more they are the same)”고 했다. 혁명이 일어난 후에도 열의와 광기가 식으면 사회가 일상으로 돌아간다. 변화를 내세워 집권에 성공한 정부도 가면 갈수록 이전 정부와 비슷해진다.
크고 작은 변화는 만물의 속성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기원전 6세기 초)는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다(You can’t step into the same river twice)”는 말로 유명하다. 그는 “변화 이외에는 항구적인 것이 없다(There is nothing permanent except change)” 는 말도 남겼다. 불교의 가르침도 같다. 부처님은 “모든 것이 변한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없다 (Everything changes, nothing remains without change · 諸行無常)” 라고 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도 이렇게 말했다. “변화는 삶의 법칙이다. 과거나 현재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미래를 놓치게 마련이다 (Change is the law of life. And those who look only to the past or present are certain to miss the future).” 미래의 가능성 · 기회를 놓치는 것으로 끝나면 불행 중 다행이다.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존 스펜서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변하지 않으면 당신은 사라지게 된다 (If you do not change, you will become extinct)”고 경고했다. 변화 없는 생존은 없다. 찰스 다윈은 “살아남는 종(種)은 가장 강하거나 가장 영리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반응하는 종이다 (It is not the strongest of the species that survive, nor the most intelligent, but the one most responsive to change)”라고 했다.
변화는 보수 · 진보를 초월한다. 때로는 보수가 변화와 더 친하다. 보수적 가치의 수호에 가장 절실한 것도 변화다. 근대 보수주의의 아버지인 에드먼드 버크(1729~1797)도 “변화의 수단이 없는 국가는 자기 보전의 수단이 없는 국가다 (A State without the means of some change is without the means of its conservation)”라고 역설했다. 좌파 · 우파를 막론하고 지도자는 ‘변화 전문가’이어야 한다. 미국의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상 그 어떤 위대한 지도자도 변화를 막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No great leader in history fought to prevent change).”
변화의 출발점은 개인이다. “나는 세상을 바꾸기를 바랐지만 확실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I wanted to change the world. But I have found that the only thing one can be sure of changing is oneself).”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1894~1963)가 내린 결론이다. 톨스토이는 한탄조로 이렇게 표현했다. “누구나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하지만 아무도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는다 (Everyone thinks of changing the world, but no one thinks of changing himself).” 변화는 개인과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다. 변화한 개인은 세계를 바꿔야 하며 또 바꿀 수 있다. 미국 팝아트 운동가 앤디 워홀(1928~1987)은 말했다. “세월이 사물을 변화시킨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분 스스로 사물을 변화시켜야 한다 (They say that time changes things, but actually you have to change them yourself).”
세상이 나를 바꾸려고 하면 저항하지 말라
변화 방법론에는 어떤 게 있을까. 중남미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는 말했다. “세상이 여러분을 바꾸도록 놔두면, 여러분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Let the world change you and you can change the world).”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다. 세상은 곧 평정(平定)을 기다리는 천하(天下)다. 평천하의 출발점은 심신(心身)을 닦는 수신(修身)이다. 수신은 곧 개인적인 변화의 목표에 도달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목표에 부응해야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
변화가 전부다. 그러나 사람은 변화를 꺼리고 두려워한다. 볼테르(1694~1778)는 “사랑 빼놓고는 모두 바꿔라(Change every thing except your loves)”고 했다. 종종 외면당하는 말이다. 미국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1908~2006)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바꾸는 것과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사이에 선택하라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증명하느라 바쁘다 (Faced with the choice between changing one’s mind and proving there is no need to do so, almost everyone gets busy on the proof).”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인 존 코터 등 변화경영 전문가들에 따르면 변화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 · 느낌의 문제다. 진실을 보고 받는 새로운 느낌이 변화의 계기다. 분노라는 감정이 중요할 때도 있다.
맬컴 X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슬프면 보통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처지를 한탄할 뿐이다. 그러나 분노하게 되면 사람들은 변화의 원인이 된다 (Usually when people are sad, they don’t do anything. They just cry over their condition. But when they get angry, they bring about a change).”
코터 교수는 변화를 시도하는 조직의 70%가 실패하는 이유는 ‘총체적인 접근법(holistic approach)’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변화를 이끄는 8단계 과정(the 8-Step Process for Leading Change)’ 을 제시했다. 첫 번째 단계는 ‘변화가 시급하다는 인식을 설정하는 것 (Establishing a Sense of Urgency)’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인 아가톤 (기원전 445께~400께)은 “신(神)도 과거는 바꿀 수 없다 (Even God cannot change the past)”고 주장했다.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과거도 바꿀 수 있다. 인간은 현재의 세상을 바꿔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변화의 시급성을 인식한다면.
- 이코노미스트 1122호 | 김환영 | 2012.01.23 |
아포리즘 경영학 5. ‘전략 - 친구보다 적을 더 가까이 둬라’ |
친구보다 적을 더 가까이 둬라
전략의 출발점은 나와 적을 아는 것. … 전략은 조직 전체에 스며 들어야
세계사는 전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인류는 1928년 부전조약(不戰條約) 체결 후 전쟁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언젠가는 세계 전역에서 총성이 완전히 멈출 것이다. 지금만큼 평온한 시대도 없다. 동시에 얄궂게도 지금처럼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쟁이 벌어지는 때도 없다. 삶의 모든 영역이 전쟁화·군사화된 것이다.
여기저기서 논하고 있는 전략(戰略 · strategy)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전쟁을 전반적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 이나 책략(策略). 정치·경제 따위의 사회적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책략(策略).’ 그렇다면 전략을 정의하는 데 쓴 책략(策略)은 또 무엇인가. ‘어떤 일을 꾸미고 이루어 나가는 교묘한 방법’이라고 나온다. 우리말에서는 ‘전략은 곧 책략’이며 전략가는 곧 책략가다. 전략은 교묘한 데가 있어야 하며 책략가에는 모사꾼의 이미지가 있다.
전략은 곧 계획
영어에서는 전략의 용법이 좀 다르다. ‘Strategy’는 과학이자 아트(art)이자 계획(plan)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정의하는 전략은 ‘전쟁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해 한 나라의 군사·경제·정치를 비롯한 모든 자원을 이용하는 과학 혹은 아트(art) (strategy, in warfare, the science or art of employing all the military, economic, political, and other resources of a country to achieve the objects of war)’라고 나온다.
아트(art)와 가장 가까운 우리말은 기예(技藝)라고 할 수 있다. 기예는 ‘예술로 승화될 정도로 갈고 닦은 기술이나 재주’이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영영대사전(ODE)에 따르면 전략은 ‘장기적이거나 종합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계획 (a plan of designed to achieve a long-term or overall aim)’이다.
‘전략=계획’이라면 어떤 계획을 세울 때마다 전략이 필요하다. 사랑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영국 작가·사학자 애니타 브루크너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사랑은 순례다. 전략이 없을 때 일어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략가이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아주 드물다 (Real love is a pilgrimage. It happens when there is no strategy, but it is very rare because most people are strategists).”
브루크너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략가 기질이 있다. 전략가 기질이 있으면 그 기질은 발현된다. 전쟁에도 써먹고 다른 분야에도 써먹는다. 비즈니스에도 써 먹는다. 미래학자인 패트릭 딕슨은 이렇게 말했다. “비즈니스 전략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전투 계획이다 (Business strategy is a battle plan for a better future).” 여기서 딕슨은 전략과 전술(tactic)을 구분하지 않았다. 전략은 전쟁, 전술은 전투를 위한 것이라고 보면 딕슨이 한 말은 “비즈니스 전략은··· 미래를 위한 전쟁 계획이다”라고 바꿀 수 있다.
영국 코미디 작가인 프랭크 뮤어(1920~1998)는 전략과 전술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전략은 여성과 식사할 때 좋은 와인 한 병을 사는 것이다. 전술은 그가 와인을 마시게 하는 것이다 (Strategy is buying a bottle of fine wine when you take a lady out for dinner. Tactics is getting her to drink it).”
연애에서나 비즈니스에서나 전략이 필요한 이유는 상대가 있고 경쟁자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는 이렇게 말했다. “경쟁 상대가 없다면 전략은 필요 없을 것이다. 왜냐면 전략 계획의 유일한 목적은 경쟁 상대에 대한 지속 가능한 우위를 회사가 가장 효과적으로 획득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Without competitors there would be no need for strategy, for the sole purpose of strategic planning is to enable the company to gain, as effectively as possible, a sustainable edge over its competitors).”
전략의 출발점은 나와 내 경쟁자들에 아는 것이다. 손자(孫子)는 말했다. “남을 알고 나를 알면 100번 싸워도 위태로울 일이 없다. 남을 모르고 나에 대해서만 알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나에 대해서도 모르면 모든 전투에서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If you know others and know yourself, you will not be imperiled in a hundred battles; if you do not know others but know yourself, you win and lose one; if you do not know others and do not know yourself, you will be imperiled in every single battle).”
경쟁자에 대해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리오 푸조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극본을 쓴 영화 ‘대부 2’(1974)에 나오는 말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 “친구들을 가까이 하고 적들은 더욱 가까이하라(Keep your friends close, and your enemies closer)” 이다. 어떤 무명씨(無名氏)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한다. “너의 적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네가 너의 적이 돼야 한다 (To know your enemy, you must become your enemy).”
전략 세운 후 죽기살기로 실천해야
나와 남에 대해 알려고 하는 이 순간에 남은 쉬고 있는 게 아니다. 그도 나에 대해 알려고 하고 있다.러시아 혁명가인 레온 트로츠키(1879~1940)는 말했다. “당신은 전략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전략은 당신에 대해 관심이 있다 (You may not be interested in strategy, but strategy is interested in you).”
피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전략을 세운 다음에는 말보다 실천이다. 잭 웰치의 전략 개념은 실천을 포괄한다. 그는 『위대한 승리(Winning)』(2005)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실 세계에서 사실 전략은 매우 간단하다. 일반적인 방향을 선택하고 죽기살기로 실천하면 된다 (In real life, strategy is actually very straightforward. You pick a general direction and implement like hell).”
전략의 실천은 CEO혼자하는 게 아니다. 전략이 조직 전체에 스며들어야 한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는 최고의 CEO들은 스승이다. 그들이 가르치는 핵심은 전략이다 (The best CEOs I know are teachers, and at the core of what they teach is strategy).”
- 이코노미스트 1123호 | 김환영 | 2012.02.06 |
아포리즘 경영학 6. ‘결정 - 우주는 소망 담은 결정에 보상 한다’ |
리더는 변화를 주도하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 … 섣부른 나쁜 결정도 우유부단함보다 낫다
결정이 지배 · 피지배를 가른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공동체의 결정에 영향을 준다. 디시전 메이커(decision makers)는 실제로 결정을 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프랑수아 리요타르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에도 미래에도 지배계급은 정책결정자들로 이뤄진 계급이다 (The ruling class is and will continue to be the class of decision makers).”
‘변화의 서(書)’인 주역(周易)은 ‘세계 최고(最古)의 정책결정 시스템 (the world’s oldest decision-making system)’이기도 하다. 변화가 없다면 결정도 필요 없다. 선인(先人)의 전통에 따라 조직을 꾸려나가면 된다. 고대의 제왕에서 현대의 CEO들까지 우두머리들이 하는 일은 변화를 따라가고, 변화를 주도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선택은 결정의 ‘부분집합’
결정이란 무엇인가. 결정은 선택과 유사하지만 다르다. 선택은 결정의 부분집합이다. 선택은 ‘여럿 가운데서 필요한 것을 골라 뽑는 것’이다. 결정은 ‘행동이나 태도를 분명하게 정하는 것’이다. 옥스퍼드 영영대사전(ODE)은 결정을 ‘연구 끝에 내리는 결론이나 결의 (a conclusion or resolution reached after consideration)’라고 정의한다.
삶은 선다형 선택보다는 주관식 결정에 가깝다. 미국 만화작가 찰스 슐츠(1922~2000)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가끔 밤에 잠들지 못한 채 드러누워 이렇게 묻는다. ‘인생은 선다형 (選多型) 시험인가 아니면 정오(正誤) 가리기 시험인가.’ 그러면 어둠으로부터 어떤 목소리가 내게 말한다. ‘이런 말 하기 싫지만 인생은 1000 단어 분량의 논술이다’ (Sometimes I lie awake at night and I ask, ‘Is life a multiple choice test or is it a true or false test?’ Then a voice comes to me out of the dark and says, ‘We hate to tell you this, but life is a thousand-word essay’).”
결정은 어려운 시련이다. 어려운 만큼 리더를 결정하는 조건이다. 딘 애치슨(1893~1971) 미국 국무장관은 “신(神)의 선물 중에 가장 드문 선물은 결정 능력이다 (The rarest gift that God bestows on man is the capacity for decision)”라고 말했다. 나폴레옹도 말했다. “결정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어려운, 따라서 더 소중한 것은 없다 (Nothing is more difficult and therefore more precious, than to be able to decide).”
선택의 폭이 너무 넓으면 결정이 힘들다. 컬럼비아대 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인 쉬나 아이엔가(Sheena Iyengar)는 자신의 저서 『선택술(選擇術 · The Art of Choosing)』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사람들은 큰 숫자(20~30)가 아니라 적당한 숫자(4~6)의 선택이 주어졌을때 어떤 선택을 할 가능성이 더 크고, 결정에 대해 더 큰 자신감을 가지며, 선택에 대해 더 행복하다 (When people are given a moderate number of options (4 to 6) rather than a large number (20 to 30), they are more likely to make a choice, are more confident in their decisions, and are happier with what they choose).”
지금은 선택의 고민이 아니라 창조적 결정의 고통이 따르는 시대다. 뾰족한 수가 없는 시대다. 그 어느 때보다 나쁜 결정의 리스크가 큰 시대다. “나쁜 시기에는 나쁜 결정만 내리게 된다 (In bad times, you make only bad decisions).” 산스크리트 속담이다.
미국 작가 에드워드 달버그 (1900~1977)는 “여러분이 내리는 모든 결정은 잘못이다 (Every decision you make is a mistake)”라고 했다. 경제·경영은 그나마 정치보다 처지가 낫다. 영국 정치가 존 몰리(1838~1923)는 말했다. “정치에서 선택은 항상 나쁜 것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In politics the choice is constantly between two evils).”
동양 전통에서는 결정 · 행동을 미뤄야 할 때도 있다고 본다. 서양 전통은 상대적으로 결정 · 행동에 더 큰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결정의 순간에서 최선은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 차선(次善)은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이다. 최악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In any moment of decision, the best thing you can do is the right thing, the next best thing is the wrong thing, and the worst thing you can do is nothing).” 자기계발서 작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도 비슷한 말을 한 ‘결정지상주의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결단성은 높은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거의 모든 결정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보다 낫다 (Decisiveness is a characteristic of high-performing men and women. Almost any decision is better than no decision at all).
성과를 내는 사람은 결단성 있어
서양에도 신중함(prudence)의 전통이 있지만 언론인·작가 말콤 글래드웰 은 『블링크(Blink)』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아주 신속하게 내린 결정도 신중하고 찬찬히 내린 결정만큼 어느 모로 보나 훌륭하다 (Decisions made very quickly can be every bit as good as decisions made cautiously and deliberately).”
결정이 반이다. 결정을 봤다면 반쯤은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수필가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은 말했다. “여러분이 결정을 내리면 우주가 몰래 힘을 모아 결정을 실현시킨다 (Once you make a decision, the universe conspires to make it happen).”
파울루 코엘류는 『연금술사』(1988)에서 에머슨을 본 따 말했다. “여러분에게 소망이 있을 때, 온 우주가 몰래 힘을 모아 여러분이 소망을 이루도록 돕는다 (When you want something, all the universe conspires in helping you to achieve it).”
두 말을 묶어보면, 소망이 잉태한 결정에 결실을 보장하는 것은 우주 그 자체다.
기원전 49년 줄리우스 시저는 “주사위는 던져졌다(The die is cast)” 라며 루비콘 강을 건넜다. 소망이 있고 결단이 있으면 시저가 이룩한 성과를 꿈꿀 다리가 놓인다.
- 이코노미스트 1124호 | 김환영 | 2012.02.13 |
아포리즘 경영학 7. ‘행복 - 잡으려하면 사라지는 행복 패러독스’ |
노력해야 얻을 수 있지만 집착하면 곤란
“자신이 행복한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행복하지 않게 된다 (Ask yourself whether you are happy, and you cease to be so)” 라고 존 스튜어트 밀이 말했다. 길버트 체스터턴은 “행복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비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따지면 안 된다 (Happiness is a mystery like religion, and it should never be rationalized)”라고 주장했다.
밀과 체스터턴이 한 말은 현대 사회에서는 무시된다. ‘나는 행복한가’를 끊임없이 묻고, 행복을 과학의 탐구 대상으로 삼는 게 당연한 시대다.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과 같은 학문 분과가 행복의 비밀을 벗기고 있지만 연구의 출발점은 고래의 지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따질 때 출발점은 옛날 사람들이 한 말이다. 이런 말들이다. “인생에서 행복은 딱 한가지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다 (There is only one happiness in life, to love and to be loved).”(조르주 상드)
“세상의 행복에 대해 설명할 때에는 ‘건강한 몸에 담긴 건강한 마음’ 이라는 짧은 표현으로 충분하다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is a short but full description of a happy state in this world).”(존 로크) “마음이 편한 게 행복한 삶이다 (A happy life consists in tranquility of mind).”(키케로) “주머니 두둑하고, 맛있는 음식 먹고, 소화 잘 되는 게 행복이다 (Happiness: a good bank account, a good cook and a good digestion).”(장자크 루소)
그렇다면 행복은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노력으로 얻는 것일까. 행복학(science of happiness)에 따르면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행복은 즐거움 더하기 일에 대한 몰두 더하기 삶의 의미다. 모두 우리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노력 무용론자’도 많다.
에릭 호퍼는 말했다. “행복 찾기는 불행의 주된 원인 중 하나다 (The search for happiness is one of the chief sources of unhappiness).” 앨더스 헉슬리도 같은 생각이다.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의식적으로 추구한다고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행복은 보통 다른 활동의 부산물이다 (Happiness is not achieved by the conscious pursuit of happiness; it is generally the by-product of other activities).”
잡으려고 해야 잡을 수 있고, 잡으려고 하면 잘 안 잡히는 게 행복이다. ‘행복 패러독스’다. 행복은 비누와 같다. 꽉 잡으면 튕겨나간다. 행복에도 적당한 악력(握力)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행복대장정의 출발점은 우리 자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우리 스스로에 달렸다(Happiness depends on ourselves)”고 말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행복의 원천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 (Most folks are about as happy as they make up their minds to be)”라고 했다.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할까. 마음은 요즘 말로 하면 ‘뇌의 작용’이다. 뇌는 생각한다. 생각을 잘해야 행복하다. 그런데 프랑수아 라 로슈푸코는 “우리는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행복하거나 불행하지 않다 (We are never so happy or unhappy as we think)”고 말했다
우리가 우리 행불행을 과대·과소 평가하게 되는 이유는 남들과 비교하기 때문 이다. 몽테스키외는 말했다. “단지 행복해지려고만 한다면 쉽게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게 되기를 바란다. 남들보다 행복하게 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왜냐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실제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If one only wished to be happy, this could be easily accomplished; but we wish to be happier than other people, and this is always difficult, for we believe others to be happier than they are).”
비교는 행복을 제로섬게임으로 만든다. 한마디로 남들을 향한 안테나를 꺾어야 행복해 질 수 있다.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행복하려면 남들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금물이다 (To be happy, we must not be too concerned with others).”
비교 못지 않게 걱정 또한 행복의 적이다. 오비디우스는 말했다.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슬을 끊어버리고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Happy is the man who has broken the chains which hurt the mind, and has given up worrying once and for all).” 비슷한 이야기로는 에픽테토스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의지력을 넘어선 일들에 대한 걱정을 끊는 것이다 (There is only one way to happiness and that is to cease worrying about things which are beyond the power of our will).”
비교와 걱정은 행복의 적
비교나 걱정과 같이 행복 추구의 방해물만 있는 게 아니다. 의외의 원군도 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행복은 건강과 나쁜 기억력에 불과하다 (Happiness is nothing more than good health and a bad memory)”라고 했다.
행복한 기억, 불행한 기억이 있을 뿐, 행복·불행 그 자체는 없는지도 모른다. 미국 작곡가이자 작가인 오스카 러밴트(1906~1972)는 말했다. “행복은 여러분이 체험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기억하는 그 무엇이다 (Happiness isn’t something you experience, it’s something you remember).”
신앙심도 행복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미 있는 헝가리 속담이 있다. “믿는 자는 행복하다. 회의하는 자는 현명하다 (The believer is happy. The doubter is wise).”
톨스토이는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 (All happy families resemble one another, but each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고 했다. 가정 대신 직장을 대입해도 말이 성립한다. 행복학에 따르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감이 증가한다. 직장에는 엄청난 행복의 가능성이 있다.
- 이코노미스트 1125호 | 김환영 | 2012.02.20 |
아포리즘 경영학 8. ‘경쟁 - 경쟁 싫어하는 본성이 독재 · 독점 정당화’ |
경쟁은 도전에 맞서는 원동력 … 조직 간 경쟁 활성화 해야
최근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부주석에게 존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으로서 우리는 경쟁을 환영한다. 경쟁은 우리 DNA의 일부다. 경쟁은 미국 국민이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도전에 맞서게 하는 원동력이다 (As Americans, we welcome competition. It’s part of our DNA and it propels our citizens to rise to the challenge).”
경쟁을 꺼리는 DNA도 있다. 경쟁은 고통스럽다. 가능하면 고통을 피하려는 게 생리다. 미국의 석유왕이자 자선왕인 존 D 록펠러(1839~1937)는 “경쟁은 죄악이다 (Competition is a sin)” 라고 말했다. 경쟁을 회피하는 심성은 정치에선 독재를, 경제에선 독점을 정당화 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꽃피는 곳은 경쟁을 막는 독재와 독점이 붕괴한 자리다.
경쟁의 고통에 강한 사람이 뭔가를 이뤄도 이룬다. “경쟁은 신경줄을 동여매는 듯한 고통을 줄 수 있는 체험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 (Competition can be the most nerve-racking experience. Some people just thrive on it).” 바이올린 연주자 이츠하크 펄먼이 한 말이다.
나면서부터 ‘경쟁형 인간’도 있지만, 살다 보니 경쟁 습관에 물드는 사람도 있다. 월트 디즈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고된 경쟁에 맞서 살아왔다. 경쟁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할 것이다 (I have been up against tough competition all my life. I wouldn’t know how to get along without it).”
경쟁에는 부작용도 있다. 경쟁은 승리와 패배,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버트런드 러셀은 “인생이란, 희생자보다는 가해자가 되려는 경쟁에 불과하다 (Life is nothing but a competition to be the criminal rather than the victim)”고 주장했다. 미국 기업인으로 상업 라디오·TV분야의 선구자인 데이비드 사르노프(1891~1971)는 이렇게 말했다. “경쟁은 제품에서는 최고의 것을, 인간에게선 최악의 것을 끄집어낸다 (Competition brings out the best in products and the worst in people).”
‘경쟁 얌체족’ 때문에 속상할 일도 있다. 미국의 기업인·정치인인 드와이트 모로(1873~1931)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두 종류의 인간으로 나뉜다. 일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는 사람들이다. 가능하면 일하는 사람이 되라.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경쟁이 훨씬 덜하다 (The world is divided into people who do things, and people who get credit. Try, if you can, to belong to the first class, there is far less competition).” 비슷한 말로는 미국의 작가·출판인 · 예술가 · 철학자인 엘버트 허버드(1856~1915)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온 마음을 다해 일하면 성공한다. 실은 아주 약간의 경쟁이 있을 뿐이다 (Do your work with your whole heart, and you will succeed, there’s so little competition).”
여러 각도에서 경쟁을 극복할 수 있다. 경쟁이나 경쟁자를 외면하는 것도 속 편하게 사는 방법이다. 미국 가수 · 연기자 바바라 쿡은 말했다. “나다운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면 경쟁이란 없다. 내 본질에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것으로 족하다 (If you’re able to be yourself, then you have no competition. All you have to do is get closer and closer to that essence).”
현명한 사람은 경쟁하지 않는다. 미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워싱턴 올스턴(1779~1843)은 이렇게 말했다. “현명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경쟁은 자기 자신과 벌이는 경쟁밖에 없다 (The only competition worthy of a wise man is with himself).”
아예 경쟁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토크(1881~1945)는 “경쟁은 말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예술가들에는 쓸데 없는 게 경쟁이다 (Competitions are for horses, not artists)”라고 주장했다. 미국 싱어송라이터인 패티 스미스는 한 술 더 떠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란 신(神)과 경쟁에 돌입하는 사람이다 (An artist is somebody who enters into competition with God).”
목표를 높여도 경쟁에서 해방된다. 캐나다 철도업계의 선구자인 윌리엄 반 혼(1843~1915)은 이렇게 말했다. “가장 위대한 일이 제일 하기 쉽다.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The biggest things are always the easiest to do because there is no competition).”
“경쟁은 말에게나 필요한 것”
생존이나 이익 같은 것을 목표에서 배제하는 것도 경쟁에서 해방되는 지름길 이다. “공중을 잘 떠받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비즈니스에 임하는 장사꾼은 경쟁 때문에 두려워할 일이 없다 (A merchant who approaches business with the idea of serving the public well has nothing to fear from the competition).” 미국 백화점 체인 JC페니를 설립한 기업인인 제임스 페니 2세(1875~1971)가 한 말이다.
경쟁의 부작용을 극복하려면 개인 차원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 · 조직 차원의 노력도 절실하다. 미국 정치가 · 군인 콜린 파월은 “가장 건강한 경쟁은 보통 사람이 평균 이상의 노력으로 승리할 때 발생한다 (The healthiest competition occurs when average people win by putting above average effort)”고 주장했다. 보통 사람이 ‘평균 보다 훨씬 높은(well above average)’ 노력으로도 성공할 수 없다거나 ‘평균 보다 훨씬 낮은(well below average)’ 노력으로도 성공이 가능한 사회는 경쟁의 구조가 잘못된 사회다.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는 경쟁의 효율성 까지 부인되는 사회로 전락할 위험이 도사린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조직 내 경쟁을 최소화하고 조직간 경쟁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어떤 무명씨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경쟁은 반목을 낳고 사기를 저하시키지만 조직끼리의 경쟁은 사기를 진작하고 창의성을 고무한다 (Competition between individuals sets one against the other and undermines morale, but competition between organizations builds morale and encourages creativity).”
- 이코노미스트 1126호 | 김환영 | 2012.02.27 |
아포리즘 경영학 9. ‘목표 - 구체적이고, 약간 '오버'해서 잡아라’ |
실천 단계에서는 집중력이 중요 … 계획→실천→성취의 선순환 이뤄야
하버드 MBA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어봤다. “미래를 위해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 글로 써놨으며, 목표 성취를 위한 계획을 수립했는가 (Have you set clear, written goals for your future and made plans to accomplish them?).” 대답을 보니 학생들의 3%만 글로 쓴 목표와 계획이 있었다. 13%는 목표는 있었으나 글로 써놓지는 않았다. 84%는 아무런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다.
10년 후에 조사해보니 ‘성문(成文) 목표’가 있었던 학생 3%는 나머지 97%보다 10배가 넘는 돈을 벌고 있었다. 목표는 있으나 문서화 하지 않은 13%는 목표가 없던 84%보다 수입이 평균 두 배였다. 마크 맥코맥이 지은 『하버드 MBA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What They Don’t Teach You in the Harvard Business School)』(1984)에 소개된 연구 사례다.
목표를 글로 써라
‘다른 조건이 같다면(other things being equal)’, 예컨대 지능·교육·의지 같은 것들이 같다면,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것은 목표의 존재 여부다. 대다수가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환경에서는 목표가 있는 것만도 엄청난 경쟁력이다. 다수가 목표를 갖게 된다면 목표의 질이 문제다. 무엇이든 품질을 평가하는 데에는 기준(criteria)이 필요하다. 1980년대부터 목표의 기준을 외기 쉽게 정리한 ‘스마트(SMART)’가 애용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종류가 다양하듯 SMART를 구성하는 단어들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S는 구체적(specific) 또는 간단한(simple), M은 측정할 수 있는(measurable) 또는 의미 있는(meaningful), A는 도달 가능한(attainable) 또는 야심적인(ambitious), R은 realistic(현실적인) 또는 results-oriented(결과 지향적인), T는 시기적절(時期適切)한(timely) 또는 시간제한이 있는(time-bound)이다.
아포리즘 세계의 명사들도 목표 설정에 필요한 ‘손대중(rule of thumb)’을 제시했다. 1차적인 문제는 목표를 높게 잡는 것과 낮게 잡는 것 중 어느 게 더 좋은지의 문제다. 미국 시인 헨리 롱펠로(1807~82)는 약간 ‘오버’할 것을 권한다. “과녁을 맞추려면 약간 위를 겨누어야 한다. 땅은 모든 날아가는 화살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If you would hit the mark, you must aim a little above it. Every arrow that flies feels the attraction of earth).” 반에서든 업계에서든 10등이 되려면 10등이 아니라 7등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10등이 된 다음에는 5등을 목표로 7등이 되고, 7등이 된 다음에는 3등을 목표로 5등이 된다. 목표 설정→목표 실천→목표 달성→새로운 목표 설정의 선순환(virtuous circle)이 정착하면 끝없이 성장할 수 있다. 사회심리학의 창시자인 쿠르트 레빈(1890~1947)은 그 과정을 이렇게 요약한다. “성공적인 사람은 대체로 다음 목표를 마지막 성취보다 어느 정도 더 높게 잡지만 지나치게 높게 잡지는 않는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포부를 점차 높여간다 (A successful individual typically sets his next goal somewhat but not too much above his last achievement. In this way he steadily raises his level of aspiration).”
목표 설정에는 시간의 차원도 중요하다. 100년도 못 살면서 1000년을 생각하는 게 사람이다. ‘백년대계(百年大計)’도 필요하지만 5년, 10년이 더 문제다. 윈스턴 처칠에 따르면 “너무 멀리 보는 것은 잘못이다. 운명의 사슬은 한 번에 한 고리씩만 다룰 수 있다 (It is a mistake to look too far ahead. Only one link in the chain ofdestiny can be handled at a time).”
사람의 기질이나 조직의 특성에 따라 황당하게 높은 목표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장 터무니 없고 무모한 목표가 놀라운 성공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The most absurd and reckless aspirations have sometimes led to extraordinary success).” 프랑스 작가 보브나르그(1715~1747)가 한 말이다.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처럼 ‘무모한’ 목표가 성과의 비결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목표는 간단하다. 내 목표는 우주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My goal is simple. It is the complete understanding of the Universe).”
목표 실천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집중력과 집요함이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이렇게 집중력 저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장애물이란 목표에서 눈을 뗐을 때 보이는 무서운 것들이다 (Obstacles are those frightful things you see when you take your eyes off your goal).” 루이 파스퇴르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목표로 인도해준 비밀을 알려주겠다. 내 강점은 순전히 집요함에 있다 (Let me tell you the secret that has led me to my goal. My strength lies solely in my tenacity).”
유종의 미도 중요
조직의 경우에는 충성심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경영 스타일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조직심리학자 렌시스 리커트(1903~1981)는 말했다. “그룹에 대한 충성도가 높을수록, 그룹의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그룹 구성원들의 동기가 강하며 그룹의 목표를 달성할 확률도 높아진다 (The greater the loyalty of a group toward the group, the greater is the motivation among the members to achieve the goals of the group, and the greater the probability that the group will achieve its goals).”
목표 달성에도 유종의 미가 중요하다. 그런데 괴테의 말마따나 “어려움은 우리가 목표에 근접해 갈수록 증가한다 (Difficulties increase the nearer we approach our goal).”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렇게 막판 뒷심을 강조한다. “어떤 사람들은 목표에 거의 도달했을 때 계획을 포기한다. 다른 이들은 반대로 마지막 순간에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노력으로 승리를 쟁취한다 (Some men give up their designs when they have almost reached the goal. While others, on the contrary, obtain a victory by exerting, at the last moment, more vigorous efforts than ever before).”
- 이코노미스트 1127호 | 김환영 | 2012.03.05 |
김환영 중앙일보 기자로 서울대 외교학과와 스탠퍼드대(정치학박사)에서 공부했다. 중앙SUNDAY에 ‘새시대를 연 거목들’을 연재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한경대 영어과 겸임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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